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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이 시간이면 늘 규칙적인 쿵쿵쿵 소리가 난다. 누군가가 운동을 하는 듯하다. 저녁 먹고 아니 야식을 먹고 운동을 하니 잠이 꽤나 잘 오겠군 싶다. 10분은 넘기지 않는 그 소리, 정확히 운동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하간 위에선지 옆에선지 또 뭔지도 모를 그 소리가 끝나면 그다음 루틴은 냄새다. 이건 정체가 분명하다. 담배 냄새다. 냄새의 분자 순도가 높은 걸로 봐서 발원지는 그다지 먼 곳은 아닌 듯하다.

이 못된 것은 내 집을 빈틈없이 점령했고 숨 쉴 때마다 나는 수명이 단축되는 것을 느끼면서 구역질 날듯하다가 잠들 때면 담배굴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담배 피우는 남자와의 연애 
 
담배냄새를 바닐라나 헤이즐넛향으로 개발하면 안 되나.
▲ 담배연기 담배냄새를 바닐라나 헤이즐넛향으로 개발하면 안 되나.
ⓒ 황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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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엔 베란다 창문을 닫을 수도 없고 여름 지난 지금은 창문을 꼭 닫는데도 소용이 없다. 이 담배 냄새가 언제부터였나 기억해보니 사계절 한 사이클 정도는 된 듯싶다. 한 층에 6가구가 거주를 한다. 아래로 3층씩 18가구 중 이사 온 지 1년 즈음된 주민을 찾아보까? 통째 실시간으로 전수조사를 해야 하나.

'금연' 단호한 글씨도 써봤다가 '담배 냄새가 너무 힘들어요. 제발 아파트에서 피지 말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정하는 글도 써봤다가 엘리베이터에까지 가져가서는 못 붙이기도 했다. 아파트 관리실에서는 삼일이 멀다 하고 금연 방송을 한다. 민원이 적지 않나 보다. 이 역시 소용없다는 거, 흡연 당사자가 아마 제일 잘 알 것이다.

어릴 적에 담배 한 개비 가져오라는 아빠의 심부름에 어느 날 불을 붙이고 빨아보다가 혼이 났었다. 기침과 재채기에다 내 식도가 마치 이름 모를 고약한 땔감으로 불을 지핀 아궁이가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아빠에게서는 싫은 담배 냄새 기억이 없을까? 그것은 모르지만 내가 이거 하나는 분명히 안다. 아빠한테서 담배 냄새가 안 난 지 20년이 되었다는 것. 평생 담배를 피신 아버지는 첫 손주가 태어나는 그날로 딱 끊으셨다. 그 손주가 얼마 전에 입대를 한 스무살 내 조카다.

작고 소중한 아기가 행여 담배 냄새 때문에 자신의 품에 안 올까 하여 두 번 생각 않고 아빠는 금연을 결심하셨다. 건강을 잃어봐야 담배를 끊는다는데 나의 아빠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또, 담배 끊은 사람과는 상종을 하지 말라 할 정도로 어지간히 모질어야 금연이 가능하다는 것도 역시 맞기만 한 말은 아니었다.

30년 전 일이다. 대학 총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우러러보게 된 한 여자 선배가 있었다. 그러다 막걸리촌에서 담배를 꺼내 무는 그 선배를 보는데 나는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 퍽 난감했었다.

담배 냄새 때문이 아니라 난생 처음 보는 여자 흡연자의 그 장면이 순진한 시골 새내기 여대생에게는 엄청 큰 시각적 충격이었다. 그 당시는 모름지기 여성 흡연과 남녀평등 사상은 인과관계는 아닐지라도 상관관계는 있던 시절이었다.

한때 검은 머리와 파뿌리의 부부관계를 약속했던 한 남자도 어지간히 애연가였다. 연애할 때나 멋있었지 내 안방 담배연기는 당연히 하나도 멋있지 않았다.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그 유명한 드라마 대사의 어처구니없는 패턴을 나는 이미 자주 들었었다.

"담배를 피우는 게 죄는 아니잖아."

우리 대화는 잘 될 리가 없었고 마음 속에는 서로 불만이 쌓였고, 그 다음에는 그 마음조차 담배연기처럼 사라지는 걸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사람은 떠났지만 담배 피우는 남자는 다시는 만나지 말자는 뜻깊은 교훈을 얻었다. 그런데 기껏 지금 흡연자와 한 건물에서 먹고 자다니 참으로 아니 애석하다 할 수 없다.

계단 운동의 꿈을 꾼 지 며칠 되지 않았다

숨 쉴 때마다 단축된 내 수명을 복구하고자 한 계단에 수명이 4초씩 연장된다는 계단운동을 시작해보기로 했다. 엘리베이터로 내려가서 우리 집 19층까지 걸어 올라와보자. 그런데 14층부터 코를 건드리는 익숙한 그 담배굴 스~멜~~!!!

역시 16층 계단 한쪽에 분유통이 있었다. 담배꽁초가 정렬로 밀도 있게 공간 낭비 없이 꼽아져 있는 것이 혹 건축과 나온 사람은 아닐까 생각했다. 켁켁거리며 복도로 나오는데 마침 아파트 청소 여사님이 계셨다. 궁금했다.

"여사님. 저 담배꽁초 통 안 버리시나여?"
"아직 다 안 찼는데요. 다 차면 비울 건데요."
"네? 그걸 비워주신다고요? 혹시 여기 입주민 중에 누가 저 통을 못 버리게 하나요?"
"아니, 그게..... 글쎄, 난 모르겄네요."


나는 아파트 관리실에 분유통에 대한 실태를 제보했고 다행히 관리실의 적극 대처로 깨끗한 계단을 확인했다. 그런데 분유통이 자식을 낳았나? 며칠 후 내가 본 것은 같은 자리의 커피캔이었다. 머리를 처박힌 담배꽁초 궁둥이들이 캔 밖으로 삐져나와있었다. 민원러가 되기는 싫어서 그냥 집에 들어갔다. 도대체 여기 16층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결국 사건이 생겼다. 16층 계단에서 나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계단에서 창 밖으로 얼굴을 내놓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내 추측과는 다르게 건축과처럼(?)은 안 보이는 한 아저씨의 뒷모습을 보고 말았다. 빼박 현장범이다. 마침 잘 걸렸다.

"여기서 담배를 피우시면 어떡해요?"

도저히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 순간의 공포란... 범죄 현장 목격자가 이런 심정일까, 지난 분유통 사건에 앙심을 품었으면 어떡하지? 당황하지 않은 것처럼 하던 운동을 계속 열심히 하듯 했고 나의 거주지를 노출시키지 말자며 나름 머리를 써서 17층에서 복도로 빠져나왔다. 둘밖에 없는 계단은 무서웠다. 계단 운동은 다시는 안 하기로 했으니 그날로 내 수명 연장의 꿈은 물거품이 돼버렸다.

전부터 했던 생각인데, 담배냄새를 바닐라나 헤이즐넛향으로 개발 좀 하면 안 되나. 임진왜란에 이 땅에 들어왔다는 자랑스러운 담배 역사에 지금까지 그런 게 안 나온 거 보면 안 되는 거겠지 뭐~ 하며 가난한 나는 공기청정기 대신 불 피우는 향을 구매했다. 담배냄새에 쩌든 내 집을 편백나무와 쑥향으로 헹구고 싶다.
 
아파트 담배냄새 때문에 향을 피웁니다.
▲ 편백나무 향 아파트 담배냄새 때문에 향을 피웁니다.
ⓒ 황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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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와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태그:#담배냄새, #스틱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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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에서 두 마리 고양이 집사입니다. 오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부모님과 밭농사일을 하고 글쓰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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