프로농구 서울 SK가 단 한 번의 패배도 허용하지 않고 챔피언결정전까지 진출했다. 4월 18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시즌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PO·5전3승제) 3차전에서 SK는 창원 LG를 85-84로 제압했다.
 
1,2차전에 이어 내리 3연승을 거둔 SK는 챔피언결정전(7전 4승제)에 진출하며 2년 연속 우승을 노리게 됐다. 반면 정규리그 2위 LG는 4강직행 프리미엄에도 단 한번의 승리도 거두지 못하고 3위팀에서 '업셋'을 허용하며 4년 만의 봄 농구를 조기종영해야 했다.
 
최근 SK의 기세는 경이롭다. SK는 정규리그 6라운드 마지막 9경기를 모두 승리한 것을 비롯하여 전주 KCC와 벌인 6강과 LG와의 4강 플레이오프를 각각 3전 전승으로 모두 스윕하며 파죽의 15연승 행진을 내달리고 있다.
 
봄농구의 주인공은 역시 자밀 워니와 김선형의 MVP 듀오였다. 올시즌 나란히 외국인 선수와 국내 MVP를 석권하며 리그 최강의 '원투펀치'로 인정받은 두 선수는 플레이오프에서도 경기를 거듭할수록 위력이 점점 절정에 달하고 있다. KCC와의 6강전에서 워니는 평균 25.3점, 10.3리바운드를, 김선형은 14.3점, 10.3어시스트로 맹활약했다.
 
4강전에서 워니는 1차전 28점 19리바운드 5어시스트, 2차전 40점 11리바운드, 3차전 23점 12리바운드 5어시스트로 시리즈 전경기 더블-더블을 달성했다. 아셈 마레이가 없는 LG는 워니를 전혀 제어하지 못하며 무려 평균 30.3점을 허용했다. 김선형도 3차전에서 워니보다 많은 팀내 최다인 25점을 올리는 등 시리즈 평균 16점, 4.6어시스트로 기복없이 꾸준히 약했다.
 
워니와 김선형은 4강전 시리즈 내내 평균 46.3점, 16리바운드, 8어시스트, 4.6스틸을 합작하는 엄청난 활약으로 SK의 공수를 이끌었다. 두 선수가 건재했기에 SK는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있는 지난 시즌 MVP 최준용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았다.
 
또한 SK에는 워니-김선형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베테랑 최부경은 적극적인 리바운드 가담과 허슬플레이로 워니를 보좌하며 SK의 골밑장악에 힘을 보탰고, 슈터 허일영은 2차전에서 24점을 터뜨리는 깜짝 활약으로 원투펀치의 부담을 덜어줬다. 리온 윌리엄스는 워니에 밀려 출장시간은 극히 적었지만 2차전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역전 위닝샷을 성공시킨 영웅으로 등극했다.
 
최성원-최원혁-오재현 등도 수비 스페셜리스트로 코트에 나오는 순간마다 소금같은 활약을 해줬다. 든든한 조연들의 지원이 뒷받침되었기에 SK는 수차례의 고비를 극복하고 연승 행진을 이어갈 수 있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기 마련이다. 3연패로 허무하게 탈락한 LG의 가장 큰 패인은 역시 마레이의 공백이었다. 정규리그 전 경기에 출장하여 15점 12.5리바운드 2어시스트 1.8스틸을 올리며 리바운드와 스틸 양대 부문에서 전체 1위를 기록한 마레이는 정작 플레이오프에서는 부상으로 합류하지 못했다. 정규리그 76.6점으로 최소 실점에 빛나는 수비력이 강점이던 LG는 4강전에서 무려 83.3실점을 허용했다. 리그에서 워니를 가장 잘막는 선수였던 마레이의 공백이 크게 다가온 대목이다.
 
마레이의 공백과 더불어 레지 페리의 부진도 한 몫했다. 마레이의 대체선수로 합류한 페리는 팀원들과 손발을 맞출 시간이 짧았음에도 NBA 출신다운 탁월한 개인기량만은 돋보였다. 1차전에서는 단테 커닝햄과 출전시간을 양분하여 18분22초만 뛰었음에도 무려 17점을 기록했고, 2차전에서는 무려 31점 13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워니와 득점 '쇼다운'을 펼치기도 했다.
 
문제는 수비와 팀공헌도였다. 개인능력으로 득점은 많이 올렸지만 정작 LG가 원한 수비와 팀플레이가 전혀 되지 않았다. 2차전에서는 본인이 올린 득점 이상으로 워니에게 더 많은 실점을 허용했다. 이기적인 플레이로 팀원들과 호흡이 맞지 않을 때는 짜증스러운 기색을 자주 드러냈고, 이관희와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벼랑 끝에 몰린 3차전에서 페리는 고작 10분만을 뛰며 야투를 3개 시도한 것이 모두 빗나갔고 자유투로만 1득점을 올리는 데 그쳤다. 어시스트는 2개, 리바운드는 1개를 추가했을 뿐이다. 조상현 LG 감독은 페리가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하자 경기 초반 이후 벤치로 불러들였다. 
 
커닝햄이 30분을 소화했으나 9점 4어시스트 3리바운드에 그쳤다. LG는 이재도(24점)과 저스틴 구탕(16점)의 분전으로 외국인 선수들의 부진 속에서도 접전을 펼쳤지만 2경기 연속 뒷심이 부족했다. 페리가 조금만 더 집중력있고 이타적인 플레이를 펼쳤다면 시리즈의 운명은 바뀔 수도 있었다. 결국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선수라도 인성과 워크에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씁쓸한 진리만 확인했다.

한편 LG 이관희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보탰다. 이관희는 시리즈를 앞두고 "SK의 수비수들은 나에게 마네킹과 같다"는 도발성 이야기를 해 화제가 됐다. SK 선수들이 결코 자신을 막을수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이로 인하여 LG와 SK의 대결은 '마네킹 더비'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이관희의 발언은 SK 선수들에 대한 악의적인 조롱이나 비하라기보다는, 프로스포츠에서 통상적으로 벌어질 수 있는 승부욕과 기싸움의 영역으로 봐야 한다. 실제로 이관희의 도발이 이슈몰이가 되면서 시리즈가 더 흥미진진해졌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이관희의 코트에서 활약이 미비하다는 것이다. 정규리그에서 SK를 상대로 평균 17점 3점슛 3.3개 3.2리바운드 3어시스트 1.5스틸로 맹활약했던 이관희는, 플레이오프에서는 3경기 평균 12.6점으로 크게 하락했고 야투율은 35.7%(15/42)에 그쳤다. 3점슛은 시리즈 전체 14개를 시도하여 고작 1개를 적중시켰다. 반면 이관희의 도발에 자극받은 SK 선수들의 집중력만 시리즈내내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역효과를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이로써 LG는 정규리그 상대전적 3승 3패로 대등했던 3위 SK에게 업셋-스윕-2연속 1점차 패배라는 불명예 진기록을 세우며 고개를 숙였다. LG는 프로통산 5번이나 2위를 차지했으나 2000-01시즌(준우승)을 제외하면, 올해까지 나머지 4번을 모두 3위팀에게 업셋당하여 결승진출에 실패하는 기묘한 기록을 반복했다. 

정규리그에서는 통산 승률 .510(691승 665패, 승률 .510)에 이르는 LG는 올해 4강전 스윕으로 플레이오프 승률은 .350(28승 53패)까지 더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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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자밀워니 김선형 이관희 레지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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