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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토요일 늦은 아침을 먹었습니다. 애들이 아침부터 책을 읽어 달라며 달려옵니다. 제목은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입니다. 겉표지에 그려진 그림이 어디서 본 듯합니다.

 

동화책을 들고 제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래!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 타러 가자" 아이들은 어리둥절합니다. 책 속에서만 존재하는 기관차를 직접 타보자니 마냥 좋을 수밖에요. 두 아이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옷을 챙깁니다.

 

곧바로 아내의 분위기를 살폈습니다. 다른 약속이 있으면 저의 제안은 일거에 거부될 테니까요. 다행히 아내는 기차는 못 타더라도 섬진강 강바람이라도 마시고 오면 될 일이라며 반승낙을 합니다.

 

그리고 아내는 굳이 한마디 덧붙입니다. "토요일이고 날씨가 좋아서 사람들이 많을 거야. 미리 예약해야 겨우 기차 탈 수 있지 않을까?" 도착하기도 전에 걱정을 만듭니다.

 

그런 걱정도 잠시, 부지런히 짐을 챙겨 곡성을 향해 차를 몰았습니다. 구례 역을 지나자 섬진강이 보입니다. 시원한 물살이 반대로 흐릅니다. 차 창을 모두 열고 강바람을 마십니다. 적당한 그늘과 시원한 바람이 상쾌합니다. 집에서 던진 아내의 걱정은 강바람에 시원히 날려 보냈습니다.

 

아내의 선견지명 확인, 서울에서 700명이 몰려왔다

 

그러나 곡성 섬진강 기차마을 매표소에서 아내의 선견지명을 확인했습니다. 서울에서 단체손님이 오셨답니다. 그것도 자그마치 700명입니다. 가는 곳마다 매진사태입니다. 섬진강 기차는 당연히 매진됐고 차선책으로 생각했던 레일바이크도 한참이나 밀려있습니다.

 

섭섭해 하는 아이들과 사태를 미리 예견한 아내가 곱지 않은 시선으로 저를 쳐다봅니다. 그러나 할 말이 없어진 저는 달리 뾰족한 방법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나마 궁지에 몰린 저를 살린 건 '섬진강 천적박물관'과 '동물농장'입니다. 그곳으로 아이들을 이끄는데 장미공원이 눈에 띕니다.

 

그럴싸한 대문을 지나 장미공원으로 들어갔더니 한꺼번에 밀려오는 장미향에 나지막한 신음소리가 곳곳에서 들립니다. 아내도 장미꽃에 코를 가까이 가져갑니다. 그리고는 이내 환한 미소가 피어납니다.

 

"음, 향기 좋다."

 

 

이 한마디에 아내의 불만은 한꺼번에 날아갔습니다. 아이들도 색색의 활짝 핀 장미와 넓은 정원이 좋은지 이곳저곳을 뛰어다닙니다. 진한 장미향에 취해 열심히 카메라를 움직이고 있는데 아내가 한마디 합니다.

 

"붉은 장미도 좋은데 붉은 태양은 너무 싫다. 어디 쉴 만한 곳이 없네."

 

그러고 보니 5월이 햇살이 너무 뜨겁습니다. 장미향에 취해 햇볕에 몸 타는 줄도 몰랐습니다. 적당한 그늘을 찾아 늦은 점심을 먹습니다. 아이들은 밥 한술 뜨고 공원 한 바퀴 도는 일을 반복합니다.


평소엔 '천천히 꼭꼭 씹어서'가 우리 집 식탁예절이지만 오늘은 천방지축 날뛰는 애들을 놓아둡니다.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도 못타고 레일 바이크도 못 탔으니 이정도 소란은 너그러이 용서해 줘야 합니다.

 

"아들만 셋이여? 그런데도 엄마 얼굴 참 좋다."

 

아이들이 멀리 달아난 사이 공원 청소를 맡고 있는 할머니 한분이 우리 가족을 보며 한마디 합니다. "아휴, 아이가 참 귀엽게 생겼다. 아이 하나 더 낳아요. 요즘은 혼자 자라면 쓸쓸해서 못써" 그리고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두 녀석이 달려옵니다.

 

그 모습을 본 할머니가 다시 한마디 합니다. "아들만 셋이여? 그런데도 엄마 얼굴이 참 좋네." 그 말에 아내와 제가 얼굴을 마주보며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말괄량이 기관차는 타보지도 못하고 5월의 태양아래 흐드러진 장미향만 실컷 마시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한 마디 합니다.

 

"우리 딸 하나 더 낳을까?"

 

그 말에 깜짝 놀라 자동차가 중앙선을 넘었습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차 몰았습니다. 피곤한 아내 깨지 않도록...


느닷없는 아내의 제안을 못 들은 척 앞만 보고 열심히 차를 몰았습니다. 그러다 개구쟁이들이 생각나 뒷좌석을 흘긋 보니 두 녀석은 5월의 태양에 지쳤는지 곤히 잠들었습니다.

 

또다시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옵니다. 옆 좌석 아내도 피곤하지 졸고 있습니다. 그런 아내의 옆모습을 보니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동안 매일 회사일 바쁘다는 핑계로 세 아들 돌보는데 손을 보태지도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오늘 하루도 피곤했겠지만 세 아들 키우느라 더 피곤한 아내를 위해 차를 조금 천천히 몰았습니다. 아내가 깨지 않도록 말이죠. 강물 흐름에 맞추고 세월의 흐름에 맞춰 덜컹거리지 않게 조심히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태그:#곡성 기차마을, #섬진강, #장미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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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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