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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소련한테는
욕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도 얼마전까지는
흰 원고지 뒤에 낙서를 하면서
그것이 그럴듯하게 생각돼서
소련을 내심으로도 입밖으로도 두둔했었다
― 당연한 일이다

소련을 생각하면서 나는 치질을 앓고 피를 쏟았다
일주일 동안 단식까지 했다
단식을 하고 나서 죽을 먹고
그 다음에 밥을 떡국을 먹었는데
새삼스럽게 소화불량증이 생겼다
― 당연한 일이다

나는 지금 일본 시인들의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너무 자연스러운 전향을 한 데 놀라면서
이 이유를 생각하려 하지만
그 이유는 시가 안 된다
아니 또 시가 된다
― 당연한 일이다

'히사야마 슈조'(1909~1967, 일본의 시인-기자 주)의 낙엽이 생활인 것처럼
5·16 이후의 나의 생활도 생활이다
복종의 미덕!
사상까지도 복종하라!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이 말을 들으면 필시 웃을 것이다
― 당연한 일이다

지루한 전향의 고백
되도록 지루할수록 좋다
지금 나는 자고 깨고 하면서 더 지루한
중공(中共)의 욕을 쓰고 있는데
치질도 낫기 전에 또 술을 마셨다
― 당연한 일이다
(1962)

5·16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의 사회 통제는 철저했다. 대표적인 것이 대규모의 깡패 단속이었다. 실제 정치깡패가 들끓기도 했다. 부패한 자유당 정권을 배경으로 생겨난 무리였다. 쿠데타 세력은 10여 일만에 모두 2천여 명의 깡패를 체포했다.

깡패들은 반성의 거리 행진을 펼쳤다. 유명한 정치깡패 이정재가 선두에 섰다. 그들 손에는 "나는 깡패입니다. 국민의 심판을 받겠습니다", "깡패 생활 청산하고 바른 생활하겠습니다" 등이 적힌 펼침막이 쥐어져 있었다. 훗날 이정재는 재판을 통해 교수형을 당했다. 일부는 제주도로 끌려가 5·16도로를 내는 강제사역에 동원되기도 했다.

쿠데타 세력의 최고의사결정기구였던 국가재건최고회의(아래 최고회의)는 범국민운동도 펼쳤다. 북괴의 간접침략에 대한 대응조치의 일환이었다. 1961년 6월 9일, 국가 주도로 범국민운동을 벌이기 위한 재건국민운동에 관한 법률을 의결했다. 용공중립사상 배격, 내핍생활 철저, 근면정신 고취, 생산 및 건설의욕 고취, 국민도의 앙양 등을 목표로 하는 재건국민운동본보(아래 운동본부)도 만들었다. 초대 운동본부장은 고려대 총장 유진오가 맡았다.

운동본부가 주도한 구체적인 활동들은 전체주의 냄새가 짙게 풍겨 나왔다. 재건체조와 신생활복(재건복), 국민가요 등은 일제의 괴뢰국이었던 만주국이나 일제 당국이 강요한 보건체조와 국민복, 일제 말기의 국민가요 등을 답습한 것이었다. 온 국민을 하나로 만들려는 박정희의 집념은 그가 일본군 장교로 복무할 때부터 자라나고 있었을 것이다.

사상 통제는 국가보안법(보안법)과 반공법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에 최고회의 직속으로 탄생한 중앙정보부(중정)가 방대한 조직망과 인력으로 전국적인 감시망을 이루고 있었다. 중정은 정부를 포함한 각 기관의 정보 수사 활동 감독과 보안 업무 감독 등의 막강한 권한을 가졌다. 중정부장(김종필)은 공공연히 박정희 다음의 2인자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군사 권력과 음험한 정보기관은 그 자체가 공포였다. 보안법과 반공법의 법 조문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였다. 사상과 이념을 통제하기 위한 시스템은 완벽했다. 국민들의 마음에는 "복종의 미덕!"(5연 3행)이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사상까지도 복종"(5연 4행)하는 자발적인 자기 검열이 이루어졌다. 수영의 시 <전향기>는 그런 당대 상황을 냉소와 자기 모멸의 목소리로 고발하고 있는 작품이다.

4월 혁명 후 들어선 제2공화국 시절, 장면 정부가 시대착오적인 반공법을 추진하려던 때가 있었다. 수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홧김에 술을 연거푸 마셔 간장염에 걸리고 말았다. 아내 현경에게 화풀이를 하면서 애먼 문창호 두 장을 박살내기도 했다. 수영에게는 포로 수용소 경험이 트라우마처럼 각인돼 있었다. 반공법과 보안법, 중앙정보부로 이어지는 공포정치의 도구들은 수영을 극도로 불안하게 만들었다.

작품에 등장하는 화자는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1연 1행)을 따른다. 그들처럼, '소련'을 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내심으로도 입밖으로도 두둔"(1연 6행)까지 한다. 그 대가는 처참했다. "치질을 앓고 피를 쏟았다"(2연 1행). "일주일 동안 단식"(2연 2행)을 해서 "새삼스럽게 소화불량증이 생"(2연 5행)겨나기도 했다. 결국 화자는 "자연스러운 전향"(3연 2행)을 한다. "5·16 이후의 나의 생활도 생활이"(4연 2행)라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물론 '생활'을 핑계로 '전향'한 화자의 변신이 '진짜'는 아니다. 겉으로 화자는 '전향' 후의 행보를 잘 유지한다. 그는 지금 "자고 깨고 하면서"(5연 3행) 공산주의 국가인 "중공의 욕을 쓰고 있"(5연 4행)다. 그런데 그 "전향의 고백"(5연 1행)이 '지루'하다. '전향'이 '진짜'로 이루어졌는데 지루할 수 있을까. 그의 '전향'이 반어로 읽히는 까닭이다.

'전향'은 사상과 이념이 철저하게 통제되는 전체주의 시스템에서나 통용되는 말이다. 사전적으로는 '현실 사회와 배치되는 자기의 사상을 그 사회와 맞게 바꿈'으로 풀이되어 있다. 전향이 자발적이라면 별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서 전향은 부당한 권력의 겁박과 위협 속에서 이루어질 때가 많았다. 강제적이었다. 노골적인 공포 정치로 당사자 스스로 전향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5·16'과 같은 쿠데타 때문에 "사상까지도 복종하"는 일은 <전향기>만의 것이 아니다. 군사 독재가 종말을 고한 지 25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라는 하나의 '민주주의'만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지금 이 나라의 권력은 '자유민주주의'를 제외한 그 어떤 '민주주의'도 좋이 보지 않는다. 여차하면 들이대는 게 '종북'이다. "사상까지도 복종"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펼쳐지고 있다.

수영은 <전향기>에서 공산주의를 옹호하거나 그로부터 전향하는 일, 거꾸로 공산주의를 비난하는 것 모두를 "당연한 일"(각 연 마지막 행)로 규정한다. "당연한 일"이란 이치로 보아 마땅한 일이라는 말이다. 왜 그런가. 누가 어떤 사상을 갖든 말든, 혹은 그 사상으로부터 전향을 하든 안 하든 그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유롭게 내버려 두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 "당연한 일"을 허용하지 않는다. <전향기>에서 냉소적인 반어의 목소리를 듣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전향기>, #김수영, #박정희, #공포정치, #반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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