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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가 머물다간 흔적이 천막 옆에서 발견되었다
▲ 천막 옆에서 발견된 고라니똥 고라니가 머물다간 흔적이 천막 옆에서 발견되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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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 똥이닷!

세종보 천막 농성장 바로 옆에 흔적을 남겼다. 이제는 야생생물의 땅에 허가 없이 장기간 천막을 친 것에 대해 마음을 내어 준 연대의 표식일까? 기뻤다. 

우리가 없었다면 마음껏 뛰놀았을 고라니에게 미안했는데, 이제는 진정한 이웃이 된 것 같다. 어디 이뿐인가. 이제는 할미새와 흰뺨검둥오리도 천막 옆을 태연하게 지나간다. 천막이 설치된 지도 오래되니 이제는 강의 일부로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천막 농성장이 살아있는 강의 친구가 됐다. 
 
농성장 앞 금강을 바라보며 머무는 세종시민
▲ 천막농성장 앞 금강 농성장 앞 금강을 바라보며 머무는 세종시민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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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을 찾는 이들도 모두 강의 친구가 되어간다. 자기 살기도 바쁘고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것도 아니어서 무관심할 수도 있는데 시간과 돈을 쓰며 함께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소문도 나지 않고 서로 권하지도 않고 모두 말리기만 하는 농성을 어떻게든 알리고 싶다고 안타까운 눈으로 방법을 묻는 모습을 보면 '사랑'이라는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큰비가 쓸고 간 자리… 다시 자리 잡은 물떼새 알
 
금강 수문을 열자 돌아온 흰수마자
▲ 금강에 돌아온 흰수마자 금강 수문을 열자 돌아온 흰수마자
ⓒ 세종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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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12월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한국하천호수학회가 발행하는 <생태와 환경>에 '멸종위기 야생생물I급 흰수마자의 모래 선택과 잠입 행동에 관한 연구' 논문을 실었다. 흰수마자를 실험 수조에 넣고 모래 속 잠입 행동을 연구해 보니 댐과 보가 서식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내용이었다. 세종보를 개방하고 드러난 모래가 여름 강우 이후에 더 확대되면서 흰수마자 서식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강의 하상구조가 흰수마자 서식에 적합한 모래강으로 귀환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수문을 열기만 해도 강 생태계가 놀라운 속도로 회복되는데 윤석열 정부는 가장 확실한 이 방법만을 제외한 채, 막대한 세금을 들여 녹조를 해결하겠다고 난리법석을 떤다. 물떼새와 흰수마자가 돌아오는 금강을 또다시 죽음의 강으로 만드는 게 세종보 재가동이라는 것을 환경부는 자각하고 있는 것인지... 알고도 눈감고 있는 게 분명했다. 지난 정부에서 수년간의 과학적 모니터링과 연구조사를 벌여 수문 개방의 기적 같은 효과를 수차례 공표한 게 바로 환경부였기 때문이다   

강을 살리는 것… 결국은 사랑
 
자연은 포기하지 않고 금강에 새로운 생명을 이어주고 있다
▲ 새로 발견된 물떼새 알 자연은 포기하지 않고 금강에 새로운 생명을 이어주고 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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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겠습니다."

천막 농성장에 왔던 이들 중 이만 가보겠다고 하는 이가 없다.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못내 돌아선다. 자연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15일, 이전에 흰목물떼새들이 알을 낳았던 자리에서 새로운 물떼새 부부가 정성스레 꾸민 둥지를 발견했다. 두  개의 알을 낳았다. 조정지댐 방류와 큰비로 3번이나 물에 잠겼는데도, 물에 빠진 알을 품으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결국은 떠내려간 새알을 찾아 물떼새들이 애타게 지저귀던 바로 그 옆자리였다. 자연이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인사를 남기고 간 사람들의 마음도 그러하리라. 
   
누군가는 굴뚝에 올랐고, 새들도 둥지를 틀지 않는 백여 미터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하던 사람도 있다. 또 나무에도 오르며 생명을 지키기 위한 무수한 천막들이 쳐졌다. 그중 일부 천막은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구호와 주장들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채 사라진 천막 주변을 배회하고 있으리라. 그렇다고 사랑이 식었을까.  

지금 세종보 재가동을 막아내고, 강을 죽이는 토건족을 막아내려는 마음도 결국은 사랑의 마음이다. 물떼새와 흰수마자가 살 만해진 금강을 다시 죽음의 강으로 돌려놓지 않겠다는 마음이다.
 
알을 품고 있는 물떼새 뒤로 천막이 보인다
▲ 물떼새가 알 품는 자리 알을 품고 있는 물떼새 뒤로 천막이 보인다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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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알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고 생각했는데, 알을 품고 있는 물떼새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흰목물떼새가 천막을 품는 듯하다. 자신들을 지켜달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실은 물떼새가 인간을 지키고 있는 건 아닐까? 세종보에 물을 채워 새들이 날아들지 않는 강에는 사람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금강이 힘차게 흐르며 손짓하듯 바람이 분다. 더 멀리, 더 높이, 더 빠르게 치달리며 이익과 자본, 성장, 개발을 추구하는 자들의 카르텔에 맞서는 우리들의 힘은 바람에 흔들리는 천막같이 보잘 것이 없지만, 농성장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마음의 연대가 더 강고할 것이라고 믿고 싶다. 물떼새 알 하나, 고라니 한 마리에 마음을 빼앗기는 사람들이 함께 그 생명의 편에 서도록 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할 일이다.
 
물떼새들의 둥지에서 바라본 천막농성장
▲ 세종보 재가동 반대 천막농성장 모습 물떼새들의 둥지에서 바라본 천막농성장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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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차, 전국에 우리와 같은 투쟁을 하고 있던 동지들의 천막이 생각난다. 가덕도 신공항, 새만금 신공항 등 가열찬 투쟁의 천막에 조금 더 연대하지 못한 미안함이 커진다. 여기 세종보 농성장을 바라보는 여러 마음들에게 더 따뜻하게 대하지 못한 미안함도 커진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 이들은 우리를 책망하지 않고, 금강을 찾아와 위로하고 응원한다. 선을 넘어 천막에 들어와 준 이들과 오늘도 바람 부는 천막 안에서 금강을 바라본다.

우리는 어젯밤 고라니와 함께 잤다. 농성 천막 바로 앞에서 멸종위기종인 흰목물떼새가 알을 품고 있다.

태그:#금강, #세종보, #흰목물떼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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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가, 글쓰는 사람. 남편 포함 아들 셋 키우느라 목소리가 매우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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