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2 15:58최종 업데이트 23.09.22 15:58
  • 본문듣기

노동·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국민운동(연금행동) 관계자들이 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공청회에서 재정계산위를 규탄하는 피켓팅을 하고 있다. 재정계산위원회는 이날 공청회에서 국민연금 개혁 관련 보고서를 공개했다. 복지부는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정부 개혁안이 담긴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10월까지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 연합뉴스

 
나는 국민연금 개혁에 관한 논쟁이 잘못된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토론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느낌이다. 이 논쟁에서 국민연금의 기능과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장성강화론'이라 부른다. 이들과 논쟁 과정에서 연금으로 줄 돈부터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은 '재정안정론'이라 불린다.

나는 이것이 엉뚱한 이름 붙이기라 믿는다. 어떤 사안에 대해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에 따라 전달하는 메시지도 달라진다. 내가 보기에 이 논쟁의 진의를 제대로 이해하면 전자는 '사회공동체파', 후자는 '각자도생파'로 불러야 마땅하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국민연금 논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각자도생파가 '당연한 것'으로 믿는 전제부터 따져봐야 한다.

경과

국민연금법 제4조는 (2003년부터) 매 5년마다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를 구성(위원장 1인, 민간위원 12인, 정부위원 2인, 간사 1인 등으로 구성)하여 미래 70년 동안의 국민연금 재정 전망을 추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추산 결과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국민연금 보험료율과 지급액, 지원 방안 등 전반적인 제도의 변경(안)을 국회에 제안한다.

재정계산위원회는 작년부터 꾸려져 활동해 왔고, 지난 9월 1일 공청회까지 열었다. 하지만 국회에 제출할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이 순조롭지 못한 듯하다. '보장성강화론자'로 불린 두 위원이 최종 보고서 완료 직전에 재정계산위원회를 탈퇴하고,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런 파행(?)의 원인은 두 입장 사이의 의견 차이와 그 의견 차이를 다루는 방식에 있었던 듯하다.
 

지난 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에게 인사하는 김용하 재정계산위원장 너머로 노동·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국민운동(연금행동) 관계자들이 규탄 피켓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의견 차이

양자 사이의 차이는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어서, 일반인의 의견 개입은 쉽지 않아 보인다. 재정계산위원회 위원 중 한 명인 오건호 위원(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재정안정론자의 대표를 자처하며, 지난 1일 <프레시안>에 소득대체율(연금 가입 기간 평균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의 비율) 인상론을 비판하는 글을 썼다(관련 기사 : 언제까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에 갇혀 있을 건가?)

오건호 위원의 주장에서 내 눈에 띄는 대목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노후소득보장을 위해 '이것저것'(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의 역할 강화, 국민연금 실수령액 증가를 위한 정부의 지원 등) 다양한 방법을 고려하자는 제안이다. 그러면서 국민연금 보장성 강화를 주장하는 측은 소득대체율 인상에만 '집착'한다고 비난한다.

오건호 위원의 두 번째 핵심 주장은 일반세금이 투입되는 '다양한 재정방안'이 "필자(오건호 위원)의 판단으로는 거의가 현실성도 약하고 추상적"이라는 비판이다. 다양한 재정방안이란 것이 대부분 일반세금인데 오 위원은 "국고는 연금 취약층 지원에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저것'을 장황하게 설명한 것에 비하면 너무나 짧은 논평이다. 하지만 이하에서 보듯 나는 이것이 가장 중요한 논쟁점이라 믿는다.

오건호 위원의 주장에 대해 남찬섭 위원(동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은 지난 5일 같은 지면에 즉시 반론했다.(관련 기사 :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여전히 중요하다) 이 글에도 수많은 기술적 설명이 있어 난해하지만, 내 눈에 띈 요점은 대략 세 가지이다.

첫째, 보장성강화론자들은 오건호 위원이 제안하는 '이것저것'을 반대한 적이 없다. 둘째, 오건호 위원은 보장성강화론자들이 "왜 한국 공적연금의 소득대체율이 낮은지를 객관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는데, 남찬섭 위원은 본인이 직접 참여하여 연구하고 설명한 최근의 보고서와 학술논문을 3편이나 제시했다.

남찬섭 위원의 세 번째 반론은 왜 국민연금이 필요하고, 기초연금이나 퇴직연금 등으로 대체할 수 없는지를 설명한다. 요약하면 국민연금은 권리성이 강한 공적연금이고, 기초연금은 공공부조이기 때문이다. 또한 퇴직연금을 연금으로 활용하길 기대하기 어렵다. 공공부조의 규모는 조세 저항 때문에 규모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국민이 권리로 인식하는 정도가 약하니 불안정하다는 말이다.

사고실험을 위해 극단적으로 가정해보자. 국민연금을 폐지하면 기초연금이 그 역할을 대체할 수 있나? 다른 말로 기초연금으로 월 100만 원 이상 지급할 수 있나? 거의 불가능하다. 기초연금 재원은 일반과세로 충당된다. 국민연금 가입 의무가 폐지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만큼의 기초연금을 위한 증세는 정치적으로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퇴직연금은 국민연금의 기능을 대체할 수 있나?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퇴직연금은 전적으로 기업이 부담한다. 재계는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조차 반대해 왔고 정치권도 수용해 왔다. 기업에만 노후소득보장 책임을 전가할 수 없기에 퇴직연금의 역할은 처음부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이는 바람직하지도 않다. 오건호 위원의 걱정처럼 퇴직연금이야말로 불평등하기 때문이다.

이후 9월 6일 오건호 위원은 <경향신문>에 또 하나의 칼럼을 게재했다. 남찬섭 위원의 반론에는 아무런 재반론도 없이 이전 <프레시안> 기고문의 주장을 요약하여 반복했다. 다만, 여기서는 '반쪽짜리' 보고서 논란을 "입장 대립을 넘어선 과도한 연금정치, 국민연금 명목 소득대체율에 갇힌 협소한 연금정치"로 규정했다. 오건호 위원이 주장하는 '이것저것'에 더해 소득대체율도 높이자는 주장을 왜 시야가 좁고 편협하다고 비난하는지 다시 한번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현황  

최대한 간략하고 쉽게 풀어 설명하려고 애썼지만, 여전히 어지럽다. 우선 상황을 정리하자. 이번 재정계산위원회가 제시한 추정치부터 확인하자. 이에 따르면, 2055년 경이 되면 국민연금 기금이 바닥난다.

기금이 고갈되고 당시의 가입자(미래 세대로 부르자)가 내는 국민연금 보험료로만 연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가정하면, 미래 세대는 무려 월급의 26.1%(직장 가입자는 본인 월급의 13%, 회사가 13% 분담)를 내야한다. 이것을 부과방식비용율이라 부른다. 이는 2080년 경까지 35%까지 증가할 수 있다고 한다.

또 하나의 비관적인 전망치는 소위 '제도부양비'이다. 당시 연금에 가입해서 보험료를 납부하는 인구 수 대비 국민연금을 받는 노인인구의 비율을 말한다. 현재 이 비율은 약 24(%)이다. 국민연금에 보험료를 내는 인구가 수급자 노인인구보다 약 4배 많다는 의미이다(100%이면 두 인구수가 같다는 의미).

그러나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이 비율이 점점 높아져 2055년 경이 되면 약 110에 도달하여, 보험료를 내는 사람보다 받는 노인인구가 많아진다. 재정계산위원회는 이 비율이 2080년까지 약 143%까지 높아질 것으로 추산했다.

여기까지가 언론이 대서특필한 내용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국민연금 기금이 소진된다는 2055년 경 우리나라 노인인구(이하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42%를 차지하고, 2080년 47%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 기간 노인인구 중 약 86~90%가 국민연금을 수령한다.
 

2055년 국민연금 현황 예상 2055년 국민연금 현황 예상 ⓒ 이은영

 
요컨대 지금의 제도가 유지된다면 제도부양비가 상승하고, 국민연금 보험료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진다. 기금도 소진되므로 부과방식비용율이 상승한다. 이 모두는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노인인구 비중이 커진 결과이다.

언론과 재정안정론자들은 이것을 '미래 세대의 부담'이라 부른다. 또한 오건호 위원은 이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2055년 이후 연금을 받게 되는 현세대가 연금 기금을 많이 쌓아놓을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지면에서 그는 이것이 현세대의 '윤리적 태도'라고까지 지적했다.

부당 전제

국민 대다수가, 나아가 소위 전문가라 자처하는 사람들도, 특히 재정안정론자들은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을 민간의 보험처럼 다룬다. 국민연금도 '내가 낸 돈을 노후에 연금으로 돌려받는 것'처럼 여긴다. 국민연금은 강제로 가입해야 하고, 민간보험은 자발적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위에 소개한 암울한 전망도 이 전제에 기초한다. 출산율이 하락하고 노인인구 비중은 증가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로만 연금을 충당한다면, 적자는 너무 당연하다. 국민연금 보험료는 가입자의 근로소득에 대해서만 일정 비율로 부과하기 때문이다. 일하고 돈 버는 사람의 비중이 감소하면 국민연금 보험료를 부과할 대상 소득도 작아진다. 실제로 2055년 경 국민연금부과대상소득총액은 국가 전체의 소득(GDP) 대비 26.1%에 지나지 않는다.

재정안정론자들은 사회 전체의 소득(GDP) 중 70~75%의 소득(가령 대기업의 거대한 이윤, 금융기관의 이자 소득, 다양한 불로소득 등)은 노후소득보장과는 전혀 무관한 것처럼 무시한다. 그 이유를 오건호 위원은 "우리는 보험료율 인상(현세대 책임)을 충분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정안정화 조치를 다 취한 다음에야 국고 지원을 고민해볼 수 있다"(9월 8일자 경향신문 기자와의 인터뷰)고 설명한다. 국고는 근로소득뿐만 아니라 GDP 전체로부터 징수한 세금을 말한다. 그는 또 9월 1일자 <프레시안> 기고에서 국민연금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연금 취약층"으로만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재정안정론자들이 친 프레임이다. 국민연금은 철저히 가입자들만의 문제라는 전제 말이다. 이에 따르면 전체 사회나 정부는 노후소득보장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 또 오건호 위원의 주장에 따르면, 노후소득보장 문제를 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감당해야 할 문제라고 인식한다면 그건 '현세대가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이며,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행위이다. 비윤리적이라는 말이다.

국민연금의 윤리 또는 세대 간 연대
 

노동·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국민운동(연금행동) 관계자들이 1일 오전 국민연금 개혁방안 공청회가 열린 서울 강남구 코엑스 앞에서 재정계산위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 지점에서 국민연금 개혁 논쟁의 진의를 엿볼 수 있다. 국민연금 재정에 관한 논쟁은 가입자들의 소득으로만 해결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재정안정론자들은 이 전제를 '당연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 결과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을 민간의 보험처럼 다룬다. 보장성강화론은 이 전제가 부당하다는 비판에서 출발한다. 그렇다고 현세대의 보험료율 인상을 반대하는 건 절대 아니다.

여기서 사회복지와 공적연금에 관한 오래된 사회철학이나 당위성을 논의할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이 논쟁에서 간과하고 있는 쟁점을 드러내어 토론 테이블에 올리고 싶을 뿐이다. 고령화는 피할 수 없다. 연금이 고갈되는 시점에 노인인구 비중은 40%를 넘어 최대 50% 가까이 증가한다. 노인이 된다는 말은 근로 능력이 현저히 쇠퇴한다는 의미이다. 경제적 이유로 노인에게 노동을 강요하는 것은 아동노동만큼이나 인간의 존엄한 삶을 부정하는 태도이다. 누구나 늙고 노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후소득보장 제도는 모두의 문제이다. 노인이 절반 가까운 인구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란 현실, 그리고 누구나 그 일원이 된다는 사실. 이 두 가지만 인정한다면, 노후소득보장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란 점도 인정할 수 있다.

현재의 추세가 지속한다면 노후소득보장 제도는 치안이나 국방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대상이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다수이고,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정해진 미래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대응할 때,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점은 치안이나 국방을 공공이 아니라 각자가 해결하는 경우를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된다.

노후소득보장이 사회 전체의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문제를 다시 보면, 국민연금 지급액이 사회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재정계산위원회의 추정에 따르면 기금이 소진된다는 2055년 경 국민연금 지급액은 GDP의 7%에 지나지 않는다. 이 비중은 최고 9%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보험료 수입을 제외한 적자액만 보면, 2055년 경 GDP의 4.6%, 2080년 경 최대 7%까지 증가할 수 있다고 한다. 현재의 국민연금 제도를 유지한다고 할 때,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노인인구에게 국민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GDP의 최대 7%를 '사회 전체가 분담'하면 세대 간 형평성을 어기는 일일까?

세대 간 형평성 문제는 현세대와 미래 세대 사이에 책임을 분담하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가입자의 소득만 나눌 것인가, 아니면 사회 전체의 소득을 나눌 것인가. 이것이 국민연금의 윤리 논쟁을 제대로 보는 프레임이다.

참고로 2020년 기준 우리나라 각종 세금과 모든 사회보험료를 합한 국민부담율은 28%였다. 이것이 높은 나라로는 덴마크(46.5%), 프랑스(45.4%), 이탈리아(42.9%), 독일(38.3%) 등이 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은 약 33.5%였다. 다른 나라를 따라야 할 이유는 없지만, 정부가 세금과 사회보험료로 40% 이상 거둔다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국민연금 기금만 충분히 쌓아놓으면 미래 세대에 부담을 지우지 않는다는 주장이 오히려 무책임하다고 할 만한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재정안정론자들처럼 국민연금을 돈(재정)으로만 보면, 현세대는 국민연금 보험료만 더 내면 된다. 현세대 모두가 동의하여 그렇게 한다면 미래 세대에 불리한 두 가지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첫째,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경제는 저생산성의 경제가 될 것이다. 현재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투자해야 할 돈이 국민연금 기금으로 쌓일 뿐이다. 현세대 소득이 획기적으로 증가하지 않는 한, 국민연금 보험료를 더 내면 그만큼 소비 여력이 감소하고 유효수요는 감소할 테니, 기업은 투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미래 세대는 저생산성의 경제를 물려받을 것이다. 재정안정론자들은 이런 결과에 대해 비윤리적이라 말하지 않는다.

둘째, 미래 생산물 중 압도적으로 큰 부분을 노인인구가 소비하게 된다. 국민연금 기금을 쌓느라 생산성을 희생하였고 생산인구조차 감소할 것이므로, 미래의 생산량은 오히려 감소할 수도 있다. 이와는 반대로 노인인구 비중은 증가하고, 국민연금 보험료를 충분히 납부해 온 미래 노인은 국민연금 '권리'를 주장할 것이다. 그 결과, 미래 세대는 스스로 생산한 생산물 중 더 적게 소비할 것이다. 재정안정론자들은 이에 대해서도 비윤리적이라 부르지 않는다.

요컨대 노후소득보장이 사회 전체의 문제란 인식 없이 국민연금 재정에만 집착하면, 미래 젊은 세대와 노인 모두가 불행해진다. 재정안정론이 현세대의 책임을 강조하며 '윤리적 수사'로 포장하지만, 사실은 세대 간 연대를 파괴하는 주장일 뿐이다.

내가 이해하는 보장성강화론의 주장은 이렇다. 현재의 노후소득보장 체계는 존엄한 노후 생활에 턱없이 부족하다. 국민연금은 노후소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혁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당연히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 추가로 필요한 연금 재원은 사회 전체가 분담해야 한다. 구체적 방안은 아무도 모른다. 사회적 타협이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장성강화론자는 '사회공동체파'라 불러야 적당하다.

반면 내가 이해하는 재정안정화론의 주장은 이렇다. 노후소득을 보장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 책임은 (사회 전체가 아니라) 국민연금 가입자들에게 있다. 미래 세대에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면, 현세대 가입자들이 더 부담하게 해야 한다. 여기에 사회나 정부의 책임은 최소한으로 제한해야 한다. 노후소득은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전제에 기초한다는 의미에서 이들은 '각자도생파'라 불려야 마땅하다.

재정안정론자들이 국고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한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사회 전체의 책임과 정부의 역할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이들은 국고 지원을 연금 취약계층만으로 한정하자고 주장하여 그 의미를 퇴색시킨다. 여기서 또 한 번 케케묵은 '선별복지'의 논리가 등장한다. 선별복지 논리의 핵심은 '재정이 제한되어 있으니, 취약층에 몰아줘야 한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선별복지와 보편복지의 장단점을 가리기 전에, 재정적 제약을 따져보는 일이 먼저이다. 복지제도는 사회 전체의 생산물을 재분배하는 제도이다. 없는 것을 나누는 일이 아니라, 이미 생산된 소득을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나누는 제도란 뜻이다. 따라서 정의상 재정은 제한될 수 없다. 다만, 더 크고 보편적인 복지제도를 운영하려면 소득이 많은 측이 더 부담해야 할 뿐이다. 그러니 재정이 제한된 것이 아니라, 기여보다 더 받는 사람과 그 반대인 사람 사이의 경쟁이 존재한다. 재정 제약은 필연적 자연법칙이 아니라 임의로 정한 제도의 문제이고, 따라서 사회적 논의와 타협의 대상일 뿐이다.

경제적 효율성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할 노인인구를 방치하면 '공멸'한다. 즉 부자와 대기업도 노후소득보장에 참여하지 않으면 같이 망한다는 말이다. 극단적으로 불평등한 사회가 지속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부자들만 높은 성벽을 쌓고 그 안에서 홀로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을 탈퇴하고 싶다는 분들에게
 

9일 오전 서울 중구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에 한 시민이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국민연금 논쟁이 지속되면서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만 쌓였다. '국민연금을 받지 못할 수 있다'거나, '미래 세대는 월급의 30%를 국민연금으로 내야 한다'는 등 자극적으로 보도한 언론 탓도 크다.

국민연금을 불신하여 해지하고 떠나고 싶다는 국민에게 공동체를 위한 희생을 구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그것이 본인을 위한 최선을 선택인지 '제대로' 생각해 보라고 조언하고 싶을 뿐이다.

지금처럼 국민연금 재원을 오로지 소수의 미래 가입자에만 떠넘기고 정부는 나 몰라라 뒷짐 지고 있다면, 약속한 국민연금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노후 준비를 포기할 수도 없다. 공적연금 대신 민간 연금에 가입하는 길이 유일한 대안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는 돈 대비 받는 돈(수익비)으로 치면 국민연금에 필적할 민간 보험은 단연코 없다. 강남 부유층을 중심으로 '국민연금테크'라는 말이 유행한 적도 있을 정도이다. 특히 저소득층일수록 유리한 제도이다.

유일한 문제는 국민연금이 안정적으로 지급될 것이란 확약만 얻으면 된다. 이는 정치인들에게 요구하면 쉽게 해결될 일이다. 개인이 연금 재정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라고 정치와 정치인이 있는 것이다. 노후에 약속한 국민연금만 받아내면 된다. 즉 국민연금 개악에 정치적으로 저항하면 된다.

구체적으로 노후소득보장, 더 넓게는 노인복지 문제에 관한 사회 전체의 책임을 강화하는 제도를 정치에 요구해야 한다. 누가 얼마나 더 부담하고 얼마나 더 큰 혜택을 누릴 것인지는 차차 정해질 일이지만, 사회 전체의 책임을 강화하면 평범한 국민 다수에게 무조건 유리한 것만은 분명하다. 구차하게 재정안정에 목메지 말고, 과감하게 재정을 확대하는 상상을 하길 바란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