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24 20:12최종 업데이트 24.04.24 20:12
  • 본문듣기

지난 3월 2일(현지시간), 남극에서 연구원들이 조류독감의 확산을 조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 조류인플루엔자(아래 조류독감)에 대한 기사가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말 그대로 새들이 걸리는 이 독감은 철마다 새로운 변이가 유행하며 세계 모든 조류를 위협한다. 보통 닭, 오리, 칠면조, 거위 등 가금류를 중심으로 변이가 등장해 유행을 시작하고, 점차 야생의 새들 사이로 퍼지는 양상을 보인다. 더러 감염된 철새들이 대륙을 오가며 이 변이를 퍼뜨린다. 

지난 글 '유럽 덮친 홍역... 우리도 안전하지 않은 이유'(https://omn.kr/2858b)에서 사람들을 오래도록 괴롭혀온 전염병 '홍역'이 거대 도시가 들어서던 시기부터 주기적으로 창궐해 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바이러스는 여러 숙주를 전염시킬수록 생존과 번식의 기회가 많아지는 만큼 많은 개체들이 밀집해 사는 환경이 진화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조류독감도 인간의 대도시 생활에 비견할 가금류 농장들이 새로운 변이와 유행의 무대가 되기 쉬운 것이다.


조류독감에는 다양한 바이러스주(stain)가 있는데, 그 하위 변이들이 번갈아 유행을 일으킨다. 최근 세계적으로 유행 중인 것은 H5N1으로 불리는 바이러스주에 속한다. 1996년 중국 광둥의 거위에게서 처음 발견되었던 이 바이러스주가 특히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20년 2.3.4.4b로 분류되는 새로운 변이로 유럽에서 큰 유행을 일으키기 시작하면서였다. 이 변이는 2021년과 2022년 사이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를 너머 아메리카로까지 번지면서 대략 수억 마리로 추산되는 규모의 새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조류독감이 무서운 이유

우리가 조류독감을 우려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새로 유행이 시작할 때마다 가금류의 높은 폐사율로 이어져 경제적인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고, 야생의 새들 사이에서 유행이 퍼지면서 여러 희귀 종들이 멸종위협에 놓이게 되기도 한다.

특히, 우리의 촉각을 곤두서게 하는 것은 이것이 혹여 사람에게로 옮겨 와 유행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실제로 사람 사이에 유행하며 매년 겨울 새로운 유행으로 이어지고 있는 인플루엔자도 조류독감에서 건너온 바이러스가 사람을 주요 숙주로 감염시키는 형태로 자리잡은 경우다.

사람에게서 독감의 유행처럼, 조류독감도 계절별로 여러 변이가 유행을 해왔지만, 지금 유행 중인 2.3.4.4b가 걱정을 일으키는 지점은 지난 2년여간 전염력과 치사율이 모두 크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특히, 야생의 새들 사이의 전염성이 폭발적인 것으로 관찰되고 있고 개, 너구리, 여우, 밍크, 곰, 물개, 돌고래 등 다양한 포유류에서 감염 혹은 유행 사례들이 지속적으로 보고되어 온 것이다. 
 

지난 8일 자 <네이처> 기사 "미국 소들에게 퍼지는 조류독감: 과학자들이 우려하는 이유" ⓒ 네이처


지난 8일 <네이처>는 "미국 소들에게 퍼지는 조류독감: 과학자들이 우려하는 이유"에서 최근 미국 소농가 여섯 곳에 조류독감이 퍼졌고, 사람에게 감염되는 사례가 한차례 보고되었다는 내용을 전했다. 조류독감이 소에게 감염되고 유행하는 것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일단 이 바이러스가 새들에게 매우 치명적인 데 비해 소들에게서는 가벼운 증상만 관찰되었다는 점에서 일차적으로는 안심이 된다.

그럼에도 사람에게 가까운 종으로 계속 번지게 되면 진화를 거듭하면서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전염되는 형태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실제로 이번에 소들 사이에 유행하는 바이러스 변이에서 포유류 감염에 더 용이한 돌연변이들이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있었다.

사람에게 감염되면

조류독감이 사람에게 감염되면 얼마나 위중할까. <네이처> 기사에 보고된 사람 감염의 경우, 감염이 유행하던 농가 중 한 곳에서 일하던 직원으로 증상은 눈의 염증 정도였고, 코에서 측정한 바이러스 양도 낮은 수준이었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2003년 1월부터 2023년 12월 사이 H5N1에 감염된 사람은 모두 248명이다. 대부분 가금류 농장에서 일하거나 조류독감으로 죽은 새들, 또는 그 체액이나 배설물에 직접 노출된 사람들이다. 사람에서 사람으로의 감염성은 낮은 것으로 관찰된다.

그런데 경각심을 일으키는 점이 있다. 높은 치명률이다. 앞서 말한 20년간 H5N1에 감염된 248명 중 139명이 사망했다. 조류독감을 모니터링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다.

2023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된 논문은 여러 바이러스가 같이 감염된 상태에서 이들 유전체가 재편성되는 과정을 거치며 빠르게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했다.

바이러스 유전체의 진화에는 여러 과정이 있다. 이 변이의 경우, 한 숙주에서 만난 여러 종류의 바이러스들이 서로 부딪혀 쪼개지고, 이 조각들이 서로 짝을 바꿔 다시 붙는 식으로 새로운 유전조합이 만들어졌고, 그중에서 더 빨리 퍼지는 변이들이 선택(유행)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변이들이 우연히 치사율도 높아진 것이다. 같은 논문은 실험을 통해 현재 유행 중인 변이가 호흡기계통뿐 아니라 뇌에 이르는 신경계 전반으로 퍼지고 영향을 미친다고도 보고했다. 치명률이 높아지는 이유를 설명하는 결과다.

세계 곳곳에서 모니터링과 더불어 여러 새로운 시도를 시작했다. 예를 들어, 2023년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콘도르에 조류독감예방접종을 하기로 했다. 1980년대 22마리로 멸종 위기에 처했던 이 종은 보호 프로그램을 통해 현재의 500마리대로 개체수 회복을 했다. 2022년부터 미국에 빠르게 번지는 H5N1 바이러스로 절멸의 위기가 예측되자 과학자들은 먼저 열 마리의 콘도르에게 2차례씩 예방접종을 하고 항체 생성을 확인한 뒤에, 예방접종 캠페인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조류독감 백신 캠페인 성공할까
 

지난 3일(현지시간) 프랑스 농업식량주권부 마크 페노 장관은 자신의 엑스(옛 트위터)에 프랑스의 한 농가에서 오리에게 조류독감 백신을 접종하는 사진을 올리면서 "2023년 10월 1일부터 2024년 9월 30일까지 6400만 마리의 오리에게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 마크 페노


2023년 10월 프랑스는 유럽 최초로 오리에 독감 주사 캠페인을 시작했다. 2.3.4.4b의 유행으로 유럽의 가금류 농가 피해가 커지면서 6000만 마리가량의 오리를 대상으로 예방접종을 하기로 한 것이다.

매년 수백만 유로에 달하는 예산이 필요한데 우리의 농림축산식품부에 해당하는 농업식량주권부에서 85%를 보조한다. 태어난 지 10일이 안 된 아기 오리들을 대상으로 두 차례에 걸쳐 접종 실시하는 것으로 사람들이 영유아에게 필수 예방접종을 하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가금류를 대상으로 예방접종을 하는 것은 기술적으로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지만, 논쟁이 많았던 일이다. 최근 프랑스의 결정을 놓고도 마찬가지다. 예방접종을 해도 감염으로부터 100% 보호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러 감염되는 새들이 생길 텐데, 이 새들이 가벼운 증상 혹은 무증상을 보이면, 조류독감이 유행하더라도 농장에서 알아차리지 못하고, 감염된 새를 식용으로 유통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감염에 노출되는 상황이 되어 버릴 뿐 아니라, 세계 수출망을 통해 새로운 변이가 순식간에 여러 나라로 퍼지게 될 것이 자명하다.

당장 지난해 10월 미국은 프랑스 가금류 수입을 제한했다. 일본 농림수산성도 예방접종 캠페인 이후로 프랑스 가금류에 대한 수입을 유예하기로 했다. 조류독감이 새들과 바이러스와의 전쟁만이 아닌 이유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