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18 04:37최종 업데이트 23.07.18 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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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3일 오후 제주시 노형오거리에서 '일본 핵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제주 범도민대회'가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2023년 여름, 제주가 뜨겁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상징 욱일기가 신제주 중심지인 일본국 총영사관 앞에서 찢기고 불태워졌다(6월 13일 1천여 명 대규모 집회). 조천읍 함덕 정주항 앞바다에선 욱일기를 바다에 펼쳐 놓고 그 주위에 12척의 어선이 학익진으로 포위했다(7월 6일 함덕 해상시위). 분노와 항의의 퍼포먼스였다.

한편에선 절망의 탄식과 한숨이 끊이지 않는다. 해녀들과 어부들은 이제는 물질도, 그물질도 못 할 거라는 위기감에 시름이 가득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도에서 바다가 죽으면 우리 목숨도 마찬가지 운명이라며 하루하루 사태 추이를 주시하는 상황이다.


모든 게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 문제로 생긴 현상이다. 육지 일부 지역에선 오염수 방류에 대처하는 데 온도 차가 있다든가, 권력의 눈치를 본다는 등의 소식도 들리지만, 제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그만큼 오염수 방류에 따른 위기감이 크기 때문이다. 수산업뿐 아니라 관광업 등 제주산업 전반에 걸쳐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우울한 전망이 나온다.

"대통령이 일본 편만 들고..." 해녀들의 위기감

특히 바닷속이 일터인 해녀들은 물질을 할 수가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래서일까, 해녀들의 위기감이 가장 크고 항의의 목소리가 가장 높다. 제주도 해녀를 대표하는 김계숙 제주해녀협회 회장을 만나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대정읍 동일리 어촌계장을 겸하고 있는 김계숙 회장은 해녀생활 53년 차 상군 해녀다.
 

물질도구 앞에 선 김계숙 회장 해녀들의 물질도구인 테왁 망사리 빗창 등을 설명하고 있는 김계숙 제주해녀협회 회장. ⓒ 황의봉

 
"해녀들은 바닷물을 먹고 살아요. 파도가 잔잔한 날 물질 할 때는 바닷물이 수시로 입으로 들락날락하지만, 목구멍으로 넘어가지는 않아요. 그런데 바람이 불고 파도가 센 날은 다릅니다. 바닷속에서 참았던 숨을 쉬러 물 위로 나와 숨을 들이마실 때는 파도치는 물이 따라 들어와 목을 넘어가게 돼요.

물을 많이 마시게 되는 날은 정신이 없어요. 그런 날은 속도 안 좋고 목도 아픈데, 핵 오염수를 들이킨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해녀의 목숨은 물과 함께 사는 겁니다. 바다가 오염되면 우리까지 모두 오염에 결부되는 거죠. 후쿠시마 핵 오염수가 방류되면 이제 해녀생활도 접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계숙 회장의 오염수 걱정은 절박하기만 했다. 한마디로 핵 오염수는 해녀의 생명과 직결된다는 위기감의 토로다. 그녀에게 걱정과 위기감의 정도를 솔직히 말해달라고 요청했다.

"아직은 오염수 방류가 안 됐기 때문에 불안감이란 게 다소 막연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방류 저지운동을 하면 혹시 멈출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있거든요. 그런데 끝내 방류가 된다면 그때는 정말 더 이상 해녀 일을 하기 힘들다는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숨 참아가며 잡아 온 물건을 누구도 사 먹지 않으면 어떡합니까. 사람들이 벌써부터 수산물을 안 먹겠다고 하고 소금 사재기를 하는데, 해녀든 어부든 계속하기가 어렵지 않겠어요?"

제주 해녀들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어떠냐는 질문에 대뜸 함덕에서 있었던 해상시위 광경을 TV에서 못 봤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7월 6일 조천읍 함덕에서 열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반대 해상시위'를 말하는 거였다. 함덕어촌계와 선주회, 해녀회, 제주도 연합청년회 등이 참가한 해상시위는 선박 12척을 동원해 강렬한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해녀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오염수 방류 반대 피켓을 들어 보이기도 했다.
 

제주시 조천읍 함덕 어민들로 구성된 '내가 이순신이다 제주본부' 회원들이 6일 오전 함덕리 정주항 앞바다에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함덕 해상시위에서 오염수 방류되면 제주 바다는 다 죽고 그렇게 되면 우리 해녀도 죽는다고 했는데, 여기 해녀들도 똑같은 심정입니다. 요즘 파도가 세고 해서 바다에 못 들어가고 있어서 그렇지 우리도 해상시위 하자고 하면 다 할 겁니다."

화제를 '괴담' 논란과 정부의 대응으로 이어갔다. 김계숙 회장은 도쿄전력이 60종이 넘는다는 핵종 가운데 일부 핵종만을 측정하고, 나머지 핵종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확인을 못 한 상태에서 오염수를 처리수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일본이 IAEA에 기부금을 많이 내니까 일본 편을 들어주는 것 아니냐, 또 일본이 IAEA를 돈으로 매수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지 않느냐며, 그런데도 이런 문제들을 지적하면 괴담이라고 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의 대응을 따지는 대목에 이르자 목소리가 더 높아지고 발언 수위도 올라갔다.

"위안부 할머니가 얘기했듯이 윤석열이가 조선사람인지 일본사람인지 구분이 안 됩니다. 솔직히 말해서 대통령이나 돼서 우리 국민을 무시하고 일본 편만 드는 식으로 나오면 안 되죠. 첫째로 우리 국민을 먼저 생각해줘야지요. 정부는 오염수를 정확하게 검사해야 하고요. 그리고 일본 정부는 오염수가 정말 괜찮다면 자기네 생활용수로 쓰든지, 농업용수도 쓰든지, 풀장을 만들든지 자국 내에서 알아서 하면 될 일 아닌가요?"

물질 인생 53년의 고단함

화제를 바꿨다. '해녀 김계숙'의 물질 인생 53년은 어떤 것이었느냐고 물었다.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이 돌아왔다. "고단함"이란다.

"종일 피곤하죠. '물건'이나 많이 잡히면 좀 해소가 되기도 하지만, 물건이 안 나오면 진짜 피곤해요. 물질 나가면 한 서너 시간 이상 하는데 전보다 수확량이 많이 줄었어요. 그리고 전에는 한 달이면 보름 동안은 물질을 했는데, 요즘은 수협에서 '바다 물질 며칠 날 물건 받겠습니다', 하면 그날까지밖에 물질 못 해요. 또 파도가 세도 못 하고요. 그래서 전체적으로 따지면 물량이 옛날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줄었습니다. 7, 8년 전에 비하면 5분의 1 정도예요."

고단하고 수입도 줄었지만 그래도 물질을 해서 2남1녀를 모두 대학까지 공부시켰다고 한다. 이제 바다에 그만 들어가고 육지 농사나 지으며 편히 지내라는 말도 듣지만 바다가 익숙해져서일까, 그럴 생각은 없다고 한다. 농사지으러 밭으로 가면 허리, 다리가 아프고 막 짜증이 나곤 하지만 바다에선 허리도 안 아프다니 해녀가 천직일 듯싶다. 이런 그녀에게 오염수 방류가 어떤 충격일지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아무리 해녀가 천직이라고 해도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우여곡절도 있었을 테고 위험한 일도 많이 겪었을 것 같다.

"7년 전쯤인가 함께 물질하던 해녀 할머니가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어요. 나는 상군이니까 동료 해녀들과 좀 멀리 나가 물질을 하고 있었고, 그 할머니는 바닷가 가까운 데서 혼자 문어도 잡고 그랬는데, 작업 끝내고 나오니까 해녀 한 사람이 실종됐다는 겁니다. 결국 할머니 시신을 대마도에서 찾았어요. 해녀생활 하면서 가장 슬픈 일이었지요.

상어나 고래를 만나는 것도 해녀들에게는 무서운 일입니다. 나도 돌고래와 여러 번 마주쳤어요. 처음 돌고래를 만난 건 혼자 물질하고 있었을 때였는데, 정말 무서웠어요. 돌고래가 해녀를 해치지는 않아요. 우리 해녀들을 보고 장난치는 건데 우리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해 무서워하는 겁니다. 요즘은 가끔 돌고래와 마주쳐도 덜 무서워하는 편입니다."


해녀 김계숙은 바다 생태계의 변화, 특히 지구온난화로 인해 수온이 상승하면서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자원이 크게 줄어든 것을 실감한다고도 말한다.

"감태라고 미역과에 속하는 해초 있잖아요. 이게 엄청 많았어요. 그리고 식용인 참모자반도 많이 채취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이런 해초들이 거의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소라도 미역 같은 먹이가 흔했을 땐 많이 잡았는데, 이제는 산란하는 시기와 조류가 겹칠 때나 있고, 아예 없는 해도 있어요."
 

동일리 어촌계원들의 성게알 작업 모습 바다에서 수확한 성게에서 알을 분리해내는 작업을 어촌계원들이 모여 공동으로 하고 있다. ⓒ 황의봉

 
각종 쓰레기 등으로 제주 바다가 몸살을 앓고 있다는 경고가 나온 지도 오래다. 해녀 작업을 하면서 직접 목격한 바다 오염실태는 어떨까?

"쓰레기는 제주도 안에서 버리는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다른 곳에서 흘러온 것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육지에서 큰비가 와 물난리가 나면 쓰레기가 덩어리를 이뤄 바다를 떠돌다가 제주 해안으로 오는 겁니다. 물론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요.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 쓰레기도 많이 봤어요. 쓰레기에 중국어나 일본어로 쓰인 걸 보면 알 수 있잖아요. 제가 보기엔 중국에서 떠내려온 쓰레기가 많은 것 같아요.

여기다가 하수처리장을 거쳐 나오는 물도 오염도가 높고, 바닷가에 많이 들어선 양어장에서도 먹이 소독하고 청소할 때 약품을 사용한다고 하는데, 그게 바다로 흘러나오는 것이지요. 양어장 없을 땐 바다 밑이 엄청 깨끗해서 감태나 모자반이 넘쳐났는데, 양어장이 생기고 나서 다 썩어 하나도 없습니다."


유네스코 등재된 해녀가 줄어드는 이유

제주해녀협회는 지난 2017년 4월 창립했다. 제주 해녀가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김계숙 회장은 지난 6월 5일 임기 2년의 4대 회장이 됐다. 회장이 되기 전 2년간 부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해녀협회가 지향하는 가장 중요한 사업은 '해녀공동체의 지속적인 보존과 발전'이다. 따라서 김계숙 회장이 우선적으로 신경 써야 할 과제 역시 '해녀공동체'다.

제주 해녀문화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속되려면 무엇보다도 해녀 수를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해야 하는 게 중요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6년 전 해녀 9500명(현직 4005명, 전직 5495명)으로 출범한 해녀협회는 현재 어떤 상태일까.

"현재는 해녀가 전·현직 합쳐 8000명이 될까 말까 하는 정도입니다. 한 6년여 사이에 1500명가량 줄어든 셈이지요. 워낙 고령의 전직 해녀들이 많았고, 현직 해녀도 수십 명 돌아가시고 했어요. 바다에서 사고가 나기도 했고요."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해녀가 줄고 있다는 얘기다. 유네스코에 인류무형문화유산이자 국가중요어업유산 제1호로 등재된 제주 해녀가 이처럼 급속히 줄어드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해녀학교가 여러 군데 생겨나고 이곳에서 배출하는 해녀 지망자들도 적지 않다고 하는데, 해녀 숫자가 늘기는커녕 현상 유지도 안 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어촌계마다 공동자산이 있어요. 큰 어촌계일수록 자산도 많고 돈도 좀 있거든요. 이게 기존 해녀들이 오랫동안 쌓은 자산인데,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은 해녀학교 나온 젊은 사람이 그냥 들어올 수가 없잖아요. 그렇다고 적지 않은 돈을 선뜻 내고 들어오기도 쉽지 않고요. 행정에서는 그런 거 따지지 말고 받아주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무조건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애로점이 있습니다.

우리 동일리 어촌계의 경우 40대 해녀학교 출신을 받아들였는데, 자기 돈 100만 원과 행정에서 보조해준 100만 원 해서 200만 원 내고 들어왔어요. 이분은 어촌계 사무장 역할도 할 사람이라 예외적인 경우였지요. 현재 우리 어촌계 회원이 모두 11명인데, 2명은 돌아가신 시어머니 대신 자산 물려받는 것으로 해서 들어와 해녀가 된 경우입니다. 이처럼 해녀 일이 위험한 데다가 고되고, 세습 형식으로 이어져 오다 보니 그 숫자가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드는 거예요."

 

6월 13일 오후 제주시 노형오거리에서 열린 '일본 핵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제주 범도민대회'에서 제주도해녀협회 고송자 사무국장이 항의 표시로 테왁과 망사리를 태우고 있다. ⓒ 연합뉴스

 
해녀학교를 졸업해도 해녀가 될 수 없는 현실적인 장벽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해도 해녀가 되려는 인력들이 존재하는 만큼 행정의 적극적인 지원이나 제도적인 대책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이런 지적에 김계숙 회장은 해녀협회를 창립하도록 해놓고는 당국에서 제대로 된 지원을 해주지 않아 사실상 제 역할을 하기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해녀협회라는 게 말뿐이지 자본금도 전혀 없습니다. 유네스코에 등재됐다고 해녀협회를 결성했지만 이름만 거창했지 우리 해녀들은 소외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현재 도내 6개 수협에서 보조해주는 돈이 한 해에 500만 원도 안 됩니다. 이걸로 협회를 꾸려나갈 수가 있겠습니까. 제가 하도 답답해서 임원들과 의논해 회장 100만 원, 부회장과 전 회장 50만 원, 이사 감사 20만 원씩 회비를 거출하기로 했습니다. 저만 해도 이런저런 회의에 참석하는 일도 많고, 오늘처럼 언론에서 찾아와 인터뷰하는 등 바쁘기만 한데 활동비로 한 푼도 받는 게 없습니다. 그러니 누가 자기 돈 들여가면서 협회 일을 맡아 하려고 하겠습니까."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마을 언니들 따라 물질을 다니기 시작했다는 김계숙 해녀. 그에게 협회장이란 감투는 영광이기보다는 무겁기만 한 짐인 것 같다. 그런 그녀에게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라는 엄청난 파고가 눈앞까지 덮쳐오고 있는 형국이다. 과연 그녀의 희망대로 방류 저지 운동으로 일본의 폭주를 멈추게 할 수 있을까. 바닷속에서 물질할 때가 가장 편하다는 작은 행복을 꼭 지켜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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