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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종영한 드라마 <개과천선>
 지난 26일 종영한 드라마 <개과천선>
ⓒ mbc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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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개과천선>이 지난 26일, 16회를 끝으로 종영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대형 로펌의 에이스 변호사 김석주(김명민 분). 그는 강자를 대변하고 약자를 억압하는 냉혈한으로 일본의 강제징용 재판에서 일본 기업 변호를 맡았을 정도다. 그러던 그가 불의의 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이를 계기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이후 약자를 대변하는 변호사로 거듭난다는 게 드라마의 대략적인 내용이다.

정치권력에 맞선 <변호인>, 자본권력에 맞선 <개과천선>

이 드라마는 지난해 개봉한 영화 <변호인>과 닮은 점이 많다. 브라운관의 <변호인>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다. 법정물이라는 기본 장르뿐 아니라 모범적이지 않은 변호사가 특정 사건을 계기로 약자를 위한 헌신적 변호사로 각성한다는 이야기의 큰 줄기가 닮았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벌어지는 전개도 같다. 영화 <변호인>이 부림사건을 통해 '정치권력의 횡포'를 극에 담았다면 드라마 <개과천선>은 '자본권력'의 횡포를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대표적인 것이 '시스타호 서해 기름유출사건' 에피소드다. <개과천선> 5화에서 그려진 이 가상의 기름유출 사건 관련 일화는 기름유출 후 5년이 지났음에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 어민의 비참한 현실을 그렸다.

극 중에서 묘사된 서해안 기름유출사건은 태안 기름유출사건과 유사하다. 실제 사건 후 7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피해어민들에 대한 보상이 완료되지 못했다.
▲ 서해 기름유출 피해 어민 상경집회 극 중에서 묘사된 서해안 기름유출사건은 태안 기름유출사건과 유사하다. 실제 사건 후 7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피해어민들에 대한 보상이 완료되지 못했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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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드라마 속 가해자격인 주원그룹은 법적 책임을 최소화해 55억 원의 배상액만 내도록 판결을 받았다. 이는 2007년 태안기름유출사태와 매우 유사하다. 아직도 피해 어민에 대한 배상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허베이 스피리트호의 책임자 삼성중공업이 배상 총액 7000억 중 56억 원만을 배상한 사실 또한 극에서 배의 이름과 배상액 규모에 차이가 있을 뿐 내용은 같다. 우회적으로 묘사했지만 삼성중공업을 비판한 셈이다.

<개과천선> 5화에서 국회가 피해 어민 배상을 위한 특별법을 추진 중이니 주원그룹이 현실적 보상을 해야 한다는 김석주(김명민 분)의 주장에 주원그룹 임원은 이렇게 답한다.

"국회의원은 4년짜리 임시직입니다. 대통령은 5년짜리고요. 주원그룹은 경영권 승계에 성공했죠. 누구의 힘이 가장 오래가는지 잘 아시는 분이 임시직 말에 신경을 쓰는 겁니까?"

한국사회 자본권력의 민낯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다. 드라마 <개과천선>은 편의점 불공정 계약 문제, 키코 사태, 동양그룹 회사채 사태 등 '자본권력의 횡포'에 기인한 사건들을 연이어 중심 에피소드로 그려냈다. 이 과정에서 편의점 업주, 서민, 중소기업 사장, 노동자가 고통받는 현실을 집중적으로 담아냈다.

차영우 로펌으로 상장되는 대형 로펌이 독점적인 자본권력과 결탁한다는 점 역시 한국사회의 현실을 반영했다. 드라마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소주회사 백두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진로그룹과 골드만삭스의 경영권 분쟁에 론스타 사태 및 쌍용차 사태를 연상시키는 요소가 압축적으로 묘사돼 있다.

'망각'에 맞선 '기억'의 투쟁

극 중에서 백두그룹 노동자가 사측으로부터 받은 해고통보 문자메시지다. 론스타 사태, 쌍용차 사태 등에서 있었던 해고통보와 유사하다.
▲ 백두그룹 노동자가 받은 해고통보 문자메시지 극 중에서 백두그룹 노동자가 사측으로부터 받은 해고통보 문자메시지다. 론스타 사태, 쌍용차 사태 등에서 있었던 해고통보와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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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그룹과 골드만삭스를 연상시키는 백두그룹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해고당한 백두그룹 노동자들의 집회장면. 이들은 현실의 많은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문자 메시지'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 <개과천선> 마지막화의 한 장면 진로그룹과 골드만삭스를 연상시키는 백두그룹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해고당한 백두그룹 노동자들의 집회장면. 이들은 현실의 많은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문자 메시지'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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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개과천선>이 다룬 사건들이 '자본권력의 횡포'일 뿐 아니라 근원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진행형 사건'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오래되지 않은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잊혔다는 점 역시 마찬가지다.

"백두그룹에 20년간 근무했습니다. 어느 날 문자 한 통을 받았습니다. '2012년 3월 30일부로 정리해고를 통보합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유도 모른 채 직원 1000여 명이 해고를 당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투기자본의 농간이었습니다."

드라마 <개과천선> 마지막회에서 백두그룹 해고노동자가 법정에서 했던 말이다. '투기자본의 농간'과 '문자 메시지 해고', 론스타 사태와 쌍용차 사태 때 벌어진 일이다.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경제정책, 현재의 법과 제도로 유사 사건이 벌어질 여지마저 있다. 작가가 의도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드라마 속 문자로 통보한 해고일인 '2012년 3월 30일'은 쌍용차 해고 노동자 이윤형씨가 김포에 있는 아파트에서 투신해 사망한 날이다.

이 맥락에서 드라마 <개과천선>이 잊힌, 잊히고 있는 사건들을 수면 위로 끄집어낸 이유가 분명해진다.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잊지 말라'는 의제를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에 맞서는 인간의 투쟁은 망각에 맞서는 기억의 투쟁"이라는 밀란 쿤데라의 말처럼.


태그:#개과천선, #MBC, #김명민, #키코사태, #태안기름유출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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