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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이 가족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새롭게 도전하는 일이 잘 되기를 소원한다. 또 오랜 기간 다녔던 곳을 떠나거나 정든 사람과 헤어지기도 한다. 그중 1월 초에 하는 초등학교 졸업식을 빼놓을 수 없다. 코로나19로 모든 학교 행사를 마무리하느라 1월로 옮긴 것이 고착화된 모양이다.

졸업식 풍경도 많이 변했다. 여기저기서 초대한 기관장 축사, 재학생 송사와 졸업생 답사, 단골로 불렀던 졸업식 노래와 '스승의 은혜'도 이제는 없어졌다. 대신 1년 동안 했던 교육 활동을 했던 사진이나 자신들이 연출하고 편집해 만든 영상을 보여 주는 학교가 많아졌다. 학생 중심 졸업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6학년 학생이 없어 졸업식이 없는 학교가 있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우리 학교도 현재 졸업생이 나가면 한 학급이 줄어든다. 한때는 전남에서 세 번째 안에 들 정도로 학생 수가 많았다는데 이제는 13학급이 됐다.

내가 근무하는 보성군만 해도 2023년도 1학년 신입생 없는 곳이 여섯 학교다. 이 추세라면 몇 년 안에 폐교가 되는 것은 뻔한 일이다. 입학생이 없으면 교감이 없어지고 남아있는 학생조차도 다른 곳으로 옮기려 한다. 학교에서는 필사적으로 학생을 잡으려 하지만 소용없다.

학교 관리자들이 유치원에서 '읍소' 하는 이유 
 
교실 속 책상.
 교실 속 책상.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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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교육 환경을 찾아 떠나려는 부모님 마음도 이해가 간다. 학교는 작은 사회다. 더 큰 사회를 배우는 기회가 없어진 곳을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또래 친구가 없어 정서적 성장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고 경쟁 상대가 없으니 학습 성취 욕구가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학교를 살리려고 관리자가 동네 유치원을 방문해 학령 아이가 있으면 보내 달라고 부탁하러 다녀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그런데 이마저도 문 닫을 위기란다. 읍내를 제외한 나머지 학교는 전교생이 열 명 미만 또는 조금 넘으니 앞으로 몇 년이나 버틸까 싶다. 전북 지역도 신입생이 열 명도 안 되는 학교가 215개교로 전체의 50%를 넘었다 하니 우리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길게 잡아 10년 후면 읍내를 제외한 시골 초등학교는 거의 없어진다고 봐야 할 것이다.

70년대 내가 초등학생일 때는 70명이 넘는 학생이 한 교실에서 공부했다. 대부분이 자녀가 다섯 이상이고, 심지어는 열 명이 넘는 집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삼촌과 조카가 같이 학교에 다니기도 했다. 또 중학교도 입학시험을 치러 합격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먹고 살기 힘들었지만 집집마다 아이가 많아 산아 제한을 추진하던 시기였다. 집이 가난해 초중학교를 졸업한 뒤 어린 나이에 부모님 일을 돕거나 도시의 산업전선으로, 또 다른 집으로 식모살이를 하러 떠나기도 했다. 불과 50년 전이다.

심지어 국가에서 포스터와 표어까지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60년대에는 '덮어 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70년대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80년대 '둘도 많다!', 2000년대 '하나는 외롭습니다'. 시대별 출산 정책 포스터 문구다.

교사가 돼 90년대 후반 근무했던 학교만 해도 넘쳐나는 학생 수를 감당하지 못해 오전과 오후반으로 나눠 수업했다. 4교시가 되면 오후 반에게 교실을 비워줘야 해 정신없이 정리하느라 불안해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었다.

지금은 저출산 문제로 자녀가 많을수록 애국자 소리를 듣지만 30년 전, 내가 셋째를 임신했을 때만 해도 출산 시 의료보험 혜택도 없었다. 그런 시대에 세 아이를 두었으니 '야만인' 소리를 듣기도 했다. 애 셋 데리고는 택시 타기도 힘들었다.

손을 들어 차를 세울라치면 그냥 지나치기 일쑤여서 한 명은 저만치 세우고선 차가 서면 데리고 타기도 했다. 그때 태어난 아이들이 지금 결혼할 시기다. 아이를 낳으면 돈까지 주며 출산과 보육 정책을 펼치지만 합계 출산율이 세계 꼴찌 수준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니 격세지감이다.

우리와 처지가 비슷한 이웃 나라 중국도 적극적인 출산 억제 정책을 전개한 바 있다. 70년대 한 자녀 정책을 추진해 둘부터는 수년 치 임금에 해당하는 벌금을 냈다고 한다. 그런데 노동인구 감소, 고령화, 불법 낙태 성행 등 사회 문제가 생겨 2013년 두 자녀를 인정하고 얼마 전부터는 세 자녀까지 허용했단다. 한국도 중국도 출산 억제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장려에는 고전을 면하지 못한다. 세계적인 추세라고 하지만 당장 현장에선 입학할 아이가 없어 학교가 문 닫을 위기에 처한 걸 보면 가슴 답답할 일이다.

그러든가 말든가, 졸업식 날 아이들은 즐겁다. 부모님과 친척들 축하로 다들 입이 함지박만 하다. 현재 졸업생이 결혼할 나이가 되면 이 지역(보성군)에 학교가 남아 있기나 할까. 2022 개정 교육과정을 준비하는 시점에 학령인구 감소로 대책 마련하느라 비상이지만 비단 교육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더 걱정이다. 세월과 함께 많은 것이 사라지고 달라지겠지만 그래도 꼭 있어야만 하는 것이 있다. 학교가 살아야 마을이 산다.

태그:#학교 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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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수석 교사입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재미있는 사연을 기사로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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