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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지리산서 멋을 위해 목심을 걸었능가? 민중을 위해서 아니었능가? 저이가 바로 자네가 목숨 걸고 지킬라 했던 민중이여, 민중!"(P.12)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표지 어디에서 민중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사회주의자이자 빨치산 아버지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마치 어린이 그림동화처럼 푸른 빛 세상에서 빨강 지붕의 집과 빨강 깃발 그리고 빨강 조끼를 입고 빨강 자전거 바퀴를 굴리는 노인이 아버지라면 그는 내 아버지와 같았다. 그러나 이야기 속 아버지 고상욱은 다른 사람이었다.

얼마 전 군산 작가초청에 정지아 작가가 왔을 때만 해도 그냥 무심했는데, '알릴레오 북스'라는 유튜브에 나온 정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완전히 푹 빠져 바로 책을 구매했다. 특히 그녀를 통해 들은 고령의 어머니가 전하는 전라도 사투리는 분명 책의 일품재료였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금기어로 인식되어온 '사회주의자, 민중, 빨치산, 빨갱이' 등의 단어가 책 장 10장도 채 넘기기 전에 50여 회 언급되었지만, 이렇게 소소한 유쾌함이 녹아든 책은 처음 읽었다. 농사를 짓는 노부부의 대화에 민중이 어쩌고, 사회주의가 어쩌고 하는 이념적인 대화장면 자체는 때로 시트콤 대본 같아서 우습기도 슬프기도 했다.
 
설날하루, 떡국보다 맛있게 단 한번에 읽은 이 소설을 추천합니다
▲ 정지아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 설날하루, 떡국보다 맛있게 단 한번에 읽은 이 소설을 추천합니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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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때 아버지가 빨치산 출신이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던 작가처럼, 작품 속 주인공 고아리는 사회주의자이자 빨치산 아버지의 모습밖에 아는 게 없다. 그 아버지는 어떤 사람인가.

생전 처음보는 거리의 방물장수에게 밥과 잠잘 곳을 주었다가 딸 아리에게 벼룩만 남기고 가도 민중을 지킨 자랑스런 사회주의자였다. 돈이 없는 친척을 위해 보증을 섰다가 야반도주한 친척을 두둔하며 또 민중을 위한 거라고 '오죽하면'이라고 말하는 빨치산이었다.

그런 아버지(고상욱)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었다. 전직 빨치산 명찰을 달고 자본주의의 적인 사회주의를 신봉하면서 오랜 감옥생활에서 나온 그가 <새농민>잡지에 쓰인 문자농사를 짓는다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살다가 죽은 것이다.

'사회주의자는 일상에서 부텀 유물론자로 살아야 하는 법이여'라며 초짜농부로서 야생식물의 씨앗과 먼지와 흙에도 인간의 시원을 붙였던 아버지는 딸(고아리)가 읽던 니체의 영혼마저 훑어버릴 만큼 열렬한 사회주의자였다.

그가 믿는 이상의 나라, 사회주의의 나라를 위해 보여준 그의 삶은 피흘리는 투쟁의 삶에서부터 이웃의 대소사를 내몰라라 하지 못하고 일을 정리해주는 오지랖 넓은 동네 이장격의 역할까지 변화무쌍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떤 행동에서도 '민중과 함께' 라는 뚜렷한 사유(이념)이 있었다. 그의 민중에는 좌파도 우파도, 배운자도 못배운자도, 어린아이도 어른도 경계하지 않았다.

유일한 혈육으로 상주노릇을 하는 딸이 자리한 장례식장에는 혼자라는 버거움이 드러날 공간이 없었다. 사촌의 팔촌을 넘어 이념을 나눈 동지들, 이념으로 패가망신한 혈육들, 한순간이라도 함께 했던 동지의 후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상주가 되어주었다. 빨치산 아버지의 죽음을 저장한 장례식장은 한순간에 한국 근현대사의 산맥처럼 우뚝 솟아났다.

어서 빨리 장례를 치루고 떠나고픈 딸의 속내는 계속 찾아오는 애도자(민중)들의 발걸음에 잡혔다. 하나뿐인 딸 상주의 장례식에 장례비용이나 나올건가 근심하는 황사장을 무안케 할 만큼 아버지 인연들의 줄기는 길고도 단단하게 이어졌다. 분명 죽은 아버지가 다시 살아나, '거봐라, 내가 원하는 사회주의가 딴 세상에 있더냐. 바로 여기 있었당게.'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자네 혼차 잘 묵고 잘살자고 지리산서 그 고생을 했는가? 자네는 대체 멋을 위해서 목심을 건 것이여!"(p61), "민족이고 사상이고, 인심만 안 잃으면 난세에도 목심은 부지허는 것이여"(p137)라는 말했던 아버지의 신념이 마침내 확인되는 곳이 되었다.

3일간의 장례식은 빨치산 아버지와 동지 어머니 그리고 빨치산의 딸로 살면서 평생을 단절과 경계의 선상에서 살아온 이들이 드디어 사람의 세상 안으로 들어오는 시간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진정한 해방을 함께 꿈꾸던 동지들뿐만이 아니라, 칠십 평생을 형과 등지고 살아야 했던 작은아버지까지도 해방된 세상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장례 마지막 날, 아버지의 유해를 묻는 과정에서도 사회주의자 아버지의 유언의 뜻을 따르는 딸은 말 그대로 그 아버지의 그 딸이었다.

"안 묻고 뿌릴랑가?" "뿌레삐리렜다니까." 바람은 일정하게 불지 않았다. 아버지의 유골은 이리로도 저리로도 날아가다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 어디로 갔는지 바람만이 알겠지. 어디로 갔든 아버지의 유골은 어딘가 내려앉아 무언가의 거름이 될 것 이었다. 문척 가는 길 양편으로 어른 키만큼 자라날 코스모스에게도 아버지의 유골이 내려앉기를.(p.258)

단 한번에 읽게 만드는 소설의 진짜매력은 어디에 있었을까. 아마도 책의 저자 정지아의 실제 모델에 가까운 이야기 구성에 있었을 것이다. 작가가 아무리 소설 픽션이라고 말해도 너무도 사실적인 묘사에 어디까지가 실제인지, 픽션인지 구별되지 않는 이야기 전개는 책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

소설 속의 딸, 아리는 현실속의 작가, 지아와 한 몸이 되어 사회주의자이자 빨치산 아버지의 유골을 손에 쥔 채 울면서 고백한다.

아버지 아버지 딸, 참 오래도 잘못 살았습니다. 그래도 뭐 환갑 전에 알기는 했으니 쭉 모르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그간의 오만을, 무례를, 어리석음을 너그러이 용서하시길...... 감사합니다. 아버지, 애기도 하는 이 쉬운 말을 환갑 목전에 두고 아버지 가고 난 이제야 합니다.(p.268)

소설을 다 읽은 후 마치 내가 그녀의 아버지 유골을 쥐고 있는 듯 빈 손인 내 손을 쳐다보기도 했다. 그 아버지의 미소가 그려지며 '긍게 사람이제'라는 말이 들려오는 듯하여 나도 따라 중얼거렸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시간 속에 존재할 아버지가 되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은이), 창비(2022)


태그:#정지아, #아버지의해방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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