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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우리나라 소나무 금강송

찬바람이 매섭게 불어 치는 날 겨울, 울진바다로의 길을 나섰다. 겨울 바닷가도 풍경을 보기 위하여 가지만 울진 소나무 군락지도 이번에 보고 오기로 했다.

금강 소나무는 울진 서면 소광리 일대에 있는데,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품종으로 주로 경북 끝자락과 강원지역의 백두대간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은 2006년 47년만에 일반인에게 개방되기 시작했고, 그 전까지는 아예 출입조차도 되지 않는 곳이었다. 현재는 겨울철이라 출입제한 기간인데 방명록을 기록하면 출입이 허용된다.

금강송으로 가는 길
▲ 가는 길 금강송으로 가는 길
ⓒ 김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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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아름다운 숲이라 소문이나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났다고 하며, 이 곳에는 500년이 넘은 소나무도 대규모로 있었다. 10년이라 표시해둔 나무는 그 크기가 정말 자라지 않는다는 곳을 알 수 있었고, 중간 길에는 일반소나무와 금강송을 비교해 놓은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다.

영화 유지태 주연의 <가을로>에서 여섯 번째 장소로, 울진 불영사 다음으로 나온 바로 그 숲으로 피톤치드가 찾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정화해준다

할아버지 나무
▲ 할아버지 나무 할아버지 나무
ⓒ 김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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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도 탐방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고, 시간 여유를 가지고 산책하기에는 좋은 장소로 연인들이 찾는 그런 장소로 각광을 받을 것 같았다.

할배 소나무, 미남소나무, 못 생긴 소나무 등 각각 특이한 소나무에는 이름이 붙여져 있었다. 중간 중간 특이하게 화재가 난 자리에 남아 있는 나무들도 있었다. 찾아가는 길이 제법 많이 들어가나 찾은 만큼 보람은 있는 곳이다.

미남송
▲ 미남송 미남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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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 경계표지석도 볼만

입구 진입로에는 황장봉계표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00호)이 있는데 자연석에 글씨가 크고 깊게 새겨져 있으나, 바위 면에 깨어진 부분이 있어 일부 글자는 잘 보이나 육안으로는 다 판독하기 힘들다.

표석의 내용은 황장목(黃腸木)의 봉계(封界)지역을 생달현(生達峴), 안일왕산(安一王山), 대리(大里), 당성(堂城)의 네 지역을 주위로 하고 이를 명길(命吉)이란 산지기로 하여금 관리하게 하였다는 내용이다. 황장목은 금강송, 춘양목, 춘향목, 미인송, 적송 등 다양한 이름으로도 불렸다.

마멸이 심해 글씨 일부가 보인다.
▲ 황장봉계표석 마멸이 심해 글씨 일부가 보인다.
ⓒ 김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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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봉계 제도가 시작된 것은 조선 숙종 때이며, 안동, 봉화, 예천에 황장봉산이 처음 지정되었다. 황장목은 썩지 않고 견고하여 왕실에서 관곽(官槨)으로 사용하였으므로, 황장목이 있는 산림을 금양(禁養)하기 위하여 금산(禁山)으로 지정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길가에 위치해 있으며 문화재 안내표지판 및 안내 문안이 있어 찾기는 쉽다.

울진에서 가장 알려진 문화재

울진하면 다들 봉평 신라비를 말한다. 국보 제242호로 죽변 도로변에서 가까운 곳에 있어 많이 찾으며, 현재 맞은편에는 전시관을 한 참 공사 중에 있었다. 높은 철책으로 가까이 가서 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신라사 연구에 큰 자료인 봉평비
▲ 전경 신라사 연구에 큰 자료인 봉평비
ⓒ 김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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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석은 1988년 1월 논에서 객토(客土) 작업을 하던 중 발견되었다. 전체적인 모양은 사다리꼴에 가깝다. 비문은 한쪽 면에만 새겨져 있는데, 글자수는 400자 정도이다. 신라 법흥왕 11년(524)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비문을 통해 율령반포와 육부제의 실시, 왕권의 실태 등을 파악할 수 있고, 관료제도 및 지방통치 조직, 촌락구조 등 당시 사회 양상을 제공해 주는 중요한 신라사 자료이다.

관동팔경 중 최고 경치 자랑

점심식사로 동해 바닷가에서나 맛볼 수 있는 시원한 물곰탕(곰치국)을 먹고, 관동팔경의 하나로 조선 숙종 임금이 최고의 경치라고 한 망양정을 찾았다. (일부 사람들은 망향정이라고도 많이 표현하였다.)

관동팔경의 하나로 유명하다.
▲ 망양정 관동팔경의 하나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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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에는 바다 전망이 그대로 조망되어 정말 장관을 연출하나 앞에 나무가 가려 정면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고려시대 망양리 해안가에 처음 지어졌다고 하며, 세월이 지나 허물어진 것을 조선 성종 때 현종산 남쪽의 기슭에서 옮겨놓았다가 오랜 세월에 퇴락된 것을 1860년 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당시 옮겨온 주춧돌이 하나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옮겨질 당시 1860년 주춧돌이 하나 남아 주변에 있다.
▲ 1860년 당시 옮겨진 주춧돌 옮겨질 당시 1860년 주춧돌이 하나 남아 주변에 있다.
ⓒ 김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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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제일루'란 현판을 숙종이 하사하였으며,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이 전해지며, 그림으로 정선의 백남병, 관동명승첩에 있는 망양정도가 유명하다. 1994년 보수하였으며, 2005년 완전 해체하여 새로 지었다. 내부에는 망양정 약사, 정조대왕 어제 망양정기 관동별곡 등의 편액이 있다.

그 중 관동별곡을 감상해 보자.

天텬根근을 못내 보와 望망洋양亭뎡의 올은말이, 바다 밧근 하날이니 하날 밧근 므서신고. 갓득 노한 고래, 뉘라셔 놀내관데, 블거니 뿜거니 어즈러이 구는디고.  銀은山산을 것거 내여 六뉵合합의 나리난 듯, 五오月월 長댱天텬의 白백雪셜은 므사 일고.

울진에서 유일한 당간지주

망양정을 보고 근남면 구산리 일대에 당간지주와 삼층석탑을 찾으러 갔다. 구산리 당간지주로 알려졌던 배잠사지 당간지주(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72호)를 먼저 찾았다.

울진에서 유일한 당간지주로 배잠사지라 전하는 곳에 있다.
▲ 구산리 당간지주 울진에서 유일한 당간지주로 배잠사지라 전하는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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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도는 절에서는 의식이 있을 때 절의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이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이 당간지주는 울진지역에서 유일한 당간지주로 도로변 길가에 있으며 현재 정비도 많이 되어 있다. 고려시대 창건된 사찰인 배잠사터의 것으로 전하며 전체적으로 돌을 다듬은 정자국도 다수 보이는 등 고르지 못하나 조각된 수법으로 보아 고려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찾아가는 길이 그다지 쉽지 않아

배잠사지 당간지주를 지나 계속 마을길로 접어들면 왕피천 관광농원이 있는 방향으로 가면 마을 안에 외딴집처럼 탑 앞에 집이 한 채 있고 뒤로 삼층석탑이 보인다. 처음 찾아가는 이들에게는 그다지 쉽지 않아 길이다.

울진의 보물 삼층석탑이다.
▲ 구산리 삼층석탑 울진의 보물 삼층석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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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498호로 이 일대가 고려시대 청암사로 알려진 곳이다. 이중 기단 위에 전형적인 통일신라 후기 석탑으로 1층 몸돌 남면에 자세히 보면 직사각형의 문비가 마련되어 있고 윗부분은 노반석만 있다. 1968년 복원하였고, 2004년 해체 수리하였다.

2006년 경주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 결과한 보고에 의하면 통일신라시대의 금동불상을 비롯하여 인화문토기, 연화문수막새 등 불교 관련 유물과 청동수저 등 생활용품도 출토됐다고 한다.

석탑 앞에는 석등 부재들이 남아 있다. 답사길을 마치고 백암 온천에서 휴식을 하고 마무리하였다.

덧붙이는 글 | 2007년 12월 23일 문화유산답사회 우리얼과 함께 동행한 답사였다.



태그:#울진 금강송, #망양정, #배잠사지 당간지주, #구산리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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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문화유적을 찾아 답사를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구석진 곳에 우리문화를 찾아서 알리고 문화관련 행사를 좀 더 대중에게 보급하고자 하며 앞으로 우리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깨워 나아가려고 합니다. 괌심분야는 역사유적, 석조조형물과 민속,고건축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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