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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세월호 마지막 생존자 김성묵씨는 하얀 봉투에 손편지와 기억물품을 담아 A씨의 차량에 꽂아뒀다.
 지난 23일 세월호 마지막 생존자 김성묵씨는 하얀 봉투에 손편지와 기억물품을 담아 A씨의 차량에 꽂아뒀다.
ⓒ DVDPrime 캡처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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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서울의 한 주차장. 주말에도 출근해 업무를 보던 A씨가 퇴근길 자신의 차량 문짝에 꽂혀있는 하얀 봉투를 발견했다. A씨는 순간 '누가 쓰레기를 버렸나'라고 생각하며 봉투를 열어봤다. 그리고 그안엔 정말로 생각지도 못한 물건들이 들어있었다.

'REMEMBER 0416'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세월호 가죽팔찌와 노란리본이 새겨진 배지, 세월호 스티커 그리고 가방에 걸 수 있는 세월호 리본까지 있었다. 무엇보다 A씨를 놀라게 한 것은 '생존자 김성묵'이라는 이름으로 발송된 손편지였다. A씨는 그 자리에서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지난 23일 세월호 마지막 생존자 김성묵씨는 하얀 봉투에 손편지와 기억물품을 담아 A씨의 차량에 꽂아뒀다.
 지난 23일 세월호 마지막 생존자 김성묵씨는 하얀 봉투에 손편지와 기억물품을 담아 A씨의 차량에 꽂아뒀다.
ⓒ DVDPrime 캡처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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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195일째 4월 16일입니다. 기억하고 행동해 주시는 차주 분께 감사드립니다. 고마운 마음 전해드리고 싶어 갖고 있던 팔찌와 스티커 몇 개 남겨드립니다. 

목포신항에 세월호는 거치되었지만 아직도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분들이 남겨져 있습니다. 아픈 기억이고 슬픈 하루지만 기억하고 행동하는 선생님들이 계셔서 더 안전하고 불의가 처벌받는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 생존자 김성묵

편지를 다 읽은 A씨는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버렸다'고 한다. 이유가 있다. 스스로 돌아봐도 세월호 참사 이후 자신이 한 일이라곤 차량에 노란리본 스티커 하나 붙인 것밖에 없었다. 이런 가운데 세월호 참사의 생존자가 어느날 갑자기 자신에게 손편지를 남긴 것이다.

크게 감동한 A씨는 27일 관련 내용을 정리해 온라인커뮤니티 DVDPrime에 정성스레 기록했다.

세월호 마지막 생존자 "그저 고맙다"

A씨에게 하얀 봉투를 남긴 인물은 세월호 마지막 생존자로 알려진 김성묵씨다.

김씨는 그날도 평소처럼 '날일'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러다 노란리본이 부착된 A씨의 차량을 발견했다. 김씨는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가방에서 세월호 관련 물품들을 꺼내 하얀 봉투에 담았다. 물건만 건네기 미안해 그 자리에서 종이를 찢어 손편지를 작성했다.

세월호참사 생존자 김성묵씨가 참사 3주기를 하루앞둔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4월 16일의 약속, 함께 여는 봄’ 기억문화제>에서 편지글을 낭독하고 있다.
▲ 세월호참사 생존자의 편지글 낭독 세월호참사 생존자 김성묵씨가 참사 3주기를 하루앞둔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4월 16일의 약속, 함께 여는 봄’ 기억문화제>에서 편지글을 낭독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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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마지막 생존자 김씨는 2014년 4월 16일 참사 이후 8개월 넘게 병원에 있었다. 정신과 진료를 받으며 치유에 집중했지만 그날의 기억이 그를 붙잡았다. 자신이 하던 본래 업무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였다. 김씨는 입원과 재입원을 반복하며 병원 생활을 했다.

매일이 고역이었다. '자살하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그해 겨울 어렵게 퇴원했지만, 이후 김씨는 말 그대로 '잊기 위해' 생활 전선에 매진했다. 하지만 그 누가 알았을까? 김씨의 진짜 속내는 달랐었다.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세월호 희생학생들의 유가족들을 만나기가 너무나 죄스러웠던 것이다. 그렇게 세월호 참사로부터 2년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김씨에게 전화가 왔다. 세월호 단원고 희생학생 부모님들이었다.

"단원고 희생학생 부모님들이 먼저 연락이 왔어요. 소녀상 지킴이들에게 밥차 지원을 해줄거니까 같이 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때가 처음입니다. 아무 생각도 안하고 가겠다 했어요."

이날 참석한 세월호 참사 생존자 김성묵(40·남)씨는 잊지 않겠다는 의미로 가방에 조은화·허다윤·박영인·남현철 등 미수습자 학생들의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이날 참석한 세월호 참사 생존자 김성묵(40·남)씨는 잊지 않겠다는 의미로 가방에 조은화·허다윤·박영인·남현철 등 미수습자 학생들의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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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김씨는 퇴원 후 일상 속에서 누군가 "(세월호가) 이젠 지겹다, 그만하라"고 말하면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주먹다짐만 수차례 했다. 가슴의 울분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호 희생학생 부모들의 전화를 받은 이후 김씨의 생활은 180도 달라졌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것은 변함 없었지만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세월호 현장을 지켜나갔다.

김씨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노란리본을 나눠준다고 하면 소매를 걷어붙이고 도왔다. 해수부에 항의 방문을 한다고 하면 누구보다 먼저 피켓을 들었다. 김씨는 묵묵히 광화문과 목포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의 곁을 지켰다.

지난 23일도 다르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가던 김씨는 노란리본이 붙은 A씨의 차량을 발견했다. 이 순간 '고마운 마음'이 일어 손편지까지 작성한 것이다.

김씨는 편지를 받은 A씨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관련 소식을 올렸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그저 감사하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글을 읽은 사람들이 감동하고 있다"고 전달하자 김씨는 "생각지도 못한 소식"이라며 다시 한번 "고맙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1199일째의 일이다.


태그:#김성묵, #세월호마지막생존자, #디브이디프라임,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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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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