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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파업에 들어간 <시사저널> 기자들이 24일부터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6월 금창태 사장은 삼성그룹 관련 기사를 삭제하고, 이에 항의하는 이윤삼 <시사저널> 편집국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그 뒤 사측과 기자들은 공방을 벌여왔고, 최근엔 기자들이 배제된 채 만들어진 '짝퉁' <시사저널>이 만들어지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시사저널> 사태'에 대한 각계 인사들의 릴레이 기고를 싣고 있다. 김정진 변호사는 민주노동당 정책부장을 역임했다. <편집자주>
▲ <시사저널> 노조원들은 사측의 직장폐쇄에 항의하며 24일 오전, 서울 서대문 <시사저널> 사옥 앞에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시사저널> 기자들이 파업을 한다고 한다. 한국 사회에서 주간지로서는 드물게 정치적 권위가 있는 이 잡지가 세 번이나 외부에서 제작됐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자들이 파업을 하는 이유가 의미심장하다. 모그룹 관련 기사를 경영진에서 일방적으로 삭제한 데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차라리 임금인상이나 근로조건과 관련된 것이면 좋으련만, 기자들이 파업을 하는 이유는 한국에서 사는 사람이면 누구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슈 때문이다.

대학생 시절, 모험 소설로 유명한 잭 런던의 <강철군화>를 읽은 적이 있다. 자본주의의 모순인 공황과 독점적 대기업의 횡포를 다룬 소설인데, 당시엔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 책에 언론을 묘사한 장면이 나오는데, 기자들이 아무리 취재해도 대기업의 횡포에 관한 것은 지배계급들의 공조 때문에 전혀 보도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당시엔,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너무나 단선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다. 87년 6월항쟁의 기운이 남아 있어서인지 국민주 형태로 만들어진 언론도 있고 해서, 재벌 문제가 전혀 보도되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에서는 그야말로 너무나 공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더욱더 민주화돼야 할 지금 시기에 이 모든 일은 현실이 돼 가고 있다. 이 그룹은 한국의 초일류 기업으로, 한국경제의 견인차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 노동조합이 없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는 회사다.

'<시사저널> 사태' 눈 감으면 '강철군화' 아래서 살게 될 것

다른 그룹의 총수들은 유사 사안으로 감옥까지 갖다온 적이 있는데, 이 그룹과 관련된 이른바 '에버랜드 사건'은 7년째 재판을 끌고 있다.

그뿐 아니다. 노동조합에서 이 그룹을 비판하는 광고를 실으려 해도, 이 그룹이 광고 시장에서 행사하는 막강한 영향력 때문에 87년 6월항쟁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한국의 대표적인 비판적 언론조차 비판광고를 거부하는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이 그룹의 전사회적 영향력은 너무나 엄청나서 어떤 언론도 이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싣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하다.

문득, 너무나 단선적이고 어찌 보면 편협한(?) 내용의 소설인 <강철군화>의 주인공이 필자를 비웃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아라, 네가 헛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사이에 내 말대로 한국도 돼가고 있다."

잭 런던이 말한 '강철군화'는 독점적 대기업과 이를 뒷받침하는 군대가 주축이 돼 노동자를 탄압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인데, 한국에서도 마치 영화 <괴물>에 나오는 괴물처럼 나타나 전 사회를 옥죄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강철군화'이든, 아니면 '괴물'이든 간에 분명한 것은 <시사저널> 기자들이 이들과 외로이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시사저널> 기자들이 제기하는 이슈는 실제로는 훨씬 더 커다란 것인지도 모른다. 정상적인 언론인이라면 지지할 수밖에 없는 편집권 독립이라는 원칙은 사실 파업에 돌입한 이유 중 일부에 불과하다.

이번 파업은 한국 사회에서 절대적 영향력과 무소불위의 힘을 지니고 있는 특정 재벌 집단에 대해서 비판 기사를 쓸 수 있던 <시사저널>이라는 주간지가 살아남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것은 전체 국민들의 삶과 직결돼 있다. 이들의 힘이 최소한 언론과 여론에 의해 적절하게 통제되지 못한다면, 정말로 우리는 '강철군화' 아래서 살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태그:#시사저널, #짝퉁 시사저널, #기자 파업, #강철군화, #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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