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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주말농장에는 좀 색다른 것을 심었다. 비트다. 해마다 보면 몇 몇 집에서 비트를 심었는데 그 빨간 색이 너무 마음에 들었었다. 작년 가을에 누군가가 생으로 조금 맛보게 한 그 맛도 나쁘지는 않았다. 5월 초에 파종을 하고 싹이 나온 것을 간격을 넓게 해서 솎아 주었다.

땅 속 뿌리 식물이므로 북도 주어야 하고 간격도 있어야 잘 자란다고 했다. 잎도 먹을 수 있다고 했지만 어린잎일 때 한두 번 따다 샐러드를 해 먹고는 그만 두었다. 주말농장에서 함께 키우던 치커리 종류의 쌉쌀한 맛과 노지에서 햇볕을 제대로 받고 자란 상추의 맛을 따라가지 못해서 영양가가 높다지만 우리 집 밥상에서는 찬밥이었다.

7월 중순, 장마철쯤에 보니 잎이 상당히 크게 자라면서 또 어린 새잎이 나고 있다. 아무래도 뿌리의 영양분을 먹고 자라는 것 같아 캐기로 했다. 크고 작은 것을 모두 합하니 스무 여개 된다. 일단 김치냉장고에 보관을 하고서는 어떻게 해 먹을 것인지 탐구에 나섰다.

주말농장에서 수확한 비트
 주말농장에서 수확한 비트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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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는 대중화된 음식이 아니기에 어른들에게 물어볼 수가 없다. 또 젊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 맛을 대변해 줄 사람도 아직은 많지 않다. 해서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채를 쳐서 샐러드에 넣어라', '우유에 갈아 마셔라', '물김치에 나박나박 썰어 넣어라', '전 부칠 때에 갈아 넣어라' 그리고 모두 붙는 뒷말이 '그러면 색깔이 곱다'였다.

그런 중에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서양에서 해 먹는 방법으로 피클이 있는데 삶아서 만든다고 한다. 생각지도 않아본 방법이다. 여태 알아본 바로는 모두가 생으로 하는 활용법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생으로 먹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것을 음식에 조금씩 넣어 색을 내는 정도로 활용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비교를 해보니 우리나라 사람은 대부분 생식이고 서양은 삶았다. 또 병원에서 고혈압이나 저혈압이 있는 사람들의 식사에 삶은 비트를 먹게 한다는 정보도 있다. 면역력 강화와 간 기능에 도움이 되고 피를 맑게 해 준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이때부터 갈등이 일었다. 왜 삶아서 먹는가? 원래 서양음식이니 그 사람들처럼 삶아서 먹어야 제대로 먹는 것이 아닐까? 무처럼 사각거리는데 그냥 깎아 먹으면 안 되는 건가? 그냥 먹으면 독성이 있나? 해서 실험삼아 깎아 먹어 보았다.

무를 씹어 먹는 맛인데 향도 있고 달았다. 그런데 목구멍으로 넘어간 뒷맛이 아렸다. 아마도 생감자를 먹었을 때 그런 맛이 아닐까 싶다. 무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아린 맛이 혀와 입천장에 조금 오래 남았다. 이번에는 삶아서 먹어 보니 아린 맛은 없는데 완전 무 삶아 놓은 맛이었다. 생 맛보다 덜 입에 당겼다.

삶아진 비트와 절임물. 삶아진 비트의 껍질을 벗겨내고 저민다. 비트를 삶은 물에 향신료를 넣고 끓인다.
 삶아진 비트와 절임물. 삶아진 비트의 껍질을 벗겨내고 저민다. 비트를 삶은 물에 향신료를 넣고 끓인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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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것이 집안에 들어오려면 모험을 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고 해도 식탁에 올라 식구들의 입맛에 맞아야 한다. 고민을 하다가 삶아서 만드는, 저장성도 있는 피클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향신료를 다 쓰기보다는 우리 집에서 즐겨 먹는 향신료들로만 준비했다.

비트(800g)를 잘 씻어서 물에 넣고 끓였다. 젓가락을 넣어 쑥 들어갈 때까지 익힌다. 인터넷요리법에 그렇게 나와 있었다. 색깔이 곱게 우러나는데 환상적이다. 식혀서 껍질을 벗겨내고 0.5센티미터 굵기로 얇게 저몄다.

비트 끓인 물(3컵)에 양파(1개), 피망, 통후추, 월계수 잎, 마른고추, 소금(3큰술)을 적당히 넣고 우루루 끓으면 식초(1컵, 가족의 입맛에 따라 신 것을 싫어하면 덜 넣어도 무방하다)를 마저 넣어 한 번 더 우루루 끓여 식힌다. 식은 절임물을 저며 놓은 비트에 붓고 한나절 실온에 두었다가 냉장고에 넣었다.

생으로 담을 때는 양파를 조금 많이 넣었다. 비트 물이 든 양파는 색도 예쁘지만 맛도 있다.
 생으로 담을 때는 양파를 조금 많이 넣었다. 비트 물이 든 양파는 색도 예쁘지만 맛도 있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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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지 않고 담근 비트피클. 물에 피망, 붉은 고추, 통후추, 소금을 넣고 조금 끓인 후에 양파를 넣고는 우루루 금방 끓인다. 그리고 식초를 넣어 한번더 우루루 끓여 내어 식힌다.
 삶지 않고 담근 비트피클. 물에 피망, 붉은 고추, 통후추, 소금을 넣고 조금 끓인 후에 양파를 넣고는 우루루 금방 끓인다. 그리고 식초를 넣어 한번더 우루루 끓여 내어 식힌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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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콤달콤한 것이 먹을 만했다. 아쉽다면 아삭 씹히지 않고 물렁하다는 것. 저녁에 식구들한테 맛을 보였다. 첫마디가 "왜 이렇게 물컹해, 에이 별로다" 혹은 "먹을 만하기는 하지만 씹는 맛이 있었으면 좋겠네" 야심작으로 내놓았건만 반응이 신통찮아서 실망이 되었다. 왜 삶았는지를 열심히 설명을 했지만 그래도 생것이 좋겠단다.

할 수 없이 똑같은 방법으로 삶지 않고 했다. 질감이 살아 있어 훨씬 좋고, 맛도 더 있다고 이구동성이다. 치킨을 먹을 때나 피자를 먹을 때 내 놓으니 식당에서 나온 무를 제치고 인기가 있다. 물냉면 위에 무 대신에 채를 쳐서 올려도 새콤달콤 맛있다. 색도 예쁘다. 성공이다.

나머지 비트는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거의 다 슈퍼에서 가끔 보기는 했지만 직접 먹어보지는 못했고 어떻게 먹는지를 묻는다. 갑자기 비트 마니아가 된 것처럼 먹는 방법도 예를 들어가며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런 다음에 삶은 비트피클과 생 피클 맛을 보이니 외국에서 살다가 오신 지인 한 사람만 빼고 다 생 피클이 좋다고 한다.

왼쪽이 삶은 비트피클, 가운데는 양파, 오른쪽이 생피클. 생피클의 색이 더 살아있다.
 왼쪽이 삶은 비트피클, 가운데는 양파, 오른쪽이 생피클. 생피클의 색이 더 살아있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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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것이나 생것이나 피클의 맛은 비슷하다. 다만 사람들의 인식으로 아삭 씹힐 줄 알고 먹었는데, 물컹한 그 식감에서 이질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 선입견으로 생 피클이 더 맛있다고 생각 되는 것이 아닐까 추측이 된다.

만든 나는, 그것이 물렁하다는 것을 알기에 맛에서 별로 차이를 못 느끼고 있다. 우리나라 음식에 치아가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만드는 숙깍두기가 있다. 깍두기 무를 익혀서 김치를 담그는 거다. 한 번도 먹어 보지는 않았지만 깍두기와 숙깍두기의 차이로 보면 될 것 같다.

그리고 나머지 자잘한 것은 삶아 우유와 인삼 한 두 조각을 넣어 갈아서 남편에게 주니 잘 먹는다. 핑크빛 생즙이 입맛을 돋운다. 분쇄를 하니 삶은 것이나 생것이나 상관이 없어 좋다. 감자전도 핑크가 되었다. 비트가 스치고 지나간 모든 음식에 갑자기 색깔이 입혀져 너울거린다.

결론은 내년에도 주말농장을 한다면 다시 비트를 심겠다는 거다. 비트피클을 좀 더 많이 만들어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주련다.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또 저장성이 높아 두고두고 조금씩 전이나 물김치, 샐러드에 맛내기, 멋내기 활용에도 좋기 때문이다. 냉장고를 열 때마다 붉은 색의 피클 병이 눈길을 끈다.


태그:#비트, #비트피클, #주말농장, #비트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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