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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2023.8.15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2023.8.15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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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로 돌아간 줄만 알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접한 후 단번에 든 생각이다.

15일 윤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며 뜬금없이 내부의 공산전체주의 세력을 비난했다.

먼저 2023년의 한국 사회에 공산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세력이 얼마나 있는지부터 의문이다. 만약 윤 대통령 말대로 반국가세력이 그토록 활개치고 있다면 윤 대통령은 집권한 지 1년이 넘도록 반국가세력을 가만히 내버려만 둔 셈 아닌가.

또한 조봉암 선생을 간첩이라고 몰아세워 결국 사법살인을 행한 이승만 정권 시절부터 민주화를 향한 열망에 가득한 젊은이들을 좌경이라며 고문하고 탄압한 전두환 정권에 이르기까지의 한국 현대사를 생각한다면 민주주의 운동과 인권 운동을 간첩이 암약해 온 것처럼 얘기한 윤 대통령의 발언은 대통령으로서의 역사의식도 부재할뿐더러 본인이 항상 언급하는 자유민주주의와도 거리가 너무나도 먼 발언이다.

이처럼 윤 대통령의 경축사를 살펴보면 마치 공안정국의 80년대로 회귀한 것만 같다. 그런데 정말로 전두환 정권 당시의 경축사도 윤 대통령과 같이 내부의 반국가세력을 향해 격한 언어를 쏟아냈고 공산세력을 향한 적대적 시선을 노골적으로 표현했을까.

전두환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1981년부터 1987년까지의 광복절 경축사를 살펴본 결과 80년대에도 이번과 같은 경축사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먼저 이번 경축사에서 '공산'이라는 단어는 총 7회 쓰였다. 그렇다면 냉전이 끝나지 않았던 공안정국의 광복절 경축사는 어땠을까.

1981년부터 1987년까지 일곱 번의 경축사 중 총 11회만이 쓰였다(1981년 1회, 1982년 1회, 1983년 4회, 1984년 2회, 1985년 2회, 1986년 1회, 1987년 1회). 평균적으로 1년에 1.6회 사용했다. 단순히 횟수만 놓고 본다면 윤 정부가 전두환 정권보다도 공산세력을 향한 적개심이 높은 셈이다.

그 전두환도 광복절 경축사에서만큼은 이러지 않았다

그렇다면 횟수만 이런 걸까. 경축사에서 윤 대통령은 공산세력을 두고 "자유와 인권이 무시되는",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고 맹비난했다. 전두환 정권 역시 이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공산세력을 향한 유화적인 태도도 보여주었다.

1982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전 전 대통령은 "오늘 이 기회를 통하여 북한을 포함한 모든 공산국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들에게 우리 사회부터 먼저 개방할 것을 선언하는 바"라며 "비록 사상과 제도 그리고 거주지역을 달리하고 있다 하더라도 같은 민족이라면 누구나 조국강토를 자유로이 내왕할 수 있게 될 때 동포애를 되살려 민족화합을 성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면서 공산국가 재외동포들의 한국 방문 개방을 선언했다.

물론 이는 전두환 정권의 보여주기식 선언인 측면이 없지 않지만 사상의 다름보다 동포애를 통한 민족화합이 중요하다는 발언은 광복절 경축사로서 손색이 없다. 윤 대통령이 이번 경축사에서 사상의 다름을 내세워 우리 사회의 일부를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고 비난한 것과 명확히 대비된다.

또한 전 전 대통령은 1983년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북한공산집단의 끊임없는 무력적화야욕과 도발획책으로 당장에는 통일의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분명히 이산과 갈등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분단청산의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며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40년 전에 분단청산의 시대에 들어섰음을 공언했다.

하지만 40년이 흐른 지금, 윤 대통령은 분단청산은커녕 "우리는 결코 이러한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 추종 세력들에게 속거나 굴복해서는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이며 냉전적 사고에만 몰두하고 있다. 지정학적 패권과 첨단산업기술 경쟁으로 이루어진 신냉전 속에서 오직 윤 대통령만이 구시대적인 구냉전을 생각하며 과거의 망령인 공산세력을 향한 힐난만 되풀이 하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 그 전두환 정권에서조차 광복절 경축사에서만큼은 자국민을 상대로 공산세력이 활개치고 있다고 비난한 적은 없다는 점이다. 이번 광복절 경축사는 국민화합을 도모하고 갈등을 해소하는데 앞장서야 할 대통령이 오히려 국민을 갈라치는데 나서고 있다는 점을 명백히 보여줬다.

윤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자유민주주의는 반드시 승리한다"고 자부했지만 지금과 같이 국민을 갈라놓고 비판세력은 좌익이라 규정하는데 바쁜 윤석열식 자유민주주의가 과연 반드시 승리한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지도자를 무한찬양한 북한이 왜 실패했는지 윤석열 대통령은 스스로를 돌이켜보며 고심해 볼 필요가 있다.
 

태그:#윤석열, #광복절 경축사,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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