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04 13:48최종 업데이트 24.03.04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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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 쓴 강지나 작가 ⓒ 차원

 
"잘사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 되기 쉬워."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어른이 된 가난한 아이 이지안(이지은 분)의 이 말은 가난함과 부유함의 차이를 드러낸다. 돈이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보다 기부하기 쉽고, 종일 앉아서 일한 사람이 서서 일한 사람보다 자리를 양보하기 쉬운 것은 당연한 일.


이런 세상에서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지 궁금했다. 그들의 성장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과연 고군분투 끝에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었을까. 지난달 28일, 오마이뉴스 서교동 마당집에서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의 저자 강지나 작가를 만났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나도 책 속 아이들과 비슷하다'며 북토크 찾아온 관객 기억에 남아"

- 신간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는 어떤 책인가.

"빈곤의 대물림에 대한 논문을 쓰고 난 다음, 논문에 등장하는 청소년들의 생애사를 중심으로 책을 써보고 싶었다. 그렇게 여섯 명의 청소년, 그리고 김용균 사건 이후 특성화고를 나온 두 명을 추가로 만나 총 여덟 명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제목에는 '아이들'이라는 말을 꼭 넣고 싶었다.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힘과 전략과 지혜가 있었는지도 담았다.

가난이라고 하면 단순하게 약자다, 힘이 없다, 꿈이 없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다양한 상황이 있고, 또 아이들에게는 강한 생명력과 그 상황을 개척할 힘이 있다는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책에 자세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 현직 교사인 것으로 안다.

"2000년에 발령받아 지금도 근무 중이다. 아이들에게 좋은 교사가 되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더라.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보고만 있기 어려워 사회복지 공부를 시작했다."

- 책이 나온 뒤 주인공들은 어떤 반응이었나. 북토크 후기도 궁금하다.

"스스로 봐도 자기의 삶이 너무 처절해서 슬프다는 친구도,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모습이 기특하다는 친구도 있었다. 많은 분이 북토크를 찾아주신 것도 감사한 일이다. 특히, 북토크가 끝난 후 '나도 책 속의 아이들과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며 다가온 이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도움받을 방안을 설명줬다."

"특성화고 현장실습 필요하지만...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져야"
 

가난한 아이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사회적 관계망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강지나 작가 ⓒ 차원

 
- 특성화고 현장실습에 관한 의견이 궁금하다.

"그 분야에서 근무해야 하는 친구들은 그 제도가 꼭 필요하다고 하더라. 있어야 하는 제도는 맞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체제는 안된다. 매우 위험한 일터에 매우 적은 임금을 받고 일하는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 영화 <다음 소희>에 나오는 문제가 다시는 없어야 할 것 아닌가. 안전하게 제대로 대우받으며 일할 수 있어야 하고, 교육의 테두리 안에 있어야 한다. 결국 노동 시장 안에서의 안전 문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 결국 사회 전체의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으면 가난한 아이들은 계속 있을 수밖에 없겠다.

"그래도 지금은 모두가 마음만 먹으면 대학교까지는 졸업할 수 있다. 지원도 적지 않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우리나라 노동 시장 양극화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100대 기업이 받는 평균 임금과 중소기업이 받는 평균 임금의 격차가 어마어마하지 않나. 이런 사회의 문제가 당연히 청소년들에게도 대물림 될 수밖에 없다. 가난한 아이가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 공교육의 역할도 중요한데, 잘하고 있다고 보나.

"그래도 진보 교육감 시대를 거치면서 과거에 비해 많이 공공성을 갖췄다고 본다. 무상교육, 무상급식 등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데까지는 돈도 거의 들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성과다. 누군가 이것을 되돌리려 해도 쉽지 않을 거다."

- 가난한 아이들은 탈학교 청소년이 되기도 쉽다. 책에도 관련 사례가 나오는데.

"학교를 떠나는 학생들을 위한 제도도 있지만, '청소년은 곧 학생'이라는 인식이 있기에 많은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게 된다. 사실 이 책에 나온 아이들의 경우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아예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은둔형 외톨이들이 정말 많다. 관심과 정책이 절실하다."

"자립준비청년, 금전적 지원보다 사회적 관계망 제공이 절실"
  

책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표지 ⓒ 돌베개

 
- 빈곤 청소년들의 상황은 어떤가.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현재의 빈곤 개념은 해체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먹고 살기만 하면 되는 세상은 아니지 않나. 우리 사회의 수준이 많이 올라왔고, 예전같이 밥을 굶어야 하는 가난은 많지 않다. 따라서 의식주에 대한 부분도 중요하지만, 불평등 등 구조화된 차별에 더 집중해야 한다. 지원 과정에 있어서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더 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 정의로운 분배가 필요한 이유다. 현재 시혜적이고 파편적인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 현재 우리 사회엔 능력주의, 노력 만능론이 팽배하다. 책을 소개한 기사를 보니 '노력을 안 해서 가난한 거 아니냐, 그런데 왜 우리 세금을 도와야 하느냐'는 댓글이 많더라. 뭐라고 답변할 건가.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탓하기보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공공성에 대한 논의가 너무 부족했구나 싶다. 공부를 잘하고 돈을 많이 번 게 다 자기가 잘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은 인프라가 풍족한 지역에서,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는 부모에게서 태어나서, 장애가 없어서 등등일 확률이 높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렇지 않은 조건에서 태어나서 자라는데, 이런 운이 개인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우리 사회가 공유하지 못했다. 공공의 의미를 생각하고, 건강한 소통이 이뤄지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 최근 국민의힘에서 자립준비청년들을 위한 공약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어떻게 평가하나.

"주로 금전적인 지원 이야기가 많던데, 돈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아이들과 만나서 이야기해 보면, 사회에 나와서 적응할 때 누군가 내 옆에 있어 주길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크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사회적 관계망이 곧 안전망이다. 복지관에서 지원받아 사회에 나간 청년들이 돌아와 자원봉사를 하는 경우도 인상 깊더라. 이런 공간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이제 어른의 삶을 살고 있는 책 속의 주인공들의 경우, 여전히 가난이 남긴 통증이 재발하기도, 상처가 아문 자리에 새살이 돋아나기도 한다. 부디 이 여덟 명의, 그리고 세상 모든 가난한 아이들의 삶이 마침내 편안함에 이르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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