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한 장면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한 장면 ⓒ SBS

 
"40, 50대 기성세대보다는 지금 20, 30대가 고생은 덜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회적 지지 체계로 보면 40, 50대까지만 해도 주변에서 혈연, 지연, 학연의 도움을 받으며 '힘들어도 같이 힘들어해 줄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10, 20대부터 벌써 내가 외롭다. 사회적으로 단절됐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예전같으면 훨씬 나중에 느낄 박탈감과 우울함, 불안감의 감정을 지금 세대들은 더 빨리 겪고 있는 것이다."


청년들의 쓰레기집이 증가하는 현상 뒤에는 결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이 시대 청춘들의 고립과 은둔 문제가 있었다. 11일 방송된 SBS 시사 르포 <그것이 알고싶다> 1397회에서는 '나 혼자 쓰레기집에 산다. 2024 젊은이의 음지보고서' 편을 통해 오늘날 소외된 청춘들의 말못할 고통을 조명했다.
 
최근 들어 '쓰레기집'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학술적인 용어로는 '저장장애'라고 하며, 강박적인 수집과 저장 욕구로 인해 불필요한 물건들까지 집 안에 가득 모아서 쌓아놓는 성향의 사람들 때문에 생긴 신조어다.
 
지난해 12월에는 경기도 안산의 아파트에서 거주하던 한 독거노인이 자신이 쌓아올린 쓰레기에 짓눌려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특수청소업체 관계자들은 쓰레기더미 안에서 노인의 시신을 발견했다. 집은 온통 성벽처럼 완전히 쓰레기 더미에 쌓여있었고, 그 안에서 나온 쓰레기의 양은 무려 10톤에 달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새롭게 두드러지고 있는 현상은 쓰레기집이 일부 고립된 노인 세대만의 문제가 아닌, '젊은 세대'에게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특수청소업체 관계자들에 따르면, 놀랍게도 요즘 청소 의뢰인의 대부분은 20-30대 청년들이고 이 중 90%는 여성이라고 한다,
 
심지어 이들은 의사나 변호사, 방송국 PD, 대기업 직원, 인플루언서 등 사회적으로는 선망받는 직업군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자신의 SNS에서 청소가 되지 않아 쓰레기더미로 가득한 집에 사는 모습을 공개하는 게 일종의 놀이나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번아웃' 증상으로 인해 청소할 수 없는 이들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한 장면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한 장면 ⓒ SBS

 
대외적으로는 평범해보이고 사회관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젊은 청년들이, 어쩌다가 스스로 집 정리를 하지 못하고 쓰레기집으로 만드는 상황이 일어난 것일까. 관계자는 "전국에 있는 청소업체들을 따졌을 때 어마어마한 숫자의 쓰레기집 방치 가정들이 치워지고 있다. '이런 데가 세상에 있다고?' 신기하게 볼 것이 아니라, 지금 주변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다가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과연 청년들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제작진은 현재 실제 쓰레기집에서 살고있다는 여러 청년들을 직접 만나봤다. 30대 독신 여성 이하나(가명)씨는 입구부터 꽉 들어찬 택배상자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안방에는 켜켜이 쌓인 옷가지와 오래전에 먹은 음식물들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하나씨는 기껏 돈을 들여 구매한 물품들을 개봉하지도 않고 방치한 경우가 허다했다.
 
그녀는 2020년 봄부터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심각한 무기력 상태에 빠지며 약 4년여간을 집에서 누워서만 보냈고 쓰레기도 그때부터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과연 하나씨에게는 4년 전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또다른 30대 여성 김은지씨(가명) 씨의 집 역시 내부에 거대한 쓰레기 산이 펼쳐져 있었다. 은지씨는 부모님이나 지인들에게도 집 주소를 공개하지 않아 몇년째 쓰레기 집의 비밀을 모르고 있다고 한다. 은지씨는 몇 번 이나 쓰레기를 정리하려고 시도했지만, 남의 눈에 띄는 것이 두렵고 창피해 바깥으로 배출하는 것을 포기했다고 고백했다.
 
은지씨는 언제부터인가 직장에서 일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번아웃(Burnout) 증상이 왔다고 밝혔다. 번아웃은 어떤 일에게 과도하게 몰두하거나,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무기력증과 우울감이 생기는 증상을 의미한다.
 
2023년 청소년정책연구원이 18-29세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번아웃 증상으로 직장을 그만둔 경우가 전체 응답자의 무려 18.7%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는 번아웃과 저장장애의 연관성에 대하여 "물건을 버릴 때는 이것을 버릴지 안 버릴지 판단하는 의사결정과정이 필요하다. (번아웃을 겪은 사람들은) 이런 의사결정과정조차도 노동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20대 여성 이지안씨(가명) 역시 반려묘와 함께 쓰레기집에 거주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우울증에 시달리던 어머니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 충격적인 모습을 목격했다. 어머니는 목숨을 건졌지만 이후로도 내내 병원에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제대로 돌봐주는 사람없이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지안 씨는 이후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병원에 가보고 싶다고 부친에게 호소했지만 가족 중에 정신과를 다니는 사람이 있는 게 싫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고 한다.

지안씨는 성인이 되어 스스로 정신과를 다니면서 한동안 상태가 개선되는 듯했으나, 모종의 이유로 병원을 다니지 않고 약을 끊으면서 다시 상태가 악회되었다. 그녀의 양팔에는 스스로 자해를 여러 번 저지른 상처들로 가득했다.
 
놀랍게도 생일 때마다 자실을 시도했다는 지안씨는 "태어난 것 자체가 별로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축하해 줄 사람도 없다"고 쓸쓸하게 이야기하며 "어차피 죽으면 되는데 왜 청소를 왜 해야하지 싶다"고 털어놓았다.
 
정신건강의학 전문가는 지안씨의 상태에 대해 "몸을 괴롭히는 게 마음이 덜 힘들어지니까. 자해를 대체하여 더 기분을 낫게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다른 심리전문가는 "우울증은 쓰레기집의 형태로도 나타날 수 있다. 쓰레기집이란 '나의 공간'을 훼손하는 것이고, 이는 곧 '자해'와 다를 바가 없다"고 진단했다.
 
노인들의 쓰레기집과 젊은이들이 다른 이유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한 장면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한 장면 ⓒ SBS

 
최근 급격히 증가중인 2030세대의 쓰레기집의 특징은, 노년층의 저장장애처럼 한 가지 이유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저장장애 외에도 우울증, 번아웃,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생겨난다.
 
30대 여성 박소희씨(가명)는 본래 소아물리치료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소희씨는 자신이 일하던 센터에서 한 유명 물리치료사의 강의에 시범조교로 참여했다가 지속적인 성추행을 당했다. 소희씨는 이후 직장을 퇴사하고 해당 남성을 성추행으로 신고했지만, 정작 경찰은 무혐의로 불송치 판정을 내렸다. 뒤늦게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고 동료 물리치료사들의 탄원서가 이어지자 검찰은 지난해 3월 재수사를 결정했다.
 
하지만 소희씨는 이 사건으로 이미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고 후유증에 시달려야했다. 새 직장에서는 남들처럼 밝게 일하는 척 했지만 자신의 상처를 감췄지만, 집안에서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이중생활을 이어가야했다. 소희씨는 "내 인생은 여기에서 끝났다. 나는 이제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에 대하여 전문가들은 "공통적인 것은 우울감을 다 바닥에 깔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울증이나 ADHD 등은 결과적이다. 결국 본인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정신적인 어려움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청년층에서 쓰레기집에 사는 인구가 빠르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노인들은 눈에 잘 띄어서 발견되기 쉬운 반면, 청년층의 쓰레기집은 한번 문을 닫고 나오면 음지에 있어서 발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

이에 전문가들은 "노인들의 저장장애가 인지결함이나 뇌에서의 이상이라면, 젊은 층의 쓰레기집은 내면에 우울감이나 커다란 외상, 집중력 부족, 의사결정의 어려움같은 요인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첫 번째 참가자로 가장 먼저 자신의 쓰레기집을 용기있게 공개했던 이하나씨의 숨은 사연이 밝혀졌다. 긴 망설임 끝에 하나씨는 오랜 지인으로부터 끔찍한 성폭력을 당했던 사실을 조심스럽게 고백했다. 차마 누구에게도 사실을 알릴 수 없었던 그녀는 신고를 한 이후에도 수사와 재판 과정을 오롯이 홀로 감당해야했다고 한다.
 
하나씨는 어렵게 방송에 출연을 신청한 이유에 대해 이제는 변화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며 "이 방송출연이 계기가 되어 이제는 쓰레기를 치우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 이런 시도도 하고 있는 것"이라고 고백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어 쓰레기집에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에게 "각자의 사정이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쉽게 '게으르다'라는 말 한마디로 재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청소업체 관계자들에 따르면 청소하면서 빈번하게 발견되는 물건으로 '우울증 약'과 '유서'들이 있다고 한다. 또한 쓰레기집에 살고 있는 사람 중 청소를 의뢰하는 사람들은 전체의 10%도 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구조되지 못하고 그 안에서 삶을 이어가다가 쓸쓸하게 고독사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도 있다. 고독사로 발견된 현장의 90% 이상은 쓰레기집이라고.
 
고립은둔청년 지원단체를 운영하는 류승규 대표는 청년층 쓰레기집 문제가 "결국 사람들과의 연결이 끊기면서 발생한 문제"라고 진단했다. 청년들의 쓰레기집 증가는 결국 그들이 고립되었음을 의미하는 '위기의 신호'라는 것이다.
 
본인도 한때 쓰레기집에 거주하며 방황했기에 누구보다 청년들의 아픔에 공감한다는 류 대표는 "본인들도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보여줄 수 없고 나가지 못해 (쓰레기가) 쌓였을 뿐"이라고 설명하며 주변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실제로 최근 10여 년간 20대로 우울증을 진단받은 환자의 숫자는 약 4.7만에 18.5만으로 400% 가까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또한 고립은둔 청년들의 상당수는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과도 교류가 없이 단절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혼자 감당하기 힘든 문제를 겪고 있다는 사람들의 70%는 여성인 것으로 드러나 남성의 약 2.6배에 달했다.
 
전문가는 "SNS 등으로 양방향 소통이 가능해지고 나를 알릴 수 있는 창구가 다양해진 것 같지만, 거기서 생기는 상대적 격차와 열등감 때문에 오히려 10, 20대부터 벌써 내가 외롭다. 사회적으로 단절됐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설명했다.

쓰레기라는 이름으로 대체된 결핍

한국보다 먼저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툴이)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일본에서는, 정부가 2012년 '고독대책'을 발표하고 관련 법안 입안과 고독-고립대책 담당실등을 발족하면서 국가차원에서의 대응 시스템을 모색하고 있다.  영국 정부 역시 2018년 '고독부'를 신설하면서 고독을 더이상 개인의 차원이 아닌, 흡연이나 비만처럼 국민의 건강을 해치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영국은 노년층의 고립만이 아니라 청년층의 고립에 대한 조사와 연구도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으로 전문가들은 "쓰레기집을 치워주는 것은 당사자들에게 상당한 도움이 된다. 내가 다시 리셋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또한 단순한 '비움'을 넘어서, 그 다음에는 빈 자리에 새로운 희망을 찾기 위한 '채움'의 과정도 필요하다.

오랜만에 쓰레기집을 깨끗이 정리한 지안씨는 "노력하는 것에 의미조차 없다고 오늘 청소하고 나니까 이유가 조금씩 보이는 것도 같다. 아직은 (살아가야할 희망을) 찾기 위하여 좀더 노력해봐야 할 것 같다"고 털어놓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현재 국내의 고립은둔 청년인구는 약 54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창 진학과 취업에 열중해야 할 시기에 코로나19 펜데믹 등의 악재를 겪었던 현 2030세대는 '잃어버린 세대'로도 불린다.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어쩌면 '기회'가 아니었을까. 누군가에겐 잃어버린 시작의 기회, 사라져버린 변화의 기회, 그리고 처음부터 갖기 힘들었던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는 기회들까지. 그리고 이는 사람과 연결되지 않고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도 우리 주변의 누군가에게는 쓰레기라는 이름으로 대체된 '결핍의 잔해'들이 청년들의 고독한 작은 집안을 온통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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