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01 17:10최종 업데이트 24.05.0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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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5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한 여성이 평화를 상징하는 새가 그려진 벽화 앞을 지나가고 있다. 이스라엘의 시리아 주재 이란 대사관 공습에 이어 이란의 이슬람혁명수비대가 이스라엘을 향해 드론과 미사일을 발사한 이후 이란과 이스라엘 간의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 ⓒ 연합뉴스


모두 평화를 말하지만, 평화의 길에 대해서는 상반된 소리가 있다. 첫째는, 무대응적 절대 평화론이다. 보복과 폭력은 또 다른 보복과 폭력을 불러올 것이기에 사랑과 용서, 비폭력을 호소한다. 역사 속에서 이런 노력이 원수(악인)의 마음을 움직여 화해와 평화를 이뤄낸 사례도 적지 않다.

나도 목사이지만, 눈앞의 현실을 부정하거나 완성된 종말의 윤리를 곧바로 적용하는 건 조심스럽다. 국가와 사회가 존재하는 한 군대와 경찰, 사법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고, 지나치게 추상적, 이상적 평화론은 오히려 약자의 생명과 인권을 희생시킬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현실론을 내세워 이와 정반대의 주장이 쉽게 힘을 얻는다. 요즘 국제사회에서 일반화된 힘에 의한 평화론이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고 했던 로마 제국의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 레나투스가 대표적이며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상대도 두려워하고 역설적으로 평화가 유지된다'는 말이다.

아이러니한 건 1990년대 세계 냉전체제가 끝난 뒤 30여 년인 최근 세계는 유례없이 '힘의 평화' 신봉자들로 넘쳐난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이스라엘은 물론 남북한도 갈수록 이를 종교처럼 숭배하고 있다.

권력과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원래 힘에 의한 평화를 선호한다. 대통령과 수상은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목소리가 클수록 인기는 올라가고 전쟁이 나도 자기와 가족은 안전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장군도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는 건 사병과 초급장교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블라디미르 푸틴, 베냐민 네타냐후, 조 바이든, 시진핑, 김정은과 윤석열의 발언에는 힘이 있고 거침이 없다. 모두 타인의 목숨을 담보로 잡은 용기이며, 목숨이든 재산이든 자신들은 크게 잃을 게 없다. '북진통일'을 목 놓아 외치던 이승만 대통령이 막상 전쟁이 나자 수도 방어를 포기하고 일찌감치 대전으로 피난 가고, 12.12사태 당시 대부분 지휘관은 그저 관망하고 있던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거침없는 '힘의 평화론'
 

2022년 10월 4일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북한의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발사와 관련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 참석해 있다. ⓒ 대통령실


특히 한반도에 사는 우리는 정치라곤 해본 적 없는 윤석열 대통령의 거침없는 힘의 평화론을 크게 주의해야 한다. 윤 정부 이전에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강경하게 대응한 적은 많다. 그러나 한편에선 강경한 규탄 발언과 군사적 대응, 국제사회의 비난을 이끌어내면서도 다른 한편 물밑 협상과 중국 등을 통해 서로의 수위가 더는 높아지지 않도록 관리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통령 자신이 가장 앞장서 북한은 물론 중국에 적대하고 미국, 일본과의 군사동맹만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다. 더구나 상시적 한반도 위기를 관리해야 할 대한민국 대통령이 남북과 한반도를 넘어 대만, 필리핀 등 동아시아 상황과 우크라이나 등 유럽 사태까지 끌어들여 함부로 개입하려는 위태한 행보를 멈추지 않는다.

강경 일변도의 한미일 동맹을 부르짖지만 돌아서면 또 다른 경로를 통해 접촉하며 상황을 관리하려는 미국이나 일본과 다르다. 오직 윤석열 대통령만 중국과 러시아와 세계 곳곳에서 정면충돌을 조금도 꺼리지 않는다.

그러나 국제사회 각국의 이러한 거침없는 '힘의 평화론' 행보에는 단지 정치 지도자들의 만용만 아니라 적당한 긴장과 분쟁, 전쟁까지 피하지 않는 자본의 욕망이 숨어 있다. 2023년 한해 지출한 전 세계 군사비만 해도 2조 4430억 달러(약 3361조 원)를 넘어섰다.

가장 큰 이해관계를 갖는 미국은 국제적 안보 위협과 긴장을 적당히 고조시켜 가면서 온 세계에 절대우위 산업인 무기를 팔아 막대한 이득을 남긴다. 군수산업은 미국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변치 않는 큰 기둥이다. 2차 대전 이후 전범의 책임을 지고 유지해 온 평화헌법을 이미 무력화한 일본의 군사적 팽창에도 역시 숨은 실력자인 일본의 막강한 군수산업이 있다.

1970년대부터 '자주국방'을 내세우며 기초적 국산 장비를 조립 생산해 내는 것으로 시작된 한국의 군수산업은 주요 재벌들이 깊이 참여하면서 이미 유망한 수출 품목이 되어 있다. 대북 대응을 위한 무기는 물론 주요한 수출국이 되어 세계 곳곳의 무기를 공급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후 포탄을 간접 공급하고 있기도 하다.

미국은 흔들리지 않는 세계 군비 지출 1위와 무기 수출국 1위를 유지하고 있고, 한국도 두 항목 모두 세계 10위권 안팎이다. 늘어난 국제분쟁과 기후 위기, 재난을 대응, 지원하는 유엔과 각국 지원금은 갈수록 부족한데도 군비와 군수산업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생명과 안전이 돈벌이 수단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지구촌은 지금 실감하고 있다.

나는 냉엄한 안보 현실과 국제사회에서 군대도 무기도 없애고 절대 평화만 주장하는 게 평화의 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긴장과 증오감을 줄일 아무런 구상도, 전략도 없이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궁지에 몰아넣고 적대함으로써 높아진 긴장감을 무력으로 막겠다는 생각은 악수(惡手) 중 악수다.

흔히 공멸이라는 말을 쓰지만, 사실 모든 재난이 모두에게 같은 해를 끼치는 게 아니다. 막아낼 힘없고, 피할 길 없는 약자만 일방적으로 희생시키고 상층부는 기득권을 더 키우는 유혹이 된다.

핵 공포를 없애려면
 

2023년 4월 28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에서 '자유를 향한 새로운 여정'을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핵무장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빠른 시일 내에, 심지어 1년 이내에도 핵무장을 할 수 있는 그런 기술 기반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 로이터=연합뉴스

 
최근 '힘에 의한 평화론'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논리 중 하나가 한국 핵무장론이다.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이고 그 능력이 날로 향상되는데, 미국은 1991년 한반도 배치 전술핵무기를 철수했고 지금은 유사시에 주한미군의 전략폭격기나 항공모함, 잠수함을 통해 북한에 대응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핵무장론자들은 미국의 의지를 믿을 수 없고 그만큼 대응도 늦을 수 있으니 한국도 독자적으로 핵을 개발해 보유한다면 북한과 공포의 핵 균형을 통해 평화를 보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갈수록 정부와 군 고위관계자는 물론 윤 대통령도 이를 심심찮게 언급할 정도다.

그러나 한반도 핵무장 평화론은 논리적, 현실적 오류가 수두룩하다. 무엇보다 미국이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기존 핵보유국들은 자신들의 핵 독점을 통해 세계 전략의 주도권을 사수하려고 하는데, 미국, 중국, 러시아의 핵 사용권 반경에 들어 있는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북한에 이어 한국마저 핵무기를 개발하면 일본은 물론 세계 곳곳에 핵확산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심지어 누군가는 차라리 세계 모든 나라가 핵보유국이 되면 모두가 서로를 두려워해 역설적으로 세계적인 핵 협상이 가능하고, 국제 평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소설 같은 이야기도 할 정도다. 모두 핵무기가 얼마나 위험하고, 관리하기 어려운 무기인지 몰라서 하는 소리다.

1991년 소련연방이 해체될 당시 매우 민감한 문제 중 하나가 구소련 연방국가들이 보유하고 있던 핵무기 통제권을 어떻게 할 것이냐였다. 연방 소속 국가들은 소련에서 독립하는 대신 핵무기를 러시아에 반환함으로써 핵무기가 개별국가들로 확산할 위험성을 차단했을 만큼 핵무기 통제는 어려운 일이다.

특히 핵보유국에 내란이나 군사 정변 같은 사태가 일어나 군부 강경파나 테러 세력에 넘어간다면 주변국 모두에 매우 위험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영화 <강철비>는 그러한 시나리오를 배경으로 만든 작품이다. 다시 말하지만, 핵무기는 '잘 되면 평화, 아니면 말고!' 식의 흥미로운 시나리오 중 하나가 아니다.

이는 개척 시대부터 오랜 역사와 전통을 들이대며 공화당과 총기회사가 국민 모두 스스로 안전하게 지킬 자유로 총기 보유를 부추기지만, 그럴수록 무고한 미국민들이 총에 맞아 희생되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인류가 존재하고 역사가 진행되는 한 영원한 절대 평화는 기대하기 어렵고, 정치와 외교의 역할은 당대마다 더 안전한 관리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정치와 외교의 대화와 협상은 나와 상대의 필요와 두려움을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주기만 해도 안 되고, 우리만 얻으려 해도 안 된다.

그러므로 핵 공포를 없애려면 북한의 국제적, 경제적 고립을 열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들어갈 수 있게 우리가 도와야 한다. 그리고 그저 북핵만 없애겠다고 달려드는 게 아니라 한반도와 동북아에 핵무기가 개발, 반입, 배치되지 않도록 남북, 미중, 러일 모두가 비핵화를 선언하고, 누구도 선제공격하지 않겠다는 반전 협정을 맺어야 한다.

이게 2018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활짝 열렸던 평화 전환의 시도를 다시 살려 한반도와 동북아가 함께 사는 평화공존의 유일한 길이다. 우리가 살길은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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