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부터 2011년 <오마이뉴스> 지역투어 '시민기자 1박2일'이 시작됐습니다. 이번 투어에서는 기존 '찾아가는 편집국' '기사 합평회' 등에 더해 '시민-상근 공동 지역뉴스 파노라마' 기획도 펼쳐집니다. 이 기획을 통해 지역 문화와 맛집, 그리고 '핫 이슈'까지 시민기자와 상근기자가 지역의 희로애락을 자세히 보여드립니다. 어느덧 다섯 번째, 이번엔 광주·전남·전북입니다. [편집자말]
올해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차가운 기운이 부쩍 느껴지고 있는 축구장에 가장 주목받고 있는 두 선수가 있다. K-리그에서 정규 리그 1위를 확정한 전북 모터스의 간판 골잡이 이동국과 신인왕 트로피가 눈 앞에 보이는 광주 FC의 새내기 이승기가 바로 그들이다.

광양시를 연고지로 하는 전남 드래곤즈 팀도 있지만 이 두 선수 덕분에 전라북도 지역(전주)과 전라남도 지역(광주)의 은근한 자존심 대결이 올 시즌 끝판까지 볼만하게 펼쳐지고 있다.

'절정의 골 감각', 전북 모터스 FW '이동국'

 전북 누리집에 오른 이동국 선수 관련 소식

전북 누리집에 오른 이동국 선수 관련 소식 ⓒ 전북 모터스


2006년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아시아 클럽 축구 최고의 자리에 올랐고, 2009년에는 창단 후 처음으로 K-리그 챔피언에 오른 전북 모터스. 이 구단의 기세가 등등하다. 2011년 올해에는 아예 이 두 대회를 싹쓸이할 기세다. 클럽 축구 팬들은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진정으로 영광스러운 일인지 잘 안다.

우리 시각으로 지난 20일 새벽 사우디 아라비아 제다에서 열린 2011 AFC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에서 강팀 알 이티하드를 3-2 펠레스코어 역전승으로 물리친 전북은 결승 진출을 눈앞에 둔 것이나 다름없다. 2006년의 영광이 다시 무르익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전북은 2년만에 K-리그 챔피언 자리도 되찾아오고 싶어한다. 이제 정규리그 마지막 30라운드만을 남겨놓고 있는 현재 상황, 전북은 비교적 홀가분한 마음으로 후보 선수들을 과감하게 기용할 수 있게 되었다. 6강 플레이오프라는 기다림의 시간이 남았지만 막강한 공격력을 바탕으로 우승을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 중심에는 역시 라이언 킹 '이동국'이 있다. 올 시즌 27경기를 뛰면서 16득점 15도움을 올렸으니 이 수치만으로도 더 설명할 필요가 없는 '해결사'다. 전북이 29경기를 하면서 66득점을 올렸으니 그 절반은 이동국의 이마와 발끝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하면 쉽다.

물론, 이동국 혼자서만 잘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루이스와 에닝요 두 외국인 콤비의 특급 지원, 그리고 최근에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 서정진도 물이 올랐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올해 전북 모터스의 축구 색깔은 '닥공(닥치고 공격)'이다.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는 어색하기만한 이 수식어가 전북 모터스의 경기마다 늘 따라다닐 정도로 박진감 넘치는 공격 축구의 모델을 만들어내고 있다.

역습 상황에서 루이스의 드리블 속도를 보고 있노라면 입이 저절로 벌어질 정도로 빠르다.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유연성까지 겸비하고 있기 때문에 달라붙어 있는 상대 선수들이 나가 떨어지는 것은 정말로 시간의 문제다. 왼쪽이나 오른쪽 어디에 두더라도 위력적인 오른발 킥 실력을 자랑하는 에닝요는 코너킥, 프리킥 등 세트 피스의 마술사다.

최근 국가대표 축구 팀에 뽑혀 골잡이 박주영을 빛나게 했던 서정진까지 두면 정말 두려울 팀이 없다. 이동국이 어디로 움직이든 그 빈 곳을 나머지 세 선수들이 누비는 장면들은 공격 축구의 진수를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이들 넷이 마음놓고 공격할 수 있기까지 정훈이라는 성실한 수비형 미드필더도 있고 노련한 수비수 조성환과 김상식도 뒤에서 중심을 잡고 있다. 오른쪽 측면의 최철순과 왼쪽 측면의 박원재까지 따지면 다시 모아두기 어려운 드림 팀 급이다.

'봉동 이장 - 최강희 감독', '봉동 청년회장 - 이동국'

전북에는 이 선수들 못지 않게 팬을 몰고다니는 감독님이 있다. 한 때 '강희대제'로 불렸던 최강희 감독이다. 그는 다른 팀에서 주목받지 못한 선수들을 데려다가 훌륭한 실력자로 만들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재활공장장'이라는 별명도 얻은 바 있다.

최강희 감독의 뛰어난 지략은 20일 새벽 사우디 아라비아 제다에 있는 프린스 압둘라 알 파이살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1 AFC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에서 또 한 번 입증되었다. 올 시즌 K-리그 패권까지 노리고 있는 전북은 정말로 두 마리 토끼를 사냥중이다. 그래서 이번 제다 방문 경기에는 축구 팀 최소 인원이라 할 수 있는 15명의 정예들만 데리고 갔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3-2 역전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일찌감치 골을 넣어 '1-0'으로 시작한 경기는 '1-1, 1-2, 2-2'의 과정을 거쳐 결국 펠레 스코어의 진한 감동을 만들어냈다. AFC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손에 꼽을만한 명승부였다. 역시 최고의 지휘자가 만들어내는 그림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이런 최강희 감독에게 팬들은 또 하나의 별명을 붙여주었다. '봉동 이장'이라는 친근한 이미지다. 최강희 감독 본인도 '강희대제'라는 부담감 있는 별명보다는 '봉동 이장'이 더 좋다고 했다. '봉동'은 전북 모터스의 훈련장이 있는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율소리에서 따 온 것이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골잡이 이동국에게는 '봉동 청년회장'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감독과 선수의 소통이 경기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이미 전북 구단의 성적과 이동국 선수 개인 성적이 잘 말해주고 있다.

어쩌면 현재 전북 모터스가 거두고 있는 지역 친화, 팬 친화의 축구장 그림은 다른 구단들 특히, 시민 구단이 지녀야 할 덕목이 아닌가 한다. 전북의 홈 구장 전주성(전주월드컵경기장의 별명)에서도 조금 거리가 있지만 그 친근한 시골 들녘의 분위기가 팬들에게 불편하게 작용할 이유는 없다.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우추리(위촌리) 어르신들의 농가 달력에 도민 구단 강원 FC의 경기 일정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연예인만큼 잘 나가는 광주 FC 미드필더 '이승기'

기업에서 운영하는 구단 전북 모터스의 힘찬 발걸음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올해부터 광주광역시에 진정한 시민 구단이 그 첫 번째 빛을 쏘아올렸다. 군인 팀 상무 선수들이 오랫동안 광주를 연고지로 두고 뛰면서 광주 상무라는 이름을 남겼지만 정말로 그곳에 터를 잡은 광주 FC가 만들어진 것이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는 것처럼 광주 FC의 첫 시즌 성적이 순위표 상으로는 특별하게 보이지 않는다. 현재 꼴찌는 아니지만 9승 8무 12패로 28라운드까지 11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들의 순위표 밑으로 시민 구단으로 먼저 K-리그에 들어온 대구 FC, 인천 유나이티드 FC, 강원 FC가 줄줄이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면 결코 첫 해 농사를 잘못 지은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광주 FC 미드필더 이승기

광주 FC 미드필더 이승기 ⓒ 광주 FC


무엇보다도 광주 FC는 새내기 팀에 어울리는 새내기 선수 덕분에 팬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그 주역은 미드필더 이승기다. 유명 연예인과 같은 이름 때문에도 주목받기 쉬웠지만 그 이름값 못지 않게 K-리그 첫 발걸음을 또렷하게 찍고 있다. 지금까지 26경기를 뛰면서 8득점 2도움을 기록하며 2011 시즌 신인왕이 유력하다.

광주 FC의 간판으로 떠오른 이승기는 23살의 풋풋한 프랜차이즈 스타, 바로 그것이다. 최근에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선정하는 베스트 11에 세 번이나 연속으로 뽑혀 더욱 주목받고 있다. 덕분에 꿈만 같았던 태극 마크까지 달게 되었다. 아직 공식 데뷔전을 치르지는 않았지만 전북의 서정진과 함께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의 중원을 책임질 수 있는 유력 후보로 떠오르고 있는 중이다.

물론, 광주 FC에는 이승기만큼이나 주목할만한 골잡이 박기동이 있다. 아쉽게도 올 시즌 3득점 5도움을 기록하며 기록상으로는 이승기에게 밀리고 있지만 동갑내기의 자존심이 두 번째 시즌까지 그냥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란 고춧가루, 광주 FC

올 시즌 K-리그 막바지 팬들의 눈과 귀는 물론, 영혼까지 뒤흔드는 최대의 승부처는 6강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어디가 가져가느냐 하는 점이다. 순위표 꼭대기에 있는 네 팀(전북 모터스, 포항 스틸러스, 수원 블루윙즈, FC 서울 순)은 그 아래로 내려갈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5위와 6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그 다음 팀들의 경쟁이 보통 이상이다.

이른바 커트 라인 근처에 몰려 있는 네 팀(부산 아이파크, 울산 현대, 전남 드래곤즈, 경남 FC)이 점입가경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광주 FC 선수들의 노란 옷만 보면 불편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이미 지독한 고춧가루를 맛본 팀이 셋이나 있고 23일 낮에 광주 FC를 만나야 하는 수원 블루윙즈 입장에서는 현재 떨고 있다.

사실상 올 시즌 순위 경쟁에서 밀려난 광주 FC가 한 경기 한 경기 살얼음 위를 걷고 있는 다른 팀들의 발목을 제대로 걸어 넘어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고춧가루' 뿌리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광주 선수들은 지난 달 17일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성남 천마와의 방문 경기부터 3-1로 이기면서 조용한 함성을 내지르고 있다. 성남이 아무리 올 시즌 죽을 쑤고 있는 팀이라고 하지만 2010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팀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실로 놀라운 결과다.

광주 FC의 끈질긴 경기력은 그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갈 길 바쁜 부산 아이파크와 2-2로 비겼고 울산 현대와의 안방 경기도 0-0으로 끝냈다. 이 상대 팀들이 6강 플레이오프에 들어가기 위해 들이고 있는 공을 생각하면 참담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고춧가루 역할의 절정을 이룬 것이 지난 16일 낮에 광양 축구전용경기장에서 벌어진 전남 드래곤즈와의 방문 경기였다. 남도의 새로운 맞수로 떠오른 두 팀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진진한 것인데 2-0의 승리까지 거두고 돌아왔으니 광주 FC 선수들을 향한 팬들의 기대와 함성은 최고조다.

남은 한 경기를 더 집중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시민 구단들 중에서 창단 첫 해에 두 자릿수 승리 기록을 유일하게 남기는 팀이 될 것인가 하는 점에 많은 팬들이 주목하고 있다. 이미 9승을 거둔 광주 FC의 기록은 절반 이상의 성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3년 대구 FC 7승, 2004년 인천 유나이티드 FC 6승, 2006년 경남 FC 7승, 2009년 강원 FC 7승을 뛰어넘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도 30일 낮 3시에 대전 퍼플 아레나에 들어가는 광주 FC 선수들의 마음가짐은 단단하다. 순위권 밖 주목받지 못하는 경기라고 하지만 이승기와 동료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 작지만 소중한 기록 하나를 남기기 위해 노란 고춧가루 부대원들은 온 몸을 내던질 준비가 되어 있다.


전북 모터스 광주 FC K-리그 축구 봉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