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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미얀마가 그렇게 좋은가요?"

알바생과 고용주로 만난 짧은 인연이지만 미얀마 연재 글을 읽었는지 어느 날 대뜸 질문한다. 방학 동안 동남아 배낭여행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미얀마에 대해 내가 느낀 대로 말해줬더니 며칠 후 덜컥 비행기 표를 예매했단다. 그 뒤로 잊고 있었는데 7월초 연락이 왔다.

"사장님 미얀마 재미있는데요. 우기(雨期)라 비는 매일 오지만 그래도 최고예요. 언능 오세요."

미얀마에 묵을 게스트 하우스를 연결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인사는 좋았는데, 은근한 자랑질로 염장을 지른다. 당장에라도 달려가고 싶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다음 기회로 미루고 대리만족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동안 미뤘던 '땅예친 미얀마' 연재 글이나 쓰자고 마음먹었다. 사실 이런저런 이유로 이번 '못다 한 마지막 이야기'는 쓸까 말까 고민을 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또 한편을 쓰고 있으니 귀가 간지럽긴 하다.

"아~ 쫌"

다른 글 좀 쓰라고 잔소리하던 후배 녀석 목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어쩌랴. 찝찝하게 끝낼 수 없으니 이번 편만 넓은 아량으로 품어주길 부탁한다.

바간에서 만난 천진난만한 소녀들, 잘 있는지 궁금하다
▲ 그리운 미얀마의 미소 바간에서 만난 천진난만한 소녀들, 잘 있는지 궁금하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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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한 이야기 1. '큰 달걀에 화장을?'-삐잇 따잉 타웅

우리를 태운 비행기는 6시간이 넘는 장거리를 날아와 늦은 밤 양곤 국제공항에 안착했다. 쌓인 피로 때문에 미얀마와는 반갑다는 인사도 못한 채 호텔로 직행하여 물먹은 솜처럼 쓰러졌다. 짧은 잠으로 양곤의 아침을 맞으며 호텔 로비로 내려와 보니 어젯밤 그냥 지나쳤던 독특한 형상이 서 있다. 

"저건 뭐지? 아니 웬 달걀에 화장을 해놓은 거야?"

달걀모양의 커다란 얼굴에 빨간색 옷을 입고 화장한 모습이라니 참으로 괴이하다. 별로 예쁘지도 않은 공룡 알 같은 물건을 호텔 로비에 떡 하니 앉혀놓다니.

"도대체 저 녀석 정체가 뭐야?"
"저거요? 저거는 삐잇 따잉 타웅이에요. 한국 이름으로 하면 오뚝이"
"오잉? 달걀인 줄 알았는데 오뚝이라고?"

아침 먹으며 가이드에게 물으니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삐잇 따잉 타웅!"
"저것은 미얀마 사람들의 자존심 같은 상징물입니다."
"삐잇(던지다), 따잉(할 때마다), 타웅(넘어지지 않고 바로 세우다)이라는 뜻이지요."

미얀마 사람들은 이 '삐잇 따잉 타웅'을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나중에 재래시장에서 보니 이곳저곳에 작은 '삐잇 따잉 타웅'을 파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무리 던져도 무너지지 않는 오뚝이처럼 살아가면서 어떠한 힘든 일이 있어도 무너지면 안 된다는 그들의 정신을 담았기 때문이리라. 미얀마에 가면 우리나라에서처럼 카레봉지에 그려진 것 말고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실물 오뚝이를 볼 수 있다. 정말이다.

첫날 묵었던 호텔 로비에 떡 하니 서 있었다.
▲ 삐잇 따잉 타웅(오뚝이) 첫날 묵었던 호텔 로비에 떡 하니 서 있었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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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식 호텔 로비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큰 계란 같은 오뚝이상이 특이했다.
▲ 미얀마에서 첫날 묵었던 양곤 스카이 스타 호텔 전경 최신식 호텔 로비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큰 계란 같은 오뚝이상이 특이했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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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한 이야기 2. 바간의 래커웨어(Lacquerware) 장인 나잉(Naing)씨

바간 투어 이틀째는 전기자전거를 하루 5천짯에 빌려(14년 10월 기준) '맘 가는 대로' 여행을 하기로 했다. 전기자전거라고 했는데 처음 타보는 이 물건은 자전거 같기도 하고 오토바이 같기도 해 타는 재미가 솔솔 했다.

올드바간과 뉴바간을 넘나들며 뻗어 있는 길을 폭주족이라도 된 듯이 핸들 가는 대로 돌아다녔다. 한참을 달리다 더위를 피할 양으로 작은 마을로 들어갔다. 천천히 마을을 돌다 보니 사람들이 민속공예품 같은 것을 만들고 있는 집이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에 무심코 들어갔는데 너무 적극적인 영업을 해오는 바람에 당황스러웠다. 명함을 건네며 소개를 한다. 'MOON'이라는 상호로 미얀마 토속 공예품 래커웨어(Lacquerware)를 만드는 '나잉씨 가족(Naing Family)'이었다.

래커웨어는 미얀마의 대표적인 특산품 중 하나로 대나무를 얇게 깎아 물건을 만든 뒤 문양을 내고 색칠을 한 수공예품이다. 나잉씨의 화려한 영업 기술에 결국 공예품을 사게 되었다. 여러 가지 물건이 있었지만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소주잔으로 제격일 것 같은 작은 잔이 눈에 들어왔다. 대나무를 깎아 옻칠을 하고 기하학적인 무늬를 입힌 아주 예쁜 잔이었다.

돌아올 때 보니 공항 면세점에서도 팔고 있었는데 나잉씨한테 사길 잘했다. 공항은 내가 샀던 가격의 3~4배 가격이었다.

"나잉씨 고마워요!"

나잉씨에게 구입한 미얀마 특산품 래커웨어와 나잉씨가 준 명함.
▲ 래커웨어 나잉씨에게 구입한 미얀마 특산품 래커웨어와 나잉씨가 준 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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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한 이야기 3. 최강 동안의 나라 or 최강 노안의 나라

미얀마 사람들의 첫인상은 대부분 사람이 미소 때문에 그런지 착해 보이면서 순박해 보이는 인상이다. 그리고 체격이 작고 얼굴이 작은 편이라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로 치면 동대문 시장 격이라는 유자나플라자 투어를 하는 중에 겪은 실수담이 하나 있다.

작고 귀여운 소녀가 있어 초등학생 정도로 생각하고 약간 어린애 대하듯 나이를 물었다. 웬걸 '21살'이라고 했다. 정말 깜짝 놀라 당황스러웠다. 그 사건 이후로 아무리 어려 보여도 절대 나이에 대한 선입견을 품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반대의 경험도 있는데 냥쉐에서 따웅지 가는 라인까를 탔을 때다. 콩나물시루처럼 끼여 타고 가면서 옆에 있던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랑 잠시 대화를 나눴는데 아뿔싸 얘기해보니 나보다 어린 43살이라고 했다. 그분은 나를 젊은 총각쯤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 그분한테는 차마 내 나이를 말하지 못했다.

주관적인 판단일지 모르겠지만, 미얀마는 20대까지는 최강 동안의 나라가 되고 30대 이후는 최강 노안이 되는 나라 같다. 나름대로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동안인 이유는 특히 여성들의 경우 큰 눈과 작은 얼굴 그리고 타나까를 발라 피부가 부드러워져서 그런 것 같고, 노안의 이유는 미얀마의 강렬한 자외선 아래 일을 너무 많이 한 이유와 꾸미지 않은 너무도 수수한 모습도 한몫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과학적 근거는 없다. 그냥 추정일뿐.

타욱짜 시장 근처에서 만난 동안 소녀 아직도 나이가 궁금하다(좌), 따웅지 가는 라인까 옆에 아주머니 50대로 보았는데 43세라고 했다(우)
▲ 최강 동안과 최강 노안 타욱짜 시장 근처에서 만난 동안 소녀 아직도 나이가 궁금하다(좌), 따웅지 가는 라인까 옆에 아주머니 50대로 보았는데 43세라고 했다(우)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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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한 이야기 4. 약해 보이지만 정말 강한 미얀마 사람들

몸집이 왜소하고 천진난만한 미소 때문인지 미얀마 사람들은 대체로 조금 유약해 보인다. 돌아다니면서 체격이 큰 사람은 그리 많이 보지 못했다. 만달레이 북쪽으로 올라가니 순전히 내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남쪽 사람들보다 조금 더 커 보이긴 했다.

그렇지만 알고 보면 미얀마 사람들은 절대 유약하지 않다. 역사를 살펴봐도 많은 왕조가 세워지고 무너졌지만 실제로 각 왕조가 흥했을 때는 누구보다 강한 왕국의 힘을 가졌었으며 주변국들에는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 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미얀마 사람들은 자신들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특히 미얀마와 태국의 관계를 살펴보자면 역사적으로 라이벌 같은 관계였다. 마치 일본과 우리나라처럼 이웃나라였지만 결코 친해질 수 없는 역사를 가졌다. 지금 태국의 수도가 방콕이 된 이유도 거슬러 올라가면 미얀마와 연관이 있다고 한다.

4백 년 이상 계속된 태국의 아유타야 왕국(1351~1767)은 미얀마 꼰바웅 왕조(1758~1886)의 침략으로 멸망하였다. 다시 타이왕국이 재통일 되면서 수도를 톤부리로 옮겼으나 머지않아 다시 수도를 방콕으로 옮기게 된다. (1782) 오늘날까지 수도로 자리 잡게 된 방콕은 미안마 민족의 무시무시한 코끼리부대에 왕조가 멸망하면서 코끼리들이 들어올 수 없는 늪지대인 남쪽의 방콕으로 수도를 옮겼다는 설이 있다.

아직 가보진 못했지만, 태국의 '아유타야'에는 과거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있다고 하는데 모든 불상의 머리 부분이 모두 잘린 채로 있다고 한다. 이는 바로 과거 미얀마의 한따와띠(버고) 왕조 (1287~1540)가 태국의 아유타야 왕조(1351~1767)와 벌인 전쟁의 흔적이다.

겉으로는 유약해 보이지만 알고보면 강한 미얀마 사람들
▲ 강한 미얀마 사람들 겉으로는 유약해 보이지만 알고보면 강한 미얀마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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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한 이야기 5. 보석의 나라 미얀마-세계 최고의 루비 산지 모곡(Mogok)을 아십니까?

만달레이를 방문했을 때 만달레이 상공회의소 사람들과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미얀마 보석을 가공하여 판매하는 수몬토(Ms. Su Mon Toe)라는 젊은 여사장님을 만났는데 글 쓰는 사람이라고 했더니 명함을 주면서 한국에 돌아가면 반드시 미얀마 보석에 대해 써달라는 부탁을 했다. 특히 모곡(Mogok)지방에 대해 반드시 소개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이곳에서만 나는 루비는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며 Pigeon's blood로 부르는데 짧은 영어 실력인데도 열정적으로 모곡 루비 자랑을 하던 눈망울이 아직도 선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행 중 모곡지방은 가보지 못했다. 보석에는 워낙 문외한이라 사실 관심도 많지 않았지만, 일정이 맞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본다. 대신 이렇게 짧은 글로나마 약속을 지키려 한다.

사실 미얀마는 루비 외에도 대단한 보석의 나라임을 가이드에게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실제 만달레이 근교 제이드 가공단지를 방문하기도 했고 양곤의 보족시장에서도 수많은 보석과 제이드를 만났지만, 보석에 별 흥미가 없어 그 가치를 알아보지는 못했다.

다만 미얀마와 근접해 있는 중국인들이 미얀마 제이드를 워낙 좋아해 오로지 제이드 쇼핑을 위해 넘어오는 사람이 많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보석의 나라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상 좌) 제이드 원석, 상 우) 만달레이 근처 제이드 가공소, 하 좌)만달레이 상공회의소 사람들과 미팅, 하 우) 모곡을 꼭 써달라며 젊은 여사장님이 준 명함.
▲ 보석의 나라 미얀마 상 좌) 제이드 원석, 상 우) 만달레이 근처 제이드 가공소, 하 좌)만달레이 상공회의소 사람들과 미팅, 하 우) 모곡을 꼭 써달라며 젊은 여사장님이 준 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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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다. 대단해! 미얀마가 그렇게 좋아? 쓸 얘기가 그리 많아?"

주변 지인들이 던지는 말이다. 하긴 미얀마에 10년을 살다 온 것도 아니고, 처음에는 10회나 쓸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구구절절 써내려 낼지 나도 예상 못 했으니 그 맘 충분히 이해한다. 쓰다 보니 뭐에 홀린 것처럼 할 얘기가 많아졌고, 미얀마의 묘한 매력에서 헤어나지 못했다는 구태의연한 말로 변명을 대신한다. 마치 우연히 소개팅 나갔는데 좋아하는 이상형을 만난 느낌이랄까?

하지만 아무리 좋은 시간도 모두 끝이 있듯이 작년 10월부터 시작했던 '땅예친 미얀마' 길었던 여행기도 이제는 종착역이다. 그 동안 부족한 글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조만간 또 다른 글로 인사드리길 기대해 본다.

끝으로 내 연재 글의 열렬한 팬이며 내 말만 듣고 덜컥 떠나버린 멋진 청년, 떠날 때는 초보였지만 지금쯤 원숙한 여행자가 되어 미얀마를 걷고 있을 '낭만 청년' 박주한군의 여행이 끝까지 무탈하길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 ※미얀마어 표기는 현지 발음 중심으로 했으며 일부는 통상적인 표기법에 따랐음을 알립니다. 그 동안 '땅예친 미얀마' 연재를 읽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조만간 다른 공간이나 글로 만나기를 기대해봅니다.



태그:#미얀마, #땅예친 미얀마, #전병호, #양곤, #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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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공작소장, 에세이스트, 춤꾼, 어제 보다 나은 오늘,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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