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16 10:18최종 업데이트 23.11.16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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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의 나세르 병원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부상을 입은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치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2023.11.12. ⓒ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면 공격이 이제 한 달이 넘어간다. 이스라엘의 공격 목표가 과연 하마스인지 아니면 팔레스타인 전체인지, 과연 무엇 때문에 병원과 도서관까지 폭격하며 공격을 지속하는지 알 수 없는 탓에 이것을 분쟁이라고 불러야 할지 전쟁이라고 불러야 할지 난감하다.

전쟁이라는 말도, 분쟁이라는 말도 조심스럽지만 명확하게 학살이라고 부를 수 있을 거 같다. 막강한 이스라엘군의 군사력을 보더라도 그렇고 민간인 피해의 양상을 보더라도 그렇다. 학살이라는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쓸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게 끔찍할 뿐이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학살이 가져온 충격

지난 한 달 동안 가자지구에서 일어난 전쟁과 학살은 두 가지 면에서 매우 큰 충격을 줬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작년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커다란 전쟁이 연달아 일어났다는 점이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전쟁의 뿌리는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군사적 갈등 또한 2014년부터 이어져 온 것이긴 하지만 유럽 대륙에서 국가와 국가 사이의 전면전이 일어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많은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죽고 다치고 도시가 파괴되었다. 전쟁터가 된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는 우크라이나 난민, 전쟁에 동원되지 않기 위해 집을 떠나야만 했던 러시아 난민 등 무수한 난민이 양산되었다.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지 지난 1년 동안 겪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의 끝도 보이지 않는 시점에서 또 다른 전쟁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충격의 크기가 컸다.

충격의 또 다른 면은 지난 한 달 동안 가자지구에서 일어난 학살의 야만성 때문이다.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기습 공격과 민간인 인질 납치도 충격이었지만, 이후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은 양적인 측면과 질적인 측면 모두에서 더 큰 충격을 안겨줬다.

이제 겨우 한 달이 넘어가는 기간 동안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해 1만 명이 넘는 가자지구 주민이 숨졌고,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아래에 깔려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실종자를 합치면 사망자는 훨씬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전기를 차단하여 가자지구 병원들은 절반 넘게 폐쇄되었다고 한다. 가자지구도 사람 사는 곳인데, 기본적인 의료 시스템의 붕괴는 더 큰 비극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당장 신생아와 중환자들은 폭격당하지 않더라도 위험한 상황에 노출된 것이다.

이스라엘이 저지른 폭력은 그 양상도 끔찍하지만 그동안 인류가 무수한 전쟁을 겪으며 스스로 만들어 온 어떤 선을 무력화하고 있다는 것에서 더욱 큰 충격을 가져다준다. 병원과 구급차를 공격하는 건 명백하게 국제법 위반이다. 국제법이 실효성이 있냐는 현실적인 물음도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국제법을 지키는 시늉이라도 하거나 최소한의 명분을 쌓으려는 노력조차 안 하는 것은 다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무척 이례적이다.

유엔 총회는 "적대 행위 중단으로 이어지는 즉각적이고 항구적이며 지속적인 인도주의적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Committee on the Elimination of Racial Discrimination, CERD)에서도 10월 27일 성명을 발표하여 이스라엘과 관련 당사국들의 즉각적이고 완전한 휴전을, 하마스가 끌고 간 이스라엘인 인질과 이스라엘이 구금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인을 석방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전 세계의 규탄과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져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되어 온 국제질서의 붕괴를 뜻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이스라엘의 야만적이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학살로 더욱 힘이 실리는 듯하다.      

전쟁과 폭력의 스펙터클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의 공습 피해를 입은 가자지구 누세이라트 난민촌에서 생존자들을 찾고 있다. 2023.10.31 ⓒ AP/연합뉴스

 
충격이 클수록 차분하게 전쟁이라는 폭력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스펙터클한 전쟁의 폭력에만 몰두한다면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폭력의 다른 면을 보지 못하게 된다. 강력한 폭력의 이미지는 우리에게 누구 편에 설 것인지 계속 질문한다. 누가 더 나쁜 놈인지 저울질하게 만들고, 나쁜 놈을 응징하기 위해 군사적인 해법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도달할 수밖에 없다. 결국 폭력의 스펙터클은 전쟁이 지속되는 구조를 만들고 가장 나쁜 놈 뒤에 숨은 무수한 전쟁의 문제점을 가리게 된다. 

예컨대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이라는 끔찍함에만 주목한다면 나치를 단죄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영국, 소련의 군대가 수많은 독일 여성을 강간했던, 또 다른 전쟁범죄를 인지하지 못하는 되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전쟁은 어느 한 가지 갈등만으로 일어나기보다는 여러 갈등과 이해관계가 중첩되어 일어난다. 그 복잡한 문제를 거대한 폭력의 스펙터클 뒤에 숨겨 놓고 단 하나의 문제 혹은 하나의 악당만을 지목한다면 오히려 전쟁의 여러 문제점을 가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우리는 눈앞의 거대한 폭력으로 가려진 것들 바라봐야 한다. 전쟁과 군사적 폭력이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의 지배를 받는 웨스트파푸아에서, 예멘과 시리아의 내전에서, 미얀마에서, 세계 곳곳에서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폭력은 더욱 교묘하고 악랄하고 지속적으로 평화와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폭력의 스펙터클에 휘둘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난 10월 7일 하마스가 공연장에서 민간인 인질을 납치해 간 일이 어디에서 기인한 폭력인지 알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지난 수십 년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저지른 집요하고 지속적인 폭력의 일부다.

또한 지난 한 달 동안 이스라엘이 저지른 학살에 대한 우리의 분노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게 된다. 손쉬운 분노는 피해자에게 연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족을 위한 퍼포먼스가 될 수도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폭력이 어떻게 지속되어 왔고 우리는 그 폭력에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살피지 않은 채 눈앞의 상황에만 분노한다면, 그런 분노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어왔고 겪고 있는 폭력과 전쟁을 막는 것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전쟁을 바라볼 때 눈앞의 폭력과 야만에 분노하면서도, 그 스펙터클에 휘둘리지 않고 폭력이 어디에서 기인했고, 그 폭력이 어떻게 전쟁으로 바뀌었는지와 전쟁은 폭력을 어떻게 재생산하고 확대하는지, 그리고 격렬한 전투 이후에는 전쟁과 폭력이 어떤 방식으로 지속되는지를 살펴야 한다.

이는 굉장히 더디고 느리고 답답한 과정이며, 특히 거대한 폭력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이런 접근이 무의미하고 무력하다고 느끼기 쉽다. 하지만 지금 당장의 폭력을 막기 위한 절실하고 절박한 행동을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자극적이고 스펙터클한 이미지와 감정을 걷어내고 전쟁의 복잡한 얽힘을 바라봐야 한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전쟁을 막아야 한다

 

영국 런던에서 열린 '지금 당장 휴전' 집회에서 시위대가 트라팔가 광장에 놓인 팔레스타인 어린이 사망 사진 옆에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고 가자지구의 휴전을 촉구하고 있다. 2023.11.04 ⓒ EPA=연합뉴스

 
전쟁은 일단 시작되면 쉽사리 끝나지 않는다. 강한 관성과 중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전쟁을 주도한 세력은 완전한 승리를 가져오기 전까지는 전쟁을 중단할 수 없다. 전쟁을 시작하고 지속하는 데 필요한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약속한 것들을 얻어내지 못한 채 전쟁을 끝낸다면, 전쟁을 주도한 정치세력은 권력을 잃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금 휴전에 나선다면, 무리하고 무모한 전쟁을 주도한 것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또한 마찬가지다. 이제 2년이 다 되어가는 전쟁으로 무수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죽고 다쳤는데, 러시아에 군사적 승리를 거두지 못한 채 전쟁을 마무리한다면 과연 그가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정치인들이 합리적인 판단으로 전쟁을 멈추는 일은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낫다. 

전쟁 중단을 결심하지 못하는 것은 정치인들만이 아니다. 전쟁을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보통의 사람들도 만약 전쟁이 일어났다면 싸워 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과 판단이 쌓여 전쟁이 지속된다. 전쟁이 지속되면 될수록 이득을 얻는 이들, 군수산업체들과 호전적인 정치인들이 보통사람들의 복수심과 애국심을 부추겨 전쟁을 땔감으로 쓰는 것이다. 나치 독일이 전쟁을 치르는 동안 인종차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 가장 대표적인 예시다. 

이처럼 이미 시작된 전쟁은 모든 평화적인 노력을 오답으로 만든다. 실제로 전쟁이 일어난 뒤 많은 평화활동가들이 무력감을 느낀다. 우리가 촛불집회를 백날 한다고, 대사관 앞에 가서 시위를 한다고 정말로 전쟁을 중단시킬 수 있을까? 하지만 무력감에 빠지는 것이야말로 전쟁이 유지되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반대로 국민들이 전쟁을 비판하는 여론이 높다면, 전쟁에 동참하지 않는 국민들이 늘어난다면 그 정부는 전쟁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잃게 된다.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재임 시절에는 베트남전쟁 반전 운동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회고록에서 반전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미국 시민들의 반전운동이 미국 정부가 전쟁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을 꺾은 것이다. 

결국 우리가 찾아야 하는 건 전쟁을 지금 당장 멈출 수 있는 매끈한 정답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정부가 전쟁을 지속하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 부당한 전쟁에 군인으로 참전하기를 거부하고, 전쟁에 쓰이는 물자를 생산하고 운반하는 것을 거부하거나, 전쟁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을 지지하지 않고 뽑지 않으며, 전쟁을 중단하는 노력에 앞장서도록 정부를 압박해야 한다. 또한 수십 년 동안 지속된 이스라엘의 폭력과 학살로 돈벌이를 하는 무기회사들이 더 이상 학살로 돈을 벌 수 없게 해야 한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국경없는의사회한국사무소,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옥스팜코리아가 지난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앞에서 '한국정부 이스라엘/OPT 휴전 촉구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 이정민

 
전쟁과 학살을 지금 당장 중단시키기 위한 여러 활동이 전 세계에서 펼쳐지고 있다. 런던에서는 50만 명이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한 행진을 했고,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평화활동가들이 이스라엘로 가는 무기를 배에 싣는 것을 막아섰다. 미국의 유대인들은 국회의사당을 점거하고 휴전을 촉구하며 홀로코스트가 재현되어서는 안 된다고 외쳤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투하하는 폭탄을 제조하는 보잉의 공장을 봉쇄한 활동가들도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자국 정부의 학살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병역거부자들이 있다. 한국에서는 오는 11월 17일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으로 죽어간 모든 이들을 상징하고 추모하는 액션이 보신각 앞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이 모든 행동은 내일 당장 학살을 멈추게 하지는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행동이 더 커지는 만큼 전쟁과 학살이 중단되는 날이 앞당겨질 것이다. 

그리고 지금 진행 중인 학살을 멈추려는 노력과 동시에 이런 전쟁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는 좀 더 긴 호흡으로, 그렇지만 아주 구체적인 장소에서 전쟁과 폭력에 맞서야 한다. 이미 시작된 전쟁을 막지 못한 것을,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에서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일을 방지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며 앞으로 일어날 또 다른 전쟁은 시작되기 전에 막아야 한다.

전쟁을 결정하려는 정치인들을 막아서고, 전쟁으로 돈을 버는 무기회사들의 돈벌이를 막아서며, 우리가 전쟁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며 용인하도록 만드는 일상의 군사주의가 작동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전쟁이 시작되는 곳이 바로 우리가 가장 효과적으로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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