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카타르월드컵을 앞두고 있는 축구대표팀 '벤투호'의 마지막 평가전 상대가 아이슬란드로 정해졌다. 최근 대한축구협회는 오는 11월 11일 오후 8시 화성종합경기타운 주경기장에 서 아이슬란드와 친선경기를 치를 것이라고 발표했다. 대표팀이 카타르로 출국하기 전 국내에서 가지는 마지막 평가전이자, 월드컵 출정식을 겸한 경기다. 다만 국제축구연맹(FIFA)가 정한 A매치 기간에 열리는 경기가 아니기에 아이슬란드전은 국내파 선수들로만 치러야한다.
 
벤투호는 지난 21일 국내파 소집명단 27인을 발표했다. 최종엔트리 확정을 앞두고 국내파에 대한 마지막 점검 차원이다. 아이슬란드 전이 끝나고 다음 날인 11월 12일에 유럽파를 포함한 최종명단이 발표될 예정이다. 확정된 선수단은 14일에 결전의 장소인 카타르로 출국하고 유럽파 선수들은 현지에서 합류한다.
 
문제는 이번 아이슬란드전이 월드컵 준비를 위한 '모의고사'로서 실질적인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아이슬란드의 국제축구연맹 랭킹은 62위로 한국(28위)보다 무려 34계단이나 낮다, 유로 2016에서 8강에 오르며 한때 돌풍을 일으켰지만 벌써 6년전이다. 이번 카타르월드컵 본선진출에도 실패하며 유럽팀이지만 축구강국과는 거리가 있다.
 
한국은 아이슬란드와 이미 지난 1월에도 격돌한 바 있다. 당시 벤투호는 터키 전지훈련에서 아이슬란드와 평가전을 가지고 5-1로 유럽팀 상대 최다골 차 승리를 기록한 바 있다. 한국에서 A매치 데뷔골만 4명(조규성, 백승호, 김진규, 엄지성)이나 기록했을 정도로 전력차가 컸다. 당시에도 양팀 모두 유럽파 핵심 선수들이 빠지고 자국리그에서 뛰는 선수들로 구성됐다.
 
이번에도 유럽 빅리그에서 활약 중인 한국과 아이슬란드의 핵심 주전급 선수들은 모두 빠진 상황에서 반쪽짜리 국내 평가전이 될 수밖에 없다. 중립지역에서도 크게 이겼던 상대인 만큼 10개월 만의 리턴매치 역시 한국의 낙승이 예상된다.
 
하지만 유럽 2진급 상대를 홈으로 불려들여 편안하게 이기는 것이 월드컵 준비에 무슨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월드컵 본선에서 만날 포르투갈, 우루과이, 가나와는 전력차는 물론이고 스타일 면에서도 전혀 연관성이 없는 상대다. 사실상 평가전으로서의 의미보다는, 이길 가능성이 높은 손쉬운 상대를 불러들여서 월드컵 출정식 분위기를 띄우려는데 초점이 맞춰진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은 벤투호가 끝까지 해외 강팀과의 정면승부나 원정 경쟁력을 충분히 증명하지 못한 상황에서 월드컵 본선에 나서게 됐다는 것이다. 2018년부터 출범한 역대 최장수 대표팀인 벤투호 통산 A매치 승률은 63.45%(33승12무7패)로 높은 편이지만 홈(19승 6무 1패)에서의 압도적인 면모에 비하여 해외에서 치른 경기(중립, 원정 합산)로 한정하면 53.84%(14승6무6패)로 낮아진다. 벤투호가 홈에서 패한 것은 지난 6월 2일 브라질전(1-5) 단 한번 뿐이지만, 원정에서는 무려 6패나 당했다.

또한 벤투호는 해외 강팀과 원정에서 대결해본 경험이 극히 부족하다. 벤투호가 유럽팀을 상대한 것은 2019년 9월 5일 터키에서 조지아(2-2), 2022년 1월 터키에서 아이슬란드(5-1), 몰도바(4-0) 정도에 불과하고,모두 유럽의 강팀과는 거리가 멀고 그나마도 1진급 전력이 아니었다. 범위를 타 대륙까지 넓히면 2019년 11월 UAE에서 열린 브라질(0-3)전, 2020년 11월 오스트리아에서 멕시코(2-3)를 상대했으나 모두 패했다.
 
벤투호가 비아시아권팀을 상대로 원정에서 거둔 성적은 2승 1무 2패에 불과하다. 심지어 벤투호는 아시아권팀을 상대로도 일본 원정에서 두 차례 0-3 완패를 당하는 등 원정 경쟁력 자체에 심각한 물음표를 달고 있다.
 
히딩크호(2002 한일월드컵), 허정무호(2010 남아공월드컵), 신태용호(2018 러시아월드컵) 등 역대 대표팀들이 모두 원정에서 설사 깨지더라도 세계적인 강팀들과 정면승부를 펼치며 경쟁력과 문제점을 확인했던 것과 비교하면, 벤투호는 그야말로 '방구석 여포'의 전형에 가깝다.
 
물론 벤투호의 시간 중 2019년부터 2021년까지는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대표팀 일정이 아예 중단되기도 할 만큼 A매치 상대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았고, 유럽이 자체 네이션스리그의 창설 등으로 타 대륙와의 A매치 교류가 줄어들었다는 변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축구협회와 벤투호가 월드컵 준비과정에서 과연 강팀과 원정대결도 불사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가 있었는지는 아쉬움이 남는다. 벤투호가 유럽파를 포함한 최정예 멤버로 원정 경기에 나선 것은, 지난 3월 29일 UAE(0-1)와의 아시아 최종예선이 마지막이다.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 이후 벤투호는 지난 7개월동안 이번 아이슬란드전을 포함하여 7번의 친선 평가전을 모두 국내에서만 치르게 됐다. 7월에 열린 동아시안컵(중국, 홍콩, 일본)은 일본에서 원정으로 치른 A매치지만, 최정예 유럽파 없이 국내파 선수들 위주로만 치른 대회였다.
 
6월 4연전은 모두 남미-아프리카팀(브라질, 칠레,파라과이,이집트)이었고, 강팀들의 일정 조율이 비교적 수월했던 9월 A매치 기간에도 홈 평가전을 고집하며 상대를 구하지 못하다가 뒤늦게 코스타리카-카메룬을 섭외하는 데 그쳤다. 월드컵을 대비한 적절한 스파링 파트너와는 대결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벤투호의 첫 경기가 11월 24일 우루과이전인데, 평가전으로 국한하면 2022년 1월 몰도바전 이후로 무려 10개월 만의 원정에서 비아시아권팀을 상대하는 첫 무대가 바로 월드컵이 되는 셈이다. 최종 엔트리 확정 이후 본선 개막까지 현지에서도 벤투호의 평가전 일정은 따로 잡혀있지 않은 상태다. 한국축구의 위상이 낮아서 해외팀 섭외 자체가 쉽지 않았던 1990년대 이후로 이렇게 원정 경험이 부족한 상태로 나서는 월드컵 대표팀은 벤투호가 처음이다.

강팀들도 불편함과 어려움을 감수하고 최대한 원정에서 다양한 상대를 만나 경험을 쌓으려고 한다. 한국과 월드컵 본선에서 만날 우루과이는 유럽 전지훈련을 통하여 이란-캐나다 등과 평가전을 치렀고, 가나는 UAE에서 스위스와 경기를 치를 예정이다. 심지어 한국과 함께 아시아를 대표하여 월드컵에 나서는 일본, 이란, 사우디아라비아는 모두 최근 유럽에서 A매치 일정을 소화한 바 있다. 마땅한 상대를 구하기 어려웠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홈과 원정은 모든 면에서 분위기가 하늘과 땅 차이다. 안방에서 편안한 환경과 홈팬들의 열광적 응원을 등에 업고 잘하던 팀들도, 집 밖에만 나서면 전혀 달라진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흔하다. 특히 월드컵같이 큰 무대에서는 상대팀과의 신경전, 현지의 텃세, 팬들의 광적인 응원 등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이런 부분에 경험이 있고 없고는 큰 차이가 될 수 있다.
 
한국축구가 한일월드컵을 제외하고 '원정에서 치른 월드컵'에서 16강에 오른 것은 2010년 한 번 뿐이다. 벤투호가 과연 안방 호랑이라는 우려를 극복하고 카타르 월드컵에서 반전의 기적을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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