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은 한국의 대도시 권역에서는 버스와 함께 시민의 발로 기능하는 대표적 교통수단이다. 특히 버스에 비해 일정 규모 이상, 소위 메트로폴리스 급 이상의 광역도시권에서 볼 수 있는 특성 때문에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도시정책의 핵심적인 요소로 인정받는 영역이기도 하다. 지하철 관련 공약은 광역지자체 선거에서 늘 최우선 과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만큼 대도시 시민들에게 일상에서 피부로 느끼는 핵심 교통정책의 상징인 셈이다.
 
버스가 공공교통 서비스임에도 주로 민간 사업자에 의해 운영되면서 여전히 불완전한 준공영제에 머무는 데 비해, 지하철은 막대한 초기비용과 지속적인 유지보수 때문에 보다 공공적 측면에 입각한 운영이 이뤄진다. 일단 건설에 조 단위가 우습게 투입되는 데다, 안전사고가 날 경우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 그 피해가 심각하기에 지방정부가 섣불리 민간, 즉 기업에 맡기기도 어렵다. 대개 지방공기업 혹은 공사의 형태로 운영되는 지하철은 기본적으로 수익을 내기는커녕, 해당 지자체들에게 막대한 적자를 안기는 뜨거운 감자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공공 서비스가 손익으로 따지기 힘든 영역이란 점을 고려한다면 적자 문제는 사회적 합의를 통한 토론의 영역에서 판단될 문제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사회에서 현재까지 그에 관련된 논의는 지독히 저열한 수준에서 평행선을 달릴 뿐이다. 적자폭이 심화된다고 하면 언론부터 경쟁하듯 언급하는 건 노인세대의 무임승차 폐지를 둘러싼 세대갈등 조장이나 적자 누적에도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조합의 모럴 해저드 운운이 절대 다수 비율을 차지한다.

왜 지하철 운영이 적자를 낳는지, 그 적자를 감수할 사회적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보다는 늘 민간기업의 이윤 논리를 그대로 가져와 대입하며 민영화가 답인 양, 혹은 구조조정이 필수인 양 공허한 외침을 반복할 뿐이다. 수준 높은 정책 논의나 제대로 된 진검승부가 이뤄지는 풍경은 지극히 드물기만 하다. 그런 현실에서 김정근 감독의 <언더그라운드>는 지하철을 주인공 그 자체로 삼은 보기 드문 시도로 주목할 만하다.
 
21세기 노동영화에 걸맞은 준비과정
 
 영화 <언더그라운드> 스틸 이미지

영화 <언더그라운드> 스틸 이미지 ⓒ 시네마달

 
김정근 감독은 부산지역을 근거로 꾸준히 노동 관련 의제로 작품 활동에 정진해 왔다. 본 작품 이전에는 한진 중공업을 다룬 두 편의 작품으로 주목받은 바 있다. 2012년 작품 <버스를 타라>는 당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정리해고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일어난 희망버스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그리고 연이어 2014년에는 후속 작업의 성격이자 보다 노동운동 역사 기록에 가까운 <그림자들의 섬>을 통해 한진 해고자들의 삶과 노동운동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뤘다.(해당 작품은 2016년 극장개봉) 이후에도 감독은 꾸준히 노동과 난민 문제 등 사회적 의제에 천착한 작업을 거듭해 왔다. 그런 감독의 신작은 평소 "철덕(철도 덕후)"이라 밝혀온 개인의 기호 및 애착이 지역의 제반 사회운동과 연대해온 경력과 조화를 이루며 탄생한 셈이다.
 
<언더그라운드>는 지역사회 공공성 의제와 노동문제 관련 고민이 결합된 기획으로, 부산지하철을 둘러싼 노동의 풍경을 총체적으로 담아낸다. 이 작업은 감독이 2017년에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미디어 팀의 일원으로 연출한 <박근혜정권 퇴진행동 옴니버스 프로젝트 "광장">에 포함된 단편 에피소드 <청소>에서 그 일부를 먼저 드러낸 바 있다. (<언더그라운드>에서도 주요한 요소로 등장하는) 부산지하철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문제를 다룬 짧은 단편은 감독이 품은 21세기 노동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의 단면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그런 감독의 고민지점은 단시간에 이뤄진 게 아니다. 해당 소재가 가진 거대한 총체성을 구현하기 위해 충분한 기획과 제작과정을 통해 숙성된 것에 가깝다.
 
'총체성'이란 표현에 걸맞은 지하세계의 노동풍경
 
2019년에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언더그라운드>의 전반부는 그 시작부터 일반시민이 접하기 힘든 거대한 지하철 현장의 전모를 대사나 해설을 최소화해가며 선보인다. 인간의 형체는 마치 개미처럼 지극히 왜소하게 드러날 뿐인 낯선 현장 속에서 펼쳐지는 거대한 기계와 웅장한 선로의 풍경은 그 자체로 잘 꾸며진 건축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는 듯하다. 칼 마르크스가 19세기 중반에 산업혁명을 통해 자본주의가 선보인 이전 시대의 모든 총합을 초월하는 거대한 생산력과 마법처럼 보일 정도의 기술적 위업들을 「공산주의자 선언」 초반부에서 찬탄하던 대목을 보는 느낌이다.
 
하지만 조금만 찬찬히 살펴본다면 거의 모든 관객이 처음 보는 생소한 지하철 내외부의 풍경 이 전하는 웅장한 거대함 속에서 벌레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인간'의 노동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마치 걸리버 여행기의 첫째 장에서 소인국 릴리퍼트의 주민들이 걸리버도 경탄할 만큼 조직된 노동을 선보이던 묘사에 비견되는 장면들이다. 우리는 지하철이 컴퓨터에 의해 제어되며 인간이 필요 없이 알아서 움직이고 유지되는 것처럼 착시를 일으키곤 한다. 하지만 그렇게 알아서 굴러갈 것처럼 보이는 최첨단 지하철 시스템을 유지하고 책임지는 건 한없이 미미해 보이는 인간의 기름때 절고 땀 냄새 풍기는 중단 없는 노동의 연속이다. 그 단순하지만 간과되는 진실에 대한 논증이 어떤 이론이나 설명 없이도 지하철을 둘러싼 경치의 묘사만으로 설득력 있게 전해진다. 주인공의 메시지나 상세한 상황 해설을 통해 입장을 내세우던 기존의 노동영화들과는 상이한 접근방식이라 하겠다.
 
초반에서 중반에 걸쳐 감독의 시선이 고스란히 투영되는 카메라는 부산지하철의 안과 밖을 감싸는 노동의 영역을 순차적으로 조명하기 시작한다. 어두운 선로와 인적 없는 역사에서 운행이 끝난 지하철 전동차를 점검하고, 객차를 청소하고 관리하며 플랫폼을 정비하는 노동은 도무지 멈출 생각을 않는다. (제목 그대로) 이용자인 시민들은 범접할 수 없는 영역, 광대한 지하세계의 어둠 속에서 무수한 노동자들이 쓸고 닦고 조이고 기름칠을 하는 정경은 노동에 대한 경외감과 소외를 동시에 불러온다. 저들의 노동이 무심코 우리가 이용하는 지하철의 안전운행을 담보한다는 평범한 진실과 함께 그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채 암흑 속에 갇혀 있는 것만 같은 영화 속 풍경 때문일 테다.
 
그리고 서서히 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하면 관객의 눈에 익숙한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의 역사 풍경이 펼쳐진다. 하지만 그저 평범한 일상을 감독이 보여주려 할 리 만무하다. 전지전능한 신의 영역처럼 순간 비치는 관제실의 CCTV 풍경. 누군가가 현란하게 교차하는 이미지를 보는 그 현장의 화면을 통해 기관사, 역무원, 청소노동자의 노동이 틈새에서 분출하듯 솟구쳐 오른다. 중년의 여성노동자들은 비좁은 부산지하철 역사 내 운집한 이용객 사이를 용케 비집고 다니며 직무를 수행하는 중이다. 다른 직종과 달리 이들의 노동은 상대적으로 광장에 속하지만 유독 더 소외되는 층위다. 그들이 지나가는 도중에 누구도 신경 써 돌아보거나 살피지 않는 삭막함이 전해온다. 우리가 그저 스쳐 보내던 그들의 노동현장과 여전히 열악한 휴게실 내의 일상 스케치는 감독이 그간 쌓아온 신뢰와 연대감이 아니면 얻지 못했을 풍경들이다. 여기에서 카메라는 유독 많은 대화를 담는다.
 
'필수'노동에 종사하는 비정규직의 초상(들)
 
 영화 <언더그라운드> 스틸 이미지

영화 <언더그라운드> 스틸 이미지 ⓒ 시네마달

 
지하철 내·외곽의 노동에서 또 다른 중요한 두 축이 등장한다. 안전한 운행을 위해 필수적으로 행해지는 업무이지만, 지하철 정직원은 아닌 이들이 종사하는 정비 관련 하청업체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들이 첫 번째다. 그리고 두 번째는 새로이 그 노동에 진입할 예비 노동자들인 실업계 고교 취업반 학생들이다. 예비노동자들의 부모는 자신들이 흔히 말하는 기름밥을 먹으며 키운 자녀들은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일터를 잡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런 소박한 꿈은 이제 나날이 좁은 문이 되어 감도 잘 안다. 자녀들 또한 자신들에게 주어진 진로가 공부 잘 해서 시험에 붙어 선택할 수 있는 경로와는 거리가 멀다는 걸 일찌감치 깨닫고 있었다.
 
흔히 실업계 고교를 그린 독립영화들에서 해당 배경은 청소년 성장물의 주요 무대로 활용될 뿐, 현장의 노동과는 분리되기 일쑤다. 청년 세대의 비정규직화나 취업난을 묘사하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언더 그라운드>에서는 그대로 작업장의 노동과 연결된다. 그들의 몇 년 뒤 모습이 될, 청년 비정규직들은 담담한 어조로 정규직원과 자신들 사이에 놓인 차이의 벽을 얘기한다. 그리고 자조한다. 정직원은 뭔가를 타고 일하거나 이동하는 사람들이고, 비정규직은 걸어서 다니며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승객들이 지하철을 매일 이용하면서도 정작 볼 기회는 없는 암흑 속 터널을 그들은 상시적인 폐소 공포증과 안전사고에 노출된 가운데 묵묵히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걷는다.
 
그렇게 지하철을 탈 없이 굴러가게 하기 위한 노동의 풍경 묘사 속에서 조금씩 전모를 드러내던 공공성을 둘러싼 쟁점들은 중반부를 지나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쟁점화가 되기 시작한다. 전반부의 시적 묘사에 매력을 느낀 이들이라면 보다 직설적인 쟁점 소개로 치닫는 후반이 아쉬울 테지만, 감독의 설계는 전반과 후반부 역할을 분리해 후반부를 보다 설득력 있게 풀어내기 위한 장치로서 명확히 배치되어 있는 것으로 봐야할 것이다. 정비와 보수작업에 투입되는 비정규직 외주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결성과 일반직 요구를 준비하는 풍경과 실업계고 예비노동자들의 진로 선택과정이 교차하면서 영화는 보다 더 첨예한 쟁점들로 나아간다.
 
인간의 노동이 지워져가는 지하철의 현 주소
 
영화가 중반에 들어서면, 초반에 펼쳐졌던 지하철의 장대한 풍경 묘사는 짧은 인터뷰들의 연속과 (감독이 숨은그림찾기 하듯) 하나씩 보따리를 풀기 시작한 실마리 장치들에 의해 하나의 지형도로 조합되기 시작한다. 개별적인 풍경들을 비추던 CCTV는 특정 지점에서 의도적으로 각 노동이 분야별로 담긴 짧은 화면을 연재하듯 조명한다. 그 직후부터 영화는 본격적인 공공성 의제 제기로 향한다.
 
기관사는 운행을 마친 객차 칸을 혼자 쭉 오가며 살핀 뒤 어두운 선로를 통해 퇴근한다. 예전에는 별도의 승무원이 있었지만 이제는 없기 때문이다. 부산지하철 옆 김해 경전철은 아예 무인운전으로 가동된다. 대구지하철 3호선 모노레일도 안전사고 문제를 제기한 끝에 무인 전철이지만 승무원이 배치되었다.(대구지하철의 과거 참사 영향일 테다) 기관사가 늦은 밤 퇴근하면 그 선로에서 일일이 사람이 밀어 이동하는 (속칭 "아시바"라 부르는) 철제 구조물에 매달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라인더로 먼지를 일일이 깎아내고 레일을 점검하는 노동을 개시한다.

중년 여성노동자들은 역사 바닥 전체를 샅샅이 물청소한다. 한편 차량기지에선 전동차를 크레인으로 통째 들어 올려 분해 정비한다. 그 거의 모든 과정은 이제 비정규직에게 맡겨져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샤워 시설 사용이건, 착용한 작업복 컬러건, 식권의 색깔이건 모두 다르다. 그럼 대체 정규직은 뭘 하는 사람들일까? 왜 저렇게 지하철 운행에 필수적인 일을 하는 이들은 비정규직에 머무는 걸까? 의구심이 절로 생겨나지 않을 수 없는 장면들이 거듭 이어진다.
 
그리고 이제껏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정규직원 노동자가 선을 보인다. 그리고 과거에 정규직 직원이었던, 몇 해 전 분리된 무인화 과정의 결과로 일터가 사라진 매표원 노동자들도 등장해 증언하기 시작한다. 매표원 노동자는 지하철에서 필수업무가 하나둘 외주화가 되어온 과정에 대한 증언자로, 직무배치 전환대상이 된 나이든 정직원은 적성검사와 전환교육에 불안한 미래를 근심하는 모습이다. 그들은 이 거대한 작업장의 미래상을 관객이 함께 근심토록 유도한다.

영화 속에서 정직원은 비정규직의 일반직 전환에 대해 (인천공항공사나 다른 공기업들처럼)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정규직 노동조합은 비정규직을 지원하는 모습을 명확히 취하고 있다. 그저 도매금으로 노동조합이 정규직 기득권이라 비난하는 이들에겐 쐐기를 박는 실재하는 FACT CHECK 장면이다. 현실의 문제는 그렇게 무 자르듯 쉽지 않고, 노동자의 문제는 노동자 스스로 풀어야 한다는 감독의 입장은 명확하다.
 
노동영화에 대해 신, 구를 구분하는 괴이쩍은 분류기준이 있다. 조직된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다루는 <파업전야> 부류의 작품과, 모든 게 파편화된 자본주의가 승리한 세상에서 개인의 무력함과 소외를 전시하는 부류의 작품이 21세기 기준으로 나뉘는 식이다. 하지만 김정근 감독의 <언더그라운드>는 흔히 21세기 노동영화와 기존의 노동영화를 구분하는 출처불명의 분류기준을 가뿐히 넘어선다.

부산 지하철이라는 거대한 작업장을 총체적으로 묘사해내고, 사회적 주제의식을 뼈대로 삼아 노동의 장엄함과 소외, 노동자의 탄생과 소멸을 종횡으로 연결해내는 작업이다. 작가적 야심과 치열한 사회의식, 연대와 신뢰에 기반을 둔 밀착 접근한 태도 등 여러 면에서 본 작품은 근래 보기 드문 노동영화의 성취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다.
언더그라운드 부산지하철 비정규직노동 김정근 감독 시네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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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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