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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오직 식물만이 내 소설을 구원해줄 생물이라는 거였다." 작가의 말 중
 "식물. 오직 식물만이 내 소설을 구원해줄 생물이라는 거였다." 작가의 말 중
ⓒ 문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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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쩍 멸망에 관해 생각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3년째 지속되는 코로나19 확산과 대형산불, 80년만에 기록적인 폭우, 많은 대도시를 혼란에 빠뜨린 태풍 힌남노의 강타 앞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으로 내몰리고 목숨을 잃었다.

'재난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는 말처럼 가난한 이들의 자리 먼저 발 빠르게 찾아온다. 야속한 재난 앞에 스멀스멀 차별과 혐오가 고개를 들기도 한다. 코로나19로 '살인'적으로 늘어난 택배 물량에 폭우 속에서 새벽배송을 담당하다 목숨을 잃은 사람. 폭우로 침수된 방 안에서 바깥으로 빠져나오지 못해 목숨을 잃은 가족들. 화염 속에 미처 도망가지 못해 생명을 잃은 동물들. 한파에 비닐하우스에서 숨진 이주노동자. 쫓겨나는 전쟁 난민들.

소설 속 멸망의 모습은 현실과 닮아 있다

김초엽 소설 <지구 끝의 온실> 속 멸망의 모습이 이와 꼭 닮았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간을 대체하는 로봇이나 미래형 운송수단을 보편화시켰지만 이 모든 것을 무력화시키는 대재앙을 불러왔다. 2055년 '더스트'라 불리는 유해 먼지가 자가 증식하며 급격하게 대기층을 잠식한 것이다.

소설은 멸망의 시대 한복판을 통과해 살아남은 여성 '나오미'와 재건 이후를 살아가는 연구자 '아영'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전개된다. '더스트생태연구센터'의 연구자 아영은 더스트 시대 독점종이었던 모스바나의 기원을 추적하며 '나오미'를 만나게 된다.

더스트는 호흡하며 살아가는 모든 존재를 순식간에 죽게 만들었다. 세계 인구의 90%가 더스트에 의한 급성중독으로 죽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외부 대기와 격리된 '돔 시티'를 만든다. 돔 시티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권력과 돈을 지닌 자들이다.

세상은 돔 시티의 안과 바깥으로 나뉘고, 사람들은 마시기만 해도 목숨을 앗아가는 이 먼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살상용 로봇을 만들어 서로를 겨누기 시작한다. 더스트 항체를 지닌 일부 '내성종'인 사람들은 사낭꾼에게 쫓기며 피를 빼앗기고 체 실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주로 여성들이다.
 
김초엽 <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지구 끝의 온실>
ⓒ 문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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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트 시대에는 이타적인 사람들일수록 살아남기 어려웠어. 우리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후손이니까, 우리 부모나 조부모 세대 중 선량하게만 살아온 사람들은 찾기 힘들겠지. 다들 조금씩 다른 사람의 죽음을 딛고 살아남았어. (<지구 끝의 온실>, 64쪽)

불완전한 이들이 모여 서로를 구하는 '온실'

돔시티에서 쫓겨나 살아남은 여성들은 돔 바깥 외딴 숲에서 자신들만의 공동체 '프림 빌리지'를 만든다. 나오미와 아마라도 내성종으로서 생체실험을 당하다가 가까스로 돔 시티를 탈출해 숲속을 헤매다 이 곳에 당도하게 된다. 이곳에 모인 이들 대부분 세상으로부터 착취당하고 버려진 사람들이다.

돔 없이도 식물을 재배하며 살아가는 이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는 '온실'이 있다. 이 온실에서 정체모를 식물들을 연구하는 레이첼은 때마다 마을 사람들이 경작할 수 있는 식물을 개량해 제공한다. 사람들 중에는 그를 신성시하는 이들도 있지만 오로지 온실 속에서 식물 연구만 하는 사이보그 레이첼은 신체 대부분이 기계로 이뤄져 지수의 정비가 없으면 정작 살기가 힘들다.

돔시티는 다른 사람들을 밀어나고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강자들의 공간이라면 레이첼의 온실은 식물들이 머무르고, 불완전한 이들이 서로를 살려내는 곳이라는 점에서 대비된다. 약하고, 불안정하고, 밀려난 이들이 착취당한 고통과 아픔을 안고서도 서로를 구하기 위해 애쓴다.

프림빌리지 사람들은 어떤 신념 없이, 거창한 대의명분 없이, 영웅의 숭고한 희생 없이 이들은 서로를 기억하며 그들이 약속한 것을 각자의 자리에서 지켜낸다. 마을 밖 황폐한 세상으로 나아가 그저 세계를 떠돌며 모스바나의 씨를 뿌리는 작은 약속을 그들은 기꺼이 지킨다. 아무도 그들의 존재와 방식을 기억해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들은 자신과 서로를 구원하고, 결국 이 세계를 구한다.

이 소설은 인간 스스로 초래한 절멸의 세계, 그 고통에 대한 이야기이자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작가는 "온실, 마을의 공간은 불안정하지만 절대적인 환대를 제공한다. 이 짧은 환대의 시간이 한 사람의 삶을 바꾸고 세계를 바꿀수 있는가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내놓았다"고 말했다.

"우리만이 아니었군요. 모두가 잊지 않았어요."
"맞아요. 당신들이 약속을 지켰고, 세계를 구한거예요."


"인간은 언제나 지구라는 생태에 잠시 초대된 손님에 불과했습니다. 그마저도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위태로운 지위였지요"라는 아영의 이메일 내용은 모든 재난이 인간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꼬집는다. 우리는 그 사실을 자주 잊어버리고 우리의 유일한 보금자리인 지구환경을 스스로 파괴한다. 인간 이외의 존재를 끊임없이 과소평가한다.

지금 세상은 감염병과 기후재난, 전쟁과 경제위기 등으로 혼돈에 휩싸여 있다. 이 혼란 속에서 회복 불가능한 멸망이 찾아올 것이 자명해보여 두렵고, 슬플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이게 끝이라고 냉소할 수 없는 것은 모스바나의 씨를 뿌리는 작은 사람들이 이 세계에도 있기 때문이다.

약속을 지켜내는 그들의 단단한 마음을 발견할 때마다 더이상 가만히 있지말고 할 수 있는 걸 해보자고 내 마음에 말을 걸게 된다. 연대가 기후위기를 막아내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오는 9월 24일 기후정의행동에 연대해야할 이유다.
 
9.24 기후정의행진 포스터
 9.24 기후정의행진 포스터
ⓒ 9월 기후정의행동 조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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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지구 끝의 온실 (여름 에디션)

김초엽 (지은이), 자이언트북스(2021)


태그:#지구끝의온실, #김초엽, #기후위기, #기후정의행진, #기후정의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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