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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만의 소비세 인상을 앞둔 일본 열도가 지난 주말 사재기 열풍에 시달렸다.

일본은 현재 5%인 소비세율을 4월 1일부터 8%로 인상한다. 가격이 오르기 전에 물건을 사두려는 소비자가 한꺼번에 몰렸고, 기업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판촉 활동에 나서면서 연말 못지않은 '특수'가 벌어진 것이다.

일본 공영방송 NHK에 따르면 주말 동안 일본 전국에서 식품, 화장지, 세제, 라면, 주류 등 생필품을 대량으로 구매하려는 소비자가 넘쳐났다. 지하철 정기권도 불티나게 팔렸다.

백화점과 대형 슈퍼마켓도 사재기 열풍에 편승해 할인 행사에 나서면서 명품 의류, 전자제품, 보석 등 고가 제품의 구매도 크게 늘었다. 도쿄 긴자의 마츠야 백화점은 매출이 평소보다 40% 이상 늘었다.

도쿄의 최대 금 상점인 '다나카 기킨조쿠 주얼리'는 이달 들어 금 판매가 500% 이상 급증하기도 했다. 소비세율 인상에 따른 인플레이션에 대비해 자산 가치를 보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금괴를 선택한 것이다.

기대와 우려 엇갈린 소비세율 인상

소비세율 인상을 앞둔 마지막 주말 쇼핑가의 사재기 열풍을 보도하는 일본 공영방송 NHK뉴스 갈무리.
 소비세율 인상을 앞둔 마지막 주말 쇼핑가의 사재기 열풍을 보도하는 일본 공영방송 NHK뉴스 갈무리.
ⓒ 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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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은 전통적인 비수기인 3월에 찾아온 때아닌 특수로 즐거운 비명을 질렀지만, 당장 소비세율이 인상되는 다음 달부터는 소비자의 지갑이 굳게 닫혀버리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백화점, 슈퍼마켓, 편의점 등 유통업체는 4월에 할인 폭을 더욱 늘리고, 가격 인상에 상대적으로 둔감한 식품 판매와 소비세가 면제되는 외국인 여행객 유치에 주력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소비세율 인상이 이미 오래전부터 예고됐던 터라 충격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공영방송 수신료, 전기, 가스, 통신, 교통비 등은 물론이고 기업들도 제품 가격 인상을 준비하고 있다.

일본 아베 내각은 이번 소비세율 인상을 계기로 기업 투자가 확대되어 임금이 인상되고, 소득이 높아진 가계가 소비 활성화에 나서는 선순환 고리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기업 투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법인세를 인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소비세 인상에 이어 곧바로 법인세 인하 카드까지 꺼낼 경우 가계의 강력한 반발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다.

일본에서 소비세율 인상은 '정권의 무덤'으로 불린다. 일본이 가장 마지막으로 소비세를 인상했던 1997년에도 심각한 경기 침체가 벌어졌고, 이듬해 참의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이 대패하며 결국 정권의 붕괴로 이어졌다.

승부수 던진 아베, '정권의 무덤' 피해갈까

지난해 10월 소비세율 인상을 공식 발표하는 아베 신조 총리의 기자회견.
 지난해 10월 소비세율 인상을 공식 발표하는 아베 신조 총리의 기자회견.
ⓒ 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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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세, 법인세 등 직접세 위주로 운영되는 일본에서 소비세와 같은 간접세 인상에 대한 저항은 훨씬 더 크다. 그럼에도 아베 내각이 정권을 내걸고 소비세율 인상을 단행한 것은 극한으로 치닫는 재정적자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 총리는 지난해 10월 소비세율 인상을 공식 발표하며 "국제적 공약으로 내세웠고 국회도 법안을 통과시켰다"며 "이제 와서 입장을 바꾸면 일본 정부와 국채의 대외 신인도가 떨어져 대응하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일본의 재정적자 규모는 명목 GDP의 240%가 넘어 선진국으로는 최고 수준이다. 당장 소비가 둔화되고 지지율이 떨어질 수 있지만 일본 경제의 부활을 위해서는 재정적자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아베 내각의 판단이다.

또한 17년 전과 달리 '아베노믹스'로 경기가 회복될 기미를 보이고 있고,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까지 유치하면서 소비세 인상의 후폭풍을 견뎌낼 수 있다는 아베 내각의 자신감도 깔려있다.

아베 내각은 더 나아가 내년 10월 소비세율을 10%까지 올리는 2차 인상을 준비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향후 5~6년이 일본 경제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많은 논란 속에서 시작되는 소비세율 인상이 일본 경제의 숙원인 재정적자 해결을 이뤄낼지, 아니면 아베 내각의 붕괴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태그:#일본 소비세, #일본 경제, #아베 신조, #사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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