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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잡스(10jobs)'

개그맨으로서, 가수로서, DJ로서, 또 탈모 시장의 사업가로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박명수를 두고 동료 유재석이 붙인 별명이다. 듣기에 따라 욕 같기도 하여 불편할 법도 한데 막상 박명수 본인은 스티브잡스의 느낌이 살아 있다며 흡족해 한다.

디지털 문화의 창조자라 할 수 있는 스티브잡스, 그리고 박명수. 다소 무리한 비교일 수도 있겠으나 비견될 수 없는 존재끼리의 조합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신선함을 만끽하기 위해서 그들의 닮은꼴을 찾으려는 노력도 꽤나 즐거울 듯하다. 따지고 보면 마흔 다섯 나이에 TV 출연료만 9억 가까이 버는 박명수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황무지와도 같은 분야에 굳이 덤벼들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개그맨으로서 '잘 할 수 있는 일'에만 매진하는 것이 아니라 가수로서, DJ로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삶의 진중한 가치를 얻어내는 일은 존경할 만하고 그것은 일면 스티브잡스의 'Stay hungry, Stay foolish'와 맞닿아 있다.

"곧 죽게 된다는 생각은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마다 큰 도움이 된다. 사람들의 기대, 자존심,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거의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 무의미해지고 정말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이다.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무언가 잃을 게 있다는 생각의 함정을 피할 수 있다. 당신은 잃을 게 없으니 가슴이 시키는 대로 따르지 않을 이유도 없다."

스티브잡스가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에서 남긴 말이다. 힘들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개그맨으로서 길고 긴 무명 시절을 보냈음에도 꿋꿋하게 일어서서 여러 분야에서 보란 듯이 개간해 나가는 박명수의 모습을 보면 '잃을 게 없으니 가슴이 시키는 대로 따른' 자의 내공이 느껴진다. 그런 그가 세상에 존재하는 격언이나 속담을 두고 패러디한 것을 보면 스티브잡스가 말하는 '혁신'이라는 것이 우리 생활에 가까이 있는 것임을 다시금 체감하게 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늦은 거다."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
  "가는 말이 고우면 상대가 얕본다."
  "성공은 1%의 재능과 99%의 빽"
  "티끌 모아 티끌"

늦었다고 인식한 것 자체가 행동의 즉각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기에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텍스트가 탄생했겠지만 냉철하게 생각해 보면 일찌감치 어떤 일에 착수하지 못한 사람의 낮은 성공률을 두고 희망 고문을 할 필요가 있겠냐는 결론에 이른다. 이러한 비틀기가 오히려 사람들에게 더욱 분발하라는 메시지로 전달되기도 할 것이다.

박명수는, 미국의 한 심장 전문의가 마음의 짐을 더는 방법으로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던진 메시지를 묘하게 바꾸어 버린다. 그가 한 강연에서 말했듯 앞으로는 '취미'와 '본업'의 구분이 모호한 사회, 직업혁명의 물결 가운데 로봇과 경쟁하지 않는 군에 속하면서도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일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가 올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한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라는 메시지는 본인의 기호나 성향, 취미와 무관한 것들에 대해 적절한 거리두기를 시사(示唆)하는 셈이다. 생계를 감당할 수 있는 일, 열정을 꿈틀거리게 하는 일,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일 가운데 최적점이 어디일지 고민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는 점에서 박명수의 '낯설게 하기(Defamilarization)'는 훌륭한 장치이다.

'가는 말이 고우면 상대가 얕본다' 라는 말로 처세술이나 인간관계에 있어 새로운 조명을 시도한 점, '성공은 1%의 재능과 99%의 빽'이라는 말과 '티끌 모아 티끌'이라는 말로 사회․경제의 한 단면을 보여준 점 등은 우리에게 많은 걸 느끼게 해 준다. 함의(含意)의 가치 유무에 관한 진부한 논쟁만 제거한다면 패러디 자체가 '지금, 여기'에 대한 냉철한 인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기에 그것만으로도 스티브잡스 곁에 박명수를 세울 수 있는 논거가 성립된다.

아트 슈피겔만의 '쥐'라는 책을 보면 쥐는 전염병의 온상이고 위험과 불결 등의 수식어를 대변했으며 심하게는 시련의 역사를 상징하기도 했다는데 해맑게 웃고 있는 미키마우스의 얼굴에서 하수구를 떠올릴 사람은 없을 것이기에 월트디즈니의 '남과 다른 생각'이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들어낸 셈이라 이어령은 '생각'이라는 책에 밝혔다. 박명수가 이 책의 한 페이지에 실렸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나만 하고 있는 건가? 박명수가 학교 현장에서 글쓰기 교육의 강사로 활약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나만 하고 있는 건가?

"일찍 일어나는 새가 피곤하다."

박명수가 남긴 '명언'이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경우에 따라서는 벌레를 많이 잡을 수도 있고 많이 못 잡을 수도 있다. 일찍 일어난다는 이유만으로 벌레를 많이 잡을 수 있다고 강변하기에는 현대사회의 다양성과 예측불허성이 그것을 뒷받침하지 못한다. 일찍 일어나는 것 자체가 미덕이고 일찍 일어나는 일이 벌레를 많이 잡기 위한 선결 조건인 것처럼 획일적으로 몰아붙이는 행태에 제동을 걸어야 할 시점이다.

지난해 9월 경기도에서 시행한 '9시 등교제', 올해부터 서울과 인천 등 수도권 전체로 확산되었다. 학생들의 수면 시간을 늘려주고 아침 식사 시간을 보장해 주는 데 큰 의의를 두는 정책이다. 충분히 잠을 잔 아이들이 집중력을 크게 발휘할 수 있고 기민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는 미국 켄터키대학 연구팀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학생들이 보편적 인권을 실현할 수 있게 도와주는 최소한의 장치라는 점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등교 시간을 정하는 것은 학교장에게 위임된 권한이라며 초중등교육법시행령을 근거로   '9시 등교'를 반대하는 교장이 많다. 학생들의 학습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어설픈 예측을 핑계로 기존의 사고를 바꾸지 않으려는 교장, 교감, 교사도 많다. 교육의 본질을 직시하고 있는 '부모'의 목소리보다 수능의 논리에 갇힌 '학부모'의 목소리가 클 때가 더욱 많다.

OECD 평균 학생 학습 시간이 주당 33.92시간인데 우리나라는 49.43시간이라고 한다. 핀란드 학생들은 하루 평균 6시간 6분 공부하지만 학업성취도에서 한국과 차이가 없다. 몰입하는 능력을 키우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 더욱 현명한 판단이 될 터인데 이들은 본질을 놓치고 '노동'만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딱딱하고도 모난 의자에 앉아 오전 7시 50분부터 자율학습이 '강행'되는 구조에 내팽개쳐진 아이들에게 '교사'인 나는 교장의 눈치를 보며 잠을 깨운다. '선생'으로서의 본질에 충실하지 못하고 '교사'라는 직업군에서의 역할에 영합하는 내 모습 또한 '학부모'와 무엇이 다른지?

하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학생, 학부모, 교사 교육의 3주체가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효율이 무엇인지 선택과 집중이 무엇인지 다가올 시대의 패러다임은 무엇일지 생각해야 한다. 학생들의 활발한 두뇌 활동을 위해서, 학생들의 건강권을 위해서 '9시 등교'의 당위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 구조도 만들어야 한다. '9시 등교' 만의 국한된 문제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맞벌이 부부를 고려한 '유연근무제'까지 연계하여 사회적 타협과 인식의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 생산 인구로서 중추적 역할을 맡을 청소년들에게 건강권을 돌려주고 학습의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을 만드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박명수가 교육대통령이 되어 '9시 등교'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건네주었으면 한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피곤하다."


태그:#박명수, #일찍 일어나는 새, #십잡스, #9시 등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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