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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가 중간도 안됐다니?

"이 성적으로는 실업계 고등학교 밖에 못 가요."

어제 중학교에 입학한 딸아이의 담임교사가 가정방문을 다녀간 후 아이를 하루 3시간씩 가르친다는 종합학원에 등록을 시켰다.

집을 방문한 담임교사는 아이가 입학하기 전에 보았던 반 배치고사의 순위가 적힌 아이들의 명단을 갖고 있었다. 아이가 입학한 중학교의 1학년 신입생은 340여 명, 아이의 성적은 중간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였다.

아뿔사!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 아이가 중간도 안됐다니? 충격이었다. 하지만 곧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담임교사가 가지고 있는 명단 속 상위권에 속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사설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이었다(지역이 좁다보니 누가 어느학원에 다니는지 웬만해선 다 안다). 늦어도 초등학교 5, 6학년 무렵부터 사설학원을 다니며 중학교 과정을 선행학습하는 아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성적이 나온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이는 선생님이 중학교에 입학할 때 보는 반배치고사를 준비하라고 했다며 학원을 다녀야겠다고 말했다. 몇몇 아이들은 학원을 다니며 준비하고 있고 개중에는 중학교 1학년 과정을 끝내고 2학년 과정을 공부하는 아이들도 있다며 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했다.

아이는 학원 다녀야겠다고 하지만...

하지만 "중학 때는 학교 수업시간도 길고 공부해야 할 분량도 많으니 초등학교 때나 실컷 놀아라"하는 것이 아이를 키우는 내 생각이었기에 아이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사실 얄팍한 월급봉투에 비해 팍팍 오르는 물가와 커갈수록 늘어나는 세 아이의 양육비 등으로 인한 돈 부담 탓도 있었다.

게다가 맞벌이를 하던 나는 다니던 회사가 경영의 어려움을 이유로 문을 닫으면서 지난연말 실업자 신세가 됐다. 종업원 1인 이상 고용업체는 고용보험을 비롯한 4대 보험가입이 의무라지만 4대보험에 가입할 여력이 안되는 영세기업들도 태반이다. 나 역시 실업급여도 받을 수 없었다.

내색은 안 했지만 소득이 줄어들었다는 것에 대해 적잖이 불안했다. 때문에 아이가 학원을 다녀야겠다고 했을 때 "당연히 다녀야지" 하면서도 "방학하면 그때부터 다니자"하면서 선뜻 학원을 보내지 못했다. 

하지만 12월말 경에 방학을 하자 곧 설 명절이 닥쳤다. 이곳 저곳 인사할 곳은 많고, 제수용품은 비싸고…. 그러다가 1월 중반이 지났다. 어차피 1월도 다 지났는데 2월부터나 다니라고 했다.

그런데 2월이라고 별 수 있나? 아이들이 3년 터울이다 보니 큰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막내 녀석도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두 아이 입학준비에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아 또 주머니를 닫았다.

설 준비하랴, 새학기 준비하랴 ... 돈 들어갈 곳은 많고

아이들 교복이랑 책가방은 왜 그리 비싼지. 큰 아이의 교복과 체육복 등을 준비하는데 30여 만 원, 새로 입학하는 두 아이 책가방을 사면서 둘째녀석만 빼놓을 수 없어 세 아이의 책가방을 사는데 10여 만 원이 훌쩍 들었다(사실 둘째녀석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샀던 캐릭터 그림이 그려진 가방을 지금껏 들고 다녀서 바꿔 줄 때도 됐다). 공책이며 크레파스, 물감, 파일 등 준비물 사는 데만도 10여 만 원이 넘는 돈이 들어갔다.

게다가 두달 남짓 방학을 맞아 아이들이 집에 있다보니 평상시보다 먹거리 지출도 훨씬 많아졌다. 한창 클 때인 데다 엄마마저 집에 같이 있으니 이것저것 찾는 것은 왜 그리 많은지. 그렇다고 먹이지 않을 수도 없고.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가 아이는 신입생 설명회에 가서 반 배치고사를 봤고 일찌감치 사설학원을 다닌 다른 아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학원원장과 상담을 진행하면서 "아이가 야물고 똘랑똘랑해서 최상위는 아니더라도 상위그룹에 속할 줄 알았다"고 했더니 학원원장은 "대부분 부모들이 그렇게 말하지만 학원을 다니면서 꾸준히 내신관리를 해주지 않으면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렵다"고 말한다.

학원을 다니는 아이와 다니지 않는 아이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학원에서 만난 우리아이의 친구이야기를 해 준다. 그 아이의 경우 6살 때부터 학원을 다녔는데 지금은 중등과정을 모두 마치고 고등과정을 배우고 있으며 영어도 CNN뉴스를 원어로 들을 정도의 수준이라는 것.

물론 학원을 한곳도 다니지 않고도 서울대에 갔다는 아이들 이야기도 있다. 학원을 다니면서 내신관리해도 대학 문턱을 넘지 못하는 아이들에 비하면 확실히 '난놈'이다. 그러나 내 아이가 그런 '난놈'이 아니라면 별 수 없이 공교육 외에도 사교육을 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 부모들의 처지다.

정부는 공교육을 활성화시켜 대학입학까지 책임지겠다고 하지만 웬일인지 대학입시는 공교육을 통해 배운 것 이상을 아이들에게 요구한다.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사설학원에 보낼 수 밖에 없게 만든다. 

계속되는 불황과 무서운 줄 모르고 오르는 물가,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오히려 더 얄팍해지는 월급봉투, 그리고 사교육비와 비례하는 아이들의 성적 앞에서 대한민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산다는 것이 무섭다.

덧붙이는 글 | '불황이 ㅇㅇㅇ 에 미치는 영향' 응모글



태그:#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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