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26 07:01최종 업데이트 22.08.26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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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앵글 초크 사냥감에 올가미를 씌우는 것처럼 기습적으로 시도해야 성공률이 올라간다. ⓒ 양민영


고릴라, 개구리, 악어, 뱀… 두꺼운 책은 첫 장부터 동물도감을 방불케 했다. 한 대형서점에서 주짓수 교본을 뒤지던 중이었다. 겨울인데도 땀이 배어났다. 불과 삼십 분 전까지 스파링을 하느라 온몸에 번진 열기가 가시지 않은 탓이었다. 백팩 안에는 땀에 젖은 도복과 글러브, 하얀색 주짓수 벨트가 뒤엉켜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어쩔 수 없는 책상물림이다. 똑똑하다는 뜻이 아니라 뭐든 책으로 해결하려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매트에서 겪은 그 무수한 굴욕을 해결할 방법도 책에서 찾으려 했다. 어리석게도 나도 모르고 적들도 아직 모르는, 이기는 법이 책에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누구든 이길 수 있는 전설의 비기를 찾아 서점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우악스럽게 두꺼운 교본에는 온통 동물 이름뿐이었다. 고릴라처럼 움직이고 악어처럼 달려들라니, 이게 다 무슨 말인가? 동물 이름이 나열된 기초 훈련을 빠르게 넘겼다. 나에게는 시간이 없었고 최대한 빠른 길로 가야 했다.

드디어 주짓수의 기술을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부분에서 오랜 친구처럼 반가운 이름을 봤다. 그 무렵 나를 강하게 매혹시켰던 단어를 교본은 친절하게도 '삼각 조르기'라고 번역해서 소개하고 있었다. 그래, 애초에 모든 건 삼각형 때문이다.

삼각형은 주짓수의 공격 기술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주짓수 도장에 그려진 심볼을 봐도 삼각형이 빠지지 않는다. 왜 하필 삼각형이냐면 주짓수에는 팔이나 다리로 삼각형을 만들어서 상대의 목을 조르는 기술이 있고 이 기술이야말로 주짓수를 가장 주짓수답게 보이도록 하기 때문이다. 

삼각형은 시작에 불과했다

가장 대표적인 기술은 개그우먼 김민경이 유튜브 콘텐츠 <운동뚱>에서 선보인 리어 네이키드 초크(Rear naked choke)이다. 양팔로 삼각형을 만들어 상대의 목을 조르는 단순한 기술이다.

하지만 팔힘만 쓰는 게 아니라 상체 근력을 총동원해 인체의 가장 취약한 목을 공격하기 때문에 제아무리 체격이 크고 힘센 사람도 이 방식으로 목이 졸리면 오래 버티지 못하고 기절한다. 그래서 웬만한 액션 영화마다 이 기술이 단골로 등장하곤 하는데 <범죄도시>의 마동석도 우람한 두 팔로 악당의 목을 졸라 단번에 제압한다.

팔로 만든 삼각형의 위력이 이 정도인데 다리로 삼각형을 만든다면? 이 기술을 가장 멋지게 소화하는 사람은 격투기 선수에서 할리우드 배우로 전향한 지나 카라노다. 스티븐 소더버그가 만든 액션 영화 <헤이와이어>는 한마디로 지나 카라노에 의한, 지나 카라노를 위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러닝 타임 내내 다양한 주짓수 기술을 완벽에 가깝게 선보인다.

특히 정석과 같은 트라이앵글 초크(Triangle choke)로 마이클 패스벤더를 저세상으로 보내는 시퀀스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지나 카라노는 마치 사냥감에 올가미를 씌우는 것처럼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게 기습적으로 트라이앵글을 시도하고 순식간에 경동맥이 졸린 마이클 패스벤더가 다급하게 탭을 치지만(항복을 의미) 때는 이미 늦었다.
 

지나 카라노에 의한 지나 카라노를 위한 영화 <헤이와이어> ⓒ 렐러티비티 미디어


이 매력적인 싸움꾼은 자비를 모른다. 자비는커녕 풀 마운트(full mount, 누워 있는 상대 배 위에 올라가는 자세)로 상대의 얼굴에 주먹을 두 번 내리꽂고 매트리스 아래 숨겨둔 권총을 꺼내 마무리한다.  

이런 시청각 자료 덕분에 나는 주짓수가 역설하는 삼각형에 빠져들었다. 주짓수를 생각하거나 소리 내어 발음할 때마다 반복해서 그려지는 이미지, 지금도 주짓수 하면 선명하게 떠오르는 완벽하게 안정적인 도형. 그러나 삼각형은 시작에 불과했다.

아나콘다, 길로틴, 헬리콥터, 활과 화살이라고 불리는 주짓수의 수백 가지 기술이 유치하면서 자극적이고 약간은 비밀스러운 즐거움을 선사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 포식자의 위엄에 다가서는 희열, 어쩌면 정말 싸움꾼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뒤섞인다.

이는 분명 책의 세계와는 판이한, 내가 평생 알지 못하던 종류의 즐거움이었다. 주짓수를 배우기 전까지 나는 싸움과 무관했다. 샌드백을 두드려본 적도, 그 흔한 태권도 도장에 기웃거린 적도 없다. 서른이 되기 전까지 내내 운동을 기피했고 뒤늦게 운동에 빠진 뒤에도 혼자 하는 운동만 좋아했다. 솔직히 말하면 누군가와 엉겨 붙어서 싸우는 것도 운동으로 봐야 하는지 의문이었다(우리는 문명인이 아닌가).

지지 않으면 이길 것이다 

이 사회에서 여자로 살면 싫든 좋든 거의 매일 상징적인 싸움을 치른다. 시선과 싸우고 멸시와 싸우고 하루에도 몇 번씩 사방에서 날아오는 여성혐오와 싸운다. 멀쩡하게 길을 걷는데 남자 노인이 어깨를 밀치고 내가 등장한 인터넷 기사 댓글에 '이X, 저X' 하는 욕설과 성희롱이 난무한다. 그런데 누군가와 엉겨 붙어서 싸움까지 배우라고? 

아마 주짓수에 관한 풍문을 전해 듣지 않았다면 굳이 이 거친 운동을 배우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일하게 여자가 남자를 이길 수 있는 격투기라는 게 너무나 솔깃했다. 매일같이 여성혐오와 싸우는 건 지겹지만 남자를 이길 수 있다면 말이 달라진다. 정말 내가 남자를 이길 수 있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내 몸과 영혼, 시간, 돈, 뭐든지 다 바칠 수 있는데! 

"그래서 정말 남자를 이겨요?" 내가 온몸에 멍을 달고 도복을 봇짐처럼 메고 다니자 주변의 여성들이 물었다. 대답은 아니오. 나는 남자를 이겨본 적이 없다. 오히려 주짓수를 배운 이후로 더 자주 도망쳤다. 주짓수는 나에게 위험을 감지하거나 기분 나쁜 사람이 다가오면 망설이지 말고 피하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알게 됐다, 폭력에 가장 취약하고 세상의 모든 폭력이 향하는 집단의 일원으로 살면서도 내가 얼마나 폭력에 관해서 무지했는지. 평생 무엇이 폭력인지, 어떻게 맞서는지, 열 번 중에 한 번이라도 예방할 수 있는지 모른 채로 살았다. 그건 나의 안전에 무관심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지 않으면 이길 것이다.' 주짓수 도장에 처음 갔을 때 출입문에 브라질 주짓수의 창시자 엘리오 그레이시가 남긴 명언이 붙어 있었다. 처음 그 문을 열고 들어가던 날이나 이 글을 쓰는 지금이나 여전히 남자와 싸워서 이길 자신은 없다. 

하지만 지지 않는 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단언컨대 지지 않고, 죽지 않으면 우리가 이긴다. 나는 의심이 많고 부정적인 인간이지만 이 믿음만큼은 흔들린 적이 없다. 그렇게 나는 지지 않으면 이기는 세계로 한 발을 내디뎠다.
덧붙이는 글 브런치에도 게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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