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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들어 이준석 국민의 힘 대표를 비롯하여 하태경, 유승민 등 야권에서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 폐지론에 대한 주장들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여가부를 폐지하고 독립적인 정부 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여가부라는 별도의 부처를 만들고 장관, 차관, 국장들을 둘 이유가 없으며 대통령 직속으로 양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하고 각 부처들이 양성평등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도록 종합 조율하자는 것이다. 또한 "현재 여가부는 사실상 젠더 갈등 조장부가 됐다"며 '대통령 직속 젠더갈등 해소위원회' 설치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무엇보다 여가부 폐지론의 쟁점은 현행 부처보다 폐지론자들이 주장하는 양성평등위원회든 젠더갈등위원회든지 간에 여성정책을 추진하거나 양성 불평등 해소하는데 얼마만큼 더 효과적으로 정책을 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정부 부처는 상대적으로 많은 인력과 정부예산을 바탕으로 사업을 효율적으로 기획하고 발굴하여 안정적으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위원회는 구성 방식과 소속에 따라 다소 성격이 다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위원회는 자문·조정·중재·협의·심의·기능을 수행하는 기구이며 정책이나 프로그램의 집행기능, 정부예산과 인력의 보장 등을 수행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나라는 위원회가 아닌 정부부처 형태의 여성정책 전담기구를 설치·운영하고 있다. 김복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 등이 지난 2020년 발표한 '각국 여성정책추진체계 특성과 양성평등 수준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인권과 성평등 등을 추진하기 위한 여성정책 전담기구를 둔 나라는 총 191개국(2015년 기준)이다.

이 중 한국의 여가부처럼 독립부처(부/청) 형태로 여성정책 전담기구를 둔 나라는 독일, 프랑스, 스웨덴, 캐나다 등 137개국이고, 부처 내 국·과 형태의 하부조직인 나라는 미국, 영국, 일본 등 23개국이다.

위원회 형태인 나라는 벨기에, 포르투갈 등 20개국에 불과하다. 특히 보고서는 "여성 및 젠더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정부기구형의 국가들이 증가한 것으로 보이고 있으며, 정부기구 중에서도 권한이 많은 독립부처 및 하부조직형의 기구로 전환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하고 있다.

사실상 여성에 대한 권리가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서구나 우리나라나 그 기간이 짧다. 최초로 여성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에 의지를 표명한 것은 1945년 창설된 국제연합의 기본조약인 국제헌장이다. 1945년 UN이 창설될 때 '여성의 권리를' 다른 모든 인권문제와 함께 한 기구에서 다룰 것인가 아니면 독립적인 기구에서 다룰 것인가가 중요한 쟁점이었는데 당시 여성 인권에 대한 별도의 기구에 대한 요청을 받아들여 여성지위 소위원회를 설치하였다. 3개월 후에는 위원회로 격상되었는데 이때부터 여성 인권을 포함한 여성 문제는 여성지위 위원회에서 다루어졌다.

유엔헌장은 전문에서 "기본적인 인권, 인간의 존엄 및 가치, 남녀 및 대소 각국의 평등권에 대한 신념을 재확인"하면서 남성과 여성의 성평등에 관한 내용을 포함했다. 세계인권선언 제16조는 "성인 남녀는 인종, 국적, 또는 종교에 의한 어떤 제한도 받지 않고 혼인하며 가정을 만들 권리를 가짐"을 명시하였으며, 제25조는 "어머니와 어린이는 특별한 보호와 원조를 받을 권리를 가짐"을 명시하여 여성의 평등권과 보호권을 선언하였다.

광의의 여성인권개념은 1979년 UN총회에서 채택되고 1981년부터 발효된 여성차별협약(CEDAW)에 잘 반영되어 있다. 1993년 비엔나 세계인권회의와 1995년 베이징 세계 여성회의의 선언과 강령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여성차별철폐협약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1999년 선택의정서(optional protocal)가 제정되었고, 2000년 발효되었다. 우리나라는 2006년 선택의정서에 가입하였고, 2007년 조약을 공포하였다. 2009년 여성차별철폐협약 가입국 186개국 중 98개국(52%)이 선택의정서를 비준한 상태이다.

이렇게 여성의 권리와 차별에 대한 다양한 협약, 위원회들이 꾸준히 제정되면서 정부차원의 기구로 격상되었지만, 한국은 성별에 따른 불평등이 여전히 심각하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21 세계 성격차(性格差)'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성평등 순위는 조사 대상 156개국 가운데 102위로 최하위권이다. 또한 성별 임금격차 차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32.5%로 1위다. 이런 상황에 견주어보아서도 우리나라는 여성 권익 증진을 위한 정책과 기구와 정책 등은 여전히 필요하다. 여가부 폐지에 불을 지핀 이들도 이와 같은 여성정책과 기구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이야기하는 젠더(Gender)는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남녀의 정체성을 의미한다. 학문적으로도 젠더라는 개념은 생물학적 성(性)이 여성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서 나타난 것이다.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인 성별은 필연적인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이를테면 남성성(남성다움)과 여성성(여성다움)이라는 성별의 구별은 생물학적 차이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 중심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사회적으로 부과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문재인정부 들어 여가부가 세대간, 남녀간 젠더갈등 사안들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또한 문재인정부는 성인지 감수성이나 성평등 정책에 대해 눈에 띄는 가시적인 성과가 미흡하며 피부에 와닿는 정책도 여전히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문재인정부에서 발생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 등 권력형 성범죄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젠더 갈등을 야기시켰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가부는 폐지가 아닌 권한과 기능 조정을 통해 대대적인 혁신을 가해야 할 것이며 동시에 국회는 여가부의 권한에 힘을 실어주어 단계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젠더 갈등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충남대 교수입니다. 이 글은 대전충남인권연대 뉴스레터에도 실립니다.


태그:#여성가족부, #젠더갈등, #문재인정부, #성인지 감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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