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처음' 특별상영 포스터 이미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처음' 특별상영 포스터 이미지 ⓒ 인디스페이스

 
서울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지점에는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한 관을 임대해 자리하고 있다. 처음엔 광화문 서울역사박물관 옆에 둥지를 틀었다가, 석연찮은 지원중단과 함께 고생 끝에 종로3가 서울극장 상영관 한 곳을 빌려 자리를 옮겼고, 서울극장이 문을 닫으면서 이사 고민 끝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국내 최초의 한국독립영화 전용극장으로 풍파를 겪어가면서도 공간이 명맥을 유지했기에 대구 오오극장 등 수도권을 넘어 (마치 섬처럼 군데군데 흩어져 있긴 하지만) 늘 영화가 완성되어도 공개할 스크린이 모자란 독립영화에 든든한 보루가 속속 탄생하는 데 산파 역할이 되어주고 있다.
 
그런 인디스페이스에서 2023년 7월 마지막 토요일에 제법 특별한 기획전 상영회가 열렸다. '인디스페이스 소셜클럽 특별상영' 프로그램 일환으로 (사)독립영화전용관 확대를 위한 시민모임 주최, 인디스페이스, 체크포인트 찰리 공동주관으로 기획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처음 - 초기 다큐멘터리에 관하여'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우리에겐 극영화로 알려진 일본 거장의 극 초기 작업인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2편을 상영하고 작품을 해설하는 토크 프로그램이 가미된 기획이다. 상영작품은 1991년에 TV 방영된 <그러나... 복지를 버리는 시대로>와 <또 하나의 교육>이었다. 방영된 지 30여 년이 넘은 데다 텔레비전 시사기획이라 분량과 표현의 제약도 많고, 결정적으로 비디오 수준 화질인데도 200석 가까운 상영관 내부가 가득 찰 정도로 제법 성황을 이뤘다.
 
그 현장에 굳이 지방에서 상경해 가며 한 자리를 채웠다. 실은 그저 관객이 아니라 나름대로 본인의 지분이 조금은 있다고 생각해서였기 때문이다. 처음 추진해 보자고 의견을 교환할 때부터 실행까지 6개월을 경과한 프로그램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자리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누군가에겐 그저 숱하게 스쳐 지나가는 별 관심 없는 단발 상영회에 불과할 테지만, 행사를 준비한 이들에겐 삶의 한 단락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테다.
 
30년의 시간을 넘어 지난해 연말 한 권의 책이 도착했다. 그 책,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자신의 이름이 처음으로 감독으로 표기된 TV 다큐멘터리 영화 방영 후 추가 취재를 거쳐 펴낸 에세이다. 이 얇은 책이 일본 내에서 초판 발행 후 30년 만에 국내에 번역된 것이다. 그 사실에 놀라움과 반가움을 함께 표시하기 위해 SNS 서비스에 메모했던 책 소개 게시물을 올렸는데 뜻하지 않은 DM이 온 것이다. 해당 도서를 신생 출판사의 첫 번째 책으로 발간한 출판사 대표가 보낸 것이었다. 영화에 대해 정보를 알 수 있는지, 혹시 상영회를 추진할 수 있을지 의견을 묻는 내용이었다. 그 바람에 흥분한 본인이 외려 더 호들갑을 떨며 출판사를 부추겼던 것 같다.
 
물론 프로젝트는 잘 풀리기는커녕 끝없이 표류하기 시작했다. 양치기 소년으로 누군가의 기억에 남겨질까봐 오들오들 두려워하는 시간이 길어져만 갔다. 욕심 같아서는 어느 영화제에서건 국내에 아직 미공개된 다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초기 TV 다큐멘터리 작업들까지 묶어 대규모의 기획전을 진행해 주길 요행으로 기대해 볼 만하다. 하지만 현실은 절대로 녹록지 않다. 이미 몇 차례 상영된 작품을 별 추가적인 화제성 없이 재상영하는 기획을 흔쾌히 받아들일 영화제는 없다. 그리고 신작을 소개하기 위해서는 번역과 자막작업, 그리고 섭외와 상영용 판본 수급을 위한 드러나지 않는 방대한 노동이 함께 수반되게 마련이다. 그렇게 몇 군데 접촉과 정중한 사절을 거쳐 그만 포기해야 하나 하던 순간에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의 입장을 들을 수 있었다. 1단계의 마무리였다.
 
1단계의 종결과 함께 사실상 본인의 역할은 끝났다. 이후에는 그냥 기다리면 될 일이긴 했지만 2단계 실무교섭 진행도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를 계속 전해 듣게 되었다. 해외 작품 수급, 특히 정확하게 서류와 실무 처리를 요구하는 일본 쪽과의 교섭은 (한두 번 해봤다고 아는 척하자면)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언제 다 해결되나 기다리는 시간이 무한정 길어져만 갔다. 듣자 하니 중간에 예상하지 못한 암초도 제법 있었다. 그런 기다림의 끝에 마침내 상영 일정이 확정되었다. 막상 행사 당일에 딱히 해야 할 역할이 있진 않았지만 괜히 반년 넘게 걸린 여정의 마지막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자 새벽 버스에 올랐다. 폭염 탓에 바깥출입도 꺼리던 요즘 일상에 비해 제법 모험을 감행한 셈이다. 이날 극장 로비에서 행사 공동주관단체인 출판사 체크포인트 찰리의 미니 부스도 있었기에 단 5권만 풀 예정이라는, 모든 사건의 출발점이라 할 고레에다 히로카즈 에세이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 감독 사인본 '득템' 욕망 탓에 꽤 일찍 도착해 인사를 나누고 영화티켓도 발권하고 부스에서 판매하던 책과 굿즈 몇 개를 구매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두근두근 떨리는 가슴으로 관람을 시작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TV 다큐멘터리와의 근접조우 개인기록
 
 영화 <그러나 복지를 버리는 시대로> 스틸 이미지

영화 <그러나 복지를 버리는 시대로> 스틸 이미지 ⓒ TV맨유니온

 
나는 이번에 상영되는 2편의 다큐멘터리를 네 번째로 보았다. 아마 국내에서 개인의 관람 회수만 놓고 본다면 가장 많이 봤음직하다. 하지만 그게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이 30년 넘은, 4: 3 화면비율에 비디오 수준 화질이 담긴 흔해빠진 것처럼 보일 분량과 형식의 시사 다큐멘터리에 감춰진 가치와 함의를 끊임없이 재발견하는 과정에 동참할 수 있었다는 게 즐거울 따름이다. 처음엔 그저 오래된 역사책 확인하듯 감독의 필모그래피 확인 차원에서 해당 작품을 보게 된 이들이 막상 영화가 끝나면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광경을 숱하게 목격했는데, 일단 세계적 거장의 초창기 방송 다큐멘터리에서 훗날 그의 쟁쟁한 극영화로 연결되는 수많은 고리가 눈에 밟히고, 감독이 꾸준하게 일본 사회를 조명하는 관점의 단초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감독의 명성이 더 커지고 작품목록이 늘어갈수록 이 초창기 작업들은 더 많이 호명될 운명인 것이다.
 
이 작품들은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4회 소개된 바 있다. 그 4차례에 본인이 모두 등판한 셈이다. 이쯤 되면 결코 우연 아니라 어떤 운명처럼 느껴질 정도다. 첫 번째 국내소개는 2014년 15회 전주국제영화제 기간이었다. 당시 전주국제영화제에선 '출발로써의 다큐멘터리: 세 거장의 기원'이라는 기획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비롯한 동서양 거장 감독 3명의 초창기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당시엔 그저 평범한 관객으로 해당 영화들을 호기심으로 봤지만 그 감흥과 잔향은 결코 휘발되지 않았다. 당시 지방에서 아주 작은 영화제에 관여하고 있었던 터라 언젠 가는 저 특별한 작품들을 우리 지역에서도 소개하고픈 욕망을 남몰래 품었다. 하지만 실행까지는 꽤 험난한 고비를 넘어야 했다.
 
절치부심 끝에 4년 후, 2018년 9회 대구사회복지영화제 기획전 프로그램으로 '거장의 기원'이라는 제목 아래 전주에서 소개된 4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작품을 두 번째로 상영하게 되었다. 이번엔 프로그램 수급 교섭부터 계약서 작성 실무, 그리고 작품 소개까지 거의 모든 실무를 떠맡았다. 개별 관객으로 편안하게 영화를 즐기던 것과는 전혀 다른 감흥이었지만 고생해서 가져온 오래된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감상을 들으며 그 모든 수고가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2014년 전주, 2018년 대구에서 소개된 작품들은 1991년 작품 <그러나... 복지를 버리는 시대로>와 <또 하나의 교육>, 1994년 작품 <그가 없는 8월이>, 그리고 감독이 최초의 극영화를 완성한 후 공개된 1996년 작품 <기억을 잃어버린 때>까지 총 4편으로 각각 일본의 사회복지제도와 대안교육, 퀴어 에이즈 환자 투병기, 의료사고로 기억을 상실해가는 피해자와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지금은 '백만 구독자'를 보유한 영화 유튜버 김시선이 서울에서 내려와 전편을 관람한 후 인상 깊은 요약특집을 올린 바 있기도 하다.
 
2014년 전주와 2018년 대구 사이에는 작은 상황변화도 있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국내 인지도가 비약적으로 더 상승했고, 감독의 영화 자서전 격인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이 2017년 국내에 출간되면서 책에 언급된 감독의 초창기 다큐멘터리 작업에 대한 관심이 대폭 높아진 게 사실이다. 누구나 영화 좀 본다손 치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이름을 언급하는데, 막상 거장의 최초 기원은 누구도 목격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전주와 대구, 흔히 '지역'이라 불리는 비수도권에서만 상영되었기에 적잖은 이들이 낭패감에 빠진 셈이다. 그리고 서울 상영은 이후로도 아주 한참 더 기다려야 했다.
 
2022년 연말부터 논의되고 몇 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2023년 초봄부터 상영회를 추진하던 중에 5월로 예정된 서울 국제환경영화제에서 이번 기획과는 전혀 무관하게 해당 작품들을 특별전 프로그램으로 상영하는 일정이 잡히기도 했다. 그래서 또다시 관객으로 해당 영화제에서 상영작을 관람하기도 했다.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는 <그러나... 복지를 버리는 시대로>와 <또 하나의 교육>에 추가해 국내에선 상영된 적 없는 1992년 작품 <오염은 어디로 갔는가> 3편이 상영되었다. 최초의 서울 상영이 된 셈이다. 상영된 작품 중 <오염은 어디로 갔는가>는 감독의 TV 다큐멘터리 중에서 대표작인 <그러나... 복지를 버리는 시대로>의 소재 상으로 후속에 속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두 달 여가 지나 원래 예정보다 꽤 지연되긴 했지만 마침내 성사된 본 기획전으로 네 번째 관람을 완수했다. 처음 전주에서 이 영화들을 발견할 시점부터 치자면 햇수로 9년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TV 다큐멘터리 작품들과 인연이 이어지는 셈이다. 뭐 이 정도면 충분히 운명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거장의 기원'을 목격하는 낯설지만 경이로운 체험
 
 영화 <또 하나의 교육> 스틸 이미지

영화 <또 하나의 교육> 스틸 이미지 ⓒ TV맨유니온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대학을 졸업 후 방송사 외주 PD로 활동하면서 최초로 감독 이름을 올린 작업이니 <그러나... 복지를 버리는 시대로>는 감독 본인에게 말 그대로 '출발의 영화'이자 '영화적 기원'이 아닐 수 없겠다. 작품이 후지 TV를 통해 심야시간 방영된 후에도 감독은 한정된 방영분량 때문에 미진했던 내용 관련 취재를 보강해 1992년에 에세이 북을 발간한다. 초판 발행된 에세이의 세 번째 판본(2014)을 번역한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를 위한 저자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한국판 서문에는 감독 본인의 쟁쟁한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첫 번째 감독 표기 TV 다큐멘터리가 자신의 기원이라 명백하게 언급된다.

"이 저작은 저의 원점입니다.
스스로 기획한 첫 다큐멘터리이고
처음으로 이십 대에 쓴 책이었습니다.
이 작품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존재할 수 없을 겁니다."
 -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 저자 서문, 2022, 체크포인트 찰리

 
그리고 실제 영화를 눈으로 확인한 국내 극소수의 행운아 관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독의 소견에 동의를 표했다. 너무나 명백하게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1990년대 초중반 작업인 TV 다큐멘터리들은 아직 반 정도밖에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다. 국내에 미공개된 작품들 중에는 일본 사회 내 불가촉천민이라 할 '부락민' 문제나 '자이니치', 즉 재일교포 소재도 포함되어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이름값을 떼어놓고 본다 해도 충분히 국내에서 활용도가 적지 않을 작업들인 것이다. 물론 그런 소재의 화제성 외에도 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만만치 않다. 역시 거장의 기원은 떡잎부터 다르다는 경탄이 저절로 나오는 작품들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방송국 정직원이 아니라 외주작업을 수행하는 동료 PD들과 함께 설립한 'TV맨유니온'이라는 회사 소속으로 작업한 일련의 다큐멘터리들은 단지 훗날 세계적 거장으로 명성을 얻은 감독의 초창기 작업이라는 훈고학적 명성을 가뿐히 뛰어넘는 울림을 갖는다. 단지 감독 연대기의 서막을 차지하는 것을 초월해 지금까지 이어지는 감독 고유의 작품세계 울타리를 이미 30여 년 전에 제대로 구획하고 있었다. 그 울타리 안에 보관된 당대 일본사회의 무수한 사연과 주변의 소외된 이들에 대한 연민과 기억이 현재까지 연결되는 감독의 거대한 영화적 우주의 토대이자 자양분으로 마르지 않는 원천이 되어줬다.
 
다음으로는 극영화에서 이후 만개될 감독 특유의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세상의 슬픔과 모순에 눈감지 않으면서도 단순하게 해석하는 프로파간다의 유혹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치열한 고뇌가 듬뿍 담긴 형식적 실험의 단초가 이 다큐멘터리들에 농축된 마냥 깃들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저 영화를 소개하는 이들의 호들갑이 아니라 실제로 영화를 본 관객들 공통된 평가다. 국내에선 어쩔 수 없이 감독의 극영화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식으로 작품세계를 조명하게 되는 영화체험을 갖게 되는데, 그런 면에서 ① 감독의 신작 ② 감독의 초창기 극영화 ③ 감독의 극히 초기 방송 다큐멘터리 ④ 감독의 영향 아래 동료감독들의 작업과 감독의 최신작으로 연결되는 무한 루프를 반복하게 되는 패턴에서 빠질 수 없는 연결고리 격이다.
 
<그러나... 복지를 버리는 시대로>에서는 감독의 대표작으로 언급될 운명의 (칸 영화제 2018년 황금종려상 수상작품인) <좀도둑 가족>과 직통되는 현대 일본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확인된다. 영화로 다 풀어내지 못한 감독의 아쉬움이 1년 뒤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로 완결되었고, 영화와 책에서 주요하게 조명된 고(故) 야마노우치 도요노리의 고뇌는 곧 고레에다가 필생의 과제처럼 짊어지게 된 예술가로서 자기 시대의 징후를 밝히는 '라이프 워크' 프로젝트가 되었기 때문이다.

추가적으로 <그러나...>는 감독의 초기 극영화들, <환상의 빛>과 <원더풀 라이프> 등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기도 하다. 특히 고 야마노우치 도요노리의 아내와의 인터뷰에서 감독이 얻은 감흥은 그의 첫 극영화 <환상의 빛>의 주요 캐릭터를 구성하는 데 절대적 영향력으로 평가될 정도다. 그리고 <그러나... 복지를 버리는 시대로>에서 야마노우치의 사연과 교차해 등장하는 노부코의 고립된 죽음은 감독의 또 다른 대표작 <아무도 모른다>의 문제의식과 연결되는 것 또한 명확히 관측된다. 주제의식뿐 아니라 표현방식과 편집 등에서 일관되게 극영화들과 연관성이 드러나기에 해당 작품 관련 풍부한 이해를 얻기 위한 정거장 역할 또한 만만찮게 소화한다.

이번 특별상영에서 소개된 다른 작품 <또 하나의 교육>은 '이나국민학교'라는 시골의 대안학교 교육과정을 담았다. 아이들이 주요 캐릭터로 등장하는 가족영화 장인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이 다큐멘터리는 그야말로 원점처럼 다가갈 테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도 모른다>의 대척점에 서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가 포함된다.) 그가 아이들에게서 본 희망과, 사회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가하는 폭력과 방치가 달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처럼 공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밝은 면에는 <또 하나의 교육>이, 어두운 면에는 <아무도 모른다>가 거울의 양면처럼 자리 잡는다. (이와이 순지의 '화이트 이와이' vs. '다크 이와이' 버전이라고나 할까.) 그만큼 해당 작업들의 가치와 함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세계를 온전히 소화하기 위한 필수 경로가 된다.

거장에 대한 열광이 사려 깊은 교감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처음' 인디토크 현장 스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처음' 인디토크 현장 스틸 ⓒ 인디스페이스


네 번째 국내 상영이자 한동안 마지막이 될 해당 기획전 프로그램이 모두 끝났다. 아마 새롭게 대규모의 기획과 투자가 없이는 굳이 여러 차례 상영된 이 작품들을 다시 힘들여 수급할 곳은 쉽게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극장을 찾아준 이름 모를 관객들에게는 깊은 감사를, 아쉽게 놓친 이들에겐 심심한 유감을 전하려 한다. 물론 늘 지방에서만 상영되고 서울에서 상영이 없어 못 봤다며 투정하다 2023년 상반기에만 서울에서 2번이나 소개되는 현장도 빼먹은 이들에겐 뭐라 할 말이 없다. 문화적 환경 격차가 특히 독립예술영화 관람환경에서 현격하게 드러나는 국내 상황에서 단순히 소비자 마인드로 영화를 고르는 행태라고나 할까.

독립예술영화를 애호하는 이들, 흔히 '시네필'이라 불리는 이들은 영화를 통해 현실을 넘어서거나 극복하는, 혹은 우리가 곧잘 외면하고 마는 세상의 단면을 기록하고 기억하려는 작업을 통해 '다른 세계' 또는 '대안세계'를 살짝 엿보는 이들이라 믿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급격하게 변화되는 세태 속에서 자신의 취향을 과시하거나 남들 노는 물에 끼어들기 위해 무슨 게임 미션 수행하듯 타인의 평판에 눈치를 보는 식의 영화문화가 알게 모르게 스며들고, 어느새 부정하고 싶지만 한국의 영화문화 상당 부분을 잠식한 게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아무 이익을 얻을 수 없는, 사서 고생하는 수고를 무릅쓰고서라도 어렵게 발간한 책의 온전한 가치와 의미 완성을 위해 지난 반년 넘는 시간 동안 분투해 온 출판사 체크포인트 찰리와 난이도 극악인 일본 저작권사와의 교섭 및 평소 행하지 않던 자막 상영 실무를 떠맡아준 인디스페이스에 무한한 감사를 전하려 한다. 소비자의 품평이 아니라 영화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작은 결실이 아닐 수 없다.
 
국내에서 곧 만나게 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몬스터>와의 해후를 손꼽아 기다리며, 그 워밍업이자 감독의 출발점을 확인하는 작은 상영회는 끝났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은 비록 수백 명에 불과할지언정 각자의 마음속에 작은 불씨를 간직하고 돌아갔으리라 믿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와 그 안에 담긴 세상에 대한 근심과 애정이 영화를 보게 된 국내 관객들에게도 국경을 넘어 울림과 공명을 전하는 게 가능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작품정보>
그러나... 복지를 버리는 시대로
However
しかし…福祉切り捨ての時代に
1991 | 일본 | 다큐멘터리 | 47분
 
또 하나의 교육
Lessons From a Calf
もう一つの敎育
1991 | 다큐멘터리 | 47분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
雲は答えなかった
2022 | 고레에다 히로카즈 글 | 송태욱 옮김 | 체크포인트 찰리 발행
고레에다 히로카즈 그러나 복지를 버리는 시대로 구름은 대답하지 않았다 또 하나의 교육 체크포인트 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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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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