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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갈이.'

'수족관이나 수영장 따위의 물을 가는 일'을 뜻한다. 그러나 흔히 '기관이나 조직체의 구성원이나 간부들을 비교적 큰 규모로 바꾸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데 주로 사용한다. 여의도도 4년마다 '물갈이'를 겪는다. 역대 총선 때마다 '정치혁신'이란 명분으로 현역 의원들에게 칼이 휘둘러졌다. 20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4개월 여 앞둔 올해도 마찬가지다.

여야를 막론하고 '밖'이 아니라 '안'에서도 '물갈이'를 요구하는 판이다. 해양수산부 장관에서 물러나 여의도로 복귀한 '친박(친박근혜)' 유기준 의원은 3일 <중앙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15대와 17대 총선 공천이 잘됐다는 평을 듣는다"라면서 '물갈이'를 주장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각'을 세우고 있는 안철수 의원은 같은 날 트위터에 "지금 민심은 현역 20%를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20%만 남기고 다 바꾸라고 요구할 정도로 분노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래저래 현역 의원들은 속을 끓일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그러나 '물갈이'의 결과가 곧 혁신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오마이뉴스>가 2000년 16대 총선부터 2012년 19대 총선까지 살펴본 결과, 지금까지 여의도의 '물갈이'에는 공식에 가까운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물갈이를 이끈 실권자가 있다.
둘째, 안마당(각 정당의 핵심지역)에 앉은 게 죄다.
셋째, 탈당, 신당 창당 등 뒷맛이 개운치 않다.

[16대 총선] 시민사회의 낙천·낙선운동 환영한 실권자들

2000년 16대 총선의 화두는 단연코 '개혁'이었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전국 400여 개 시민사회로 이뤄진 '총선시민연대'가 부적절한 후보를 대상으로 낙천·낙선운동을 벌이면서 여의도를 압박했다.

정치권도 어느 정도 호응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여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은 2000년 2월 17일 전국 227개 선거구 가운데 166곳의 공천자를 1차 확정, 발표했다. 그 결과 현역 의원 103명 중 26명이 낙천했다. 29%의 교체율이었다. 특히 당시 비주류 중진으로 꼽혔던 김상현 의원도 낙천자 명단에 포함돼 있었다. 반면 30·40대가 수도권에 집중 배치됐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상호·이인영 의원과 임종석 전 의원이 당시 수도권에 배치된 486세대의 대표주자다.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역시 '물갈이'를 진행했다. 한나라당은 2000년 2월 18일 전국 227개 선거구 중 215곳의 공천자를 확정, 발표했다. 불출마를 선언했거나 와병 중인 의원을 포함해 지역구 의원 11명 중 26.3%인 29명이 재공천을 받지 못했다. 한나라당 역시 김윤환·이기택·신상우·오세응·이세기·김정수 등 다선 중진들이 탈락했다. 1998년 보궐선거에 출마해 여의도에 입성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16대 총선에서도 대구 달성에 재공천됐다. 원희룡·임태희 전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이 때 여의도에 입성했다.

2000년 4월 12일 총선연대가 기자회견을 갖고 16대 총선에서의 정의로운 한표행사를 유권자들에게 촉구하고 있다.
 2000년 4월 12일 총선연대가 기자회견을 갖고 16대 총선에서의 정의로운 한표행사를 유권자들에게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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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공식은 적용됐다. 우선 당의 실권자가 '물갈이'의 키를 쥐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1월 "(정치권을 향한) 국민과 시민단체의 비판은 역사의 큰 흐름으로 전개되고 있다"라면서 낙천·낙선운동을 사실상 지지했다. 또 총선시민연대의 공천반대자 명단 발표 이후 "시민단체의 운동은 정치권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라면서 "정치개혁을 하지 않으면 역사의 흐름에 부응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권노갑 당시 민주당 고문은 그해 2월 본격적인 공천을 앞두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김 대통령의 부담을 덜었다.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도 총선시민연대 대표와 한 간담회에서 "낙천대상자 명단을 당에 비공개로 통보해 달라"라고 제의하는 등 낙천·낙선운동을 사실상 지지했다. 시민단체의 외압을 물갈이의 명분으로 삼은 것이다. 또 당내 반발에도 불구하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회장을 지낸 홍성우 변호사를 공천심사위원장으로 영입했다.

대표적인 물갈이 지역을 '안마당'으로 잡은 점도 같다. 새천년민주당의 경우, 호남지역 29개 선거구 중 18개 지역에서만 현역을 재공천했다. 30%대의 교체율인 셈이다. 한나라당이 낙천시킨 다선 중진 인사들은 주로 영남권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김윤환 의원은 경북 구미을, 신상우 의원은 부산 사상을, 김정수 의원은 부산 진구을이 지역구였다. 1997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과 합당해 당내 '민주동우회' 계보를 이끌고 있던 이기택 당 부총재는 부산 연제구 출마를 요구하고 있었다. 다만 한나라당의 '안마당' 물갈이는 주로 PK(부산·경남)에 집중됐다. 당시 TK(대구·경북) 맹주를 자처하던 김윤환 의원을 제외한 TK 지역 현역 의원들은 대다수 공천을 받았다.

뒷맛은 개운치 않았다. 낙천한 김윤환·김상현 의원 등을 주축으로 '민주국민당'이 창당됐다. 특히 한나라당은 이회창 총재의 '친정체제' 구축을 위한 공천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낙천한 김윤환·이기택 의원 본인뿐 아니라 그들의 계보로 분류되던 인사들이 공천에서 탈락한 데다 김영삼 전 대통령을 따르던 옛 민주계 의원 상당수도 공천을 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이 총재가 차기 대권주자로서 당을 장악하고 경쟁자들을 제거한 것이란 반발을 샀다.

[17대 총선] 탄핵 역풍 떠밀린 '개혁'... 한나라당은 '이회창계 털어내기' 지적도

'탄핵 역풍'이 거셌던 2004년 17대 총선에서도 '물갈이'는 진행됐다.

우선 한나라당은 2004년 3월 15일 전국 243개 선거구 중 228개 지역 공천자를 최종 확정했다. 오세훈·한승수 등 불출마자 27명과 공천을 신청하지 않은 6명, 그리고 공천 탈락자까지 합쳐 148명 현역 의원 중 총 60명이 교체됐다. 40.5%라는 '역대급 물갈이'가 이뤄진 셈이다. 특히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이끌던 당 공천심사위원회는 최병렬 당대표에게 불출마를 권고해 이를 관철시키기도 했다.

'초미니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2004년 3월 22일 243개 선거구 중 212곳의 공천자를 확정 발표했다. 현역의원 47명 중 13명이 낙천 혹은 불출마로 교체됐다. 약 28%의 교체율이었다. 열린우리당과 분당, '야당'이 된 민주당은 현역 의원 61명 중 20명을 지역구 공천에서 배제했다. 약 33%의 교체율이었다. 그러나 낙천자 중 비례대표 의원이 10명에 달해 실질적 물갈이 수준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16대 총선에 비하면 실권자의 '입김'은 미미한 편이었다. 불법대선자금 사건과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가결 역풍으로 모두 '개혁'에 목매달 수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당시 이재오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3공과 이어진 5ㆍ6공 분들이 잘한 일도 많지만 인권탄압, 정경유착, 노동탄압 등으로 사람들이 '부패하다'는 소리도 한다"라면서 '5·6공 청산론'을 제기했다.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은 "민생 현장에선 국회의원 당선 횟수를 곧 전과기록으로 보고 있다"라면서 '물갈이' 필요성을 역설했다.

2004년 3월 14일 오후 여의도 한나라당에서 제17대 총선 공천장수여식이 최병렬 대표와 공천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2004년 3월 14일 오후 여의도 한나라당에서 제17대 총선 공천장수여식이 최병렬 대표와 공천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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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물갈이 타깃이 '안마당'인 건 변하지 않았다. 한나라당이 대표적이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대구·경북 15명, 부산·경남 13명 등 영남 지역에서만 28명을 낙천시켰다. 반면, 민주당은 '안마당 물갈이'에 실패했다. 당초 물갈이 대상으로 지목됐던 박상천·정균환·한화갑·김상현·김충조 등 호남 중진들이 재공천을 받았다. 장전형 민주당 선거대책위 대변인은 17대 총선 패배 직후 기자들과 한 일문일답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개혁공천이 안된 부분이 가장 안타깝다, 그 때 동력을 상실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라면서 이를 패인으로 지목했다.

뒷맛이 개운치 않았던 것도 여전했다. 17대 총선 공천 결과, 3당의 현역의원 256명 중 32%에 해당하는 92명이 낙천한 '물갈이 공천'이었다. 그러나 이를 놓고 '개혁'이라 평가하긴 어려웠다. 우선 3당 중 가장 큰 폭의 물갈이를 한 한나라당만 하더라도 눈에 띄는 신인은 등장하지 않았다. 공천자 중 69.7%가 현역 의원을 포함한 기성 정치인이었다. 열린우리당의 경우, 정치신인을 대거 수혈했지만 관료 출신만 44명에 해당돼 '여당 프리미엄'을 누린 것이란 평가를 받았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은 '이회창계 털어내기'란 지적을 받았다. 이 전 총재의 측근으로 분류됐던 김기배·나오연·하순봉 의원이 공천심사에서 탈락했고 또 다른 측근인 정창화·유흥수·김종하 의원도 앞서 불출마를 선언했다. 특히 최병렬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서청원 전 대표를 위시한 2002년 대선의 선대위 핵심라인에 있었던 인사들은 자신의 거취를 결정해 달라"고 촉구해 이 전 총재 측근들의 정계은퇴와 총선불출마를 요구한 바 있다.

[18대 총선]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 유행어 만든 '친박학살' 공천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08년 치러진 18대 총선은 한나라당 내 계파 갈등이 최대 관심사였다. 여야 모두 30%대의 '물갈이'를 진행했지만 그 이면의 정치적 함의에 관심이 집중됐던 시기기도 하다.

한나라당은 2008년 3월 16일 전국 245개 선거구 공천을 완료해 지역구 현역 의원 109명 중 42명을 공천심사에서 탈락시켰다. 비례대표 의원 19명 중 낙천하거나 불출마한 8명을 이에 포함시키면 총 50명이 교체되는 물갈이였다. 17대 총선 공천 때와 비교해도 적지 않은 39.1%의 교체율이었다. 통합민주당은 2008년 3월 20일 전국 245개 선거구 중 205곳의 공천자를 확정, 발표했다. 현역 의원 24명이 여기서 탈락했다. 비례대표 의원을 포함한 현역의원 141명 중 불출마하거나 탈당·낙천한 인사는 총 45명, 총 현역 교체율은 31.9%였다.

16, 17대 총선에 비해 실권자가 '물갈이' 강공을 펼쳤다. 그리고 그 타깃은 안마당이었다. 이방호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당시<조선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공천은 공급자(정당)가 아니라 수요자(국민) 중심으로 생각해야 하며, 그런 차원에서 현역 의원 중 최소 35~40% 이상은 바뀔 수밖에 없다"라면서 "영남권의 물갈이 비율을 수도권보다 더 높이겠다"라고 공언했다. 영남권 중진의원 상당수가 포진된 비주류 '친박(친박근혜)' 쪽의 반발을 살 수 밖에 없었다.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는 당시 <세계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호남 쇄신'과 관련, "호남에서 공천만 받으면 당선된다는 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박재승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도 "호남지역에 대한 쇄신이 신당 쇄신의 상징으로 비쳐질 가능성이 많다"라며 "그런 점을 감안해 호남권 공천 기준은 좀더 엄격하게 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해한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2008년 3월 23일 오후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에서 18대 총선 공천과 관련 "나는 속았다. 무원칙 공천에 대해 당 대표와 지도부가 책임져야 한다"며 "지원유세는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2008년 3월 23일 오후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에서 18대 총선 공천과 관련 "나는 속았다. 무원칙 공천에 대해 당 대표와 지도부가 책임져야 한다"며 "지원유세는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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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공언은 지켜졌다. 한나라당은 '텃밭'에서 대거 현역 의원을 교체시켰다. 영남 현역 교체율은 43.5%였고 강남 3구를 지칭하는 '강남벨트'의 현역 교체율은 50%였다. 민주당은 전라·광주 등 호남 31개 지역구 중 29개 지역구에서 비례대표 포함, 현역 11명을 낙천시켰다. 37.9%의 교체율이었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업 전 의원과 박지원 의원 등 중진 11명은 공천심사조차 받지 못했다. 이인제·이용희 의원은 낙천 후 탈당해 당적을 옮기거나 무소속 출마를 감행했다.

뒷맛은 개운치 않았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의 공천은 '친박학살'이란 꼬리표가 붙었다. 김무성, 이규택, 김재원 등 친박 인사 16명과 중립 성향 5명이 낙천했다. 박희태, 김덕룡, 맹형규, 권철현, 권오을 등 친이계 인사 21명보다 적은 숫자지만 공천인사를 기준으로 하면 그 결과는 달랐다. 공천자 중 친이 성향 후보자가 157명에 달한 반면, 친박 성향 후보자는 44명에 불과했다.

이에 당시 비주류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는 말로 공천결과를 비난했다. 결국 신당이 출현했다. 서청원·홍사덕 등 탈당인사들이 만든 '친박연대'는 이후 총선에서 지역구 6석을 비롯 14석을 얻어냈다. 김무성 의원 등 친박무소속연대도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19대 총선] 대선 앞두고 역대급 물갈이,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치러진 19대 총선 공천 역시 '물갈이'를 피하지 못했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여야 모두 확실하게 쇄신하는 모습을 강조해야 할 필요성도 있었다.   

특히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를 통해 당명을 바꾼 새누리당(옛 한나라당)은 '역대급 물갈이'를 단행했다. 지역구 현역 144명 중 47명이 공천에서 탈락했고 비례대표 30명 중 20명을 낙천시켰다. 불출마자는 13명이었다. 지역구 현역 교체율만 41.7%, 비례대표까지 포함하면 약 46%대의 현역 교체율이었다. 민주당은 비례대표를 포함한 현역 의원 89명 중 불출마자 16명을 포함한 31명을 탈락시켰다. 약 34%의 교체율이었다.

당시 박 대통령은 '공천개혁'과 관련 "저를 비롯해 한나라당 구성원이 가진 일체의 기득권을 배제하겠다"라고 공언했다.  또 "새로운 세상을 만들 사람을 제대로 공천한다면 국민의 선택을 받을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모두 비대위 일각에서 제기된 '현 정부 핵심 용퇴론' 등 인적쇄신론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이었다.

같은 해 1월 출범한 민주당의 한명숙 지도부는 '호남 물갈이론'과 '인적 쇄신'을 강조했다. 한명숙 당시 당대표는 "전략공천을 최소화하고 완전국민경선으로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드릴 것"이라며 '공천혁명'을 거론했다.

2012년 3월 10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4·11총선 승리와 정권교체를 위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야권연대 합의문 서명식'과 '4.11 총선 국민승리를 위한 범야권 공동정책 합의문 서명식'이 연이어 열린 뒤 (왼쪽부터) 노항래 통합진보당 정책위의장, 이용섭 민주통합당 정책위의장,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 '희망2013 승리2012 원탁회의'를 대표한 백승헌 변호사와 박석운 진보연대 공동대표가 합의문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2012년 3월 10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4·11총선 승리와 정권교체를 위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야권연대 합의문 서명식'과 '4.11 총선 국민승리를 위한 범야권 공동정책 합의문 서명식'이 연이어 열린 뒤 (왼쪽부터) 노항래 통합진보당 정책위의장, 이용섭 민주통합당 정책위의장,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 '희망2013 승리2012 원탁회의'를 대표한 백승헌 변호사와 박석운 진보연대 공동대표가 합의문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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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여야의 타깃은 '안마당'이었다. 여권 강세지역인 강남벨트 9개 지역에서는 단 1명만 제외하고 현 지역구 의원이 모두 물갈이됐다. 이를 포함한 서울 지역 현역의원 교체율은 52.9%에 달했다. 또 다른 '텃밭'인 부산에서는 김형오(영도)·현기환(사하갑)·장제원(사상)·김무성(남을) 등 전체 지역구 18곳 중 9곳에서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다. 대구·경북에서는 이명규(대구 북구 갑)·배영식(대구 중남구)·김성조(경북 구미 갑)·성윤환(경북 상주) 의원 등이 탈당 후 무소속 출마했다.

민주당은 호남권 현역의원 28명 중 김영진·강봉균·최인기·김재균·조영택·신건 등 6명을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이미 불출마를 선언한 박상천·장세환 의원과 수도권에 출사표를 던진 정세균·정동영·김효석·유선호 의원 등까지 포함하면 총 12명의 현역이 교체된 셈이다.

그러나 당내 계파간 힘겨루기가 공천에 반영된 것이란 지적은 피하지 못했다. 새누리당은 반대로 '친이 학살'이란 평가를 받았다.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 의원만 살아남았다. 그 외에 진수희·권택기·유정현 등 친이 인사들이 낙천했고, 이명박 정부 당시 원내대표를 맡으면서 '탈박(탈박근혜)'으로 분류된 김무성 의원까지 공천심사에서 탈락했다.

이는 친이계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탈당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다만 김무성 의원이 탈당 대신 백의종군을 택하면서 이 같은 움직임에 제동이 걸렸다. 민주당은 당 주류인 '친노(친노무현)'가 옛 민주당계·동교동계를 밀어낸 것이란 평가를 받았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총선 공천, #박근혜, #이회창, #영호남, #물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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