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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 총량이 정해진 권리에 대한 경쟁이라고 여긴다면, 누군가의 평등이 나에게는 불평등인 것처럼 느끼게 된다. 사실은 상대가 평등해지면 곧 나도 평등해지는 것이 더 논리적인 추론인데도 말이다. 코로나는 우리의 시간을 더 많이 불평등하게 만들었다.

당시 나는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학원 문은 열어두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학원생은 오지 않았다. 영어 강사와 둘이 앉아 있으니 마음은 허망하고 삶에 대한 무기력증에 빠지게 될 것 같아 무언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배울까? 무엇을 하고 싶어 했을까? 생각을 했다.

평소 따뜻하고 부드러운 분위기의 인테리어를 좋아한다. 식물을 조합하면 배경에 녹아 서로를 돋보이게 하면서 한층 매력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몇 개의 화분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도 너무 좋다.

행잉식물(벽걸이 식물)은 커튼레일을 몇 개 남겨 창가에 매달아도 좋고, 길게 자란 스킨다비스는 잘라서 유리 용기에 꽂아두어도 투명감과 경쾌함을 느낄 수 있다. 생명력이 강한 덩굴성 식물도 너무 좋다. '그래! 이거다'라고 생각하며 선택한 것이 테라리엄 공부다.

"정님아, 이러다가 우리가 무기력해서 죽겠다. 언니랑 같이 식물 공부하러 갈까?"
 

무심하고 진지하게 말했다. 그렇게 우리의 테라리엄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테라리엄은 라틴어 Terra (흙, 땅)와 Arium (용기, 방)의 합성어로 투명한 용기 속에 작은 정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실내에서 유리그릇이나 아가리가 작은 유리병 따위의 단에 작은 식물을 재배하는 것을 말한다(작은 동물을 키우기도 하는데, 필자는 식물만 키웠다). 식물은 광합성을 하기에 빛이 필요하며 실내 빛이나 등을 켜놓고 키운다.

밀폐 형태 또는 개방 형태의 용기 안에 토양과 자갈, 식물, 장식 도구 등을 이용해서 작은 생태계를 만들어서 관상하는 것이 특징이다. 테라리엄에는 유리용기의 밀폐 여부에 따라서 습기에 강한 식물과 건조에 강한 식물 등을 심을 수 있으며, 생육조건에 따라 파충류나 양서류를 넣을 수도 있다.

힘이 나기 시작했다. 블로그나 인스타에 기반을 둔 정보가 정말 요긴하게 쓰일 때가 많다. 며칠 동안 블로그와 인스타를 뒤지며 내가 배울 장소를 물색했다. 처음에 테라리엄을 알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식물 분갈이를 직접 하고 싶어 시작한 배움은 결국 판이 커지고 일이 커졌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 잘한 일인 것 같다.

'원데이로 수업을 배워보자. 그리고 테라리엄을 계속할 것인지를 생각해보자.'

경남 창원시 성신구 외동반림로 270-1. 가로수길 남산교회에서 하천 방향으로 내려와 세 골목 건너면 SNS 검색으로 알게 된 식물 카페가 보인다. 가로수길이라고 부르는 그곳은 가로수가 참 많았다. 식물을 키우는 카페인데도 지하에 있었다. 식물은 키우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잘 자라고 있는 식물에 감탄했다.

매장 테이블에도 식물이 올려져 있고 구석구석 식물이 많아서 앉아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주인이 몬스테라를 좋아하는지 종류별로 있었고 행잉식물도 다양하게 걸려 있었다. 그런데 찾아보니 이곳에는 식물 심기 원데이 과정이 없었다. 원데이를 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선생님, 죄송한데요. 원데이 수업을 신청하고 싶은데 반 하나 만들어주시면 안 됩니까? 저 포함 3명이에요."
"그럼 5명 되면 반 열어볼게요."


며칠 뒤 전화가 왔다.

"6명이 모였어요. 덕분에 원데이 클래스를 열어봅니다."

이렇게 해서 나, 정하, 정님이랑 함께 테라리엄 수업을 시작했다. 뒷자리가 불편한 내 차보다는 비교적 큰 남편 차를 끌고 창원으로 갔다. 그렇게 시작된 창원행이 그 여름 지치지 않고 계속 가게 될 줄 우리는 알지 못했다.

2020년 5월 30일, 식물 키우기 기본 이론 수업 후, 간단하게 티타임을 가지고 '마다가스카르재스민'을 심었다. 수업이 끝나고 몇 개의 화분과 행잉식물을 사서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거기서 진행되는 수업 중 테라리엄 자격증 수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듣기로 마음먹었다.

테라리엄은 정확히 말해 '테라리엄으로 만들어진 화분 속 식물'이다. 미세먼지와 각종 대기오염으로부터 집안 공기를 정화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작은 정원, 화분으로 집안 인테리어를 따뜻하게 꾸밀 수 있어 좋다. 심장이 뛰는 공부였다.

먼저 한국테라리엄협회에서 발행한 <테라리엄 1, 2급 지도사 필기 교본>으로 이론 수업을 들었다. 테라리엄의 개념과 원리, 전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관련 지식 및 제작 기법 이론과 만드는 방법, 디자인, 재료별 사용 방법을 체계적으로 배웠다. 또한 기초 이론과 함께 기술, 작품의 구도 비율, 질감, 색감, 돌의 레이아웃 등을 배웠다.

이론 수업을 마치고 실기를 시작하면서 선생님이 맨 먼저 강조하면서 보여준 것이 이끼였다. 이끼는 원래 물기가 많은 곳에 나는 푸른 때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바위나 나무, 작은 식물 등에 달라붙어 사는 식물 전체를 부르는 용어가 되었다, 이끼는 원시 식물이라 꽃이 피지 않고 뿌리와 줄기, 잎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다.

뿌리는 헛뿌리로 몸을 지지하는 역할만 하고, 관다발도 발달하지 않아 물과 영양분을 온몸으로 흡수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이끼는 크게 자라지 않고 1~10cm 정도로 키가 작다. 또한 엽록체를 가지고 있어서 햇빛을 이용해 광합성을 할 수 있는 녹색식물이다.

이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흙이 무너지거나 공사 등으로 맨땅이 드러나 식물이 전혀 없는 곳에 맨 먼저 정착하여 다른 생물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이끼가 자라면서 생긴 부식토 (썩은 흙) 덕분에 다른 식물이 뿌리를 내릴 수 있고, 이끼 스스로가 작은 동물에게는 안식처와 음식물이 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이끼가 생태계를 형성하는 것부터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여러 번 말해도 지겹지 않은 '이끼의 중요성'이다. 선생님은 건 이끼를 우리에게 주었는데 신기하게도 물에 담가 놓으니 거짓말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이끼'가 되었다. 건 이끼는 말 그대로 건조해 놓은 이끼인데 물에 불리니 생물 이끼가 되는 놀라운 변화를 일으켰다.

고목이나 바위, 습지에 사는 이끼를 살포시 혹은 뚝 떼어놔서 차곡차곡 쟁여 말리면 그대로 죽지 않고 미라가 된다. 잎과 줄기의 구별도 분명하지 않고, 관다발도 없는 녀석의 놀라운 반전이었다.

2급 과정에서 밀폐형 이끼 테라리엄, 사막 식물 테라리엄, 석조 레이아웃 테라리엄, 펜타곤 테라리엄, 해변 테라리엄 과정을 배웠다. 1급 과정에서는 직사각테라리엄, 폭포 물 표현 테라리엄, 해변 물 표현 테라리엄, 그리고 자신 있었던 포레스트 플랜츠 테라리엄 과정을 배웠다. 포레스트 플랜츠는 돌계단을 이용하는데 이끼와 돌계단 그리고 식물이 어우러져 말 그대로 작은 숲속 같은 느낌이 들었다.

폭포 물 표현과 해변 물 표현 테라리엄 과정을 배울 땐 정말 신이 났다. 내 눈에도 진짜 물 같았다. 크리스털 레진이라는 화합물을 쓰는 작업이었는데 잘못하면 식물이 죽는 대참사가 일어나기도 하니 여간 조심스러운 작업이 아니었다. 하지만 레진의 특성상 경화될수록 투명도가 높아져서 바닥재의 흙들이 잘 보여 점점 해변을 닮아갔다.

파도와 폭포는 정말 근사했는데, 그것을 해낸 나 자신이 자랑스러워 마음속으로 으쓱했던 기억도 난다. 가드닝 숍을 운영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아직도 그냥 마음속에 굴뚝만 남는 채로 지나가는 세월만 아쉬워 하고 있다. 깨알같이 귀여운(유럽산이라고 했다) 피규어로 장식하는 재미도 남달랐다.

해변 물 표현 테라리엄을 할 때 남편을 닮은 피규어를 꽂아 주어 그에게 기쁨을 주기도 했다. 나를 닮은 피규어를 골라서 사용하는 작은 재미도 삶에 대한 활력소가 분명했다.

동생과 나는 고등학교 출강 수업이나 방과 후 강사로도 활동할 수 있다. 거기서 만났던 가드닝 숍 동생과 선생님, 공무원이던 지은씨 다들 수업이 끝나고도 창원에서 만나서 식물 사고 밥 먹고 차 마셨던 그 시간이 참 소중하다.

그때 사 온 식물은 아직도 우리 집 실내에서 정글을 이루며 잘살고 있다. 나도 선생님을 닮아서 식물을 아주 잘 키운다. 분갈이가 무서워서 작은 화분으로 그냥 자라게 했던 식물은 이제 더 큰 화분으로 이주시키기도 하고, 몬스테라는 분양도 해주고 수경재배도 하고 있다.

코로나 먹구름 속에서 누구나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나와 같은 자영업자가 직격탄을 맞았다. 하지만, 사업이 침체했다고 마음마저 침체해서는 안 되었다. 위기는 기회다. 학원 운영이 어려워 수입이 줄어드는 대신 평소 가지지 못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난 그 위기를 테라리엄 수업으로 극복했다.

그 위기는 나에게 케렌시아라는 힐링의 공간과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우리 집 실내는 나의 케렌시아로 남았다.

태그:#테라리엄, #식물키우기, #성장하는어른, #또다른직업탐색, #실내식물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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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교육학을 공부했고 교육정책과 다문화전공에 대학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책읽기를 좋아하고 문구에 관심이 많습니다. 책읽기를 즐기고 제가 배웠던 일들에 대해 긴 글을 써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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