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라> 포스터 이미지

영화 <수라> 포스터 이미지 ⓒ 스튜디오 두마, 미디어나무, 스튜디오 에이드

 
자연을 정복하겠다는 오만의 흔적들
 
우리가 인류문명의 기원으로 역사 시간에 배우는 고대 4대 문명(학계에선 이미 이 시기에 이들 뿐만 아니라 10여 개의 문명권이 공존하고 있었음이 확인되지만 일반인들에겐 여전히 이 4개 문명이 각인되어 있다)은 모두 자연환경을 인간의 집단적 노력으로 극복하려는 도전의 결과물과도 같다.

이집트 문명은 나일 강의 범람을 둑과 제방으로 가능한 관리하고 고도의 측량술로 토지대장을 정리하는 데 기반을 뒀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서 그물 같은 관개수로를 통해 안정된 농사 기반을 유지하려 애썼다. 인더스 문명 역시 동명의 강에서 중동과 동일한 조건을 계획도시에 집중된 인력으로 극복하려 애썼고, 중국의 황하 문명 역시 '치산치수(治山治水)'라는 사자성어를 탄생시킬 만큼 거대한 강의 수혜는 누리면서 위험은 줄이기 위해 분투했다. 중국 상고시대를 지나 최초의 세습왕조로 문헌에 기록된 (실제 존재여부는 여전히 논쟁 중이지만) '하' 나라는 바로 요와 순 임금 시절 제방 담당자였던 '우'를 시조로 한다. 고대인들이 물을 다스리는 데 얼마나 고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는 흔히 삼국지의 주역 중 하나인 제갈공명(제갈량)을 군사전략가로 알고 있지만, 그의 진면목은 당시 천하 13주 중 실질적으로 단 1개 주를 차지하고도 삼국정립의 한 축으로 장기간 국가를 경영하는 데 성공한 국정운영 능력에 있다. 상시적인 전쟁에도 불구하고 민생을 안정시키고 작은 영토의 효율을 당시 고대국가 행정력으로는 극한에 가깝게 구현해냈는데, 다양한 산업과 무역을 개척했지만 농업 진흥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이후 2000년 내내 중국의 대표적 곡창 지대로 거듭난 익주의 생산력은 '도강언'이라는 거대한 수운 관리 시스템으로 상징된다. 양쯔 강의 지류를 대규모 노동력을 동원해 분산시켜 범람을 막고 농토에 용수를 대기 위한 아날로그 시스템의 극한이라 하겠다. 세계 곳곳에서 이런 고대인들의 지혜와 자연과의 사투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수에즈 운하는 이미 고대 이집트 시절에 존재했고, 조선 시대에도 국가예산을 책임지던 조운선 항해 난맥을 타개하기 위해 운하 굴착을 시도한 사례가 있을 정도다.
 
물론 이런 시도는 자연 파괴라기보다는 인간의 생존투쟁에 가까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근저에는 인간사회에서 권력의 정점을 차지하기 위한 과시적 욕구로 자연을 인간에 종속된 것처럼 간주하는 태도가 존재한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그런 욕망은 어느새 당연한 것처럼, 지구 전체가 오직 인간이라는 종의 소유물인 양 사고하기에 이른다. 그런 오만의 초기 형태로 기원전 480년에 그리스 도시국가와 당시 초강대국이었던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와의 2차 전쟁 시절 일화가 떠오른다. '왕 중 왕' 크세르크세스 1세는 부친 다리우스 대왕의 유언인 그리스 정복을 위해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선인 헬레스폰트(현 다르다넬즈) 해협을 넘으려 시도하지만 이 과정에서 폭풍으로 많은 피해를 입는다. '대왕'의 위세에 금이 갈 것을 염려한 크세르크세스는 군사들에게 채찍으로 바다를 벌하라 명한다. 이 기이한 퍼포먼스는 물론 보여주기에 불과했지만 자연을 인간의 발아래 무릎 꿇게 하겠다는 욕망 그 자체를 표상한다.
 
그런 맹아를 계승해 근대 산업혁명 이후 인위적으로 자연의 지형과 흐름을 끊고 교통로를 개척하거나 댐을 쌓고, 간척을 통해 인간에 의해 통제 및 관리되는 땅을 획득하는 건 국가경제와 민생복리를 위한 전 사회적 노력으로 간주되어왔다. 미국의 후버 댐과 중국의 싼샤 댐은 그 거대한 규모 탓에 지형을 바꾸고 기후까지 변화시켜버릴 정도다. 하지만 그런 대규모 토목사업이 과연 옳은 것인지 회의도 늘어가기 시작했다. 댐이 하천 생태계에 오히려 해로운 영향을 끼치고, 관개농업의 피로로 사막화가 진행되는 중동 지역의 상황은 개발이 능사가 아니며, 장구한 세월 상호보완 개념의 순환계를 완성한 자연환경 그대로를 보전하는 게 최선이라는 교훈을 제시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간의 욕망은 파괴적 개발에 끌린다.
 
나치독일의 '아틀란트로파' 몽상 닮은 새만금 간척사업
 
 영화 <수라> 스틸 이미지

영화 <수라> 스틸 이미지 ⓒ 스튜디오 두마, 미디어나무, 스튜디오 에이드

 
히틀러의 나치독일은 집권 후 국민들의 지지와 실업문제 해결을 위해 대규모 토목공사를 실시한다. 아우토반으로 상징되는 고속도로가 이때 탄생한다. 파시즘과는 전혀 무관하지만 1929년 세계 대공황의 여파에서 탈출하기 위해 대서양 건너 미국에선 뉴딜 정책과 함께 대규모 댐 건설 등 사회간접자본 정비가 이뤄지기도 했음에 주목하자.
 
나치독일 정권은 반동복고적인 체제였다. 다문화와 자유주의를 부정하고 오직 게르만 민족이 정점에 선 강한 국가만을 공허하게 외쳤다. 그러다 보니 고도로 실용적인 과학기술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 체제의 근간은 '생존권'으로 번역되는 '레벤스라움' 추구에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중 가장 참혹하고 대규모였던 독소전쟁의 목적이 바로 동유럽의 광대한 영토를 독일 생활권에 편입시키고 '열등민족'을 노예로 부리거나 시베리아로 추방하려는 의도였다. 그러한 허무맹랑한 '레벤스라움'의 연장선상에서 페이퍼 플랜으로 끝난 계획이 하나 더 있다. '아틀란트로파' 프로젝트다. 거창한 이름이지만 개념은 간단하다. 지중해 끝을 막아서 육지로 만든다는 것이다. 대서양과 연결되는 지브롤터 해협에 초대형 댐을 쌓아 지중해 수심을 200미터 낮게 만들어 거대한 새 대륙을 획득하고 여기에 농민들을 이주시키겠다는 허무맹랑한 계획이지만 의외로 장기간 진지하게 논의되었다고 한다.
 
물론 그에 들어가는 천문학적 인력과 예산, 자원 때문에 '아틀란트로파' 프로젝트는 실제 삽도 못 떠보고 끝났다. 차라리 남의 땅 빼앗는 게 더 수월하고 빠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뤄지던 계획은 2차 대전과 전후 복구 과정에서 깔끔하게 잊힌 것 같았다. 하지만 이 페이퍼 플랜에 감명을 받았는지 구소련 시절 중앙아시아 농지개척을 위해 진행된 댐 건설 여파로 아랄 해 일대가 거의 사라져버리는 파국이 터졌다. 남한 면적의 2/3가 넘는 내해 전체가 소금사막이 되어버린 것이다. 만약 '아틀란트로파'가 완성되었더라도 아름다운 지중해 파란 바다의 자리에는 염분 때문에 아무 짝에도 쓸모없을 불모지만 덩그러니 등장했을 것이란 우려가 증명된 셈이다.
 
하지만 인간의 어리석음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듯하다. 우리에겐 새만금 간척사업 프로젝트가 있기 때문이다. 1991년 시작부터 정치적 의도로 출발한 이 장대한 '뻘짓'은 처음 개시될 때 예상했던 모든 효용과 수요가 어긋났음에도 기괴하리만큼 30년 넘게 현재진행형이다. 처음엔 신군부의 연장선상이던 노태우 정부가 (자신들이 조장했던) 극심한 지역감정을 달래기 위해 개발독재 이데올로기를 지역 차원으로 부추기는 식으로 출발했다. 지역 균형개발이 아니라 수도권 중심의 불균형 발전을 고수하면서 소외된 지방에 떡고물을 나눠주는 식의 왜곡된 지역개발정책을 남발하게 된 것이다. 그중 전북지역에 배당된 몫이 바로 세계 최대 규모의 갯벌 중 하나인 서해 군산 주변 갯벌을 33킬로미터 연장선상의 둑을 쌓아 천수답 곡창을 건설하겠다는 야심찬 토목공사 계획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쌀 소비량이 줄어 수매제도도 정부가 책임지지 않으려는 요즘 현실에선 이제 아무 쓸모도 의미도 없어졌다.
 
그렇다면 천문학적 비용이 투입되는 공사를 얼른 손절하고 대안을 모색하면 될 일 아닌가 싶지만, 그럼에도 공사는 중단되지 않았다. 이미 구르는 돌처럼 목적을 상실한 사업이 계속되면서 몇 해마다 억지 개발 아이템이 등장했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끝없이 논과 밭이 펼쳐지던 청사진이 어느새 산업단지 부지 유치로 둔갑했다 또 다시 태양광 발전단지 시도로 변신했다. 그리고 이제는 지역개발 광풍의 최첨단 현재형이라 할 군산 신 공항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정작 이 황무지가 유일하게 순기능을 한 사례라면, 예산 모자란 한국 독립영화나 드라마 촬영현장을 위한 '디스토피아' 혹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즉 멸망한 세계의 초현실적 풍경 배경제공 뿐이다.
 
현대 환경운동의 출발은 아름다움 목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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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수라> 스틸 이미지 ⓒ 스튜디오 두마, 미디어나무, 스튜디오 에이드

 
현대 환경운동의 시작은 발견과 탐험의 역사와 거의 일치된다. 스쿠버다이빙을 고안한 프랑스 해양탐험가 자크 쿠스토는 그가 직접 목격한 대양과 심해의 신비에 경탄해 해양환경운동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는 프랑스 해군장교 출신이지만 조국의 해양 핵실험에 반대하며 세계를 순회할 정도로 단호하게 맞서기도 했다. 그렇게 해양보호 활동가의 1세대로 역사에 남았다. 북극점과 남극점에 최초로 도달해 불멸의 이름을 얻은 로얄 아문센은 탐험을 위한 식량으로 바다표범을 사냥하기도 했지만 대원들이 오락을 위해 사냥을 하자 크게 화를 내며 극지 동물들은 자연 그대로 살아있는 게 가장 아름다움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리고 극지방 원주민의 지혜와 절제를 배우려 애썼다.
 
인류 첫 우주인 가가린은 자신이 우주에서 목격한 지구는 푸르렀다고 감회를 밝혔다. 칼 세이건의 저서 제목이 된, 외우주 탐사선 보이저 2호가 보내온 지구의 사진 제목 '창백한 푸른 점'은 우리가 사는 행성이 거대한 우주에서 얼마나 기적적인 존재인가를 증명한다. 인간이 아직 접하지 못했던 지점에 도달한 선구자들은 또한 자신들이 최초로 목격한 자연의 경이에 감복하며 인간이 그 세계의 지극히 작은 일부이지만 '선'을 넘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전율하게 된다. 아름다운 것을 목격한 이들은 마치 마법에 빠진 것처럼 그 매혹에서 헤어나지 못할 운명에 처하고 만 것이다.
 
거창하게 우주까지 갈 것도 없다. 19세기 중반, 미국의 서부개척이 한창 진행되던 시기 중서부 미시시피 강 유역 야생의 땅에 매혹된 존 제임스 오듀본은 12년에 걸쳐 강변에 서식하는 새와 자연의 풍경을 세밀화로 기록한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고가에 거래되는 도록 <북미의 새>가 바로 그 결과물이다. 하지만 그가 스케치한 덕분에 그 존재가 겨우 확인되는, 이미 사라져버린 존재들, 즉 멸종조류들이 적지 않다. 인간에게 기록된 덕분에 존재했었다는 게 증명은 되지만 정작 그 인간 때문에 사라져버린 기구한 운명의 생물들이다. 그중 '여행비둘기(여객비둘기)'로 명명된 종은 당시 전 세계 인류가 10억이던 시절 추정개체가 50억에 달했지만 불과 반세기 만에 멸종되고 말았다. 저렇게 많이 있으니 아무리 사냥해도 괜찮겠지 하던 인간의 안일함 덕분에 멸망한 종이다. 조금만 일찍 보호했더라면 명맥은 이어갈 수 있었지만 설마하며 간과한 인류의 오만 덕분에 비극을 맞았다. 오듀본의 책에는 그런 슬픈 예감이 깃들어 있다.
 
영화 <수라>에는 오듀본이 미시시피 야생지에서 목격한 것과 같은 아름다운 존재들로 가득하다. 이미 죽음의 땅이 되었으리라 단정했던 그 땅에 인간을 피해 숨어 지내는 온갖 존재들이 환상적으로 묘사된다. 대체 어디에서 갑자기 나타났나 싶을 만큼 신비한 체험을 선사해준다. 그조차 이미 갯벌 전체가 제방에 가로막혀 상당수가 사라진 후 잔존 생물군에 불과하다. 10년 넘게 버텨내는 그 경이로운 생명력에 찬탄하면서도 과연 인간의 잔인한 무관심 앞에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목이 바짝바짝 타는 이들의 근심걱정이 화면 너머로 전달되어 온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으로 대표되는 일군의 카메라를 든 사람들은 공사현장으로 몰려가는 대신 한 사람이라도 더 이 불모지에 숨은 요정 같은 존재들을 알게 되길 갈구한다. 군산 신 공항과 미군기지 확장 등으로 간신히 버티는 잔존 생물군조차 절멸 위기에 처할 위기상황에서 감독은 간절한 마음으로 호소하기 위해 자신이 고민한 최선의 방책을 제시한다. 흔히 새만금 하면 이제 떠올리고 마는 파괴와 죽음의 이미지 대신 그 곳에 아름다운 것들이 여전히 굳세게 버티고 있음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놓지 않은 카메라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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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수라> 스틸 이미지 ⓒ 스튜디오 두마, 미디어나무, 스튜디오 에이드

 
영화는 '죽음'에서 출발해 '죽음'을 경유하며 생명의 위대함을 찬탄하려는 집요한 도전과정으로 이뤄진다. 감독은 지인들의 죽음 때문에 작업을 포기했지만 그 기억의 힘 때문에 다시 도전하고 그 길에서 새로운 지인들을 얻은 덕분에 좌절하지 않고 생명의 의지로 나아간다. 상투적인 표현이 아니다. 십여 년 전에 이미 감독은 새만금을 기록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촬영대상을 넘어 인간적인 친분을 쌓아가던 이의 죽음을 겪고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작업을 중단한다. 사실상 도망간 셈이다.
 
단지 사람의 죽음뿐만이 아니다. 수백만 년 넘게 매일 만조 때마다 두 번씩 갯벌을 채워내던 해수 유입이 차단되는 바람에 갯벌 생태계 전체의 죽음이 찾아온다. 그렇게 펼쳐진 거대한 제노사이드의 전경에 감독은 그만 말문을 잃어버린다. 감독은 그렇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란 다짐 속에 새만금을 떠났지만 무엇인가에 이끌리듯 다시 군산으로 이주한다. 지역에 자리를 잡아가던 중 필연이 우연을 매개하듯 시민생태조사단을 만나게 되면서 서랍 구석에 숨어 있던 작업이 재개, 아니 부활한다. 그렇게 감독은 잊고 있었던 '아름다운 것들'을 되찾게 된다.
 
감독은 새만금 자연보전을 주제로 한 환경 다큐멘터리라 하면 예상되는 부분을 반은 계승하고 반은 뒤엎는다. 우선 누누이 언급한 것처럼 생물학적 제노사이드 참극이 군데군데 드러나지만 가능한 영화 내내 수라 갯벌에서 악착같이 살아내는 잔존 생물군의 아름다움이 강조된다. 또 힘들어서 어떻게 보냐 싶을 관객들에겐 초창기 환경운동가들이 체험한 아름다움을 공유하게 만들려 시도한다. 그렇게 소리 높여 도덕적 당위로 접근하지 않으면서도 측은지심을 유발시키는 작전이다.
 
반면에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의 중립성/객관성을 위해 강조되는 거리두기 혹은 관찰적 태도를 과감히 포기한다. <수라>에서 감독은 잊을 만하면 튀어나온다. 아니 영화 내내 마치 정면 돌파를 시도하듯 도무지 자리를 비우지 않는다. 요즘 한국 독립다큐멘터리에선 보기 드문 시점이다. 화면 속에서 감독은 종종 감정 과잉을 숨기지 않고 드러낼뿐더러, 그가 보이는 입장은 명확하게 편향되어 있다. 자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입장이 옳다는 확신범의 태도다. 이렇게 글로 나열하면 트집 잡기 좋은 거리가 잔뜩 넘쳐나는 영화다. 하지만 막상 직접 영화를 체험한다면 <수라>는 경외감의 대상이 될 만한 미덕과 가치가 넘실거린다. 신파와 최루와 분노가 어느 순간부터 감동으로 전환되는, 마치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경험처럼 에너지 가득한 작업이다.
 
영화를 전부 보고 나면, 황윤 감독에게 새만금에 대한 기록은 결국 운명이었나 보다 싶을 정도다. 견딜 수 없는 괴로움에 달아났던 현장에 결국 되돌아온 감독에게 변장한 천사처럼 현대 환경운동의 선구자들을 계승하는 이들이 등장했고 그들과의 협력 덕분에 영화는 추진력을 얻을 수 있었다. 오동필 활동가를 비롯한 시민조사단의 모니터링 모임은 감독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20년째 잔존 생물군을 (제임스 오듀본이 수행했던 것처럼) 기록하고 있었기에 '미싱 링크'를 최소화해 장구한 세월이 <수라> 속에 보전될 수 있었다. 영화 내내 '자료 소스가 부족할 일은 없었겠다' 싶을 정도로 풍성한 질감이 그득하다. 그렇게 야만에 맞서 아름다운 것을 지키려는 이들의 싸움과 그들을 매료시킨 생명들이 화면에 펼쳐진다.
 
내셔널 지오그래픽×한국 독립다큐멘터리=<수라>
 
 영화 <수라> 스틸 이미지

영화 <수라> 스틸 이미지 ⓒ 스튜디오 두마, 미디어나무, 스튜디오 에이드

 
한국 독립다큐멘터리가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편향된 프로파간다에 그친다거나, 도덕주의에 기울어 충격요법을 주려는 목적 탓에 꺼림칙한 것들만 담는다고 불평하는 이들에게 <수라>는 딜레마를 던질 게 분명하다. 아름다운 것들을 지키고픈 간절함이 작은 기적을 이루고, 그 아름다움의 조각을 목격한 이들이 더 많은 이들에게 자신들이 목격한 것을 공유하려는 집념의 발로로 완성된 이 영화를 보고도 그 속에 담긴 진실을 부정하기란 퍽 곤란한 노릇일 테니. 한국 독립다큐멘터리의 세계에선 색다른 도전으로 여겨지지만 실은 보편적 환경영화의 정석적인 접근법이기에 이 영화는 굳이 관객 취향 안 따지고 볼 수 있는 대중성을 획득한 채 관객을 만나려 한다.
 
왜 한국 독립다큐멘터리는 환경문제를 다루면서도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나 BBC 같이 지구환경을 아름답게 보여주지 않느냐며 불평하는 이들에게 <수라>는 하나의 답을 제시하려 한다. 그동안 먼 외국의 풍경으로만 전 지구적 환경파괴를 목격하며 강 건너 불구경하던 우리에게 이제 한국의 현실을 그런 차원으로 담아낸 작품이 등장해버린 것이다. 생명에 대한 연민이 익숙한 지역공간에 대한 조명으로 접근하고, 그 이면에는 죽음의 개발과 과도한 군사주의의 위협이 심화된다는 증명을 이룩하는 작업이다.
 
혹자는 영화 속에서 군산 미군기지로 표상되는 정치적 쟁점이 돌출적이라 볼 수 있겠지만 새만금 갯벌에 대한 현재 최대 위협이 무엇인지 전하려는 최소한의 팩트 체크로 받아들여야 할 지점이다. 그렇게 영화는 지극히 정석적인 방식으로 아름다운 것을 강조하고 이를 파괴하는 인간의 욕망이 창조한 추악함을 드러낸다. 그 단일목적에 모든 걸 바치는 직구다. <수라>는 단지 영화를 보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극장 문을 나서면서 새로운 담론의 공간으로 활용되기 위한 목적성을 숨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취하는 정석적인 방법론, 즉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장대한 풍광과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투쟁현장과 연대하는 전통이 그림처럼 구현되기에 더 없이 효과적으로 반론을 봉쇄하고 망설이는 이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던지는 위력을 발휘한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마스터피스'의 탄생이자 한국독립영화가 견결히 유지해왔던 전통의 최전선이 여기에 존재한다.
 
굳이 영화의 세세한 배경을 풀이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영화를 보고 나면 다 이해할 테니까. 다만 스토리가 마무리된 뒤 '아름다운 것들'의 선율과 함께 올라올 엔딩크레디트는 꼭 잊지 말고 챙겨보기를 권한다. 감독과 제작진 정보를 뛰어넘어 수라 갯벌이 보존되고 새만금 전체가 복원되기를 기원하는 움직임이 가득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고 류기화, 고 이강길, 그리고 우리의 오만과 무관심 때문에 사라져간 존재들을 목격한 후 여전히 생명의 소중함과 자연의 위대함을 믿는 인간을 비롯한 숱한 수라 주민들의 이름이 화면 가득 눈에 들어온다.

엔딩크레디트에서 언급되는 출연생물(!)들의 무수한 명단들을 보면서 관객은 흰발농게의 집게와 저어새의 사랑노래, 도요새의 군무를 오래도록 잊기 힘들 것 같다. 쇠검은머리쑥새의 노래가 아련히 귓가에 울리는 체험을 하고 난 뒤라면 이들을 지키고픈 충동을 억제할 수 없는 노릇이다.
 
<작품정보>
수라 Sura: A Love Song
2022|한국|다큐멘터리
2023.06.21. 개봉|108분|전체관람가
감독 황윤
출연 오동필, 황윤, 오승준, 김도영
제작 스튜디오 두마, 미디어나무
배급 스튜디오 두마, 미디어나무, 스튜디오 에이드
 
2022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
2023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한국경쟁 대상
수라 황윤 감독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새만금 환경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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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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