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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31일 경북 김천 한국도로공사에서 열린 고속도로 요금수납원들의 '농성 해단식'.
 2020년 1월 31일 경북 김천 한국도로공사에서 열린 고속도로 요금수납원들의 '농성 해단식'.
ⓒ 민주일반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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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측의 노조 파업 관련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 제정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한국도로공사가 고속도로 요금소 수납원들이 가입해 있는 노동조합을 상대로 냈던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졌다.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하석찬 판사는 21일 한국도로공사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소송비용을 모두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도로공사는 수납원들이 가입해 있는 민주노총, 전국민주연합노조, 공공연대노조, 전국민주일반노조연맹, 경남일반노조와 간부(아래 노조)를 상대로 1억 3600만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낸 바 있다.

노조는 도로공사가 파견법을 위반했다는 대법원 판결이 있었지만 수납원을 정규직으로 하지 않자 투쟁에 나섰다. 이들은 2019년 9월 국토교통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직접 고용을 촉구했고, 이후 이들은 경북 김천에 있는 도로공사 본사에서 2020년 1월 31일까지 점거 농성했다.

노조 간부·조합원들은 이로 인해 1심에서 형사사건인 공무집행방해, 공동주거침입, 공동재물손괴 등 혐의로 유죄를 선고 받았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이와 별도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도로공사는 "점거 행위로 물적 피해를 입었고, 회전문이 파손되어 수리를 하는 등 손해를 입었다"며 "공동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 측은 "파손된 시설물 중 상당수는 점거 행위와는 관련이 없고, 조합원들의 행위가 아닌 경찰이나 한국노총 소속 조합원들의 행위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시설물 파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도 포함돼 있어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반박했다.

재판부 "노조 손해배상 책임 증거 없다"

이에 재판부는 "원고(도로공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노조)들이 공동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 책임으로서 공동해 손해배상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원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으로는 "원고 소유 시설물의 파손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이므로, 피고들에게 시설물 파손으로 인한 공동불법행위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시설물 파손 행위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어떤 객관적 관련 공동성이 있는 행위를 했는지가 원고에 의해 입증돼야 한다"고 했다.

또 "시설물 파손행위가 점거행위에 필연적으로 부수되는 행위라 할 수 없고, 노조 소속 조합원들의 개인적 일탈에 의한 시설물 파손행위에 대해서는 이를 기획, 지시, 지도한 바 없는 노조 간부들에게 그 법적 책임을 지우는 것은 자기 책임의 원칙에 반하고, 민법(제760조)에 근거한 공동불법행위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도로공사는 노조 간부들이 조합원들에게 점거행위에 관한 기획, 지시, 지도를 했다고만 주장하고 있을 뿐, 시설물 파손행위와 관련해서는 간부들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조합원들에게 이를 기획, 지시, 지도했는지에 관한 아무런 주장과 입증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봤다.

이어 "시설물의 파손이 과연 점거행위가 발생하는 과정과 그 기간 동안 발생한 것인지, 실제로 누구에 의해 발생한 것인지, 그 파손의 실제 행위자가 과연 노조 소속 조합원인지 여부를 알 수 없다"며 "시설물 파손행위가 노조와 관련돼 있음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점거행위 당시 촬영된 동영상 중에는 한국노총 소속 조합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사옥 1층 회전문을 통해 진입을 강행하는 장면이 포함돼 있다"며 그 파손 결과가 반드시 노조 소속 조합원들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보도블럭·잔디에 대해서는 "점거행위 기간 중 촬영된 사진 중에는 경찰 버스가 사옥 주변 보도블럭 위에 주차된 장면이 촬영된 사진과 한국노총 조합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사옥 주변 잔디에 앉아 있는 장면이 촬영된 사진도 있다"며 "시설물 가운데 보도블럭과 잔디의 경우도 그 파손의 결과가 반드시 노조 소속 조합원들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노조 간부들이 시설물의 파손행위를 기획, 지시, 지도하는 등으로 주도한 사실이 있음을 인정할 수 없는 이상 이를 전제로 한 노조의 손해배상 책임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시민단체 "노란봉투법 입법 시급"

손잡고(손배가압류를잡자!손에손을잡고)는 22일 낸 논평을 통해 "승소는 반갑지만, 지나간 3년 동안 억울하게 피고로 서야했던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승소를 했어도 재판이 주는 고통은 보상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노란봉투법의 입법이 시급한 이유다"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우리가 도로공사의 손해배상소송 과정을 통해 확인한 것은 '노란봉투법이 없는 불공정한 현실'이다"라며 "이번 사건의 쟁의행위는 도로공사의 '파견법 위반' 때문에 일어났다. 이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통해 사법부의 판결을 받았음에도, 도로공사는 정규직전환을 하지 않아 노동자들이 쟁의행위에 이르게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 역시 도로공사의 파견법 위반을 확인하고도, 자회사 방침을 고집함으로써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서게 했다"며 "도로공사뿐 아니다. 현행법으로는 대상이 하청노동자라면, 특수고용노동자라면,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90%의 노동자 개개인이라면, 회사는 불법을 저지르고도 피해당사자와 대화를 거부하고, 때로는 법의 판결도 이행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손잡고는 "노란봉투법이 없는 불공정한 현실을 우리는 30년이 넘게 경험해왔다.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는 노동자와 시민들이 국회 앞에서 20일이 넘도록 단식농성 중이다. 왜 헌법상 권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국민들이 곡기를 끊어야 하는가"라며 노란봉투법 제정을 촉구했다.

태그:#요금소 수납원, #한국도로공사, #대구지방법원, #민주노총, #경남일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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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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