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22 13:22최종 업데이트 23.08.22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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갭투자한 사람들의 실패를 왜 국민이 책임져야 하나 https://omn.kr/25aa0

'바늘허리에 실 매어 쓸까.'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 또한, 정책 당국이란 편법이나 임시변통이 아니라 정공법을 취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방향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작금 부동산과 가계 부채를 대하는 우리나라 정부는 임시변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집값 하락을 용인하자니 금융 불안이 걱정이고, 부동산 관련 부실 대출을 막자니 가계부채 증가는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이런 딜레마 프레임이 타당할까?

이것이 '딜레마'로 보이는 이유는 이 문제에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전제'해서다. 이는 절대적으로 부당한 전제다. 우선, 정부는 시장 조성자다. 시장도 정부가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 가깝게는 사기와 부당한 거래, 시장을 교란하는 각종 조작 행위를 억제해서 '시장의 질서'를 세워야 한다. 이것이 정부가 해야 할 첫 번째 임무다. 그런데도 현재 정부는 가격을 왜곡하는 허위 계약 의심 사례에 대해 적극적으로 조사하거나 처벌하지 않고 있다. 

또한 이익과 손실 모두 투자자 책임임을 명확히 해야 하고, 가격을 임의로 왜곡해서는 안 된다. 가격 하락을 막고자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정부의 역할
 

서울 주택 매매 소비심리지수 7개월 연속 오름세 정부의 대대적인 부동산 규제 완화로 인해 전국 주택 매매 소비심리지수가 6개월 연속 상승한 7월 1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의 한 부동산에 매매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연합뉴스

 
정부의 책임은 가격에 개입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아사리판으로 변질된 부동산 시장의 부정적 효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방안을 제안하고 싶다. 우선, 지금과 같은 부동산 부양책을 철회하고, 부동산 가격이 하락을 용인하자. 이 과정에서 손실을 보는 부동산 투자자가 발생할 것이다. 이익이 전적으로 그들의 몫이었던 것처럼, 손실 또한 그들 스스로 책임지게 하자는 말이다.

이것이 금융권 부실 채권으로 이어져 금융불안을 유발할 정도가 되면, 정부가 모두 매입해 부동산 투기에 가담하길 거부한 선량한 시민들에게 장기 공공주택으로 제공할 수 있다. 부동산 개발과 투자에 뒷돈을 대고 수익을 남겼던 금융권이 져야 하는 최소한의 책임이다. 이익과 손실 모두 투자자가 감당하는 원리가 시장의 가장 중요한 덕목 아니던가.

아무리 낮은 가격이라도 정부가 부동산을 대량으로 매입하면 정부부채가 증가할 것이다. 이에 대해 분명 펄쩍 뛰며 반대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정부부채 증가의 반대편에는 국민 모두를 위한 정부의 자산 또한 그만큼 증가했다고 설명해도, 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정부의 빚이나 국가 경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이 줄어들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큰 틀에서 보면, 경제가 성장하든 집을 더 많이 짓든, '원리적으로' 국가 전체의 빚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1억 원짜리 집 100채를 추가로 지어 거래하려면 100억 원이란 돈이 필요해진다. 새로 지은 집이 거래되는 데 필요한 돈 100억 원의 대부분은 새로 창조해 투입해야 한다.

그런데, 원리적으로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서 돈은 공짜가 아니다. 이자와 원금을 상환하기로 약속하고 빌리는 방식으로 공급된다. 통화량의 증가는 부채의 증가와 같은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현대 자본주의 경제는 성장에 따라 새로운 돈이 필요하고, 추가로 필요한 돈은 부채란 형태로 공급되는 구조로 운영된다.

부채가 필연적이라면, 누가 채무자이고 누가 채권자가 되는가? 다른 말로, 누가 그 빚을 져야 할까? 그 새로운 돈을 창조해 공급할 수 있는 주체는 크게 둘이다. 하나는 정부(+한국은행)이고, 또 하나는 민간은행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현재 이데올로기처럼 뿌리 깊게 퍼져있는 '이상한 상식'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민간은행은 새로운 돈을 '창조'하지 않고, 중앙은행(한국은행)이 발행(창조)한 돈을 재활용할 뿐이라는 믿음이 그것이다. 즉, 은행은 저축으로 받은 받을 다른 누군가에게 빌려줄 뿐이라 대부분이 믿고 있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시중에 돈이라 불리는 것 대부분은 민간은행이 창조해서 빌려준다. 이는 영국은행,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도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실이고, 앨런 그린스펀 등 수많은 중앙은행장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토빈 교수 등 유명 경제학자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렇게 진술한 사실이다. 

이렇게 권위를 빌리지 않더라도, 이를 입증하는 방법은 너무 간단하다. 2023년 6월 말 현재 우리나라 광의통화량(M2)은 약 3816조 원이다. 이 중 한국은행만이 발행하는 통화, 즉 본원통화(현금 및 지급준비금)는 약 269조 원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M2의 93%에 해당하는 3547조 원은 어디에서 왔나? 민간은행이 창조했다(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기술적 설명에 관해서는 2014년 영국은행이 제시한 설명을 추천한다. https://www.bankofengland.co.uk/quarterly-bulletin/2014/q1/money-creation-in-the-modern-economy).

그리고, 이 모두는 부채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매달 발표하는 통화량 지표는 관련 금융기관의 대차대조표에서 통화의 정의에 포함되는 부채(대변)를 합산해서 계산한다.

정부가 빚을 지는 방법

경제 성장에 따라 추가로 필요해진 돈을 민간은행이 독점해 공급하게 하면, 가계(개인)와 기업이 모든 빚을 지게 된다. 이는 너무나 익숙한 방식이어서 달리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이와 달리 정부가 빚을 지는 방법도 있다. 위에서 제안한 방법이 그것이다. 

주택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그 차이가 분명해질 것이다. 앞의 예처럼 1억 원짜리 주택 100채가 새로 지어졌다고 하자. 이 100채를 민간에서 알아서 거래하도록 내버려 두면, 민간(가계)에 100억 원의 부채가 쌓인다. 이것이 지금까지 해온 방식이다. 

기존 저축(상속 포함)을 이용해 집을 사는 경우는 과거의 소득을 활용하는 것이므로, 새로 부채가 증가하는 것이라 아니라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주장은 두 가지 점에서 불충분한 이해를 반영한다.

첫째, 은행 적금이 은행에는 부채이듯, 모든 금융자산은 다른 한편에게는 부채다. 과거의 저축도 경제 전체적으로 보면 부채다. 둘째, 새로운 주택 등 증가한 실물을 과거의 부채(저축)를 이용해 거래하는 비중이 매우 작다. 채권자(저축자)가 그 새로운 실물이 필요한 경우에만, 새로운 부채 증가 없이 저축으로 거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 전체적으로 이런 비중은 매우 작다. 대출 없이 현금으로 거래되는 주택이 얼마나 될까? 2020~2021년과 같이 집값이 급등하는 동안 대출, 즉 통화량이 급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각에서는 '통화량이 증가해서 집값이 올랐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말하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100채 중 40채는 정부가 구매해 영구임대주택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60채는 일반 가계가 매입한다고 하자(무주택자가 약 40% 된다). 그러면 부채는 정부에게 40억 원, 가계에 60억 원이 쌓인다(자산도 동일하게 증가한다). 세금을 걷으면 정부는 부채를 질 이유가 없고, 필자도 개인적으로 더 선호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그저 정부의 장부에 부채와 자산(주택)이 40억 원씩 증가한 것으로 기재하기만 하면 된다.

새로운 주택 100채가 지어졌고, 누군가 사용하게 됐지만, 결과는 전혀 다르다. 모두 민간에 맡기는 첫 번째 방식을 택하면, 그것은 고스란히 가계의 부채로 쌓인다. 여기에 투기 세력까지 붙으면, 부채는 더 많이 증가할 뿐 아니라 소득이 적은 가계의 '주거안정'까지 위협한다.

반대로 두 번째 방식을 택하며, 가계의 부채 증가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더구나 이런 환경에서는 집을 두고 벌이는 도박 같은 투기도 예방할 수 있다. 정부가 공급하는 40채에 안정적으로 거주하는 사람들은 투기꾼의 선동에 놀아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양질의 주거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면, '집값은 더 오를 테니, 오늘이 제일 싸다'는 선동에 넘어갈 사람이 크게 줄 것이고, 이렇게 되면 투기꾼들은 기대한 시세차익을 남기지 못할 것이다.

공동체적 관점으로 생각하기
 

‘빚에 눌린 한국 가계’... 원리금 상환부담·증가속도 세계 2위 지난해 우리나라 가계의 빚 부담 정도나 증가 속도가 전 세계 주요국 중 두 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중반 이후 이어진 금리 인상으로 대출 원리금 상환액이 늘어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사진은 지난 7월 17일 오후 서울시내 한 은행 대출 등 문구가 적힌 안내판. ⓒ 연합뉴스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모두에게 좋은 길이다. 지난 정부하에서 집값이 급등하던 시절에 대출을 억제하려는 정책을 도입했지만, 반대 여론이 높아지자 철회한 적이 있다. 당시 언론이 구호처럼 도배했던 논리가 '대출도 못 받게 하면 흙수저는 영원히 가난하라는 말이냐', 또는 '흙수저가 올라갈 사다리를 걷어찼다'였다. 나는 그 언론사들이 평소 흙수저를 걱정하는 것을 본 적이 없던 터라 당황했다. 하지만 그런 선동은 잘 먹혔다.

빚으로 집을 사게 해주는 정책이 진정 '흙수저'에게 유리한 정책일까? 이는 모두를 가난하게 하는 정책이다. 너도나도 빚으로 집을 사게 하면, 모든 집값이 비싸진다. 더 좋은 집에 사는 것도 아니면서 빚을 갚느라 허리만 휘게 할 뿐이다. 하지만 정부는 그런 요구를 수용했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판국에, 정부가 주거안정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시로 돌아간다면, 한편으로는 대출 억제를 통해 투기를 막았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집값이 그렇게 많이 오르지도 않았을 것이고, 가계부채도 지금처럼 많이 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금융불안 걱정도 없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주거안정'을 목표로 정부가 직접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했어야 했다. '흙수저가 타고 올라가야 할 사다리'는, 빚을 내서 주택에 투기하면 일확천금을 벌 수 있다는 허황된 꿈이 아니라, 집 걱정 없이 저렴한 가격에 지낼 수 있는 양질의 주거 환경이어야 한다(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지난 칼럼을 읽어보길 권한다). 부채와 금융안정 사이의 딜레마도 이렇게 해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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