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극장 영업종료 공지

▲ 대한극장 영업종료 공지 ⓒ 대한극장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기쁨과 슬픔이 뒤엉킨 한 주다. 기쁨은 한국의 자랑이라 불러도 좋을 전주국제영화제가 25번째로 개최된 주간이란 점에서 온다. 그렇다면 슬픔은 어디서 왔는가. 한국 영화사를 가로질렀다 해도 좋을 대한극장이 66년 만에 폐업을 발표한 데서 왔다. 그렇다. 대한극장이 오는 9월 30일로 운영을 종료한다.
 
대한극장이 어떤 극장인가. 1958년 한국 최대 규모 상영관으로 개관해 대기업 계열 멀티플렉스로 짜여진 판도, 필름에서 디지털로의 전환 같은 부침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텨왔던 유서 깊은 극장이다. 대한극장은 텔레비전의 보급으로 영화산업 위기론이 쏟아질 때 나온 70mm 필름 촬영 영화의 국내 유일 상영관이기도 했다. <벤허> <콰이강의 다리> <아라비아의 로렌스> <닥터 지바고> 같은 대작들이 죄다 이곳에서 개봉했고, <올드보이> 같은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의 시사회도 대한극장에서 열렸다. 그만큼 상징성이 있는 공간이었다.
 
영화평론가이기 이전에 한 명의 영화팬으로서 내게도 이곳은 특별한 영화관이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무려 84번이나 진행해온 영화모임의 본진이 바로 대한극장이었기 때문이다. 수백 명의 영화팬이 거쳐 간 내 지난 영화모임에서 대한극장이 담당한 역할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의 독보적 영화감독이라 해도 좋을 봉준호에게도 대한극장은 특별한 감상을 일으킬 테다. 그에게 대한극장은 과거 <옥자>의 국내 첫 상영, 즉 시사회를 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옥자>가 어떤 영화였나. OTT 시장을 선도해온 넷플릭스가 한국 감독을 통해 진행한 첫 오리지널 영화가 아니었던가. 이제는 흔해진 방식이지만, 극장과 넥플릭스를 통한 동시 배급이 문제되며 대형 멀티플렉스 3사가 <옥자> 상영을 보이콧한 바 있다. 이때 손을 내민 것이 대한극장으로, 영화는 대한극장 시사회를 거쳐 OTT와 독립예술영화관 위주로 배급되었던 것이다.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 JIFF

 
25년 전 영화를 소개하는 JIFF의 의도
 
굳이 대한극장 이야기를 꺼내는 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봉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와 마주한 때문일지 모르겠다. 전주국제영화제의 25주년, 한국영상자료원의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다시 보다: 25+50' 섹션으로 이 영화가 초청됐다. 2000년 작 필름 촬영분을 고화질 디지털로 변환한 4K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영화제 기간 동안 3차례나 상영기회를 잡았다.
 
<플란다스의 개>를 보고 <옥자>를, 다시 <옥자>에서 폐업을 발표한 대한극장을 떠올리게 되는 건 내게는 자연스런 일이다. 무엇보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이 영화를 비롯한 한국 여러 감독의 초기작을 상영하기로 한 '다시 보다: 25+50' 섹션의 목적이 정규 규격을 갖춘 상영관에서 관객과 영화가 만나는 경험을 선사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극장이라는 최적의 환경에서 상영될 때 영화는 비로소 진가를 발한다. 그에 대한 믿음을 전주국제영화제, 한국영상자료원, 나아가 대한극장은 공유해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변화하는 현대 대중들의 영화소비 방식은 대한극장 뿐 아니라 예술독립영화상영관, 나아가 3대 멀티플렉스 체인의 경영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다. 막대한 자본을 갖춘 OTT가 관객의 안방으로 수많은 작품을 배급한다. 이 가운데는 직접 제작한 오리지널 영화까지 수두룩하고, 영화의 제약을 뛰어넘는 각종 시리즈물도 적지 않다. 형식을 뛰어넘은 영상물이 안방으로 쏟아지는 가운데 관객이 영화를 볼 수 있는 기기 또한 진화를 거듭한다.

마침내 극장이란 공간이 불편하고 귀찮은 무엇으로 전락하리라고 내다보는 이들까지 나타나고 있다. 적어도 OTT와 극장 가운데 어느 하나가 영화산업에서 낙오하게 된다면, 그건 OTT는 아닐 것이다.
  
플란다스의 개 포스터

▲ 플란다스의 개 포스터 ⓒ JIFF

 
극장의 멸망은 피할 수 없는가
 
지난 2일 영화제 가운데 발길이 닿아 들른 행사 자리가 있었다. 영화의 거리 근처 전주중부비전센터 5층에서 열린 '한국영화 생태계 복원을 위한 토론회'였다.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한국예술영화관협회, 여성영화인모임 등 영화계 제 단체 대표자가 참여한 토론회는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객단가 문제와 대형영화의 독과점 논란 등을 다루었다.
 
누군가에겐 이제껏 수없이 나온 논의의 반복처럼 여겨졌을 이 자리에서 그래도 처절함이 닿는 이야기가 없지 않았다. 경상남도 유일의 예술영화전용관 씨네아트 리좀을 운영해온 하효선 대표는 토론회 뒤 발언권을 받아 이날 토론이 멀티플렉스 3사와 <범죄도시>의 독과점 이야기로 채워진 것에 답답함을 드러냈다. 그녀는 "생태계를 이야기한다고 하면서 모두 관객과 (영화가) 닿는 토양에 대해선 심각하게 고민을 안 하고 있는 것 같다"며 "(정부가) 문만 닫지 않을 정도의 지원금으로 (다양한 영화를 소개하는 부담을) 예술영화전용관 등에 지우는 실태에 대한 얘기를 언제쯤 제대로 할 건지 묻고 싶다"고 토로했다.
 
대한극장과 같은 대형 멀티플렉스조차 문을 닫는 현실 가운데서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이 생존할 수 있느냐는 사회적 차원에서 논의돼야 할 문제다. 오로지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을 통해서만 관객과 만나고 있는 작품이 수두룩한 현실, 그럼에도 대중이라 불리는 대다수 예비 관객은 이를 외면하고 있는 현실 가운데서 이를 유지할 필요와 방법에 대한 합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 및 정당들이 이를 외면하고 있는 현실은 문화강국이며 한류열풍의 전성기에 서 있는 한국 영화예술의 민낯을 깨닫도록 한다.
 
한편으로 소규모 상영관을 통해 전해지는 독립영화가 과연 볼 가치가 있느냐에 대한 물음도 이뤄져야 한다. 지난 세기 동안 비약적으로 커진 콘텐츠 시장은 영화의 지위마저 전과 다른 무엇으로 바꾸어 놓았다. 할리우드와 OTT 서비스를 위시한 산업의 측면에서 영화는 손꼽는 파급력을 지닌 대중예술이며 산업콘텐츠이지만,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다수 독립영화들은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매력 없는 콘텐츠처럼 여겨지곤 하는 것이다.
 
플란다스의 개 스틸컷

▲ 플란다스의 개 스틸컷 ⓒ JIFF

 
개를 훔친 범인을 잡아라
 
그럼에도 독립영화는 보존돼 마땅한 가치가 있는가. 국가가, 사회가 나서 독립영화의 설 자리를 지키고 보전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어느 SNS 채널에 달린 '재미없으니까 안 되는게 더 큰 듯'이라는 한 줄 짜리 댓글에 어떻게 답글을 달아야 할지 오래 고심했다는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은 "무역하는 물건처럼 수출을 잘 해야 한다고 (영화를 대하는 정부의 시각이) 우려된다"면서 "재미가 무엇인지 해석하는 바가 다 다르겠지만 독립영화가 재미를 위해 만드는 것인지, 극장에서 봐야 하는지 고민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편 전주국제영화제에서 25년 만에 다시금 상영기회를 얻은 봉준호의 <플란다스의 개>는 상업적으로는 실패했으나 한국 사회 전반에 무시할 수 없는 질문을 남겼다. 콘크리트 벽을 사이에 두고 여러 가구가 함께 사는 아파트가 영화의 배경이다. 그곳에서 신경이 거슬리게 짖어대는 개가 한 마리 있다. 그 소리에 화가 잔뜩 난 백수나 다름없는 시간강사가 있다. 그가 몰래 개를 납치한다. 그러나 그 개는 제 화를 부추긴 짖어대는 개였는가. 아파트 곳곳에 나붙은 전단은 성대수술을 해 짖지 못하는 개를 구하고 있지 않은가. 개를 훔친 뒤에도 개 짖는 소리는 계속 들려온다. 오지랖 넓은 경비실 직원은 누군가 개를 죽이는 모습을 우연히 발견하고 그를 뒤쫓는다. 상황은 갈수록 뒤틀리고 진실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마치 진실처럼 표면 위로 드러난다.
 
봉준호가 천착해 온 오래 주제의식, 약자끼리 쫓고 쫓기며 드잡이질 하는 상황이 얼마쯤 우스꽝스럽고 얼마쯤 안쓰러운 감상을 일으킨다. 누군가는 개를 훔치고 누군가는 쫓김을 당하며 누군가는 제가 무엇을 쫓고 있는지 모른 채로 바쁘게 뛰어다닌다. 참담하게 실패했던 영화는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정식 상영관에서 관객과 만날 기회를 얻었다. 정식 상영관만이 줄 수 있는 감흥이 있다는 게 그 이유다. 그 사이 어느 극장은 문을 닫았고 어느 극장주는 소리 높여 생태계를 말해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개는 죽었는가. 아직은 구할 기회가 남았는가. 25년 전 아파트의 층간소음 문제는 과연 사라졌는가. 진실로 책임 있는 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플란다스의 개>가, 재미가 없다고 미뤄졌던 그 작은 독립영화가 오늘의 한국에 던지는 물음이 여전히 맹렬하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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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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