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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관련 연수 관련 자료(상)와 첨부된 서약서.
 김영란법 관련 연수 관련 자료(상)와 첨부된 서약서.
ⓒ 김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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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시행을 앞두고 공공기관, 학교, 언론사 등이 한바탕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 자체 연수로는 모자라니 외부 변호사 등을 초빙하여 김영란법에 대해서 교육을 받고 있다.

김영란법 시행에 대해 일부 우려하는 목소리는 있지만, 국민들의 80% 정도가 이 법의 시행에 찬성하고 있다는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이제 이 법은 되돌릴 수 없는 시대 추세가 될 것 같다.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교육부와 교육청을 거쳐 각 학교에 각종 공문과 연수 자료, 지침 등이 내려오고 있다. 이에 따라 여러 학교들이 교사 연수를 하고 있다. 그런데 맨 마지막에 서약서를 붙여서 "소속기관 전 직원 청탁금지법 준수 서약서 징구(자체 보관)"를 지시하고 있다. 그래서 교장, 교감 등이 교사들에게 이 서약서를 받고 있다.

제19조 (교육과 홍보 등) ① 공공기관의 장은 공직자등에게 부정청탁 금지 및 금품등의 수수 금지에 관한 내용을 정기적으로 교육하여야 하며, 이를 준수할 것을 약속하는 서약서를 받아야 한다. -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대부분 교사들은 쓰라고 해서 서약서를 쓰기는 한다. 그러나 마음 한 편으로는 '내가 뇌물을 받겠다는 것도 아닌데 이런 걸 꼭 받아야 해?'라는 생각이 든다는 이들이 있다. 또 어떤 교사는 "이걸 꼭 써야 하는 거야? 이 서약서 쓴다고 김영란법 적용이 면제되는 것도 아니고, 이걸 안 쓴다고 가중처벌을 받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걸 강제로 쓰게 하느냐?"면서 거부한다.

서약서 강요는 위헌이자 인권침해

김영란법을 100% 찬성하는 입장에서도 이런 서약서 강요, 특히 학생들에게 인권을 인류 사회 최고의 가치 중 하나로 가르치는 교사들이 이런 서약서 제출을 강요당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김영란법 시행령에는 위 처럼 서약서를 받으라는 내용이 담겨 있지만, 이걸 강제하는 건 문제다. 과거 국가인권위원회는, 서약서 강요가 대한민국 헌법 제19조가 규정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결정을 여러 차례 내렸다. 서약서 강제 작성과 관련된 구체적인 사례 몇 가지만 살펴보자.

[사례①] 교칙 위반 학생에게 자퇴 서약서 강요한 교사

2009년 9월, 충북의 한 학교에서 지각을 하는 등 교칙을 위반한 학생에게 자퇴 서약서를 쓰게 한 교사에게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 침해' 결정을 내리면서 교장에게 '담임교사를 경고조치하고, 교사들을 상대로 인권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당시 서약서 내용은 '교칙을 다시 위반할 경우 어떠한 처벌도 감수하고 스스로 자퇴할 것을 서약하며, 본 각서를 보호자 연서로 제출한다'는 것이었다. 인권위는 이는 학생지도에 필요한 정도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담임 교사의 이런 행동은 '헌법' 제19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이 학생은 자살을 해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사례②] 장애인 학생의 사고에 학교는 책임지지 않는다는 서약서

2006년 10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장애학생이 다니는 전국 73개 특수학교가 입학 시 서약서를 제출케 하는 규정을 학칙에 두고, 학교생활 내외에서의 사고 등에 대해 학생 또는 보호자가 모든 책임을 지도록 하는 서약서를 받는 것"은 장애학생에 대한 인권침해이자 차별이라는 진정에 대해서 인권 침해의 소지가 많다는 판단 하에 실사에 착수했다.

결국 국가인권위원회는 장애인 학생에게 이런 서약서를 제출토록 하는 것은 장애학생에 대한 인권침해이자 차별이 될 소지가 높다고 지적하였으며, 특수학교들이 이런 지적을 받아들여 서약서 제출을 받지 않기로 하면서 일단락되었다. 물론, 지금은 장애인 학생들에게 이런 서약서를 받는 학교는 없다.

이 외에도 국가인권위원회나 법원은 학생들의 입학 전 교칙 준수 서약서나 두발 등 교칙 위반시 체벌 수용 서약서, 종립 학교의 종교 활동 수용 서약서 등에 대해서 헌법이 규정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많다고 판단하고 있다. 본인이 동의하지 않는, 불리한 내용의 서약서를 학생에게 강제로 제출 받은 것은 모두 인권 침해로 금지하는 것이 인권위원회 입장이다.

그럼 학교가 아닌 다른 기관, 군인 등 다른 공무원들은 어떨까?

[사례③] 군인에게 금연 서약서 받는 것도 인권침해

2012년 3월, 한 군부대에서 금연에 성공한 장병에게 휴가 등 인센티브를 주는 것으로 부족했던지 소속부대 장병들에게 일률적으로 금연서약서를 작성제출토록 했다. 이를 어기면 휴가권을 반납하도록 하는 등의 조치가 뒤따랐다.

이런 군부대 내 군인들의 금연서약서 강제 작성에 대해서 국가인권위원회는 "그 목적은 정당하다고 할지라도 운영과정에서 정도를 지나쳐 결국 지휘권을 남용한 것이라 할 것이며 이는 소속부대 장병들에 대하여 '헌법' 제10조에서 연유하는 일반적 행동자유권 및 '헌법' 제17조의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금연서약서 강제 작성을 금지하도록 했다.

[사례④] 군인의 부대밖 운전과 오토바이 탑승을 금지 서약서

2006년 3월, 한 육군부대에서 사병의 출타(휴가, 외출 등 군부대밖에서) 시 '나는 자가운전 및 음주운전, 오토바이 운전 및 동승도 하지 않겠다. 위 사항 위반 시에는 어떠한 처벌도 감수할 것을 서약합니다'라는 내용의 '출타병 준수사항'을 강제로 서명케 한 것에 대해서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역시 인권침해라는 결정을 내렸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아무리 현직 군인 신분이지만, 휴가나 외출 등 군부대 밖에서 차량이나 오토바이를 직접 운전하거나 동승을 금지하는 서약서를 쓰게 하는 것은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에 어긋나는 인권 침해임을 지적한 것이다.

인권위는 이 결정에서 문제가 된 출타병준수사항 중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항목의 삭제는 물론 이를 위반 시 처벌을 감수하는 서약을 강제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을 국방부장관에게 권고했다.

공무원의 서약서 강제 작성 요구의 인권침해성과 위헌성 관련하여 가장 많이 인용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례는 바로 지방국토관리청의 '자격증 취득 서약서 작성 강요' 사건이다.

[사례⑤] '자격증취득 서약서 작성 강요'는 양심의 자유 침해

2013년 국토관리사무소의 공무원이 업무 수행상 필요하다는 이유로 '장비조종자격취득서약서'를 작성 제출토록 요구받았는데, 이 서약서에는 "1종 대형 면허를 11월까지 취득하겠습니다. 굴삭기, 지게차 등 장비 관리자지정에 필요한 자격 요건 갖추겠습니다. 만일 미이행하였을 경우에는 어떠한 인사상 불이익을 감수할 것을 서약합니다"라는 문구가 기재되어 있었다.

2014년 4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사건 진정에 대해서 "업무효율성 제고를 위하여 위 자격을 취득하게 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여 추진한 것은 그 목적의 정당성이 있다 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실행하는 방법에 있어 피진정인이 피해자들에게 위 장비조종자격취득서약서를 징구한 행위는 피해자들로 하여금 자기 내심의 판단을 외부에 표현하도록 사실상 강제한 것으로서 '헌법' 제19조가 정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러니까, 이 공무원에게 업무 수행을 위해서 해당 자격증이 필요하여 이를 요구하는 것은 업무상 정당하며, 이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하면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것에 대해서도 인사권의 범위라고 인정하면서도, 이 자격증을 취득하겠다는 서약서를 강제로 작성하도록 하는 것은 안 된다는 의미이다.

그 유명한 "자기 내심의 판단을 외부에 표현하도록 사실상 강제한 것으로서 '헌법' 제19조가 정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 것"(국가인권위원회 결정례 13진정0519400)이라는 결정이다.

김영란법 준수 요구는 정당, 서약서 강제는 헌법 위반

김영란법을 100% 찬성하는 입장에서도 서약서 강요, 특히 학생들에게 인권을 인류 사회 최고의 가치 중 하나로 가르치는 교사들이 이런 서약서 제출을 강요당하는 것은 모순이다.
 김영란법을 100% 찬성하는 입장에서도 서약서 강요, 특히 학생들에게 인권을 인류 사회 최고의 가치 중 하나로 가르치는 교사들이 이런 서약서 제출을 강요당하는 것은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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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을 김영란법 준수 서약서를 교사에게 강제로 제출하도록 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면 "이 법이 교사와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를 막고, 우리 사회의 오랜 관행인 접대문화를 개선하는데 필요하고, 교사와 공무원들이 이를 준수하는 것이 업무상으로 정당하며, 이를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 역시 정당하다고 볼 수 있지만, 당사자들에게 이 법을 준수하겠다는 서약서를 강제로 제출하도록 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 인권 침해"가 된다는 것이다.

특히, 인권을 인간이 배우고 지켜주어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라고 가르치는 학교에서, 그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교사들에게 김영란법 준수 서약서를 강제로 받고 있는 것은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장면이다. 이만큼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기자 연수에서도 확인된다. 확인한 바에 의하면, 몇몇 언론사에서도 이 교육을 하고 있으며 기자들에게 서약서를 받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장본인은 당연히 행정관료들이다. 서약서가 아무런 법적 강제력도 갖고 있지 않고, 그것을 강제로 작성하도록 하는 것이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사실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행정관료들은 이런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서약서를 강제하는 교육청과 교육부도, 그리고 쓰라고 하니 그냥 쓰고 있는 교사도, 기자도 다시 한 번 돌아볼 일이다. 서약서 강요가 왜 헌법 위반이고, 어째서 양심의 자유를 유린하는 인권 침해인지를 선언한 결정문의 일부를 다시 읽어보자.

'헌법'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양심이란 세계관, 인생관, 주의, 신조 등은 물론 이에 이르지 아니하여도 보다 널리 개인의 인격형성에 관계되는 내심에 있어서의 가치관이나 윤리적 판단도 포함된다. 양심의 자유는 자신의 양심을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 받지 아니할 자유, 즉 침묵의 자유까지 포괄하고 침묵의 자유는 양심을 언어에 의해 표명하도록 강제당하지 아니할 자유를 말한다.(13진정0519400 서약서 강요에 의한 인권침해)


태그:#김영란법, #서약서, #헌법 위반, #양심의 자유, #인권 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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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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