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봄이 와도 여전히 날씨가 쌀쌀하더니, 기온이 올라가 꽃이 만발한 지난 주말 완연한 봄날씨를 느낄 수 있었다. 새로운 계절이 돌아오면 똑같은 말을 하게 된다.

"입을 옷이 없다!"

옷장에는 미처 정리하지 못한 지난 겨울 옷에 다시 꺼낸 봄 옷으로 가득 찼는데, 외출하려고 옷장을 열면 작년에는 무슨 옷을 입고 다녔지 싶어질 정도로 '입을 옷'이 없다. 어쩌면 옷이 너무 많아서는 아닐까?

내가 옷을 정리하는 기준
 
새로운 계절이 돌아오면 똑같은 말을 하게 된다. "입을 옷이 없다!"
 새로운 계절이 돌아오면 똑같은 말을 하게 된다. "입을 옷이 없다!"
ⓒ envato elements

관련사진보기

 
우리는 흔히 선택할 수 있는 가짓수가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택권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선택하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콜롬비아 대학교 쉬나 아이옌거(Sheena Iyengar)와 스탠퍼드 대학교 마크 레퍼 (Mark R. Lepper)는 슈퍼마켓 두 개의 시식대에 각각 6가지 잼과 24가지 잼을 올려놓았다.

처음에는 60퍼센트가 넘는 손님이 24가지 잼 시식대로 몰렸다. 하지만 구매 결과는 전혀 달랐다. 24가지 잼 시식대의 구매율은 3퍼센트에 그쳤지만, 6가지 잼 시식대의 구매율은 30퍼센트나 됐다. 선택지가 적을수록 오히려 선택률이 높았다.

이 실험 결과를 보면서 나는 몇 년째 옷장에 걸어만 두고, 선택해서 입지 않는 옷이 생각났다. "선택지를 줄이고 중요한 것만 남겨보자" 결심하고 옷 정리를 했다. 불필요한 옷을 보관만 한다면, 옷장이 아니라 창고다.

제일 먼저 '언젠가 살을 빼면 입으리라고 남겨둔 옷'을 정리했다. 나이가 들수록 나잇살은 늘어가고 살을 빼기가 쉽지 않다. 작아진 옷이 주는 운동 자극은 미비하다. 차라리 내가 갖고 싶은 몸을 가진 멋진 모델 사진을 한 장 붙여놓는 것이 낫다. 무엇보다 살을 빼면 그때 더 예쁜 옷을 사 입으면 된다.

'유행이 돌고 돈다며 남겨둔 옷'도 정리했다. 아무리 유행이 돌아와도 어떻게든 조금씩 달라진다. 디테일에서 차이가 난다. '아까워서 누군가에게 주려고 남겨둔 옷'도 정리했다. 누구나 비싼 옷이라 아끼느라 오히려 입지 않는 옷이 있다. 하지만 나도 입지 않는 옷을 왜 남에게 주나? 나에게나 소중하지, 다른 사람에게는 쓰레기일 수도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책 <아무것도 없는 방에 살고 싶다>에서 회사원 오하기(おはぎ)씨는 말한다.
 
안 입는 옷은 정리한 후 정말로 마음에 드는 옷만 골라 입는다면 기분 좋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 물건을 줄여서가 아니라, 정말로 마음에 드는 옷을 잘 골라서 샀다는 뿌듯함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 35~36쪽

예쁜 그릇 쇼핑도 그만
 
집에서도 하이볼을 만들어 마셔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내 손은 어느새 짐O, 산토O 등 유명 위스키 전용 하이볼 잔을 검색하고 있었다.
 집에서도 하이볼을 만들어 마셔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내 손은 어느새 짐O, 산토O 등 유명 위스키 전용 하이볼 잔을 검색하고 있었다.
ⓒ envato elements

관련사진보기

 
매일 사용하는 그릇도 선택의 범위를 줄이기 위해 정리했다. 그릇이 많으면 쓴 그릇을 바로 닦기보다 일단 새 그릇을 꺼내 쓰게 된다. 개수대에 그릇이 모이면 설거지가 늘어난다.

바쁘게 식사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전에 쌓인 설거지를 먼저 해야 하니 짜증이 나곤 했다. 그릇 수를 줄이니, 쓰기 위해서 바로바로 닦게 된다. 대학생 딸들도 자기가 쓴 그릇은 바로 닦는 데 동참해서 설거지가 훨씬 줄고 부담이 없어졌다.

매일 쓰는 그릇이 지겨울 때는 다른 것으로 분위기를 바꾸곤 한다. 그릇을 겹쳐 놓아 고급 식당같이 연출하기도 하고, 깻잎, 상추, 브로콜리 등 초록색 나는 야채 혹은 집에 있는 화분 잎을 따서 꾸미면 그릇보다 음식에 눈길이 간다.

선택의 폭이 좁아지면서 응용력도 높아졌다. 얼마 전 친구들과 식당에서 하이볼을 맛있게 마셨다. 집에서도 하이볼을 만들어 마셔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내 손은 어느새 짐O, 산토O 등 유명 위스키 전용 하이볼 잔을 검색하고 있었다. '그릇 수를 늘리지 말자!'고 했던 다짐을 떠올리자, 집에 있는 손잡이 달린 투명 컵이 생각났다. 비록 위스키 라벨은 붙어 있지 않아 기분은 덜 나지만, 오히려 위스키 종류에 구분 없이 하이볼을 즐기고 있다.

옷 정리를 해서 내가 좋아하고 편한 옷만 남으니 오히려 옷 선택이 쉬워졌다. 생각해보면 내가 자주 입는 옷 몇 벌로 계절을 나곤 했다. 단출한 옷과 그릇을 사용하면서 점점 내 선택에 자신감이 생긴다. 쉽게 샀다가 처치 곤란이 된 물건 때문에 자신을 원망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당연히 물건을 살 때 더 신중해진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매일 입는 옷이나 매일 사용하는 그릇을 선택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진다. 남겨진 시간과 마음은 내 인생의 더 중요한 선택에 집중하고 싶다.

태그:#옷정리, #그릇정리, #비움, #쉬나 아이옌거, #마크 레퍼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호기심으로 세상의 나뭇가지를 물어와 글쓰기로 중년의 빈 둥지를 채워가는 사람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