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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 시민기자들이 일상 속에서 도전하고, 질문하고, 경험하는 일을 나눕니다.[편집자말]
지난 17일 떨리는 마음을 안고 학부모 총회를 다녀왔다. 강당에서의 교육활동설명회와 학부모회 총회 그리고 교실에서 담임선생님과의 대화까지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터였다.

그즈음 담임선생님께서는 '학부모 상담주간'과 관련한 가정통신문을 배부해 주셨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었다. 안내문구에는 '상담 방법 : 대면 또는 전화'였지만 상담요청시간 기재란에는 '전화상담 : 3월 (    )일 (     )시 (     )분'으로 되어 있었다.

나는 '되도록 전화상담을 해달라'는 무언의 신호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편히 상담할 수 있는 요일과 시간으로 기재해서 아이를 통해 회신했다. 이후 새롭게 배부된 학부모 상담주간 안내지를 받고 조금 당황스러웠다. 나의 상담 시간이 '2시 00분~2시 10분'으로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10분? 내 아이의 학교생활에 대해 궁금한 것도 많고 엄마인 내가 알려드릴 것도 있는데 10분 안에 가능할까? 이 짧은 시간 안에 제대로 된 상담을 할 수 있을지 걱정부터 드는 나였다.

학기 초 담임선생님이 얼마나 바쁜지는 잘 안다. 올해 나는 휴직을 했지만 복직한 남편이 담임교사로서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기에 상담 시간과 관련한 고충을 모르는 학부모가 아니다. 바쁘신 건 알지만 학부모로서 내 아이에 대한 상담 시간이 10분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것은 달갑지 않았다.

나는 믿고 싶었다. 이 10분은 그저 형식에 불과할 거라고. 실제로는 '10분은 넘게 하시겠지?'라는 기대를 품었다. 상담 시간이 안내되어 있는 종이 여백에는 선생님께 여쭈어 보고 싶은 내용 서너 가지, 그리고 내가 담임선생님께 꼭 알려드리고 싶은 아이의 특성 한 가지를 번호를 매겨가며 꼼꼼하게 메모해 두었다.

대망의 전화 상담일.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시간을 보니 상담 시작 시간보다 3분 빠른 1시 57분이었다. 담임선생님은 결코 느리지 않은 속도로 그리고 상냥한 목소리로 나에게 첫인사를 건네셨다. 교실에서 미리 뵙고 인사를 드린 적이 있는 터라 담임선생님이 조금은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선생님은 본격적인 상담을 시작할 즈음, 아직 3월이고 아이들에 대해 하나하나 파악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엄마인 나를 통해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고 하셨다. 순간 '저는 선생님의 이야기가 더 듣고 싶어요. 아이가 학교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 정말 궁금해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는 내 모습이 보였다.
학기 초 담임선생님은 20~30명의 아이들을 보살핀다.
 학기 초 담임선생님은 20~30명의 아이들을 보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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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전개되는 상담 속에서 선생님의 아이의 건강상의 특이점이 있는지 물으셨고, 나와 아이의 상황에 대해 따뜻하게 위로해 주셨다. 이때부터였다. 나는 내 이야기보다는 담임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들을 더 귀담아듣게 된 것은.

선생님의 응원과 위로가 10분이란 짧은 상담 시간으로 굳어진 내 마음을 스르르 녹여주신 것이다. 선생님이 상담 도입부에 하셨던 '어머니가 아이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면 좋겠어요' 했던 그 말씀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학기 초 담임선생님은 20~30명의 아이들을 보살핀다. 더구나 초등학교 1학년은 막 유치원에서 올라온 아이들이기에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칠게 많아도 너무 많다. 손이 정말 많이 가는 아이들을 돌보시며 교실 내 질서를 하나 하나 만들어가는 중인 거다. 그래서 아직은 아이 한 명 한 명 세세히 들여다보고 부모님들께 피드백 해주실 여유까지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성격적 특성을 말씀드리고 아이가 학교에 가는 것을 매우 즐거워하며 이게 다 선생님 덕분이라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렸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전화기를 더 붙들고 싶었지만 어느새 2시 10분이 다 되어 갔다. 나는 통화를 마치기 전에 꼭 묻고 싶은 질문 한 가지를 했다.

"선생님!!!! 그런데 제가 아이의 학교 적응을 위해 집에서 도울 부분이 있을까요?"

사실은 나는 아이의 교우 관계에 대한 걱정이 크다. 5살 때 이사를 오면서부터 새로운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근 1년간 아이는 유치원에서 겉돌았다. 날이면 날마다 등원을 거부하고 주말이면 유치원이 싫다는 말을 입이 닳도록 했던 아이다. 친구들과 관계맺기를 어려워하는 딸을 지켜보는 엄마인 내 마음은 점점 시커매지는 날이 많았다. 

이 걱정은 학교를 가는 딸아이를 바라보는 내내 가시질 않았다. 오늘은 누구랑 이야기를 했는지, 어떤 친구와 쉬는 시간을 보냈는지, 친구를 사귈 수는 있겠는지 매일 매일 아이 눈치를 보며 조심조심 애둘러 물어봤다. 그래서 더 선생님께 묻고 싶었고 선생님을 통해 아이의 교실 내 모습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은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내 말을 들으시고 나서 답을 주셨다.

"어머니 지금은 아이의 교우 관계가 중요하지 않아요. 그리고 학습에 신경 쓸 때도 아닙니다. 오로지 건강하게 학교에 잘 적응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아프지 않도록 저녁시간 그리고 주말에는 푹 쉬게 해 주세요. 3월 말, 4월 초가 되면 아이들 다 한 번씩은 꼭 아프더라고요. 제가 밤에 일찍 자야 하고 푹 자라고 했다는 말씀도 전해주시면서 아이가 다음 날 건강하게 학교에 올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결코 짧지 않은 상담시간 12분 31초
▲ 첫 전화상담 결코 짧지 않은 상담시간 12분 31초
ⓒ 박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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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간단하게 그리고 핵심을 짚으며 말씀하셨다. 맞다. 그러고 보니 아이는 학교생활을 시작한 지 이제 만 3주도 채 안 되었다. 그저 눈물 없이 학교에 등교하는 것만으로도 대견하고, 학교가 재밌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때인데 이 초보 학부모는 또 과욕을 부렸다.

전화 상담 이후 담임선생님을 더 신뢰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교사인데 학교를 모르지는 않지' 하는 얕은 자존심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나보다 더 뛰어난 교육경력을 가진 선생님을 어찌 육아 초보인 내가 뛰어넘을 수 있겠는가?

어찌보면 나의 상담은 시간적으로는 짧았다고 할 수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그 누구보다 신입생의 학부모인 내게 필요한 것들이었다. 이 상담 덕에 아이의 교우관계에 대한 걱정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지금 현재 엄마인 내가 아이를 위해 신경쓸 것은 오로지 '학교 적응'이기 때문이다.

선생님께서 내 아이의 학교생활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시는 건 2학기 상담쯤엔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하며 기다리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속단하지 말자. 그리고 앞서나가지 말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와 브런치에 게재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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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학부모상담, #상담주간, #전화상담, #신입생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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