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06 14:51최종 업데이트 23.12.06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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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남소연

     
"(전광훈 목사와) 만나지도 않았다."

강성 보수 성향의 전광훈 목사를 만났느냐는 질문에 대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답변이다. 그러나 이는 거짓말이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후임 장관 지명 후 정치 재개 첫행보로 4일 '경북·대구 장로총연합 지도자대회'에 참석해 신앙 간증을 했다. 이 행사는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가 주도하고, 전 목사를 비롯해 보수성향 목사들 다수가 초청 강사로 나왔다. 

기자들은 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를 마치고 나온 원 장관에게 전광훈 목사 관련 행사에 대해 물었다. 원 장관은 "제가 기독교인이지 않은가? 그래서 제가 신앙 간증을 하러 다녀온 것이다"라며 "거기에 누가 어떤 내용으로 하는지는 자세히 잘 모르고 갔다"고 말했다. 

전광훈 목사 대기실 찾아가 인사한 원희룡
 

원희룡 장관이 전광훈 목사 대기실에 찾아가 인사한 후 대기실을 나서는 모습 ⓒ 유튜브 갈무리

 
원 장관은 전광훈 목사를 만나지 않았다고 했지만 < CBS노컷뉴스 >는 원 장관이 전광훈 목사 대기실을 찾아가 인사했다고 보도했다. 유튜브 영상을 보면 강연을 마친 원 장관은 전 목사 대기실을 찾았고, 전 목사는 환하게 웃으며 원 장관에게 악수를 건넸다. 

원 장관은 "(전광훈 목사와) 만나지 않았다"는 말이 거짓으로 드러나자 "전 목사와는 대기실에서 잠시 만난 게 전부"라고 해명했다. 

일각에선 원 장관이 전광훈 목사와 만난 사실을 숨긴 배경에 대해 사랑제일교회 500억 알박기 논란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된 장위 10구역에 있는 사랑제일교회는 서울시가 산정한 감정가 82억의 6배가 넘는 536억 원을 보상해달라고 요구했다가 모두 패소했다. 이후 6차례나 강제집행을 막았다. 결국 재개발조합으로부터 500억 원의 보상금을 받고 이주에 합의했지만 "교회를 이사하지 않겠다"며 입장을 번복했다. 

원희룡 장관 측 관계자는 < CBS노컷뉴스 >와의 전화 통화에서 "원 장관이 전 목사를 만나지 않았다는 건 '알박기 논란을 논의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던 것"이라며 "그것과 관련해서 따로 만난 적은 없다는 말로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만난 사실을 굳이 숨겼다는 점에서 오히려 의구심을 자아내게 했다. 

일각에서는 총선 출마를 앞두고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일명 '태극기 부대'와 같은 개신교인들의 힘을 얻고자 하는 구애의 손짓이라는 말도 나온다. 특히 후임 장관 임명 후 첫 정치행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한라산신제를 신사참배에 빗댄 원희룡 
 

원희룡 장관이 신앙 간증을 한 '경북·대구 장로총연합 지도자대회'는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단체가 주도했다. ⓒ 유튜브 갈무리

 
원희룡 장관은 '경북·대구 장로총연합 지도자대회'에서 제주도지사 재임 시절 한라산신제 집전 거부를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거부 운동과 비교해 도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원 장관은 "2014년 제주도지사에 취임하면서 큰 시험이 닥쳐왔다. 도의회 조례로 한라산신제를 도지사가 제관이 돼서 도포 입고 제사를 지내야 한다. 법이 그렇게 돼 있다"면서 "장로나 목사님에게 물어봤다. 일부는 '신앙이 아니고 문화다. 도민을 편안하게 해주는 게 좋다'고 허용하는 분도 계셨고, 어떤 분들은 '제주도가 미신과 우상이 많은 곳인데 원 장로 둘째 아들이 교회에서 밀어줘서 도지사가 됐는데 맨 앞에서 그러면 되겠느냐'고 반대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일제시대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신사참배는 '국가행사이지 신앙과 관계없다'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신사참배 거부로 주기철 목사는 순교했다. 산신제에 절하는 것을 생각해 보니 도지사를 안 하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것 때문에 도민들이 그만하라고 하면 그만할 각오였다"고 말했다. 

원 장관이 한라산신제를 신사참배에 빗댄 것은 지나친 억측이라는 주장도 있다. 신사참배는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의 하나로 강요한 것이고, 한라산신제는 1908년 일제가 강제로 폐지한 뒤 해방 이후 도민들이 부활시킨 제주도민의 문화행사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한라산신제 집전 거부를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순교자처럼 포장했지만 제주도지사 시절 보여준 모습은 신앙 간증과 전혀 달랐다. 

원 장관은 2015년 제주도의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한라산신제 초헌관 집전 거부에 대해 "제주도의 전통문화인 한라산 산신제 불참에 대해 참 난감하다. 기독교적 가치관 때문인데 '나이롱'이라고 표현하면 섭섭하고 신앙 서열로 따지면 끄트머리에 있는 기독교 집안"이라며 "은퇴장로로서 기독교를 신조로 삼은 아버지가 신앙만을 지켜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집안의 전통을 지키고자 그랬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원 장관은 이후로 한라산신제와 건시대제 제향행사 등 도지사가 제관으로 참여하는 행사에 불참했다. 문제는 신사참배와 비교했던 신앙 간증과는 달리 행사에 불참하기 위해 다른 행사에 참석하거나 일부러 행사 시간에 늦게 오는 등의 꼼수를 부렸다는 것이다. 마치 종교적 신념이 아닌 것처럼 이리저리 핑계를 댄 셈이다.

서울시민 원희룡, 제주 출신이 핸디캡 
 

2010년 3월 7일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이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서울시장 출마선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원희룡 장관은 제주제일고 출신으로 학력고사와 사법고시 수석이라는 이력 때문에 제주 도민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제주 출신이라는 점이 정치인에게 핸디캡일 수 있다고 말하며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할 때는 '서울시민 원희룡'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2014년 지방선거 열흘 전에는 "선출직 당선 고민했으면 서울시장 선거를 준비했을 것"이라며 제주지사 출마를 부인하다가 돌연 선거에 나서기도 했다. 

인구 50만 작은 지역 출신이라며 제주를 비하했던 그는 제주도지사 출마 선언문에서는 "제주의 진정한 크기는 인구와 면적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알려거든 제주를 보라"며 말을 바꾸었다. 

원희룡 장관이 내년 총선에서 어느 지역에 출마하느냐는 본인 마음이겠지만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말을 바꾸는 행태로는 유권자를 마음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
덧붙이는 글 독립언론 '아이엠피터뉴스'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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