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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식민 지배와 남북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표현한 과거 발언이 공개돼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기자들의 질문을 뒤로한 채 1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으로 출근하고 있다.
▲ 질문 뒤로한 채 출근하는 문창극 "일본의 식민 지배와 남북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표현한 과거 발언이 공개돼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기자들의 질문을 뒤로한 채 1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으로 출근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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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17일 낮 12시 50분]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거짓 해명이 인사청문회의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문 후보자는 해군장교로 복무하면서 서울대 대학원 석사과정을 다닌 것과 관련해 "무보직 상태여서 가능했다"라고 해명했지만, 그는 해군본부에서 부관과 관리제도담당 등을 맡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17일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문 후보자는 지난 1973년 7월부터 1975년 7월까지 해군1차장(현 해군 참모차장) 부관과 기획관리참모부 관리제도담당으로 근무했다. "당시에 사실상의 무보직 상태가 되어 해군 참모총장으로부터 승인받아 대학원을 다녔다"는 문 후보자쪽의 해명이 '거짓말'이었던 셈이다.

문 후보자는 지난 1968년 서울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해 지난 1972년 2월 졸업했다. 같은 해 7월부터 해군 학사장교(항해병과)로 군복무를 시작했다. 근무지가 백령도에서 해군본부로 바뀐 이후인 지난 1973년 7월부터 1974년 4월까지 해군1차장 부관으로, 지난 1974년 4월부터 제대했던 지난 1975년 7월까지 기획관리참모부 관리제도담당으로 근무했다.

위용섭 국방부 부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 "1972년 7월부터 1975년 7월까지 3년 동안 사천함 갑판사관, 그리고 해군본부 비서실 제1차장 부관, 해군본부 기참부 관리제도 담당 등의 보직을 거쳤다"라며 "이것은 병적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이다"라고 전했다.

문 후보자는 부관과 관리제도담당으로 근무하던 지난 1974년과 1975년 서울대 정치학과 대학원 석사과정을 다녔다. 특히 같은 시기(1974년)에 해군 예인정 침몰사고(2월)와 육영수 여사 피살사건(8월)까지 일어나 전군이 비상상황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서울대 대학원 수학은 특혜라는 논란이 크게 일었다.  

문 후보자쪽은 해군장교로 복무하면서 대학원에 다닌 것이 '특혜'라는 지적에 "당시 관례와 절차에 하자가 없었다, 상부의 승인을 얻어 적법하게 진행했다"(16일 보도자료)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결국 그 '관례와 절차'는 당시 규정에도 없던 '특혜'였던 것이다. 그 특혜에는 '서울대'라는 학벌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해군본부의 한 관계자는 "장교 복무중 대학원에 다니려면 위탁교육 시험을 봐야 하는데 이것도 장기복무장교에만 해당되고 단기복무장교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라며 "(단기복무장교였던) 문 후보자는 애초에 대학원을 다니는 것이 불가능했다"라고 말했다.

위용섭 부대변인도 "군 장교가 상부의 승인없이는 개인적인 업무를 볼 수 없다"라며 "그래서 어떤 형태든 간에 상부의 승인을 거쳐서 대학원을 다녔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라고 해명했다.

"일본 식민지 지배와 남북분단은 하나님의 뜻이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사과할 필요 없다" 등의 발언으로 '극우 역사관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문 후보자는 '군복무중 대학원 수학' 특혜 논란에 거짓말까지 동원함으로써 위기를 자초했다는 평가가 많다.


태그:#문창극, #해군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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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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