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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따뜻한 가게가 생겨나자 숲속 마을 동물가족들과 아랫마을 가족들은 모두 따뜻한 가게에서 물건을 샀어. 가격이 훨씬 싸기 때문이야. 따뜻한 가게는 구두쇠처럼 욕심 부리지 않았어. 구두쇠는 애가 탔어.

"모든 돈을 나 혼자서 가져야 하는데, 나 혼자만 부자가 돼야 하는데, 이제 부자는커녕 한 푼도 벌지 못하게 됐으니 이를 어째..."

구두쇠는 속이 타고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어.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가게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어. 구두쇠는 타는 속을 달래려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어.

"어떡하지, 이 일을 어떻게 하지,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구두쇠는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안절부절못했어. 그때 돈의 대왕 아이구머니가 구두쇠의 마음속에서 속삭였어.

'구두쇠야, 뭘 그리 걱정해?'
'아이구, 아이구머니님. 몰라서 물으세요? 마을 가족들이 전부 다 따뜻한 가게로만 가잖아요.'
'걱정하지 마. 내게 좋은 생각이 있어.'
'어떤 생각인데요?'
'소곤소곤...'
'크하하...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그날 밤, 구두쇠가 늦은 밤에 사슴네 집을 찾았어.

아빠 사슴은 잠자리에 든 막내 사슴을 위해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중이었어. 아빠 사슴이 직접 지어낸 이야기야. 아빠 사슴은 손동작과 몸동작을 섞어가며 이야기에 열중했어.

막내 사슴은 늘 아빠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들으면서 잠을 자. 어쩌다 아빠 사슴이 다른 일 때문에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하면 막내 사슴은 다음 날 꼭 두 배로 들려달라고 부탁했어. 막내 사슴은 아빠의 옛날이야기를 무척 좋아하거든.

아빠 사슴에게는 이때가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이야. 아빠 사슴이 막내 사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뿐이거든. 아빠 사슴은 막내에게 뭔가 해줄 게 있다는 게 기쁘고 행복해.

옛날이야기가 끝나면 아빠 사슴은 늘 막내 사슴에게 물어봐.

"재미있었어?"
"응, 대박!"

막내의 대답은 늘 똑같아. 매일 듣는 똑같은 대답이지만 오늘도 아빠 사슴의 입이 귀에 걸려. 마음이 뿌듯해져.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야.

"늦은 밤에 무슨 일이야?"

밤늦게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온 구두쇠를 아빠 사슴이 조금 퉁명스럽게 맞았어. 구두쇠는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길게 설명했어.

"그러니까 우리 둘이서 맘대로 가격을 정하자는 말이야? 수요자인 마을 가족들을 배제한 채 말야. 그건 가격담합이야."

아빠 사슴이 놀란 듯이 말했어.

"지금 네가 받는 가격은 너무 낮아. 그 가격으로는 많은 돈을 벌 수가 없어. 자, 봐. 시장에는 고목마트와 따뜻한 가게 둘 뿐이야. 그러므로 우리 둘이서 가격을 정하면 마을 가족들은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정한 가격에 따를 수밖에 없다구."

구두쇠가 욕심이 덕지덕지 붙은 눈빛으로 말했어.

"싫어. 난 지금 가격대로 받을 거야. 더 올려 받을 수 없어. 가격담합은 옳지 않아."

"옳고 그름의 판단은 철저하게 내 기준으로 하는 거야. 나에게 좋으면 좋은 것이고 나에게 나쁘면 나쁜 거야. 협정가격을 맺으면 너도 좋고 나도 좋아. 말 그대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야."

"그렇지 않아. 옳고 그름의 판단은 모두의 입장에서 해야 해. 그러므로 가격 결정은 어느 한 사람만의 행복이 아닌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높이는 쪽으로 이뤄져야 해."

아빠 사슴은 마을 가족들을 배신할 수 없었어. 내 이익 때문에 마을 가족들을 짓밟을 수 없으니까. 나만 살자고 마을 가족들을 절망의 낭떠러지로 밀어붙일 수 없으니까. 그건 너무 잔인하잖아.

얼마 전 마을 가족들은 쓰러진 아빠 사슴을 일으켜줬어. 집에만 있던 아빠 사슴을 밖으로 불러내줬어. 아무것도 하지 않던,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아빠 사슴에게 용기를 주고 할 일을 줬어. 삶의 희망과 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했어. 그런 고마운 이들을 배신하면 안 되잖아.

"아, 답답해 미치겠다!"

구두쇠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어.

'미치겠다고?'

'미치겠다'는 구두쇠의 말이 아빠 사슴의 마음에 박혔어. 낯설지 않은 말이었거든.

아빠 사슴도 미치고 싶었던 적이 있었어. 세상이 시리도록 냉정할 때, 삶이 송곳처럼 모질 때, 그래서 도저히 살아갈 자신이 없었을 때, 아빠 사슴은 차라리 미쳐버리고 싶었어. 온전한 정신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말야.

아빠 사슴에게 미치겠다는 말은 그런 것이었어. 그래서 아빠 사슴이 따져 물었어.

"미치겠다고?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 너는 희망 없는 삶을 살아본 적이 있어? 앞날이 보이지 않는 삶을 살아봤어? 당장 내일이 보이지 않는 삶을 살아봤냐고?"

" ... "

구두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어.

"삶이 저주스럽다고 생각해 본 적 있어? 내 인생은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해 본 적 있어? 숲을 다스리는 산신령님을 원망해 본 적 있어? 산신령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아니 산신령님은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해 본 적 있어?"

" ... "

구두쇠는 입을 꼭 다문 채로 묵묵히 듣고만 있었어.

"지금 잠이 들면 내일 아침에는 영원히 깨어나지 않기를 기도해 본 적이 있어? 그 기도를 마치고 곤히 잠든 어린 막내를 보면서 책임감에 울어 본 적이 있어? 실컷 울고 난 후 아침이 밝아올 때쯤 어떻게든 살아봐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은 적이 있어?"

" ... "

"죽을 만큼 힘들어서, 아니 훨씬 더 힘들어서, 그래서 죽는 게 소원이지만 이 험한 세상에 어린 막내를 혼자 남겨둘 수 없어 유일한 소원인 죽기를 포기한 아빠의 마을을 알아? 그럴 때면 어린 막내가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으면 하고 생각하다 막내에게 미안해 눈물 흘리는 아빠의 마음을 알아? 그런 삶을 살아봤어? 아마 너는 그런 삶이 있다는 것조차도 모르겠지."

" ... "

"숲속 마을 동물 가족들은 이런 마음을 알아. 물론 아랫마을 가족들도 잘 알지. 이게 바로 그들의 삶이니까. 하지만 그들은 희망을 품고 살아. 애써 자신의 삶에 감사하며 살아. 어떻게든 가족들을 끝까지 돌보려고 힘을 다하며 살아. 그렇게 애쓰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 그렇게 열심히 살면서 하나씩 꿈을 이뤄가고 있어."

" ... "

"그러니까 구두쇠야, 다시는 미치겠다는 말 하지 마. 결코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야."

" ... "

"그리고 구두쇠야, 이웃의 것이 탐나서 미치지 말고 이웃에게 베푸는 데 미쳐봐. 마음을 비우고 주위를 둘러봐. 따뜻한 시선으로 이웃을 살펴봐. 너의 차가운 시선에 상처받은 이웃이 보일거야.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지 마. 욕심은 채우면 채울수록 커진단 말야."

아빠 사슴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어.


태그:#가격결정, #가격담합, #협정가격, #옛날이야기, #수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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