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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라는 말을 들었을 때 드는 생각이나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면 무엇인가? 의자에 앉아 선생님이 있는 칠판을 바라보며 공부하는 이미지를 떠올렸으리라 생각한다.

학교가 바뀌고 있다. 한 반에 50~60명 넘는 학생이 빽빽하게 앉아 공부하고, 학교 종이 울리면 하교하던 시절은 옛말이다. 정규 수업이 끝난 뒤 갈 곳 없는 아이는 학교에 남아 담임 선생님이 아닌 또 다른 선생님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언제부턴가 학교에서 밥을 주기 시작했고, 상담, 진로 탐색, 치유 등 공부 외의 많은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이처럼 학교의 기능이 커지면서 교육이나 학교 행정을 지원하는 수많은 직종이 생겨났다. 학교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지만, 교원도, 공무원도 아닌 사람을 우리는 '교육공무직'이라고 부른다.

15년 전 이맘때의 일이다. 정권이 바뀌면서, 새 정권은 사교육비 절감과 함께 '영어 몰입교육'을 내세웠다. 그 과정에서 '어륀지 소동'이 있었다. "미국에서 오렌지 달라고 했더니 못 알아듣는다. '어륀지' 이러니까 '아, 어륀지' 이러면서 가져오더라. 국립국어원의 외래어표기법부터 수정, 보완돼야 한다." 새 정권의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이 한 말이었다.

'어륀지' 소동은 해프닝으로 끝났으나, 영어 공용화와 일반 과목도 영어로 수업하게 하겠다고 하는 등 공감대가 전혀 없는 정책이 남발됐다. 결국, 전국민적인 논란에 휩싸이며 영어 몰입교육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영어전용교사'를 수천 명 뽑겠다는 정책도 반발에 부딪혔다. 사교육비는 줄지 않았고, 공감대 없이 시작한 정권의 교육정책은 실패로 끝났다. 오히려 학교 안에 새로운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이 생겨났다. 바로 '영어회화전문강사'다.

이들에게는 교원에 관한 여러 규정이 준용되나, 국가공무원 신분이 보장되는 정규 교원이 아니다. 1년마다 재계약하고, 4년마다 신규채용 절차를 거쳐야 하는 비정규직이다. 2010년대 중반 무기계약직이 되면서 고용불안에서 벗어난 다른 교육공무직과 달리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전남 장성 서삼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이강우 영어회화전문강사 선생님을 1월 20일에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전남 장성 서삼초등학교 영어회화전문강사 이강우 선생님
 전남 장성 서삼초등학교 영어회화전문강사 이강우 선생님
ⓒ 신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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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장성 서삼초등학교 영어회화전문강사로 2011년부터 근무해서 올해로 13년차가 되는 이강우라고 합니다. 대학 졸업하고 임용고시 준비하다가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었는데 영어회화전문강사 일을 시작했어요. 대학원이 방학에만 다니면 되는 곳이었거든요. 나이가 있다 보니 돈 벌면서 공부하자는 생각으로요. 그러다가 지금까지 근무하게 됐고, 같은 일을 하는 반려자도 만났어요(웃음). 학과는 영문과를 나왔고, 석사까지 완료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주위에서 이런 직종이 있으니 일해보라는 권유가 있기도 했고, 무기계약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고 들었어요."

-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고 하면 영어교사를 생각하지, 영어회화전문강사라는 직종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 같습니다. 영어회화전문강사는 어떤 일을 하나요?

"전남 지역은 (영어회화전문강사가) 대부분 초등학교에서 근무합니다. 영어 관련 업무를 전담하죠. 영어 수업 시수만큼 수업하고, 방과후 수업도 맡아서 합니다. 수업 시수는 주당 21시수고, 방과후 수업은 4시간 해요. 소규모 학교는 제게 정식적으로 업무를 주진 않지만, 다른 선생님의 업무를 보조하는 역할도 원하신다면 합니다. 업무보조라고 하면 학교 행사라든지, 대부분 교직원이 참여해야 하는 업무를 함께 하는 의미죠."

- 영어교사와 다른 점이 있나요?

"엄연히 신분이 다르죠. 교사들은 국가공무원이지만 영어회화전문강사는 계약직이죠. 공무직에 준하는 대우를 받지만 공무직도 아닌 것 같고. 그 사이에서 괴리가 있는 직종이죠. '깍두기'라고 보시면 될 것 같네요(웃음).

업무는 교사와 거의 같은 업무를 해요. 우리는 수업권과 평가권을 모두 가지고 있어요. 방학 때 하는 영어캠프는 보통 1주일 정도 하는데, 2주까지 할 때도 있어요. 일반 교사와는 달리 연수를 쓸 수 있는 기간이 제한적이기 때문에(기자 주 : 교사는 교육공무원법 제41조에 의해 방학 동안 근무지 외에서 연수를 할 수 있지만, 영어회화전문강사는 노동조합과 교육청이 맺은 단체협약 등에 따라 근무지 외 연수를 방학당 20일 내외로 쓸 수 있다), 방학 중이어도 영어캠프가 없거나 연수 기간이 아니라면 학교에 출근해서 교재를 연구하거나 내년 계획을 세워요."

10년 넘게 일했는데 수업 시연하고 세 번째 신규채용

- 영어회화전문강사는 계약직으로 알고 있습니다. 재계약을 할 시점(기자 주 : 학교는 회계연도가 3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다. 영어회화전문강사는 새 회계연도가 되기 전인 매년 초에 재계약 절차를 거친다)인데요. 해마다, 4년마다 고용불안을 겪어야 하는 이유가 뭔가요?

"초중등교육법 제22조와 시행령 42조 5항 때문에 안 돼요. 강사 신분으로 1년 단위로 계약하고, 4년까지는 그 계약이 유효해요. 4년이 지나면 모든 행정적인 퇴직 절차를 밟아요. 퇴직금이 모두 정산되고, 퇴직이 교육청에 보고되죠. 그 후 신규채용 시험을 보고, 같은 조건으로 4년 계약이 또 시작돼요. 고용이 불안할 수밖에 없죠. 저도 올해 신규채용 시험을 새로 봐서 신규채용이 됐습니다. 세 번째 신규채용이 된 거죠.

지역마다 다르긴 한데, 대부분 지역에서는 근속이 인정되지 않아요. 다른 공무직들은 근속수당을 받는데, 우리는 못 받아요. 연차휴가도 신규 입사자처럼 1년에 최대 11일부터 시작하죠.

고용을 안정시키려고 신규채용 평가 때 영어회화전문강사로 일한 경력 점수를 높이는 방향으로 점수표를 조정했어요. 원래는 교육경력(사교육 등 영어교육에 종사한 경력) 점수만 있었는데요. 교육청과 꾸준히 면담하고, 다른 지역도 이 점수를 높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서 올해부터 영어회화전문강사 경력도 평가에 반영돼요. 계속 요구하니까 조금씩 개선돼가고 있는데, 올해도 두세 분이 고용불안 때문에 그만뒀다고 들었어요. 고용이 안정되는 추세지만 완벽한 고용안정이라고는 볼 수 없죠.

제가 20대에 이 일을 시작했지만 40대가 됐고, 다른 선생님들도 연배가 높아졌죠. 대부분 10년 이상 일하다 보니 교장, 교감 선생님들과 비슷한 연령대의 영어회화전문강사 선생님들도 계세요. 교원들도 새로 들어와서 우리를 평가하는 선생님 중 젊은 분들이 많아요. 그 앞에서 시연하고 평가받다 보니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요. 나름 영어 전문가로서 10년 이상 근무했는데요. 신규채용할 때마다, 나보다 어리거나 얼마 전까지는 같이 일한 동료 앞에서 시연해야 하니 심적으로 어렵더라고요. 젊을 때는 '평가받고 넘어가지'라고 생각했는데,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다 보니 달라져요(웃음)."

초중등교육법 제22조는 교육에 필요하면 교원 외의 강사가 교육을 담당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영어회화전문강사가 이에 해당한다. 같은 법 시행령으로 그 기준 등을 자세히 정해놓고 있는데, 시행령 제42조 제5항에 '영어회화전문강사를 기간을 정하여 임용할 때 그 기간은 1년 이내로 하되, 필요한 경우 계속 근무한 기간이 4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그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라고 돼 있다.

이 부분이 영어회화전문강사가 무기계약이 되지 못하는 걸림돌이다. 기간제 노동자는 2년 이상 같은 일을 하면 무기계약으로 간주하지만, 위의 조항이 영어회화전문강사를 무기계약으로 간주하는 데 예외 사유가 돼서 고용불안으로 이어진다.
 
영어회화전문강사 결의대회에 참가한 전남 지역의 선생님들. 전국교육공무직본부는 영어회화전문강사의 고용안정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영어회화전문강사 결의대회에 참가한 전남 지역의 선생님들. 전국교육공무직본부는 영어회화전문강사의 고용안정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 신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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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청 앞에서 고용안정을 촉구하는 피켓팅을 자주 하시는 거로 압니다. 고용불안을 해결하라는 말 중에는 '교육감이 사용자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첫 채용 당시에는 채용 주체가 교육부였어요. 당시 이명박 정부에서요. 한시적인 사업이라고는 했지만 언제 끝날 거라는 것을 정확히 명시하지는 않았어요. 정년도 62세로 정해졌었고요. 당시 정년을 생각하고 오신 분들도 있어요. 분명히, 나중에 근무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있었죠. 빈자리가 나면 더 채용하겠다는 말도 들었고요.

첫 공채시험은 교육청에서 주관했고, 교육감이 명시한 절차대로 채용됐어요. 그런데 어느샌가 계약직이고, 채용할 때도 학교장이 내부 기안을 잡고, 그 절차대로 움직여요. 매년 학교장의 취향대로 평가받다 보니 예민해질 수밖에 없더라고요. 계약서는 학교장과 쓰고 갱신하지만, 정작 임금은 교육청에서 내려줘요. 학교를 통해서 제게 오죠.

즉 교육감이 채용했으니 책임지라는 거죠. 교육감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의미죠. 더구나 이제는 각 교육청이 영어회화전문강사 예산을 100% 책임지고 있어요. 교육부가 교육청에 일정 비율로 특별교부금을 내려줬는데, 2023년부터는 그게 없어졌어요. 아무래도 교육감이 저희를 판단할 수 있는 여지가 더 커진 거죠."

다른 교육공무직도 처음에는 학교장과 매년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학교는 교육청이 관할하며, 교장은 그 안에서의 장일 뿐이다. 그러므로 교육공무직의 사용자는 교육청이 되며, 이러한 논리로 교육공무직이 교육감 직고용으로 전환됐다.

영어회화전문강사도 마찬가지다. 학교장과 근로계약을 맺으나 임금은 모두 교육청에서 나오며, 10년 넘게 근무한 사람들이 많다. 시작은 한시적이었을지 모르나, 사업이 10년 넘게 계속되는데 한시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이들이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다음 편에서 계속된다.

덧붙이는 글 | <노동과세계>에도 게재됩니다.


태그:#교육공무직, #영어회화전문강사, #고용불안, #비정규직, #영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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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교육선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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