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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육아삼쩜영'은 웹3.0에서 착안한 것으로, 아이들을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가치로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서울, 부산, 제주,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 다섯 명이 함께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육아휴직 이전 일을 할 때는 아이들과 말 한마디 하지 못했던 날도 있었다. 직장인들 모습(자료사진).
 육아휴직 이전 일을 할 때는 아이들과 말 한마디 하지 못했던 날도 있었다. 직장인들 모습(자료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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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넘도록 직장생활을 하면서 유일하게 맘 편히 보낼 수 있었던 때는 딱 여름휴가 기간이었다. 밤낮 구분 없이 울리는 전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년에 약 1주 뿐이었지만, 그 짧은 한 주가 1년을 버티게 했다. 하지만 휴가의 설렘과 달콤함은 길게 유지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이 크고 방학이란 걸 처음 경험하게 되었다. 보육시설과 초등학교의 지원이 없는 '풀타임 돌봄'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하나뿐인 휴가와 아이들의 방학 기간이 일치해야 했다. 휴식과 재충전은 돌봄과 육아라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으로 전환되었다. 분명히 쉬고 있는데 쉬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행복한 마음의 틈새로 육체의 고단함이 자꾸만 삐져나왔다.

주위를 돌아보면 자녀가 있는 가정들 대부분이 나와 비슷한 패턴으로 휴가를 보내는 것 같았다. 외벌이 가장이든 맞벌이 부부이든 혹은 자영업자이든, 먹고살기가 빠듯하지만 휴가 때만큼은 자녀들과 함께 멋진 추억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이리라. 이러한 비자발적인 움직임들은 '극'성수기에 걸맞은 살인적인 지출로 이어진다.

"아빠, 친구 OO이는 이번에 가족들이랑 풀빌라 간대."

해외여행이 아닌 국내 여행을 가더라도 최소 100만 원이 훌쩍 넘는 비용이 발생한다. 비수기에는 운영조차 안 할 것 같은 펜션들이 성수기 때는 부르는 게 값이다. 최고급 숙박시설은 '노키즈존'이라는 시대의 흐름마저 거스른다.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고객은 돈이 되기 때문이다.

부모의 휴식 반납, 과도한 지출을 대가로 하는 가족여행이 그렇다고 마냥 행복한 것도 아니다. 여벌 옷가지, 상비약, 물놀이 용품, 간단한 아침거리 등 짐을 꾸리는 것 자체가 일이다.

코로나19 이후 언제 어디서든 아이들이 다양한 질병에 노출될 수 있다는 위협은 부모의 마음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오랜 이동시간, 변덕스러운 날씨, 급작스런 자녀 건강의 악화와 같은 다양한 변수들은 모처럼 단합된 가족을 언제든지 순식간에 분열시킬 수 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절반 이상이 경제적 여유 부족등의 사유로 여름휴가를 포기하거나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고 한다. 남들이 쉴 때 일을 하는 자영업자들은 상황이 더 열악하다. 아이들이 방학을 맞이했다고 해서 모든 부모가 자녀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는 않는다. 

미처 몰랐던 또 다른 내 안의 자아 
 
아이들이 행복한 방학이 되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아이들이 행복한 방학이 되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 권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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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직 중일 때는 아이들의 방학기간에 맞추어 휴가를 내고 여행을 갔지만 올해는 좀 다르다. 육아 휴직으로 8개월째 방학을 보내고 있는 초보 아빠가, 막 여름방학을 맞이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평소에는 잘 몰랐는데 방학이 되니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 아내의 빈 자리가 새삼 크게 느껴진다.

이런 상황은 이미 한 차례 경험한 바 있다. 지난 2월 아내가 다시 일을 하게 되면서 9살, 6살 두 자녀의 봄방학을 함께 보냈다. 시작 전엔 아내가 차려놓은 밥을 아이들에게 먹이고, 유튜브를 보거나 잠시 산책을 다녀오면 하루는 금방 지나갈 것 같았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아내 없이 아이들과 함께 하는 방학은 조금도 순조롭지 않았다. 어느 것 하나 예측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었다. 아이들은 깨어있는 내내 집안 곳곳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지만, 나의 빈약한 에너지로 그들을 따라다니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고작 며칠을 아이들과 함께 보내면서 나는 나 자신이 이렇게나 화가 많은 사람인지 처음 알게 되었다. 일을 하면서 워낙 스펙터클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왔기 때문에 어지간한 상황에서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편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봄방학은 그동안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자아를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아직 어린 자녀들을 사랑과 인내로 돌보는 것이 마땅하지만, 분노 가득한 아빠의 고함을 견디지 못한 아이들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러다 보니 이번 여름방학에도 아이들과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역대급 무더위에 밖으로 나가기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매번 '할머니 찬스'를 쓰는 것도 썩 내키지 않는다. 매주 주말마다 양가 부모님 댁을 가는 것도 모자라서 주중에까지 찾아간다면, 아무리 손주들을 좋아하시는 부모님이라고 해도 부담이 될 것 같다.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지 않은 상황이라 선택 가능한 옵션은 많지 않다. 집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 말고 딱히 별다른 대안이 없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아이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버텨야 할 것 같다. 지난 봄방학 때보다는 좀 더 나아야 할 텐데.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의 눈빛이 영 탐탁해 보이지 않는다.

화내서 미안해,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야 
 
무더운 여름 곤충을 좋아하는 둘째와 함께 산을 찾았다. 육아휴직 기간동안 자녀들과 더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무더운 여름 곤충을 좋아하는 둘째와 함께 산을 찾았다. 육아휴직 기간동안 자녀들과 더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 권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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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로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는 '분노 조절'이다. 아이들은 언제나 내가 바라고 예측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다. 말을 잘 듣지 않고 하루에도 몇 번씩 다툰다. 처음에는 참지만, 끝내 분노를 이기지 못한 채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문제는 화를 내는 것 자체가 아닌 말과 행동이 분리가 되지 않는 것에 있다. 잘못한 내용에 대해서만 짧고 따끔하게 말을 해야 하는데, 메시지 전달을 넘어 화가 난 감정이 그대로 전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아이들은 사랑하고 의지해야 할 아빠를 두려워하고 불편한 대상으로 느낀다.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 빈도를 최대한 낮추려고 발버둥 치는 중이다. 화를 내더라도 큰 목소리가 아닌 일상적인 톤으로 말하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이 아빠에게서 분노와 공포가 아닌 대화의 정서를 느낄 수 있도록. 자신이 잘못한 게 무엇인지 느끼고 인지할 수 있도록.

또 하나 신경 쓰는 부분은 자녀들과의 친밀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매일 사소한 것이라도 '아빠와 함께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첫째는 부산시민 독후감공모를 준비 중이다.

평소 아빠가 글을 쓰는 모습이 익숙한지 자신이 쓴 글에 대해 수시로 확인을 해달라고 한다. 딸이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고 있으면 나는 딸에게 어땠는지 느낌을 꼭 말해달라고 하는데, 거의 매번 예상하지 못했던 답변을 들으며 아이가 성장해 가는 것을 느낀다.
 
글을 쓰는 딸아이의 모습. 글쓰기는 자녀와 소통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준다.
 글을 쓰는 딸아이의 모습. 글쓰기는 자녀와 소통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준다.
ⓒ 권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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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살 둘째는 아빠와 게임하는 것을 좋아한다. 두 달 전 직소퍼즐을 몇 개 구매했는데, 조각들의 위치를 거의 외웠을 정도로 수십 번을 맞추었다. 최근에는 '도블'이라는 보드게임에 푹 빠져서 시도 때도 없이 아빠와 같이 하자고 조른다.

육아휴직 이전 일을 할 때는 아이들과 말 한 마디 하지 못했던 날도 있었는데, 휴직 이후 자녀들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 같다. 여전히 초보를 벗어나지 못한 아빠이다 보니 이번 방학 또한 잘 지내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좀 더 개선이 됐으리라고 믿고 싶다.

아이들과 온전히 함께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방학이다. 부디 아이들과 아빠 모두가 행복한 방학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둘째가 가장 좋아하는 신비아파트 직소퍼즐. 너무 많이 해서 퍼즐들의 자리를 거의 외울 정도가 되었다.
 둘째가 가장 좋아하는 신비아파트 직소퍼즐. 너무 많이 해서 퍼즐들의 자리를 거의 외울 정도가 되었다.
ⓒ 권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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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가치로 아이들을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태그:#육아삼쩜영, #여름방학, #자녀, #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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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짝꿍, 두 자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사람, 음식, 읽고 쓰며 소통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건강한 삶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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