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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멕시코를 여행 중이다. 길 위에서 조우하는 사람과 삶을 인터뷰한다. 4월 초, 바하칼리포르니아 반도의 남단 라파스에서 한 제화공를 만나 삶을 물었다. [기자말]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했다는 사람에게는 강력한 끌림이 생긴다. 책의 한 페이지도 길게 느끼고, 5분의 영상마저도 길게 느끼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 길들여진 현재의 콘텐츠 소비 방식을 생각하면 수십 년을 한 장소에서 한 가지 일에 전념해 왔다는 것 자체의 경외감이 있다. 

그들에게는 반복이 만들어낸 단단함, 긴 시간이 깨우쳐준 효율, 한 가지를 오랫동안 바라본 깊이가 있다. 대교약졸(大巧若拙)의 장인들이다. 

아내가 몇 개월간 불편했던 고장 난 백팩을 단 1분 만에 되살려준 공설 시장의 구두수선공, 마르틴 마론(Martin Marron)에게 수선을 빌미로 말을 붙였다.

​"내 ​​​작은 재주로 다른 이들을 기쁘게 만들 수 있다니"​
 
시립시장의 한 모퉁이 가게에서 40년째 갖가지 물건을 수선하고 있는 제화공, 마르틴 마론 씨
 시립시장의 한 모퉁이 가게에서 40년째 갖가지 물건을 수선하고 있는 제화공, 마르틴 마론 씨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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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의 근무시간은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아침 8시에 문을 열고 오후 3시에 문을 닫습니다."

- 속해있는 이 시장(Mercado Municipal General Agustín Olachea Aviles)의 오픈 시간에 맞춘 것인가요?
"시장은 아침 6시에 문을 열고 오후 3시에 문을 닫지만 저는 그보다 2시간 뒤에 문을 열어요."

- 이 구두수선 일을 언제 시작하셨나요?
"18세에 시작했어요. 제 나이 58살이랍니다."

- 그럼 40년 동안 이곳에서 일하신 거군요?
"그렇습니다. 이곳이 이 일을 처음 시작한 곳입니다. 4월 2일, 오늘이 4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 축하드립니다.
"한국에서 오신 분에게 축하를 받으니 기분이 좋습니다."

- 40년을 이곳에서 일하다니, 돌아보면 힘든 일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종종이요. 가장 안타까운 일은 제가 아파서 문을 열 수 없을 때였죠. 내 몸 아픈 거야 치료하면 되지만 오셨던 손님들은 헛걸음하셔야 되잖아요."

- 기쁜 일도 많으셨을 테고요?
"저의 작은 재주와 기능으로 당신처럼 기뻐하는 분을 매일 만날 수 있다는 거죠. 제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계속 일을 할 수 있다는 거고요."

-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이곳은 구두를 만들어 파는 곳이었어요. 지금은 수선만 하지만... 제가 이곳에 견습공으로 들어왔을 때 사수의 어깨너머로 제화일을 배웠죠. 혼자 할 수 없는 정교한 일은 사수가 알려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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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마론 씨가 일하고 있는 라파스 아구스틴 올라체아 아빌레스 시립시장
 마르틴 마론 씨가 일하고 있는 라파스 아구스틴 올라체아 아빌레스 시립시장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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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수로부터 이 가게를 물려받으신 건가요?
"사장님이 계셨어요. 사수와 저는 직원이었죠. 사장님이 돌아가시고 사수 제화공도 떠나고 저만 남게 된 거죠. 이곳은 공설시장이라 저는 세입자이고 집세는 시의회에 납부하고 있어요."

- 이 일을 하시는 동안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든 적은 없나요?
"다른 직업을 갖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충분히 보람 있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사회보장보험에 가입된 일자리를 갖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죠. 저도 은퇴를 생각해야 할 나이가 되어가고 있으니까요. 저도 내년부터는 보험권을 회복하고 연금에 가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이제는 이런 수선일을 하는 분들이 대부분 없어진 것 같아요. 수선집을 찾기가 정말 어려웠거든요. 다른 나라에서도 고쳐 쓰는 일은 희귀한 일이 되어가고 있어요.
"한국처럼 잘 사는 나라는 새 제품을 살 충분한 돈이 있어서겠죠. 하지만 새것만이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구두는 발이 편해야 하는데 자신 발에 길들여진 신발은 새것보다 훨씬 좋지요. 여전히 고쳐 쓸만한 가치가 있어요."

- 혹시 이 일을 하고 싶은 젊은 사람이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요?
"이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단지 이 일을 하고 싶다는 의욕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아요.

- 맞아요. 의욕! 당신은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자랐습니까?"
"그렇습니다."

- 저희 이곳에 온 지 이틀째입니다. 이 동네에 대해서 좀 소개해 주세요.  
"모든 것이 좋습니다. 나쁜 거, 그런 거 없습니다. 유일한 문제는 범죄인데 지금은 사라졌어요. 심각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 좋은 것 중에서도 더 좋은 것은요?
"사람이 좋습니다. 이웃 좋은 것. 모두가 서로 도와요. 그리고 동네가 차분합니다."

- 돈은 충분히 있어서 먹고 사는 데에 문제가 전혀 없는데 인생이 지겨워진 사람들에게 한마디 한다면요?
"그 질문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돈이 많으면 인생을 즐기면 되는데 어떻게 지겨울 수 있나요? 지겨우면 여행을 하면 되지 않을까요? 아니면 또 다른 사업을 하던지... 저는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 그럼 질문을 바꾸어 보겠습니다. 당신이 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돈이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나요?
"나의 꿈에 대해 물으시는 거지요? 연금을 받게 되면 나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내 노동으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작은 농장이나 목장을 갖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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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백팩의 수리를 위해 만난 구두장인 마르틴 마론 씨에게 삶의 태도에 대해 물었다.
 고장난 백팩의 수리를 위해 만난 구두장인 마르틴 마론 씨에게 삶의 태도에 대해 물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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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인과 자녀가 있습니까? 아이들이 있다면 독립했습니까?
"네. 결혼했어요. 쉰다섯 살인 아내와 37살의 딸, 26세 아들이 있어요. 아들은 전자기계엔지니어이고 딸은 법학 학위를 살려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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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연금을 받는 나이가 되었을 때 농장이나 목장을 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것도 이 일 이상으로 힘이 들 수도 있는데요.
"저는 농사 경험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이 일보다는 더 어려울 거라고 짐작하고 있어요. 그러나 저는 일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아요. 단지 지금 시력이 많이 나빠졌습니다. 오른쪽 망막이 손상되어서 세밀한 작업이 필요한 이 일을 계속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은퇴 후에는 다른 일을 하고 싶을 뿐이에요."

-당신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은퇴는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었던, 또한 여전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은퇴한 후에도 40년을 지킨 이 수리점은 당신같이 솜씨 좋은 누군가가 이어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내 아내의 배낭 지퍼처럼 단 한군데 고장 나서 편리한 옛것을 버리고 불편한 새것을 다시 사야 하는 일이 줄었으면 좋겠어요. 되살려 쓰는 일의 가치는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서 지금은 계량이 불가능한 정도의 가치를 지닌 일입니다. 당신은 구두만 고치는 것이 아니라 지구를 고치는 의사입니다.

"그리 말씀해 주시니 큰 기쁨입니다. 제게 보람을 선물 주셔서 고맙습니다."​

책 <그 많던 플라스틱은 어디로 갔을까>의 저자인 소노스님이 고쳐 쓰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가게앞 나무아래에서 책가방을 수선하고 있는 마르틴 마론 씨
 가게앞 나무아래에서 책가방을 수선하고 있는 마르틴 마론 씨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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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자랄 때만 해도 고쳐 쓰는 것이 당연한 시대였지요. 옷이나 신발, 가방 등 바느질이나 미싱으로 엄마가 수선해 주고 아버지는 라디오부터 가전용품도 고쳐주셨죠. 오늘날에는 손으로 수선하는 기술이 사라지고 가전제품은 소비자가 수리할 경우 불법이 되었지요. 여러 전환운동으로 수리카페-리페어컬처가 다시 확산되기 시작했답니다.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대기업으로부터 소비자가 '수리할 권리를 되찾았고 우리나라는 2021년부터 법안을 상정했지만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순환경제를 위해서도, 환경을 위해서도, 핸드메이드 재주를 되찾기 위해서도 꼭 필요합니다. 예전 전파사처럼 '수리ᐧ수선 가게', '리페어 숍'이라는 멋진 독립상점들이 돌아왔으면 좋겠네요. 2009년 암스테르담 수리 선언문의 구호입니다.

'재활용을 중단하세요. 수리를 시작하세요.'"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멕시코여행, #구두수선공, #라파스, #리페어컬처, #마르틴마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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