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시민기자들이 '점심시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얼마 전 아는 선배와 식당에 갔을 때였다. 메뉴판을 달라고 했더니 테이블 옆에 붙어 있는 작은 화면을 가리키며, 태블릿 화면을 통해 메뉴를 고르고 주문을 하면 된다고 했다.

메뉴판이자 주문까지 함께 할 수 있는 그 태블릿은 테이블 옆 벽 쪽에 고정 형태로 세워져 있었는데, 선배랑 둘이 갔기에 망정이지, 만약 더 많은 인원이 갔더라면 메뉴판 내용을 사진 찍어서 공유하거나 일일이 설명을 해줘야 할 판이었다. 곧 노안이 오려는지 작은 글씨가 잘 안 보이기 시작한 40대 중반의 우리는 미간을 찌푸리며 메뉴판 글씨들을 읽으려고 노력해야 했다.

기계가 차지한 식당

우여곡절 끝에 주문을 했지만, 메뉴판에 메뉴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아서 서빙 하시는 분을 두 번은 더 불러 이것저것 물어보고 나서야 겨우 메뉴 주문을 완료할 수 있었다.

함께 간 선배는 음료로 하이볼을 선택했는데, 하이볼에는 토닉워터가 들어가는지 일반 탄산수가 들어가는지 궁금해서 다시 서버를 불러야 했다. 선배가 원한 건 탄산수가 들어간 깔끔한 맛의 하이볼이었기에 토닉워터로 만든 하이볼만 제공된다는 이야기에 주문을 변경해야 했다.
 
한 음식점에 설치된 키오스크.
 한 음식점에 설치된 키오스크.
ⓒ 최은경

관련사진보기

 
처음부터 서빙 하시는 분께 메뉴에 관해서 이것 저것 물어보고 시킬 수 있었다면 한 번에 주문을 완료할 수 있었을 것을, 태블릿으로 주문을 하다 보니 주문 하다가 막히면 또 서버 분을 청하고, 막히면 또 서버 분을 청해야 했다. 분명 편리함을 위해서 도입한 태블릿 주문 방식일텐데 번거롭기가 그지 없었다.

맛있게 식사를 하다가 추가로 메뉴를 시키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태블릿이 먹통이다. 처음 주문하려고 했던 메뉴가 "주문할 수 없는 메뉴입니다"라고 에러 메시지가 떠서 서버에게 물어보니 아마 재료가 다 나가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그 메뉴 외에 다른 메뉴들도 다 에러 메시지가 떠서 다시 불러서 물어보니 메뉴 서비스에 오류가 있는 것 같다며 수기로 메뉴를 받아 적어 갔다.

얼마전 쿠팡 물류 센터 내에 로켓 배송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인공지능 로봇 군단 소식을 기사로 접했다. 그 커다란 물류 창고 내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로봇들은 가히 장관이었다.

쿠팡을 비롯한 다른 새벽 배송이 가능한 업체들은 대체 어떻게 이렇게 빠른 배송이 가능한 걸까? 하고 늘 궁금하던 터였다. 사실을 확인하고 나니, 내가 4차산업혁명 시대에, 로봇들의 도움을 실제로 받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게 실감났다.

그 로봇들 덕분에 나는 집에서 저녁 늦은 시간에 내일 아침 마실 우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도 옷을 입고 집 앞 슈퍼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 다음 날 아이 학교 준비물을 준비하지 못한 것을 알아도 당황하지 않고 앱으로 주문을 할 수가 있다. 왠만한 물건들은 새벽 배송 혹은 다음날 배송이 가능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로봇이 서빙해 준 해물 파전. 뜨겁고 무거운 음식도 잘 가져다주긴 하지만.
 로봇이 서빙해 준 해물 파전. 뜨겁고 무거운 음식도 잘 가져다주긴 하지만.
ⓒ 최은경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사람을 대면해야 하는 서비스는 아직 로봇이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지난 제주 여행에서 로봇 서버가 음식을 서빙 하는 식당에 갔다. 로봇 서버가 서빙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간 건 아니고, 맛집이라기에 갔는데, 가서 보니 주문도 태블릿으로 직접 하고, 음식도 로봇이 가져다 주었다.

단무지나 김치 등의 기본 찬을 요청할 때는 따로 사람 서버를 불러야 했다. 뜨겁고 무거운 음식 그릇을 사람이 나르다가 데이거나 다치는 사고도 일어나기 때문에 분명 종업원의 입장에서는 좋을 수도 있겠다(물론 로봇 서버에게 일자리 자체를 빼앗길 수도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갈수록 그리워지는 사람 냄새

식당 사장님 입장에서는 로봇 서버를 들이면 초기 비용이 조금 더 들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인건비도 줄이고,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 나오거나 그만두는 일 없는 로봇 서버가 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손님 입장이 되어 보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사람 서버에게라면 메뉴 관련해서 이것저것 물어볼 수도 있고, 반찬 리필이나 물을 더 달라고 하는 등의 요청을 편하게 할 수 있을 터인데... 로봇은 말이 안 통하니 답답했다.

게다가 로봇 서버를 쓰면서 인력을 줄여서인지 불러도 올 사람이 적은 것도 문제였다. 서빙은 로봇이 도와주지만 손님들의 자잘한 요구 사항은 서버 한 명이 동분서주하면서 처리하는지라 간단한 요청은 미안해서 말을 삼키기도 했다.

챗GPT가 등장해서 글짓기도 해주고 코딩도 해주고 내가 물어보는 것에 대해서 대답도 해주는 시대가 왔다고 하지만, 나는 아직도 식당만큼은 사람 냄새 나는 곳이 좋다.

"이모~" 혹은 "사장님~"을 불러서 메뉴 주문도 하고, 단골집이라면 "날씨가 어떻니, 요즘 경제가 어떻니" 하는 시시껄렁한 이야기도 때로는 주고 받으면서 "와, 오늘은 진짜 국물이 끝내주네요!"라거나 "서비스로 만두 두 개 더 넣었어~"라는 말이 오가는 그런 식당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저의 개인 SNS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시민기자들이 '점심시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씁니다.
태그:#우리들의점심시간, #로봇서버 , #태블릿주문
댓글1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