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9 08:33최종 업데이트 20.02.19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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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함정'에 빠진 세계 경제, 다음 쓰나미에 준비됐나
[2] 한국 경제 분기점은 1992년, 그 때 잘 대응했더라면
[3] '최순실 사태' 없었어도 보수 재집권 어려웠다
[4] 데이터 경제로의 전환, 삼성·현대차의 명운 가른다
[5] '플랫폼 경제'로 진화 못하면 일본처럼 망한다

필자가 오마이뉴스 <똑경제> 코너에서 지난 9월부터 5회에 걸쳐 연재한 칼럼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철학인 소득주도성장은 경제의 공정성 강화(공정경제)와 더불어 산업 재편(혁신성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이나 근로시간 52시간제 도입 등의 공약이 후퇴한 것도 근본적인 원인은 산업 재편이 추진되지 못한 결과다.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이나 임금 손실 없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의존하는 저부가가치 사업장이 타격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저부가가치 사업장의 구조조정이 진행되려면 이들이 고부가가치 사업 부문으로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산업 재편이 절체절명의 과제인 이유는 핵심 산업인 제조업이 (미국 수입액 증가율의 구조적 둔화, 중국 수입액의 정체, 세계 경제의 저성장 등 구조적 요인으로) 새로운 일자리 및 소득 창출에 기여할 수 없는 단계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자영업자의 문제도 (기술 및 소비패턴 변화 등과 더불어) 제조업 일자리의 감소에 따른 '잠재적 자영업자'의 공급을 차단하지 않는 한 해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취약계층이나 영세한 중소사업자 등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금융(부문)의 민주화로 산업 재편의 시간을 벌 수 있다.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의 부채 규모를 고려할 때 금리 1%만 인하해도 최저임금 1만원이나 근로시간 52시간제에 따른 인건비 부담은 상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후가 문제다. 1만원 이후 최저임금의 지속적 인상이나 근로시간의 추가 단축 등은 산업 재편이 수반되지 않는 한 어렵다.

산업 재편의 반복된 실패... 남은 시간은?

제조업의 위기는 지난 1992년부터 진행되어온 문제다. 30년이란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도 하나의 산업 생태계가 갖는 생명력 때문이다. 역대 정부들도 제조업의 위기를 인식하였고 그에 따른 대책으로 서비스업 육성이나 신성장동력 산업 육성 등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서비스업 생산성은 제조업 생산성과 갈수록 격차가 벌어졌고, 새로운 산업 육성은 5년마다 새로운 용어로 포장되어 반복될 뿐 성과는 초라하다. 왜 그럴까? 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먼저 서비스업 육성의 경우 '선택적 공업화'로 취약한 사업서비스 부문의 근본적 개선은 내버려 둔 채 (금융, 법률, 교육, 의료 등) 경제활동을 보조하는 지원서비스에 집착한 결과다. 지원서비스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과잉 성장할 경우 국민경제에 해악으로 작용한다. 금융위기 이후 IMF나 국제결제은행 등이 금융의 과도한 성장의 부정적 측면을 지적한 배경이다.

마찬가지로 교육서비스나 법률서비스, 의료서비스 시장이 성장하면 그 자체로 GDP는 증가시킬지 모르지만, 가계의 사교육비 증가나 법률 소송비용의 증가 등은 가계의 후생을 오히려 낮출 뿐만 아니라 가계의 가용소득과 소비지출을 축소함으로써 경제성장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세계에서 의료서비스 시장 규모가 가장 큰 미국은 의료서비스의 과잉 성장의 폐해를 잘 보여준다.

GDP 대비 미국의 의료서비스 시장 규모가 1970년 6.9%에서 2016년에는 17.9%로 성장했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미국민의 의료비 지출이 (기대수명이 OECD 국가 중 최하위 그룹에 속할 정도로) 미국민의 건강 증대로 연결되지는 않고 있다. GDP 대비 미국의 건강비용 지출은 1960년 5.0%에서 2013년에는 17.4%로 지속해서 증가하였다.

미국민의 1인당 건강비용도 1970년 355달러에서 2018년 11,172달러로 31배 증가하였다. 2018년 달러 기준으로도 같은 기간에 1,832달러에서 11,172달러로 약 6배 증가하였다. 그렇지만 2017년 미국의 기대수명은 78.6세로 한국 82.7세는 물론이고 그리스 81.4세, 포르투갈 81.5세 등보다 낮다.

제조업 생태계에서 디지털 경제를 꿈꾸는 격  

전세계의 디지털 경제를 이끌고 있는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

  
제조업의 공백을 메울 신성장동력 산업 육성은 왜 실패했는가? 녹색성장, 창조경제 등에 이어 현 정부는 플랫폼 경제 활성화(김동연), 데이터 경제 육성(홍남기)을 내세우고 있다. 지난 정부의 산업정책이 실패한 원인은 지면 관계로 생략하겠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사령탑들이 내세우는 플랫폼 경제나 데이터 경제는 솔직히 박근혜 정부에서 내세웠던 창조경제만큼 국민에게는 와닿지 않는다.

차이가 존재한다면 플랫폼 경제나 데이터 경제는 더 많은 사람이 언급할 만큼 용어가 익숙한 정도일 것이다. 정부의 산업정책으로 플랫폼 경제나 데이터 경제가 활성화될 가능성이 있다면 구글 같은 산업이나 애플의 스티브 잡스 같은 기업가가 등장할 가능성이 보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정책 설계나 방향이 잘못된 것이다.

앞의 칼럼에서 소개했듯이 플랫폼 경제나 데이터 경제는 디지털 생태계라는 새로운 산업 생태계의 구축을 전제로 한다. '생태계'는 상호작용 및 의존하는 유기체들과 또 그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주변의 비생물적 환경이 유기적인 집합을 이룬 체계를 의미한다.

쉽게 얘기하면 자연 속의 생물체 세계는 토양, 물 등 비생물적 환경을 전제로 작동하고 있다. 흔히 특정 장치나 시스템 등에서 이를 구성하는 기초가 되는 틀 또는 골격을 지칭하는 용어로 플랫폼을 이해하다 보니, 정부의 플랫폼 경제나 데이터 경제도 모빌리티의 스마트화(인공지능 기술과 자율주행차), 사물의 스마트화(사물인터넷, IoT) 및 작업장의 스마트화(스마트 공장), 도시의 스마트화(스마트 도시) 등 비생물적 환경에 치중하고 있다.

그러나 데이터 경제라는 새로운 생태계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다 보니 생태계를 구성하는 새로운 경제주체들을 어떻게 만들어내고 이들 간의 상호작용과 의존을 지원하기 위해 어떤 제도적 및 법적 환경들이 필요한가를 놓치고 있다. 예를 들어 (앞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AI 기술은 빅데이터의 확보가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서는 이익 공유라는 '호혜성의 원리'로 비즈니스 모델들이 재구성되어야만 가능하다.

데이터 경제는 호혜성의 세계

'데이터 경제'는 선택의 문제에 직면한 각 개인이 비용과 이익에 따라서 자신만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합리성의 원리'가 작동하던 '제조업 생태계'와 전혀 다른 생태계다. 현재 정부의 데이터 경제 활성화 정책은 '제조업 생태계'에 '디지털 생태계'의 비생물적 환경만 추가하는 격이다. 새로운 디지털 생태계에서 상호작용 및 의존하는 새로운 경제주체들이 없는 것이다. 여전히 제조업 생태계에 머물러 있으면서 데이터 경제의 건설을 꿈꾸고 있는 격이다.

호혜성의 원리로 재무장한 새로운 경제주체들이 공급되어야만 플랫폼 사업모델에 기초한 창업이 활성화될 것이고, 그런 방향의 창업이 활성화되면 플랫폼 경제는 활성화될 것이다. 미국 등 일부 선진국, 그리고 심지어 중국 기업들은 여기까지는 도달했다. 기술 변화로 새로운 가치창출 방식에 대한 냄새를 맡은 일부 기업가들이 주도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리프킨이 '자본주의 공유 경제'라고 부른 배경이고 '플랫폼 독점'이 새로운 문제로 부상한 배경이다.

진검승부는 여기서부터다. 첫째 과제는 데이터 자체가 돈이나 일자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데이터를 활용하여 돈과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다. 둘째 과제는 데이터 자본주의 공유 경제나 플랫폼 독점은 생태계의 기본 속성인 지속 가능성과 완결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리콘밸리의 혁신 사업가들이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것이나 세계 경제의 최대 암초인 불평등 심화를 해결하기 위해 기본자산제의 도입 등을 주장하는 것 모두 체제의 지속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주류 학계조차 인공지능이 하지 못하는, 즉 인간 노동력이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직무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 일자리 참사와 노동소득 비중의 저하, 초양극화 등은 당분간 추세가 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

문제는 취약계층에 대한 대응 수단도 고갈되었다는 점이다. 선진국들은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국가 부채가 급증하다 보니 재정을 동원할 여력도 고갈된 상태다. 저소득층의 빈곤과 중산층의 몰락이 세계적 현상으로 자리 잡은 배경이다. 아직은 재정 여력이 있는 우리나라도 고령화 속도와 성장 둔화 등을 고려하면 대응 시간이 많지는 않다.

청년을 해방시켜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가 지난 2017년 4월 14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아모리스 역삼 대연회장에서 열린 미래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디지털경제 국가전략 초청 포럼에 참석하고 있다. ⓒ 남소연


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지체된 과제를 따라잡는 것과 남겨진 과제를 해결하는 것을 동시에 해결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중 과제는 후발 주자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면 가능하다.

현재 우리 기업들은 플랫폼 사업모델로 진화하지 못하면서 공공기관 데이터에 매달리고, 혁신성장의 성과에 초조한 정부는 '데이터 3법'으로 지원사격에 나섰지만, 시민단체 등으로부터는 시민의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을 지적받고 매판 언론으로부터는 "개인정보 활용도 보호도 아닌 모호한 데이터 3법"이라는 조롱을 받고 있다.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이익 공유'라는 플랫폼 사업모델의 핵심가치를 모르다 보니 매력적인 플랫폼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우리 기업가들의 실력 부족, 그리고 세상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 엘리트들의 이해 부족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뼛속까지 퍼져 있는 위계적이고 약탈적인 제조업과 재벌경제의 '문화'를 갈아엎어야만 한다. (세계의 대중음악, 영화 등을 주도하는 한국 문화의 움직임이 일회성이 아니듯이) 다행히 우리에게는 문화를 바꿀 수 있는 '인적 자원'이 있다. 특히 청년 세대들로부터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억압적인 산업사회에 익숙한 기성세대들이 만들어놓은 교육방식에 질식을 하는 청년 세대를 후진 교육시스템에서 해방시켜주고, 재벌기업과 정부가 하지 못하는 청년 일거리를 청년들이 스스로 만들도록 청년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을 '과잉 복지'니 '퍼주기'니 하는 후진 사고를 벗어나 투자 차원에서 접근해야만 한다.

사적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투자하도록 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기업이 이윤 창출 과정에서 일자리 창출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간접적으로 실현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청년들 스스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만들어낼 때까지 지원하는 것은 사회적 책임이고,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시스템을 바꾸는 것도 정부와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우리 사회의 청년들은 기술과 세상의 변화를 정확히 그리고 빠르게 이해하고 있다. 후진 기성세대가, 기득권층이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을 뿐이다. 기득권을 움켜쥐고 있는 엘리트들이여, 당신들의 자녀와 사회의 미래를 진정으로 걱정한다면 청년 세대를 자신의 낡은 사고에서 풀어주어라. 그것이 진정한 진보이고 보수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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