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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지 3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낮은 곳에 작게 피어 아름다운 <희망의 노래 꽃다지>의 노래를 오랜만에 모두 들어보았다. 듣고 있다 보니 그 노래들을 벗 삼아 내가 건너온 청춘의 시간이 생생히 떠올라 눈물겹다.

때론 기운이 되어주고, 때론 위로가 되어주던 노래들. 그때그때 그 노래들을 함께 부르던 벗들 중엔 소식이 끊기거나 저 하늘로 훌쩍 먼저 떠나간 이들도 있긴 하지만, '꽃다지'의 노래들은 여전히 남아 "언제라도 지치고 힘들 때면 내게 전화를 하라"던 <전화카드 한 장>의 그 마음 그대로 남아 나를 껴안아 준다.

특히 아직도 남아 '꽃다지'를 지키고 있는 정윤경, 민정연, 정혜윤 세 벗을 떠올릴 때면 내가 그간 지나온 외롭고 힘겨웠던 시간을 다시 만나는 듯 눈물겹기도 하다. 때론 그들이 어떤 성직자들 같다는 생각에 옷깃이 여미어지기도 한다. 생각하면 난 교회나 성당에 가서 찬송가를 부르는 대신 그들의 노래를 따라 불러왔다. 절에 가서 반야심경을 암송하는 대신 그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마음을 비우고, 위로받으며 기운을 차려 왔다. 난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고해성사를 해온 오랜 신자였던 셈이다.

허름한 지하에서 이십여 년 버텨

그들이 31년 만에 후원의 날을 한다고 한다. 그간 얼마나 힘들게 버텨 온 것일까. 작은 공연비 등을 모아 각자 나눠 갖는 월 상근비 50만 원을 월 70만 원으로 올린 게 2015년경이었던 것으로 안다. 얼마나 힘겨웠을까.

그들은 여전히 구로역 길 건너편 오래된 건물 지하에서 살고 있다. 내가 구로공단(현 가산디지털산업단지) 인근에서 활동하며 <진보 생활문예지 삶이 보이는 창>(현 <삶창>)을 만들던 시절, 함께 어울려 살자 했던 인연이 되어 이십여 년 전 이사 왔던 그곳이다. 함께 어울려 살자 했던 우리는 또 어디론가 떠나왔는데 그들이 그 허름한 지하에서 이십여 년을 버텨왔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미안해진다.

후원의 날 행사는 얼마 전 '1100만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과 세종호텔 노조 해고자들 후원의 날이 열렸던 서울 남영역 1번 출구 앞 호프집 '슘'에서 한다. 2010년 기륭전자 비정규직 마지막 투쟁을 결의하고 투쟁기금 마련의 날을 했던 곳이다. 그 후 13년 동안 참 많은 후원의 날들이 그곳에서 있었다. 우리는 투쟁의 현장만이 아니라 후원의 날 장소마저도 공유해 왔구나 하는 괜한 생각. 다른 이들은 다른 장소를 공유해 왔겠지. 국회라든가, 청와대라든가,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 같은 곳을.

그러나 그런 곳이 아니었다고 해서 무슨 후회나 미련은 없다.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 꽃다지가 불러주었던 노래 제목처럼 내가 스스로 선택해 온 길이기에 남아 있는 우리 모두 잘 살아왔다. "한땐 나와 나의 동료들은 / 거친 세상에 맞서 싸우던 사람들의 / 분노가 되고 희망이 되어 / 거리에서 온 땅으로 그들과 함께했지 / … / 비록 미친 세월에 묻혀 사라진다 해도 / 다시 한번 그대 가슴을 펴고 불러 준다면 / 끝까지 함께 할 테요"(<노래의 꿈> 중에서)라는 마음으로 거리의 삶을 지켜 왔다.

군홧발의 시대는 끝났다 한다 / 폭력의 시대도 끝났다 한다 / 시대에 역행하는 투쟁의 깃발은 이젠 내리라 한다 / … / 무한경쟁의 시대가 도래했다 / 세계화의 전사가 되란다 / 살아남으려면 너희들 스스로 무장을 갖추라 한다 / … / 너희들이 만든 그 모든 전쟁에서 / 승전국의 병사들과 패전국의 병사들은 / 너희가 만든 그 더러운 싸움에서 무엇을 얻었나 / 죽어야만 얻을 수 있는 영예를 얻었고 / 다쳐야만 얻을 수 있는 명예도 얻었지 / 폐품이 될 때까지 일할 수 있는 그 고마운 자유도 얻었지(<시대> 중에서)

그러나 "허나 어쩌랴 이토록 생기발랄하고 화려한 이 땅에서 / 아직 못다한 반란이 가슴에 남아 자꾸 불거지는 것을"(<시대> 중에서) 차디찬 겨울 거리를 행진해 가면서 앞선 방송 차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들을 들을 때마다 인생이 참 꿈결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허나 어쩌랴" 이것이 내가 선택한 길이니 이 거리에서 소리 없이 스러지더라도 아쉬워 말아야겠지. "지금 저들이 만든 저들만의 화려한 축제 뒤에서 / 누가 직장을 잃고 거리를 떠돌고 있는지 / 어떻게 살아 나갈지 막막해 눈물짓는지 / 아직 부족해서라는 말은 말아요 / 아직 때가 아니라서라는 말은 말아요"(<착한 사람들에게>)라고 소리치고 싶을 때가 참 많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묵묵히 걷는 일이 할 수 있는 일의 다 일 때가 많았다.

그렇게 나는, 우리는 그간 '열여덟 장의 음반'을 내준 꽃다지의 노래와 함께 온갖 왜곡과 모욕을 덮어쓰면서도 성장해왔다. 전노협을 거쳐 민주노총의 시대를 맞이한 지도 오래되었다. 기름밥 신세로 천대받던 '철의 노동자'들이 노동운동의 성장을 따라 정규직 고임금 귀족 노동자(?)들로 호명된 지도 오래되었다.

꽃다지의 노래를 따라 부르던 이들이 여러 차례 집권당과 정부의 핵심들이 되기도 했다. 관의 공적기금을 받거나 기업들의 사회공원기금 등을 받아 이제는 조금은 넉넉하게 활동하는 NGO도 많아졌다.

그러나 꽃다지의 살림은 그대로다. 최저생계비의 반에 반의반도 안 되는 활동비를 받으며 30여 년을 활동하고 있다. '바보들'이 아니라 여전한 이 시대의 '소금이며 밀알'들이다. '전사들이며 투사들'이라는 말은 그들이 원치 않을 테니 차마 하지 않는다. 모든 걸 화폐의 양과 권력의 정도로 환산하는 이 시대임을 모르지 않지만 지금도 주눅 들지 않는다. 꺾이지 않았고 비굴하지 않았다. 타협하지 않았다.
 
2013년 홍대 상상마당에서 열린 꽃다지 공연 모습
 2013년 홍대 상상마당에서 열린 꽃다지 공연 모습
ⓒ 꽃다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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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이름 모를 노동자 민중, 시민들이 싸우는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다. 이번 달에도 22일엔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수요문화제가 열리는 경북 구미에 다녀와야 한다. 후원의 날이 열리는 25일 낮에는 민주노총 결의대회에 다녀와야 한다.

그들이 꼭 가지 않아도 지난 30여 년 그들의 노래는 전국의 노동자 민중들이 싸우거나 모이는 현장에서 끊임없이 틀어지고 불렸다. 한잔 술 나누는 뒤풀이에서는 더 많이 불렸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상업적 개념의 저작권료 같은 것도 원하지 않았다.

가끔 불온한 생각으로 민주노총이 자본이 그간 떼어먹은 통상임금 소송 등을 하듯이 꽃다지를 비롯한 민중가수들이 그동안 받지 못한 저작권료 소송을 하게 되면 어찌 될까 재미있는 생각을 해볼 때도 있었다. 동지를 함께 지켜나가지 않는 운동이 괘씸할 때, 자신들을 위해 헌신하는 변혁적 문화 진영을 함께 지켜나가지 않고 거기에 헌신하는 동지들을 함부로 취급하는 조합주의, 개량주의 운동들의 민낯들을 볼 때면 특히 그랬다.

헌신만을 요구... 부끄럽다

생각하니 30여 년 상근비 한 푼 받지 않고 활동해 온 가난한 살림이었지만, 꽃다지를 함께 지키는 '꽃사람 CMS'는 꼬박 20여 년을 내온 듯하다. 행복한 생각이지만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인당 월 5백 원씩을 내줘서 그것으로 노동문화운동기금을 만드는 상상을 해보곤 했다. '함께 살자'고 쌍용차 정리해고 반대 투쟁을 할 때, '함께 웃으면서 끝까지 투쟁!'이라는 구호로 모든 자리를 마치던 희망버스 운동을 할 때, '기타는, 노래는 착취의 도구여서는 안된다'는 슬로건을 내 걸고 콜트콜텍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할 때, 한 번쯤은 '노동문화예술노동자'들도 '함께 좀 살자'고 외쳐보고 싶기도 했다.

그 모든 투쟁 현장에 헌신적으로 함께하고 있는 민중가수들, 파견미술인들,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가 모임'을 꾸려 '빛에 빚지다'라는 사진 달력을 매년 만들어 근 1억 넘는 투쟁기금을 모아다 주던 사진가들, 비정규직 동화책을 만들어 수익의 전액을 투쟁 기금으로 내놓던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 모임'의 아동문학가들, 지금도 힘겹게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 위해 가난한 제 호주머니들을 털어 동료 다큐-미디어 활동가들을 위로하고 지키는 기금을 만들고 있는 다큐 감독들, 또 필요하다면 북·장구 등을 들고 나서는 풍물패 등을 함께 지켜 나가는 연대 운동도 필요하다고, 너무나 절실히 지금 그것이 필요하다고 외쳐보고 싶기도 했다.

임금과 근로조건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핏줄이나 숨이나 영혼과 같은 변혁적 문화운동을 지켜나가는 것. 그것이 변혁을 꿈꾸는 이들이 해야 할 중요한 사무 중의 하나라고 얘기 전해보고 싶기도 했다. 그러지 못하고 때만 되면 또 동료 문화예술인들에게 맨몸으로 헌신하는 일만을 요구하고 요청하고 있는 내가 정말 부끄럽고 미안할 때가 많았다.

더 많은 문화예술 활동가들이 기본적인 삶을 지키며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조건과 토대는 만들지 않고 어렵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에게 밑도 끝도 없는 너무 오래되어 이제 막 탈진 직전인 짝사랑 같은 헌신만을 쉼 없이 요구하고 요청하는 건 진정한 연대가 아니라고, 이건 진정한 운동이 아니라고 반성할 때가 많았다.

언젠가는 이 반성이 반성만으로 끝나지 않게 하겠다는 마음만은 여전함을 벗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어떤 투쟁 현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평생을 그런 투쟁 현장을 좇아 자신의 삶을 헌신해 오고 있는 진보적인 문화예술운동의 현장과 동지들을 함께 지키는 일에 한 번쯤은 우리 모두가 나서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얘기 전해보고 싶다. 이런 글을 애타게 쓰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을 위해 말이다.

이렇게 겸연쩍은 넋두리를 하고 있는 나를 위로해 주는 꽃다지의 노래 한 곡을 더 들으며 글을 마칠까 한다. "허나, 친구여! 서러워 말아라"라고 십수 년 나약하고 상한 내 영혼을 달래주던 꽃다지의 <당부>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인간이 인간으로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그런 세상을 향해 함께 했"던 우리의 시간을 잊지 말자고.

정윤경과 정혜윤이 끝까지 남아 불러주던 노래, 민정연이 끝까지 붙들고 있는 그 노래, 그들, 꽃다지의 노래를 기억하고 있는 많은 이들이 3월 25일 그날만큼은 함께 모여, 그들에게 수고했고, 고마웠다는 말 한 마디씩을 건네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앞으로 몇 년은 차비 걱정, 반찬 걱정, 소주 한 잔 값 걱정 정도는 하지 말고 살아보라고 응원해 줬으면 참 좋겠다.

어이, 친구여! "젊음은 흘러가고 우리 점점 늙어간다 해도 / 우리 가슴 속 깊이 서려있는 노랜 잊지 말게."(<당부> 중에서)

- 송경동(시인)
 

우리가 지금보다 더 젊었을 때 그때엔 보다 더 먼 곳을 바라보며 함께 했지
인간이 인간으로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그런 세상을 향해 함께 했지

허나 젊음만으론 어쩔 수 없는 분노하는 것만으론 어쩔 수 없는
생각했던 것보단 더 단단하고 복잡한 세상 앞에서 우린 무너졌지

이리로 저리로 불안한 미래를 향해 떠나갔고
손에 잡힐 것 같던 그 모든 꿈들도 음~ 떠나갔지

허나 친구여! 서러워 말아라.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아직 많으니
후회도 말아라 친구여 다시 돌아간대도 우린 그 자리에서 만날 것을

젊음은 흘러가도 우리 점점 늙어간다 해도
우리 가슴 속 깊이 서려있는 노랜 잊지 말게 노랜 잊지 말게
- 희망의 노래 꽃다지 <당부> 전문

덧붙이는 글 | ○ 2023년 3월 25일(토) 15시~23시 / ZUM 슘 호프(1호선 남영역 1번 출구)
○ 후원계좌 : 우리은행 1005-901-909245 희망의노래꽃다지
○ 온라인 티켓 구입하기 : bit.ly/꽃다지후원주점티켓구입
○ 문의 : 꽃다지 010-4190-6600 / 유흥희(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 010-7355-9826) / 김소연(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010-6317-3460) / 이사라(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010-7277-3719)

■ CMS ‘꽃사람’ 신청
https://v3.ngocms.co.kr/system/member_signup/join_option_select_03.html?id=hvasong3


태그:#다지, #희망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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