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28 12:50최종 업데이트 23.08.28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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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이탈리아로 가는 길>로 돌아온 조귀동 작가 ⓒ 차원

 
<세습 중산층 사회>, <전라디언의 굴레>를 통해 한국 사회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온 조귀동 작가가 신간 <이탈리아로 가는 길>로 돌아왔다. 그는 정치권에서 이미 합의된 듯한 '선진국 담론'에 의문을 제기하며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우리 사회가 과연 어디로 갈지 진단한다.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 조 작가는 "한국은 지금 이탈리아로 가는 길"이라고 이야기한다. 기성정치가 무너진 자리에 포퓰리즘이 득세하고 있는 것이 '포퓰리즘 약속의 땅' 이탈리아와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2일, 서강대학교 금호아시아나바오로경영관 1층 로비에서 조귀동 작가를 만났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한국과 이탈리아는 닮았다" 
 

지난 6월 14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의 장례식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밀라노 대성당 밖 광장에 모여 있다. 이날 장례식은 국장으로 거행됐으며, 공식 수용 인원인 1만 명을 넘는 약 1만 5천 명의 추모객이 광장을 메웠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포퓰리즘 정치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 연합뉴스


- 신간 <이탈리아로 가는 길>은 어떤 책인가.

"지금 한국 사회가 두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한국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다. 선진국이라고 이야기는 하는데, 과연 선진국이 맞나. 산업화의 목표만 달성했지, 좌표 설정이 안 돼 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얼마나 많나.


두 번째는 이런 상황은 결국 정치의 문제가 큰데, 우리 정치는 왜 실패했느냐다. 단순히 어떤 정당이 문제다, 어떤 정치인이 문제다 해서 풀리는 문제가 아니다. 정치와 사회가 헛도는 총체적인 실패에 대해 답을 해야 한다. 이런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 왜 이탈리아인가. 

"우리나라를 말할 때 한강의 기적을 이야기한다. 이탈리아도 기적적인 경제 성장을 이뤘다. 후발주자로 출발해, 폭발적인 경제 성장을 이룬 끝에 G7에도 진입한 것이다. 공업과 수출에도 성공했다. 그런데 그 나라가 지금 어떻게 됐나. 우리나라에 1인당 국민소득을 추월당하기까지 하지 않았나. 

정치가 사라진 자리에 포퓰리즘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전 세계 포퓰리즘 정치의 '약속의 땅'이다. 정치가 먹고사는 문제를 전혀 해결해 주지 못한다. 심지어 표방하는 바가 전혀 다른 오성운동과 북부동맹이 포퓰리즘으로 하나 돼 연정하기도 한다. 성장이 멈춘 사회, 정치는 무너지고 그 자리에 포퓰리즘이 자리 잡았다는 점이 한국과 닮았다."

- 2장 <노무현 질서의 등장과 모순>에서 우리나라 정치 현실을 진단했다.

"노무현을 뽑은 많은 이들이 이명박을 뽑았다. 그 후로 다시 문재인을 뽑았다가, 이번에는 윤석열을 뽑지 않았나. 무당파가 상당히 많은데, 이런 상황에서 포퓰리즘이 극성을 부린다. 정치가 생활의 문제, 현실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 주지 않은 결과다.

정치가 점점 퇴보하고 있다. 지난 정권 당시 민주당에서 얼마나 '토착왜구' 이야기를 많이 했나. '죽창가'까지 나왔다. 이런 게 다 포퓰리즘 서사다. 요즘은 또 국민의힘 최인호 관악구의원이 (여성안심귀갓길 폐지로) 화제이기도 하다. 유럽 포퓰리즘 정당에서도 '이대남 담론'이 유행이다. 이 부분도 우리가 이탈리아로 가는 길이라는 하나의 징표가 될 수 있겠다."

"윤석열 대통령, 뭘 해야 할지 모른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을지 및 제35회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 4장 제목이 <무능의 아이콘 윤석열 정부>다. 윤 정부는 어떤 점이 가장 무능한가.

"제일 문제는 본인이 뭘 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는 거다. 좋은 정치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뭔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민주당 이탈표를 싹 긁어와 놓고, 전혀 유지를 못 하고 있다. 어떤 고민도 방법론도 보이지 않는다. 정책도 없고 아무것도 없이 앙상하다. 그래서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점점 더 악순환이 일어난다. (대선 당시) '7자 공약'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포퓰리즘을 하기에도 뭔가 좀 어설픈 측면이 있다.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도 아니다. 사실 이런 건 문재인 정부 때도 비슷했다. 전 정권의 광복절 축사와 이번 축사를 비교해 보면 메시지만 반대지, 서사는 유사한 측면이 있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나서서 그러지는 않았는데, 윤석열 대통령은 직접 나서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차이점은 있다."

- 이탈리아도, 우리도 저출생 문제가 심각하다. 원인과 대안을 어떻게 보나.

"여성들의 입장에서,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더 나은 선택지가 됐다. 사실 저는 이 부분에서는 조금 보수적인데, 성별과 관계없이 아이를 낳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 삶에 있어 엄청난 의미고, 부부 입장에서도 함께 하는 사업이 있으면 좋은 것 아닌가. 근데 지금 이렇게까지 출생률이 낮은 것은 무척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두 가지 대안이 떠오른다. 첫째는 사회제도와 문화를 바꿔야 한다. 여성이 애를 낳아도 경력에 타격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 애를 낳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바로 경력이 단절돼 버리니 애를 낳으면 다음이 없다. 둘째는 프랑스처럼 가족 제도를 해체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동거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렇게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 '외국인 가사도우미' 논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비현실적 이야기다. 기본적으로 식모를 들이자는 것이나 다름 없는데, 그럼 집안에 방을 따로 마련해 줄 건가, 아니면 집을 마련해 줄 건가. 그리고 싱가포르나 홍콩은 인구도 적은데, 막상 거기도 출생률이 낮다. 독박육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 같기는 한데, 본질은 놔두고 이상한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다."

"한국, 포퓰리즘이냐 질서 되찾기냐의 갈림길"
 

책 <이탈리아로 가는 길> 표지 ⓒ 생각의힘

 

- 책에서 '지역의 정치적 자율성은 커지지만, 제대로 된 감시나 견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188p)'고 지적했는데, 얼마 전 잼버리 사태가 일어났다. 무엇이 문제였고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전작 <전라디언의 굴레>와도 겹치는 이야기인데, 사회간접자본(SOC)사업이 이전만큼 효과가 없다. 그리고 나라의 규모가 커지면서, 지방 정부가 칠 수 있는 사고의 규모도 커지는 거다. 지방 정부에 컨트롤할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이번 새만금은 또 지역 언론에서 이미 행사 몇 주 전에 부지가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근데 피드백이 하나도 안 된 거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매립지에서 물이 잘 빠질 리가 있나. 여론 소통을 잘하고, 결국 지방 정부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느냐의 문제다."

- 팬덤 정치 현상도 지적했다(255p). 세계적인 문제인지 궁금하다.

"그렇다. 이탈리아도 있고, 미국도 마찬가지지 않나. 기존 정치가 실패한 영역에 자꾸 포퓰리즘이 들어오는 거다. 트럼프뿐만 아니라 샌더스도 포퓰리즘이다. 윤리적으로 문제 있어 보이는 발언을 안 한다는 차이점은 있지만, 포퓰리스트가 아닌 건 아니다. 프랑스에서도 저소득 동네, 노동자 계급의 사람들이 르펜을 지지한다. 왜 그런 극단주의자들이 지지받을까. 결국 사람들의 문제에 기존 정치가 답을 못 줘서 그렇다." 

- 앞으로 더 심해질 수밖에 없을까.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다. 윤석열이라는 인물이 국민의힘 후보로 대통령이 될지 누가 알았나(웃음). 현재 이탈리아처럼 포퓰리즘이 만개하느냐, 아니면 이전의 질서를 되찾고 정당 정치로 복귀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보고 있다."

- 한국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에 대해, 빠른 경제 성장의 과도기고, 곧 괜찮아질 거라는 낙관론도 존재한다.

"정치가 작동을 안 하는데, 정말 나이브한 진단이다. 시대의 변화에 정치가 어떻게 적응하고 기능할 것인가. 이 지점에 대한 고민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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